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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발견된 해저 피라미드(동영상 캡처) |
[시사중국] 최근 50년 간, 일본의 해저 각지에서 대량의 피라미드 유적과 거석으로 만들어진 건축물들이 발견됐다. 상당히 오랜 세월 바다 밑에 잠겨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 건축물 중 일부는 표면에 먼지와 흙이 뒤덮여 있었고 각종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마치 하나의 언덕 같았다.
이들 해저 건축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요나구니(Yonaguni) 해저 피라미드다.
1996년 3월, 한 잠수부가 오키나와 요나구니섬 사이 해역에서 8곳의 해저 유적을 발견했다. 그 해 여름에는 오키나와 남부 해저 13m에서 거대한 모서리가 있는 계단이 발견됐다.
이후 이 일대를 더 정밀히 조사한 결과 기념비 등 더욱 많은 건축물들을 발견했다. 건축물들은 조화롭게 배치돼 있었으며 넓은 거리, 높고 웅장한 계단과 아치형 문, 반듯하게 잘린 거석들이 전체적으로 통일을 이뤘다.
그 후 일본 고고학계에선 발굴에 적극 참여했고 얼마 되지 않아 요나구니섬에서 멀지 않은 오키나와 남쪽 483km 지점 바다 밑 30m 되는 곳에서 방대한 피라미드 건축물을 발견했다.
피라미드는 어떤 의식에 사용한 듯 넓은 구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양측은 거대한 탑문이며 지름 73m, 너비 183m, 높이 27m로 축조 시기는 최소 1만년 전으로 추정됐다. 주변에서 인간의 얼굴 형상을 한 거석도 발견됐다.
이 유적이 있던 곳의 해저 가시거리가 30m였던 이유로 선명한 화질의 사진과 동영상을 얻을 수 있었고 이 사진들은 1년 넘게 일본 신문의 톱을 장식했다.
지질학자인 오키나와 류큐대학 마사키 키무라(Masaki Kimura) 교수는 앞장서서 이 연구를 진행했고 5층 구조로 된 이 건축물들은 인공물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이 건축물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라며 “건축물 주위 도로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보스턴대학 지질학과의 로버트 스코치(Robert Schoch) 교수는 직접 잠수하는 열정을 보이며 이 건축물을 고찰했다. 그는 “건축물은 거대한 계단 같으며 하나가 약 1미터 높이로 그의 단면은 본질상 계단식 피라미드와 같다. 이는 매우 재미있는 구조다. 계단의 예리한 단면은 이 건축물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건축물 주위에서 일부 작은 돌더미가 발견됐는데 역시 소형 피라미드 모양으로 너비 10m, 높이 2m였다.
키무라 교수는 “누가 이 건축물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내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이 건축물은 고대의 종교 신전으로 어떤 신을 찬미하는데 사용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은 반드시 정밀한 기계를 사용해서만 완성할 수 있다”며 “높은 과학 수준을 가진 고대 인류문명이 실제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일본 지역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BC 9000년경 신석기 시대로 알려져 있다. 그 시기 사람은 사냥과 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했기에 높은 과학기술이 필요한 거대한 피라미드 축조는 불가능했다.
고고학자들은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런 건축물들이 고대 사전문명(史前文明-인류가 인식하는 역사 이전의 문명)의 증거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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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나구니 해역 유적
posted by 환단스토리 







date : 2012.08.20 - 22:14 , update : 2012.08.20 - 22:17 hit : 632, scrap : 0 , recommended : 4 http://bit.ly/MGRX6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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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요나구니섬 해저에서 발견한 상형문자 | | | 초고대문명 |
| 2013.08.18. 11:17 |
| 상형문자 |
위 유적지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를 살펴보면 거리와 농경지가 있다. 가장 큰 유적은 길이가 100m에 이르고 높이는 25m나 되는 거대한 바위 구조물이다. 류큐 대학에서 컴퓨터로 합성한 모형에 의하면 그곳은 아마 고대인들이 모여 종교의식을 거행한 사원의 제단인 것 같다고 한다. 그 사원 북쪽에는 반원형 지주가 있는 두 동굴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그곳이 의식을 거행하기 전에 목욕을 한 장소라고 보고 있다. 그 사원 동쪽에는 거대한 바위 두 개가 겹쳐있는 아치형 문이 있다. 그 바위 상단에는 사람이 만든 직사각형 구멍이 있다. 그 바위는 기계로 깎았으리라고 추정할 정도로 정교했으며 그 도시의 주춧돌로 사용했던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요나구니 섬 남쪽의 유명한 리센얀 주위의 바다 속에서 사람의 머리상을 발견하였는데 안면 특징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 후에 그 거대한 인간의 머리상 근처에서 상형문자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그 해저 유적을 건설한 사람들이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마사키 기무라 씨는 류큐 대학 지질학 교수이다. 그는 1999년 9월 어느 인터뷰에서 “그 유적들이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통로와 직각계단이 있고 이 직각계단에는 돌기둥을 세우기 위하여 디자인한 듯 둥근 구멍이 있는 바위가 있다. 인간의 머리상과 상형문자를 발견하였다는 것은 요나구니 섬 남쪽의 해저 유적이 바다 속으로 침몰되기 전에는 지상에 존재했던 선사문명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하겠다.
