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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개미를 아십니까?
일본 왕개미(Camponotus japonicus)와 **벼룩파리(Phorid Fly)**의 관계는 자연계에서 가장 소름 돋는 '천적 및 기생 관계' 중 하나로 꼽힙니다.
벼룩파리는 아주 작아서 개미가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암컷 벼룩파리는 공중에서 정찰하다가 일본 왕개미를 발견하면 순식간에 급강하하여 개미의 가슴이나 머리 근처에 산란관을 꽂고 알을 주입합니다. 이 과정은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일어납니다.
개미의 몸 안에서 부화한 벼룩파리 유충(구더기)은 놀랍게도 개미의 머리 쪽으로 이동합니다.
뇌 섭취: 유충은 개미 머리 속의 뇌와 근육 조직을 파먹으며 성장합니다.
조종 상태: 이때 개미는 뇌가 파먹히면서도 즉시 죽지 않습니다. 유충은 마치 차를 운전하듯 개미를 조종하며 맘껏 활용하다가 나중에는 개미의 목을 자르고 그속에서 나옵니다.
참으로 소름돋는 상상만해도 끔찍한 모습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뇌, 사상, 생각을 죄악에 지배당하는 중독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을 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세상학문이, 영생도 소망도 도덕도 없는 진화사상이 아이들의 뇌에 심겨져 평생을 조종하다가 하늘의 소망을 붙잡을 기회를 잃어버리게하고, 하늘 영생의 소망을 목을 베듯 잘라버립니다. 그래서 영원을 살며 행복해야할 우리의 자녀들이 일순간의 즐거움을 위하여 살다가 하늘을 잃어버리는 비참한 존재가 되게 합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 예수를 판 가룟 유다는 생각을 침투당해, 좀비개미와 같은 운명이 되어 버린 것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벼룩파리같은 세상의 거짓된 철학들이 아이들을 침투하기전에 복음의 전신갑주로 무장시켜야 합니다. 아이들을 말씀으로 무장시키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빛은 어둠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빛안에는 따스함과 생명이 있습니다. 참 빛 안에는 소망과 의미와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어둠은 대단해 보이나 참 빛앞에서는 줄행랑을 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복음의 빛으로 무장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아주 쉽게 믿는 자연과학의 여러 발견들이, 그것을 발견하기 오래 전에 성경에 이미 그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믿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학문과 연구란 무엇입니까? 있는 것을 보고 탐구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세계입니다.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행 17:25) 분이십니다. 인간의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있는 창조세계를 연구하고, 변형, 개조시키면 마치 그것 자체를 자신이 만든 양 큰소리 치는 것이 인간의 학문의 실상입니다.
우주를 연구하면 우주과학, 지구를 연구하면 지구과학, 물질을 연구하면 물리학이 됩니다. 그 우주, 지구를, 물질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신이 주신 지성, 두뇌를 활용합니다. 두뇌를 인간 스스로 만들지는 못 합니다. 신이 주신 두뇌로 형상을 따라 그리면 미술이 되고, 감미로운 음을 찾고 그리면 음악이 되고, 과학이 되고, 문학이 됩니다.
창조세계를 자세히 연구해보면 이런 바울의 고백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존재자체, 생명자체, 질서와 조화, 도덕심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해주신 위대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기초이시다. 참된 모든 과학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조화된다. 참된 모든 교육은 학생들을 하나님의 정부에 순종케 한다. 과학은 우리의 시계(視界)에 새로운 경이들을 열어주고 희망을 용솟음치게 한다. ... 자연의 책과 기록된 말씀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피차에 빛을 비추어 준다. 우리가 그것들을 정당하게 깨닫기만 한다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그의 품성을 잘 알려준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명하고 자비하신 법칙들에 관한 것들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사인즈 1884. 3. 20).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라 이름 하신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행17:24), 그 하나님이 계시해주셔서 기록한 성경에 기록된 천연계에 대한 말씀과 천연계에서 일어나는 천연적 현상들의 법칙은 일치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창조하시면서 천연계의 법칙을 만드신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천연계의 현상을 바르게만 깨달으면 거기서 창조주 하나님의 신기한 솜씨를 발견할 수밖에 없다.
