춘향골 남원으로 떠난 하루 나들이
2018년 6월 21일, 선문대학과 적십자봉사단 초청으로, 춘향골 남원으로 하루 나들이 여행을 떠났다.
이날 행사는, 대한 적십자 봉사회 천안지구 협의회 주최로, "2018년도 적십자 효도관광"이란 명목으로 이루어진 행사로써, 관광버스만도 32대나 동원되어진 매머드 행사였다.
1200명이 넘는 인력이 움직이다보니, 봉사요원도 150명이 넘는 인원이 동원되었고,행사진행이 여러모로 매끄럽지 못한 미숙한 점들이 있기도한 아쉬움이 있었지만,주최측에서 떡과 과일,고기등을 푸짐하게 준비해온 세심한 배려로 풍성한 나들이가 되기도 했다.
버스 32대가 천안 삼거리공원에 집결하여, 9시 30분 경 출발한 일행은 남원에 도착한후, 각 차량마다 분산된 식당에서 오찬의 시간을 갖고,춘향 문화 예술회관에 입장하여 효도관광 기념식을 먼저 가졌다.
기념식을 마치고, 남원 시립공연단의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고,공연 관람을 마치고선 춘향이와 이도령이 열연했다는 광한루로 이동하여 광한루를 한바퀴 돌아보며 아름다운 추억을 담아보았다.
남원 국립 민속 국악원/ 춘향 문화 예술회관 바로 뒤켠에 자리한 국악원은 규모가 대단한 건물이었다.
기념식을 하고 있는 장면
기념식을 마친 단상의 인사들
양 승조 충남도지사가 인사하는 장면
문화공연 사회자
태평성대 무용
가야금 병창
경기 민요 기악
농부가
사랑 가
남도민요/ 성주풀이,남한산성,진도 아리랑
공연장/ 춘향문화예술회관
광한루에 도착하여
광한루란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누각이다.
보물 제281호로써 조선시대의 재상 황희가 남원에 유배가서 1418년 현재보다 규모가 작은 누를 지어 광통루(廣通樓)라 했는데, 1434년 남원부사 민여공(閔汝恭)이 증축했고, 1444년(세종 26) 전라관찰사 정인지(鄭麟趾)에 의해서 광한루라 불리게 되었다.
광한루란 말은 달 속의 선녀가 사는 월궁의 이름인 광한전(廣寒殿)의 '광한청허루'(廣寒淸虛樓)에서 따온 것이다.
1461년 신임부사인 장의국(張義國)이 요천강(蓼川江) 물을 끌어다 연못을 조성하고, 4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를 화강암과 강돌로 축조하여 월궁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584년 송강 정철에 의해 수리될 때,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三神山)을 연못 속에 축조하므로 광한루, 오작교와 더불어 월궁과 같은 선경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뒤 정유재란으로 전소된 것을 1638년(인조 16)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렀고, 춘향전에 의해 많이 알려지게된 곳이다.
오작교 앞에서 춘향가를 불러보며....
'춘향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한국 서민문학의 대표적 작품이며,조선시대 최고의 로맨스소설이기도 하다.
전라도 남원의 기생 성춘향이 광한루에 그네를 타러 나갔다가, 사또의 아들 이몽룡을 만나 인연을 맺고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
두 사람이 남모르는 사랑을 계속하던 중, 사또가 서울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서로 헤어지게 된다.
춘향은 지조를 지키느라 다른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지만, 새로 부임한 사또는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강요한다.
춘향은 죽기를 무릅쓰고 신관 사또인 변사또의 요구를 거절하다가 옥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한다.
이때 암행어사가 되어 나타난 이몽룡이 춘향의 목숨을 구하고, 함께 평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이다.
자라 바위에서
월매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