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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칼럼] 다시, '침팬지 폴리틱스'
윤 대통령을 침팬지 수준 비하하려는 것 아니라 사회생물학 이론으로 그의 정치적 말로 예측한 것
끝까지 무리 보살핌 받은 관대하고 공평한 침팬지, 고환 물어 뜯긴 채 권력 잃은 ‘무뢰한’ 수컷 침팬지
윤석열·한동훈이 어떤 유형인가는 자명하지 않나, 압도적 총선 승리는 대통령 정치적 탄핵 의미
내년 총선 결과보다 더 확실한 윤 대통령의 미래
몇 달 전 <매불쇼>에서 나는 프란스 드 발의 책 ‘침팬지 폴리틱스’에 기대면 윤석열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그럴듯하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노무현재단 후원회원의 날 행사에서는 드 발의 후속작 ‘차이에 관한 생각’ 제9장을 원용해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말로가 비참하리라 예측했다. 일부 ‘친윤’ 정치인과 ‘친윤’ 언론인들은 사회생물학 이론을 활용해 정치를 분석한 것을 윤석열 대통령과 국힘당에 대한 비하행위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대통령을 침팬지 수준으로 깎아내려 조롱했다는 것이다.
오해를 거두시라. 그런 뜻이 아니었다. 프란스 드 발은 호모 사피엔스를 침팬지 수준으로 비하하려고 “권력투쟁은 진화의 산물이며 정치는 인류 역사보다 오래되었다”고 주장한 게 아니었다. 인간의 정치행위와 침팬지의 권력투쟁을 공통의 생물학적 기초 위에서 설명했을 뿐이다. 나도 그와 같다. 드 발의 연구를 포함한 사회생물학의 여러 이론에 비추어 윤석열 대통령의 언행을 설명하고 그의 정치적 미래를 예측했을 따름이다. 최근 상황을 반영해 다시 요약 정리할 테니 더는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사회생물학과 다윈주의
널리 쓰는 정의(定義)에 따르면 사회생물학은 ‘동물의 사회성 행동을 생물학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벌과 개미 같은 ‘막시류’ 곤충이나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 동물처럼 군집을 이루어 산다. 먹이 획득과 자녀 양육을 위해 여러 세대가 함께 거주하면서 분업하고 협업한다. 사회생물학의 기본 전제인 다윈주의(Darwinism) 이론에 따르면 인간 군집에서 사회성 행동이 진화한 것은 생존과 번식의 확률을 높여주는 ‘적응의 이익’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윈주의는 인간을 예외로 취급하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도 다른 종과 마찬가지이므로 진화의 도정에서 나타난 종으로 여긴다. 인간의 사회성 행동에도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 생물학적 기초가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사회성 행동은 매우 다양하지만 특정한 기준을 세우면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예컨대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다윈주의 좌파’라는 책에서 사회성 행동의 유형을 셋으로 나누었다. 생산방식과 경제체제와 정부형태 같은 것은 문화마다 크게 다르다. 이런 것은 짧은 역사의 시간에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진화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성도덕과 인종주의는 문화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생물학적 기초와 관련이 있다고 추정한다. 사회적 위계와 서열을 형성하는 것은 모든 문화에 공통적이니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특성으로 본다. 유전적 생물학적 기초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말이다.
싱어는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좌파’들에게, 모든 문화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보다는 문화에 따라 많이 다른 것에 집중하라고 권했다. 인류에게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을 없애려고 하는 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일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결국 무위로 돌아간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었다.
알파 메일의 보안관 행동
위계와 서열을 형성하는 종이 호모 사피엔스뿐인 것은 아니다. 침팬지 군집에도 거의 비슷한 행동이 진화했다. ‘침팬지 폴리틱스’는 네덜란드 아른험 동물원의 침팬지 무리 관찰기록을 정리한 책이다. 침팬지를 연구해 인간 이해를 증진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의 핵심은 알파 메일(alpha male, 수컷 우두머리) 침팬지의 ‘보안관 행동’에 대한 서술이다.
