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천국 문 앞에 서게 되었다. 한 사람씩 심판의 차례를 기다리며 길게 한 줄로 늘어 서
있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땅에서 살 때에 했던 일들을 하나씩 기억해 봤다. 절대 하지 말라는 것
은 안 했고, 예배에 늦거나 졸았던 적도 없으며, 한점 부끄럼 없이 완벽하게 살았다는 생각을 했
다. 그가 열심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에, 아주 작고 하얗고 귀여운 강아지가 주변을 뛰어다녔다. 사람들은 그 강아지를 안아보고 웃어대로 같이 노느라고 대열이 흐트러졌다. 그는 한점 부끄럼 없이 완벽하게 율법을 지키며 살아온 삶이 저 강아지 한 마리에 의해 오점을 남길까 싶어 눈은 앞으로만 향하고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를 애써 외면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차례가 되었다. 심판주는 한 장씩 그의 삶의 역사를 넘기시면서 ‘네가 정말 완전하게 살았구나.’ 라고 말하셨다. 이 사람은 아주 자신만만 하였다. 그 때, 심판자가 ‘그런데, 네가 한 가지 죄를 지었구나.’라고 말하시는 것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라고 그가 생각하는 사이 심판자는 대답하셨다. ‘네가 하나님이 즐기라고 네게 주신 것들을 즐기지 않았구나.!’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에 풀빵공장에서 풀빵 찍어내듯이 사람을 만들지 않으셨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개성을 부여하시고 각각 다른 성품과 외모로 만드셨다. 지구에 있는 누구도 다른 사람과 완전히 같은 사람이 없게 지으실 정도로 그분의 창조성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분이 창조하신 만물 중에 인간을 향한 특별한 애정을 담아 주신 것이 있으니, 바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눈 하나에도 120만개의 조직이 작동하도록 섬세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은 감각기관이라는 것을 부여해 주셨다. 입만 있으면 되지 미각을 느낄 필요가 굳이 있겠냐만은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먹는 즐거움을 알게 하시고저 미각을 창조하셨다. 그저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적인 존재로 창조하셨고, 성적인 즐거움을 알게 하셨다. 그분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알게 하고자 창조하신 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하루종일이 걸릴 것이다. 어쨌거나, 감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천사도 알 수 없는 다양한 감각기관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주님의 우리를 향한 특별한 애정인 것이다. 즐기라고 주신 것들을 즐거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자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여름마다 온 영화관을 뜨겁게 달구는 공포영화를 즐기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어떤 이들은 공포영화를 보고 나면 그 잔상이 머리에 남아 기도도 할 수 없고 마음이 눌린다는데, 어떤 이들은 그저 재미로 여름을 시원하게 지내보고자 공포영화를 즐긴다고 하니, 이런 차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우선 영화라는 매체는 그저 즐기기 위한 것뿐이라고 간단하게 넘어갈 만하지 않다. 최근 영화계의 핫이슈였던 Passion of Christ를 보고 네덜란드에서 자신의 여자친구를 두 차례에 걸쳐 살해한 청년이 울면서 자수한 일이 있었다. 또한, 놀라운 인기를 얻었던 ‘태극기 휘날리며’는 애국심과 형제간의 우애를 가르치는 데에 유익하다고 판단되어 전국민의 1/3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을 위해 만화로 다시 한번 제작된다고 한다. 한 유명한 공포영화는 주인공이 영화촬영 후 매번 정신 이상 내지 자살을 한다고도 하니, 어쨌거나 영화의 위력은 그저 간단히 즐기기엔 너무나 큰 뭔가가 있다.
바로 세계관이다. 세계관이 없는 이는 없다. 세계관이 함유되지 않은 영화도 없다. 내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나는 내 삶에서 체득된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유교주의적 세계관이든 물질주의적 세계관이든 포스트모던적 세계관이든, 약육강식의 성공주의 세계관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세계관은 그 사람의 작품에도 반영되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책 표지 디자인을 하는 이들도 책 표지에 자신의 상태가 반영된다고 하며,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춘 이들의 음악과 그림등은 보는 이들에게도 영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니 영화와 같이 노골적이고 강력한 매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공포영화같은 것은 안 좋은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으니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당연히 우리는 영화든 드라마든 노래든 즐기라고 주신 것들을 즐겨야 한다. 그러나, 분별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분별은 내가 올바른 세계관을 갖추고 있을 때에야 가능한 것이다.
즉, 내가 영적인 세계를 바르게 이해하고 있어서 죽은 자가 산 자를 해할 수 없으며, 사람의 목숨
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안다면 귀신영화 따위는 전혀 무서울 것이 없으며, 도리어 아프리카의 난민을 외면하고 조롱하는 이들의 악한 마음에 더 공포를 느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공포 영화를 피할 것이 아니라, 보고 왜 나쁜지 분별하고, 이런 악한 것을 이 세대가 왜 즐기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감각적인 쾌락만을 추구하고,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매는 이 세대의 외로움과 악함을 이해해고 보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개개인의 인간을 각각 다르게 창조하신 것처럼 모든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무디고, 이성이 발달되어 분별할 수 있지는 않다. 감정의 폭이 넓고 깊은 사람은 공포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다른 이들보다 훨씬 깊이 고통당하기 마련이다. 잔상이 남고 온 마음이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있다. 스스로가 부드럽고 세밀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마땅히 공포라는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공포영화를 멀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다른 긍정적 감정에는 약하고 부정적 감정에만 강한 이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부정적 감정만을 자극하는 공포영화는 또한 잠시 멀리 떼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추어 나가고 있으며, 세상의 문화에 전복되지 않고 세상의 파도를 복음으로 넘어서고자 한다면 인간의 죄성과 인간의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영화들을 보라. 그리고 분별하고, 이 세대를 이해하라.
첫댓글영적인 분별력을 가져 하나님의 것과 사단의 것을 구별하고 분별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오늘날의 시대에 우리 젊은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같습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6:16)한것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해야겠습니
첫댓글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 하나님의 것과 사단의 것을 구별하고 분별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오늘날의 시대에 우리 젊은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같습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6:16)한것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해야겠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