성경은 땅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물고기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그러면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실을 증거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욥 12:7-9).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셨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르게 증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아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만 하시고 그냥 자율(自律)하도록 내어버려 두시지 않고 그것들을 날마다 돌보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된 상태를 항상 올바르고 아름답게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시119:89-91). 우주 만물이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유지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법칙을 정하셨고 그것들이 그 법칙을 잘 지키기 때문인데, 그것들이 법칙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지 않으시고 손을 늦추시면 우주는 와해瓦解=산산이 무너지고 흩어짐)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들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날마다 돌보시는 일도 하신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 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시104:14, 27, 28)하는 것이다.
우리는 몸도, 생명도 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도 듣고, 읽고, 배워서 얻은 것이지 스스로 자기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모두 자기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처럼 행세하려고 한다. 얼마나 미련한가!
1. 광합성작용에 대하여
광합성작용이란 녹색식물이 빛에너지를 받아서 이산화탄소와 물로부터 유기물을 합성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광합성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일어나며, 최근에 와서야 그 중간대사(中間代謝) 과정이 자세히 밝혀졌다. 즉, 고등식물 · 양치식물(羊齒植物)·조류(藻類) 등의 녹색식물이나 광합성 세균이 빛에너지를 받아서 이산화탄소를 고정하고, 당류(糖類) 등의 유기물을 합성하는 탄소 고정의 한 형식이며, 이때 산소를 방출시켜서 모든 동물들의 호흡 작용을 도와준다.
에너지를 중심해서 말한다면, 광합성은 태양의 복사 에너지를 유기물인 화학에너지로 바꾸어서 저장하는 현상을 뜻하는 것이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얻어진 유기물의 화학에너지를 생장 등 생명현상을 영위營爲)하는데 사용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그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광합성에서 얻고 있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지 않으면 지상의 대부분의 생물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빛은 생명현상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
성경은 생명과 빛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춰려 하심이니라"(욥33:30).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이 말씀들은 영적인 사실에 대하여 뿐아니라 인류 생활의 실상에 있어서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도 빛이 생명현상에 깊이 관여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이해한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 같다. 광합성작용에 대하여 알게 된 후에야 빛이 생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이미 그렇게 말씀하셨다.
18세기 초 이전까지는 식물은 토양(土壤)으로부터 모든 영양소를 얻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빛과 물이 식물의 자양분이 되고, 또한 식물을 성장하게 한다는 사실은 18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발견하였다.
그런데 식물 생리를 최초로 실험적으로 계획하여 연구한 사람은 헬몬트(Helmont, J. Van 1577?~1644?)였다. 그는 탈레스(Thales)설에 따라 “물은 만유의 근원"이라 생각하였고, 모든 것은(금속과 암석이라 할지라도) 마침내 물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 200년 쯤 후에 산소를 발견한 사람으로서 영국의 성직자이며 화학자인 프리스틀리(Priestley, J. 1733~1804)가 불태우는 것과 숨 쉬는 데에 공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식물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숨을 쉬며 그 결과로 공기를 변화시켜서 필요를 채우는 것이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양초를 계속 태워 꺼질 정도로 탁해진 공기가 가득 차 있는 유리종 안에 잎이 붙은 나뭇가지를 넣어 두었었는데, 10일 뒤에는 그 공기가 양초를 태울 수 있도록 맑아진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생쥐의 호흡으로 탁해진 공기 속에 식물을 넣어 두었더니 역시 위에서와 같이 공기가 신선하게 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즉 동물이 호흡할 때, 오염된 공기가 녹색식물에 의해 맑아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산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녹색식물에 공기를 정화하는 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면서도, 햇빛이 이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주목하지 못하고 1779년에 식물이 산소를 배출한다는 사실만 발표하였다.