드 발은 동물원의 모든 침팬지에게 이름을 붙이고 수컷 네 마리가 벌인 권력투쟁의 과정과 결말을 특히 세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석했다. 그가 연구자로서 본 첫 번째 알파 메일 이에룬을 밀어내고 권좌를 차지한 두 번째 알파 메일 라윗의 행동이 흥미로웠다. 알파 메일이 되기 전 라윗은 다른 침팬지들의 다툼에 개입할 때 35퍼센트의 확률로 약자 편을 들었다. 그런데 왕좌를 차지한 뒤 이 수치는 69퍼센트로 늘었고 1년이 지나자 86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젊은 수컷 니키는 늙은 수컷 이에룬과 연합해 세 번째 알파 메일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잔인한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라윗의 손발과 고환을 물어뜯어 죽인 것이다. 그런데 니키는 라윗과 달리 권좌를 차지하고 나서도 보안관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약자를 편들어 개입하는 비율이 22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분쟁 당사자 가운데 더 센 침팬지를 편드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에룬과 더 젊은 수컷 단디가 니키를 공격했다. 니키는 급하게 도망치다가 사육장을 둘러싼 수로에 빠져 죽었다. 이에룬과 니키가 셋만 있었을 때 라윗을 공격했던 것과 달리, 단디와 이에룬은 무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니키를 공격했다.
이런 상황의 차이에 주목한 드 발은 알파 메일의 보안관 역할이 호의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암놈과 새끼 침팬지를 비롯한 약자를 지켜주지 않은 알파 메일은 도전자와 권력투쟁을 할 때 무리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관대함과 공평함
드 발은 최신작 ‘차이에 관한 생각’ 제9장에서 미국 에모리 대학교의 여키스 영장류 연구소에서 관찰한 알파 메일 침팬지 아모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모스는 간과 여러 장기에 악성 종양이 생겼는데도 더 버틸 수 없게 된 시점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알파 자리를 지켰다. 아모스가 쓰러지자 다른 침팬지가 권좌에 올랐다. 그런데 다른 침팬지들이 앓아누운 아모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보살펴 주었다. 아모스가 죽자 무리의 침팬지들은 며칠 동안 기괴할 정도로 조용했다.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아모스는 평생 침팬지를 관찰한 드 발이 본 알파 메일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수컷이었다. 그는 관대하고 공평했다. 무리를 지배했고 경쟁자의 도전을 단호하게 물리쳤지만 다른 침팬지를 괴롭히지 않았다. 약자를 보호했고 싸움을 말렸으며 아픈 동료를 돕고 곤경에 빠진 친구를 안심시켰다. 드 발은 그를 ‘진정한 지도자’ 유형으로 규정했다.
반대 유형의 지도자는 “둘 다가 될 수 없다면 사랑받기보다는 남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는 편이 낫다”는 마키아벨리의 신조를 따르는 ‘무뢰한’이다. 이런 알파 메일은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하고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는 데 집착한다. 제인 구달 박사가 야생 영장류를 연구했던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의 고블린이라는 침팬지 알파 메일은 다른 개체를 신체적으로 위협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어느 날 젊은 도전자가 그에게 도전했다. 그러자 다른 침팬지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가세해 고블린의 손발과 고환을 물어뜯었다. 수의사가 항생제를 투여한 덕에 목숨은 부지했지만 권력을 잃은 고블린은 비참한 삶을 피하지 못했다.
영화 '혹성탈출(The Planet of the Apes)'에서 침팬지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 핀터레스트 사진.
한동훈 비대위
평생 검사였고 1년 반 동안 법무부장관이었던 한동훈 씨가 집권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그는 알파 메일이 아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알파 메일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석열이 어떤 유형의 알파 메일인지 우리는 잘 안다. 그는 아모스가 아니라 고블린에 가깝다. 보안관 행동을 거의 하지 않으며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법률적 위해를 가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부자 감세, 복지예산과 서민지원 예산 동결 또는 축소, 국가연구개발예산 삭감, 대통령 해외순방 예산 증액, 간호사법‧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 재벌 총수를 동원한 선거운동 성격의 떡볶이 먹방, 해외순방 중의 폭탄주 술자리, 명품백 수수와 인사 개입 등 배우자의 국정개입 의혹, 다수야당 대표와 국회의원들에 대한 무한 수사, 감사원‧권익위‧검찰을 동원한 공영방송 사유화와 언론 탄압, 국힘당 당 대표 선거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 여당 중진 정치인들의 총선 불출마 압박 등 거의 언제나 자기 자신과 가족과 친한 사람과 사회적 강자의 편에서 개입했다.