| ▲ 계단이 있는 거대한 연단 |
일본에서도 발견한 해저 피라미드(1만 년 전)
요나구니 섬 남쪽은 물론 서쪽에서도 중요한 유적을 발견하였다. 1990년에 잠수부들이 바위로 만든 거대한 피라미드를 발견했다. 이 피라미드는 폭이 183m, 높이가 27.43m였는데 직사각형 바위로 만들었고 5층으로 되어 있었다. 근처에는 이 거대한 피라미드와 비슷한 작은 건축물들도 몇 개 있었는데 소형 피라미드라고 할 만했다. 그런 소형 피라미드들은 폭이 대략 10m, 높이는 약 2m인 돌 층으로 되어 있었다.
이 탐사에 참여한 류큐 대학의 지질학자들은 이 유적이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인조 건축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자연적으로 생겼다면 부식으로 인한 돌 더미가 있어야 하는데 주위에서는 돌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피라미드를 에워싸고 있는 거리라고 추측할 만한 흔적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자연적인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미국 보스톤 대학교의 지질학자 잠수팀은 1m 높이 바위 층으로 된 거대한 계단들이 계단식 피라미드와 흡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 구조물이 수중부식으로 깨진 바위들로 형성되었다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그렇게 예리한 계단은 이제까지 발견한 적이 없다. 런던대학교의 고고학자들은 그 피라미드를 만든 사람들은 적어도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인더스 문명과 같은 고대문명 수준이라고 믿었다.
| ▲ 일본 요나구니 섬 해저탐사 |
도쿄 대학의 한 지질학 교수는 그 지역이 약 1만 년 전 즉 마지막 빙하시대에 바다 속으로 침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과학지식으로 이해한다면, 그 시기 인류는 아직 동물을 사냥하며 생활하던 원시인이었다. 그런 원시인들이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물들을 축조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알려지지 않은 어떤 문화의 유산이라고 본다. 혹자는 그런 진보된, 번창한 문명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는지 궁금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해저 유물들이 일본에만 존재할까? 그렇지 않다.
대만 펑후에 있는 고대 해저도시 벽
펑후 현의 고대 사료보관소 기록을 보면 “후징 지역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바다 속에 길게 뻗어있는 도시의 벽을 볼 수 있다.”라고 나와 있다. 예전에 사람들은 그곳을 “후징의 깊은 물웅덩이”라고 불렀다. 1982년에 전문 잠수부들이 후징의 침몰된 도시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
이 고대의 도시 벽은 십자 모양이었다. 나침반으로 측정한 결과 그 벽은 정확하게 동서남북 방향을 향하여 직각을 이루었다. 그 벽은 주로 현무암으로 만들어졌고 표면은 해초로 덮여 있었다. 길이는 동서 약 160m, 남북 약 180m에 이르렀다. 두께는 상단부가 약 1.5m, 바닥이 약 2.5m이다. 어떤 부위는 부식하여 평평하지 못했으나 돌 사이의 연결 부분은 대단히 견고했다. 북쪽에 둥근 판 모양 건축물이 있었다. 바깥쪽 벽의 직경은 약 20m이고 안쪽 벽은 약 15m였다.
그 당시에 몇몇 사람들은 그 가라앉은 도시는 후징 지역이 바다 속으로 뻗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질학자들이 연구한 바로는 만약 그 벽이 천연 바위로 형성된 것이라면 깨지지 않은 하나의 바위로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사람이 만든 벽이라면 분리된 부분들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벽이 길고 일직선이라면 사람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하였다.