그 후에 프리스틀리의 실험한 내용을 읽고 자극을 받아 굉장한 열성으로 연구를 거듭하여 식물 영양학 발달 사상불멸의 이름을 남긴 사람이 잉겐호우스(Ingenhousz, 1730~1799)인데 네덜란드 사람이다. 그가 식물학계에 발을 디딜 당시에는 위에 설명한 대로 소위 부식토(腐植土)설이라는 것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때였다. 그러나 부식토를 함유하고 있지 않은 바위 위에도 거목이 자라고 있으며, 그냥 물속에서도 식물이 왕성하게 자라나는 것을 보면 탄소의 근원이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잉겐호우스는 소쉬르(Saussure,1767~1845)와 함께, 이 탄소가 공기 중에 함유된 탄산가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실험을 통하여 녹색 잎이 이것을 섭취하며, 이 작용은 녹색 잎이 햇빛을 받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고 어두운 곳에서는 동물과 같이 탄산가스를 배출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하여 광합성의 원리를 실증하였으며, 광합성과 호흡 작용을 확실히 구별하게 되었다. 그러나 녹색 잎에서 배출되는 산소가 어떻게 분리되는 지는 깨닫지 못하였다.
제네비어(Senebier,1742~1809)는 스위스의 목사로서 그는 잉겐호우스보다도 화학적 지식이 한층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는 광합성은 두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합성 연구사에서 잉겐호우스와 함께 영예를 누릴 사람은 소쉬르(Saussure,1767~1845)이다. 그의 아버지는 등산가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식물학에 비상한 흥미를 가졌으며, 또 물리학, 화학, 지질학에도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 20대 시절, 소쉬르는 알프스에 올라 아버지의 야외 관찰 등을 돕기 시작하면서 자연계에 대한 정확하고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광합성 작용에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제시하였으며, 1804년 처음으로 광합성의 양을 측정하여, 식물은 배출한 산소량보다 많은 양의 탄산가스를 흡수하는 것 같은데, 교환되는 탄산가스와 산소의 양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밝혔다.
과학자들의 이런 노력으로 햇빛과 물이 식물을 성장하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햇빛이 열매를 맺게 한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모세를 통하여 요셉 지파에게 축복하면서 “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신33:14)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위에 기록한 과학자들의 연구는 이것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식물이 밤에 잘 자라난다는 것을 안 것도 아마 광합성작용과 호흡작용에 대하여 알게 된 후에야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모세는 '태음이 자라게 한다'는 말로 식물의 성장이 주로 밤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록하였다. 태음이라고 번역된 말은 직역하면 달이다. 그러나 달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보다는 밤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그리고 태양이 결실하게 한다는 말은 태양 곧 햇빛이 열매를 맺게 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이러한 오묘한 사실을 알았을까.
과학계가 겨우 1,700년대와 1,800년대에 안 것을,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기원전 1,500년대에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과학이 발견하기 3,200여 년 전에 이미 말씀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했느냐고?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자기의 종들에게 영감으로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광합성작용은 초록빛 잎을 가진 식물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과학자들이 이런 것을 발견하기 전에는 빛이 초록색 나뭇잎에 그런 작용을 하는 것을 몰랐다. 나뭇잎들은 어떻게 초록빛을 띠는 것일까?
어떤 물체가 햇빛을 만나면 그 물체는 햇빛 중에서 어느 파장에 해당하는 부분을 흡수고, 흡수되지 않은 부분이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 물체의 색이 그런 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파란색 물감은 빨간색, 노란색 즉 긴 파장 쪽을 흡수하기 때문에 흡수되지 않고 되쏘는 색인 파란색이 보이고, 노란색 물감은 빨간색과 파란색, 보라색 부분을 흡수하고 노란색을 되쏘기 때문에 노랗게 보이는 것이다. 노란색과 파란색 물감을 섞으면, 무지개 색깔 중에서 가운데 색인 초록색을 제외하고는 모든 색깔이 흡수되어서 초록색을 얻게 된다.