시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기현 대표를 내쫓고 한동훈을 비대위원장으로 세웠다고 본다.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알파 메일 자리를 두고 경쟁했고 또 경쟁하는 이재명 대표에 대해 무한 수사와 기소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신체적 위협을 가하는 방식으로 복종과 충성을 요구한 고블린처럼 권력을 휘둘렀지만 자리와 공천을 탐하는 무능한 인물들 말고는 복종하지도 충성하지도 않는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사람들을 여당 강세 선거구의 국회의원 후보로 낙점하려고 대통령과 비슷한 방식으로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한 총선 전망
집단적 의사결정 이론에 ‘유권자 이동성(mobil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느 시점에서 어느 사회의 유권자 이동성은 집권세력에 실망하는 경우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율로 나타낼 수 있다. 나는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유권자 이동성이 적당한 상태라고 본다. 유권자 이동성이 너무 높으면 정당이 불안정해지고, 이동성이 너무 낮으면 정당과 정치인들이 민심을 무시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힘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30퍼센트 정도 된다. 상황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꾸는 유권자도 그 비슷하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기자들이 무당층‧중도층‧스윙보터라고 하는 유권자들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엉망이라고 평가하면서 총선에서 야당에 표를 던질 뜻을 내비치고 있다. 대통령은 그런 판국에 한동훈 씨를 비대위원장으로 세웠다. ‘여의도 사투리’로 한동훈은 윤석열의 ‘가신(家臣)’이다.(보스의 배우자와 자연스럽게 카톡을 주고받는 부하를 여의도에서는 ‘가신’이라고 한다) 절반 넘는 유권자가 무능하다고 평가하는 대통령이 자신의 오른팔 같은 ‘가신’을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워 총선을 지휘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굳이 답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정치학 이론에 따르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사회혁명이 일어난다. 첫째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대중이 알고, 둘째 집권세력이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고, 셋째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을 모두 사용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하지 않는 한 세 번째 조건은 충족되지 않으므로 사회혁명은 일어날 수 없다. 문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이 충족되었는지 여부인데, 나는 그렇다고 본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경제 지표와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국민 여론을 보면 달리 판단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총선에서는 정권을 교체할 수 없다. 입법권은 지금도 야당이 장악하고 있다. 야당이 총선에서 또 이긴다고 해서 대통령과 집권당이 태도를 바꿀 리는 없다. 총선은 어디까지나 국회의원을 뽑는 행사일 뿐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강력한 권력 교체 요구를 표출하는 기회가 될 수는 있다. 국힘당에 4년 전보다 더 큰 패배를 안겨줌으로써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정치적으로 탄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정치학과 역사학 이론에 비추어 본 전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직원에게 꽃다발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의 확실한 미래
인문학의 이론은 중력법칙이나 상대성이론처럼 확실한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물리법칙만큼 확실하지는 않지만 인문학보다는 신뢰할 만한 생물학 이론에 의지해 마음을 추스르고 위로를 얻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래는 내년 총선 결과보다 확실하다. 그는 권력과 명예를 모두 잃고 남은 인생을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언제 어떤 계기 어떤 양상으로 그 시간이 찾아들지 분명하지 않을 뿐이다.
침팬지 아모스와 고블린의 권력 상실 과정과 상실 이후의 삶을 결정한 것은 윤리 도덕이 아니라 알파 메일에게 보안관 행동을 요구하는 침팬지의 본능이었다. 호모사피엔스와 침팬지가 공유한 그 본능의 유전자는 두 종이 출현하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 드 발은 그래서 정치의 기원이 인류 역사보다 오래되었다고 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지 않았다. 자연이 그런 능력을 주었기 때문에 문명을 만들고 윤리 도덕을 세울 수 있었다. 본능은 문명보다 끈질기고 힘이 세다. 역사의 시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알파 메일 윤석열이 계속해서 지금까지처럼 행동한다면 결국 고블린과 같은 결말을 맞을 것이다.
이런, 명색이 인문학도인 내가 인문학이 아니라 생물학으로 권력의 향배와 권력자의 앞날을 점치고 있다니. 하지만 내 잘못은 아니다. 어떤 인문학자도 내 생에 이런 알파 메일을 또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지 않았다. 사회생물학자들의 말을 진작 경청했더라면!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509
한동훈은 전두환이 아닙니다.
하지만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으로 추켜세웠던 지치(舐痔) 언론들은
지금도 한동훈을 ‘메시아’, ‘이순신’ 등으로 추켜세웁니다.
개의 습성은 고칠 수 있으나, 그보다 하등인 동물의 습성은 고칠 수 없습니다.
‘개같은 놈’과 ‘개만도 못한 놈’을 구분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