특히 돌들이 거의 같은 크기이고 직각을 이루었으며 연결한 돌들 사이에는 틈을 메운 흔적들이 보였다. 또한 벽 상단의 우묵한 부분은 십자 모양이었고 평평하고 매끄러운 연결부가 있었다. 이런 것들은 오늘날의 건축표준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영국인 작가 그레이엄 헨콕은 “신들의 지문” 등과 같은 저서를 통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8월 그는 이 지역을 탐사하는 중국과 일본의 조사대에 아내와 함께 합류했다. 그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도시에서 건져 올린 돌 건축물들은 천연 석조물들과는 확실히 달라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 건축물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그런 구조물들이 세부적인 곳까지 엄청난 주의를 기울여 만든 것으로 보아 그것들은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분명하게도 후징의 해저도시에 있는 돌 벽은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이 돌들은 표면이 매우 평평하고 매끄러웠다. 그 돌들을 매우 밀접하게 일직선으로 연결해 놓아서 연결부위는 아주 얇은 나이프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헨콕의 견해로는 이 해저 돌 벽은 자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말하기를 “현재 인간사회에는 이미 확립된 학설이 있다. 그러나 이 학설로는 최근에 발견한 고고학적 유물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늘날과 선사시대의 건축물들이 서로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까? 사실 현재의 역사는 사라진 고대문명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건축물들이야말로 사라진 고대문명을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단서들이다. 다시 말하면 후징의 해저도시나 유사한 유물들이 과거 인간문명에 대한 숨은 증거를 담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전설적인 무 대륙의 문명
19세기 말에 영국의 제임스 처치워드 대령이 인도에서 수비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어느 힌두교 사원의 수도원장에게서 나칼비문(주: 인도의 무 대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점토판 비문)을 입수하였다.
그 비문은 매우 난해한 언어로 되어 있었다. 많은 노력 끝에 처치워드와 한 유명한 수도승이 전설로만 존재하던 위대한 무 문명의 역사를 밝혀내었다. 1926년에 처치워드는 무 문명에 대해 기술한 <잃어버린 대륙(The Lost Continent)>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 비문을 보면 무 대륙은 태평양에 위치해 있었다. 무 문명은 매우 번성하여 높은 수준의 문학, 예술, 공예기술, 기계류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놀라운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거대한 건물, 피라미드, 석조 기념비, 성, 도로 등을 건설할 수 있었다. 무 대륙의 수도와 다른 큰 도시에서 단정하고 깨끗한 돌로 만든 도로를 발견하였다. 모든 벽은 금으로 장식하였다. 사람들은 호화스럽게 생활했다.
무 대륙에 살던 사람들은 항해술이 아주 뛰어났다. 그들은 모든 대양을 항해했다고 했다. 그들은 강력한 식민지 제국을 건설하기까지 했다. 그 당시에 무 제국을 “세계문화의 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번창했던 무 대륙은 일시에 사라졌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지각변동으로 무 대륙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 엄청난 비극은 격렬한 화산 용암분출에 이은 강진, 태풍과 함께 시작하였고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발생했다. 육지는 파도처럼 소용돌이쳤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모든 것이 장난감처럼 무너졌고 즉시 용암과 바다 물이 이를 덮어버렸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무 대륙은 태평양속으로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전설로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보면 인간문명이 존재했다는 가능성을 알 수 있다.
해저 유적은 선사문명이 존재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교과서에서는 아직 그런 것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현대의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현존하는 역사적 지식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도전은 현재의 이론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과 지구의 역사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이런 명백한 역사적 증거들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더 깊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권오봉、정훈 기자
이런기사가 있었네. 가까운 일본해저에 무대륙의 잔해로 추정되는 것이 있었구나 ..
저 문자는 고대일본상형문자인 카이다문자라고 하네.조작설도있고.(?의문표를 찍어놓고)
천부경과 같이 총 81글자여서 천부경이 아닌가 하는 논란도 있었지만
천부경과는 글순서라든가 배열이 아무래도 틀리다.(글자와 종류와 반복정도를 보자면..)
고대문자들 비교자료: http://blog.naver.com/solhanna/90002222275
태지 8집에 나오는 문자의 정체도 궁금하다. 룬문자도 마야문자도 이집트상형문자도 아닌것이..
그렇게 실용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 바닷속문명이니 일본과 관계없는 고대문명에서 쓰였던 문자는 아닐까?
(문자들을 보면.. 한글만한 문자가 없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