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1798)때 작성한 [전론]이란 책에서 그의 이상적인 토지 제도 개혁안인 여전제를 주장하였다.
여전제란 30가구를 1여로 하여, 마을 주민들이 여장의 지휘하에 공동 경작하고 노동량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는 제도이다.
이 여전제는 토지의 공동 소유, 공동 경작을 내용으로 하는 일종의 공동 농장 제도였으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양반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었다.
정약용은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농사를 짓는 농민만이 토지를 소유하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구상하였다.
이에 따라 상인과 수공업자는 독립되어 여전제와는 관련이 없도록 하였고, 양반도 직업에 종사하여 농사를 짓거나 수공업, 상업, 교육 등에 종사할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정약용은 선비들이 이용 후생을 위한 기술 연구에 종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약용은 [전론]보다 약 20년 후인 순조때 귀향 살이를 하는 동안에 저술한 [경세유표]에서는 정전제를 주장하였다.
이는 전국의 토지를 국유화하여 정전을 편성하고 그 중의 9분의 1을 공전으로 만들어 조세에 충당하고 나머지는 농민에게 분배하자는 것이었다.
또 농민에게 분배된 토지는 농민의 공동 경작으로 생산하자는 것이다. 이 정전제는 여전제보다는 현실적 개혁 방안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궁극적인 개혁방안은 여전제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처] 정약용의 여전제, 정전제|작성자 해피아델
첫댓글 공동경작한다는거랑 공동농장이랑은 좀.. 다른걸까요? 혹시 삼정문란 폭로했다는 한시는.,.없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