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조선 중기 그러니까 1630년과 1700년을 둘러싼 조선시대 각 계파간의 투쟁은 치열했습니다. 한국의 지금같은 현실도 바로 조선시대의 유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반도에서 쿠데타가 한두번 일어난 것이 아니지만 가장 대표적인 군사반란은 바로 인조반정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인조 반정은 조선의 대표적인 쿠데타로 1623년 4월 조선의 서인 반정 세력이 광해군과 대북 세력을 축출하고 왕의 조카인 능양군 이종을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 사건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글쎄요. 광해군이 왕권을 박탈당하고 그 흔한 종이나 조도 달지 못하고 군으로 영원히 한국 역사에 남게된 이유를 설명하기는 곤란합니다. 그 당시를 살지도 않았고 살았다고 한들 그 권력 핵심에 있을 가능성이 없는데 어찌 그 시절 그 상황을 리얼하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피비릿내나는 쿠데타를 일으켰으면 나라를 잘 이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광해군이 강판당하고 난 뒤 조선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였습니다. 그래도 멘탈이 강했던 광해군...그는 그래도 임진왜란이라는 초대형 전쟁을 거치고 그 난리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인물입니다. 아버지 선조는 신의주에 머물지만 아들 광해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본에 저항하고 대항한 한국 일본 대항 인물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구자를 일부 판단 미스를 명분으로 내건뒤 몰아낸 것이 바로 인조반정입니다. 특정 정파에 휩쓸려 정권을 잡았기에 그 정권이 탄탄할 리가 있습니까.
조선을 제외한 동북아 지역의 세력들은 조선의 정치변란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신하들이 자신들의 보스를 순식간에 쳐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면 두려울 것이 없는 바로 그런 상황의 조선입니다. 그래서 조선을 우습게 알았고 그래서 침공이 극심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냥 그렇고 구심점도 없고 왕도 별볼일이 없이 그냥 당파의 흐름속에 생존하는 잡풀같다고 판단한 것이죠. 인조가 반정으로 정권을 잡고 나서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1624년 이괄의 난을 비롯해 정묘호란 그리고 병자호란 등등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 바로 삼전도 굴욕사건입니다.
인조는 정말 준비가 안된 왕이었습니다. 그냥 쿠데타로 정권을 얻는 그런 왕권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명분도 정당성도 없는 권력입니다. 그러니 무슨 외세 침탈 이런 것 생각하거나 준비할 수도 없었습니다. 조선외곽에서는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는데 준비안된 정권이 무엇을 해낼 수 있게습니까. 그냥 속수무책입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합니다. 그렇게 고려때의 강화도에 대한 교훈이 적나라하게 이어졌지만 또 강화도로 도망갑니다. 그리고 이래저래 수습을 한 뒤 한양으로 돌아온 인조에게 병자호란이 발생합니다. 이번에는 한양을 버리고 남한 산성으로 도망갑니다. 결국 청의 강압을 견디지 못하고 인조는 그 추운 날 삼전도에 내려갑니다. 삼전도란 지금의 서울시 송파구 삼전동에 있었던 나루터입니다. 추운 겨울 삼전도 나룻터는 춥고 또 추웠습니다. 인종은 머리를 세번 땅에 내리찍습니다. 그 추운날 외투하나 걸치지 않은 조선의 왕은 오랑캐 두목앞에 처절하게 굴복했습니다. 바로 그날이 오늘 (1637년 2월 24일)입니다.
인조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 지금 이순간에 이런 치욕을 겪어야 하는지를 말이죠. 그냥 삼촌인 광해군이 정권을 유지하도록 들것을 그랬으면 자신은 뜻뜻한 아랫목에서 귀한 대접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는데 괜히 인조반정때문에 이런 생고생을 다 한다고 여겼을 것 아닙니까. 바로 그것이 인과응보지요. 광해군을 추방하고 정권을 잡은 허약한 권력 인조의 팔자란 말입니다. 하지만 인조의 굴욕 그러니까 삼전도 굴욕사건이 여기서만 그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삼전도 굴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말 치욕적이고 불편한 상황이 사회 곳곳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삼전도 굴욕은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납니다. 현대판 삼전도 굴욕사건이지요. 세력이 바뀌면서 졸지에 음과 양이 바뀝니다. 하루아침에 상하가 변합니다. 한때 한 조직을 장악했던 세력이 외곽으로 쫓겨나고 듣도 보지도 못한 세력이 조직을 장악합니다. 그리고 바꿉니다. 요상한 세상으로 말이죠. 쫓겨난 광해군처럼 바람앞에 촛불신세가 된 세력은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와신상담하는 마음이 있다면 말이죠. 또다시 굴욕을 되풀이 할 수 없다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부류는 살아남을 것이지만 탱자탱자하면서 설마 그런 시절이 오겠어 하는 부류는 급변하는 환경속에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1637년 2월 24일 음력으로 1637년 1월 30일 일어난 삼전도 굴욕사건이 이시대에 남기는 교훈을 대단합니다. 와신상담과 유비무환이라는 것이죠. 자신의 삼촌을 내리치고 정권을 잡았으면 제대로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데 워낙 능력이 부재한 인조라 이런 삼전도 굴욕사건을 불러옵니다. 지금 한국도 마찬가집니다. 조그만 방심하면 제 2, 제 3의 삼전도 굴욕사건을 되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엄청난 국제정세속에 그렇습니다. 깨어나 있어냐 합니다. 정치 사회적 리더층에서 그렇지 못하면 서민층에서라도 깨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서민층의 의사를 잘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삼전도 굴욕사건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습니다.
2024년 2월 24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