그런데 식물의 엽록소(Chlorophyll)에는 빨간색을 흡수하는 것과 파란색을 흡수하는 것의 두 종류가 있기 때문에 나뭇잎은 초록색으로 보이게 되는데, 만일 초록색을 흡수하는 엽록소가 더 있었다면 나뭇잎은 모든 빛이 흡수되고 아무 빛도 반사되지 않기 때문에 검은색으로 보일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세상은 얼마나 칙칙해 졌을까. 생각만 해도 끔직해진다. 창조주 하나님은 얼마나 아름답게 세상을 장식하셨는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을이 되어 날씨가 쌀쌀해지면 엽록소가 파괴되기 때문에 그 뒤에 숨어 있던 노란색, 붉은색의 색소들이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뭇잎뿐만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색깔이 다 그렇다. 그런데 나뭇잎 속에 있는 엽록소가 햇빛을 받아서 초록색을 띠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녹색식물이라고 분류하며, 이 녹색식물이 빛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로부터 유기물을 합성하는 일련의 과정이 광합성작용이라는 것은 이미 말하였다. 녹색 잎사귀가 광합성작용을 하여 녹말을 만들어 열매들을 맺게 되는 것이다. 태양의 결실케 하는 보물은 바로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약성경 욥기에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푸르게 된다고 기록하였다.
“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벋어가며”(욥8:16)
욥기는 기원전 1,500년경에 모세가 기록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욥이 직접 기록하였다고도 한다. 그런데 만일 이 기록하였다면 기원전 1,500년보다 훨씬 먼저 기록한 것이 된다. 욥은 모세보다 훨씬 이전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옛날 지금부터 3,500여 년 전에 식물(植物)이 햇빛을 받아 푸르러진다는 것을 기록한 것은 오늘날 지식의 발전으로 미루어 볼 때 대단한 지식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푸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토브'인데, '물기가 많은, 싱싱한, 푸르른' 것을 뜻하는 말이다. 요즘 번역들은 '물이 올랐다', '싱싱하다'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킹제임스 역에는 '녹색 green'으로 번역하였고, 한글 개역판에는 '푸르다'고 번역하였다. '라토브'는 이처럼 두 가지로 번역할 수 있는 의미가 있다. 햇빛을 받아 '라토브'가 되었다는 이 표현은 나뭇잎의 녹색현상과 물이 올라 싱싱하게 되는 현상을 묘사하기에 너무나 적절한 말이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한글에는 이런 단어가 없다. 광합성작용을 위하여 물이 필요하며, 녹색이 필요하다. 이미 설명한 대로 1804년 스위스의 N. T. 소쉬르가 녹색식물의 광합성에서, 물이 이산화탄소와 더불어 유기물의 합성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라토브'라는 단어는 이 두 가지 현상 즉 녹색 현상과 물이 필요한 사실을 한꺼번에 다 표현하는 단어인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여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시대를 따라 그만큼씩만 알게 하신다. 기원전 1,500년경에 광합성작용, 탄소동화작용이이라는 말을 사용할 만큼 사람들의 지식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 시대에 합당한 말로 단순하게 표현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인간의 지식이 발달하고 천연계의 이런 현상을 과학이 발견하고 알맞은 단어를 찾아 표현하였을 뿐인데, 성경을 보니 이미 그런 과학적 사실(현상)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라 이름 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런 작용을 할 수 있는 법칙을 친히 제정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가르쳐 주실 수 있다. 세월이 지나 사람들이 이런 것을 발견할 것도 이미 아시고, 그런 날이 올 때,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성경에 그런 것을 기록한 내용을 발견하게 하셔서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배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이런 사실들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고난이 꽃이 되고
https://youtu.be/yZoFnfWq3gA?list=RDyZoFnfWq3gA
https://youtu.be/Fpfm7VUuspQ?list=PLIiS6SHbut0posdIt033Zb4GhAOAK6aZ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