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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전문가들은 지난 수십 년간 우크라이나 경제에 산업 기반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 왔다. 우크라이나의 제조업은 그 발달 정도가 낮은 데다가 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낡은 산업 인프라에 극도로 의존적이고, 혁신을 위한 투자의 부재로 제조업계 전반이 정체되면서 기술적 고도화를 달성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의 제조업이 지니고 있었던 치명적인 약점은 2022년 2월 24일에 개시된 러시아의 침공을 계기로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 직후인 3월부터 5월까지는 우크라이나 제조업이 궤멸적인 피해를 입은 기간이었다. 식품, 화학, 금속 분야 기업 활동에 특히 큰 중요성을 지니던 수출로(路)는 해상 봉쇄로 인해 가로막혔고, 기존의 물류와 수출 체계도 붕괴했으며, 많은 지역의 생산 설비가 러시아에 점령되거나 전쟁의 포화에 휘말려 훼손되었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 아래 우크라이나 소재 싱크탱크인 경제연구·정책컨설팅연구소(IER, Institute for Economic Research and Policy Consulting)는 2022년도 자국 제조업 생산액이 전년 대비 45%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제조업 분야 중 일부는 초여름 이래 전쟁의 피해를 생각보다 잘 버텨내면서 상당한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기도 한데, 그 구체적 현황은 아래에서 더욱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2022년 이전 제조업 개황
우크라이나 통계청(SSSU, State Statistical Service of Ukraine)이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2021년에 창출된 부가가치 총액 중 제조업의 기여도는 단 12%에 그쳤지만, 생산이나 수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수 중 70% 이상이 제조업에서 나오면서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제조업 기여도는 21% 수준으로 더 높은 편이다. 이 사실은 제조업이 여전히 우크라이나 경제의 중추로 기능한다는 점을 시사하지만, 해당 부문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식품, 금속, 경공업 등 기술적 수준이 낮은 산업에서 나온다는 점은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 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기계장비 제조업의 절대적 규모가 유럽연합(EU) 소속의 다른 경제 소국에 비해 별다른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는 통계를 비롯한1) 여러 증거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제조업이 고질적인 저개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우크라이나의 연간 산업생산지수(Index of Industrial Production)가 전년도에 비해 얼마나 변동했는지를 나타내는 <그림 1>은 제조업 분야의 정체 상황을 분명히 드러내는 증거가 되어준다. 먼저 해당 수치는 러시아의 1차 개입이 있기 직전인 2013년부터 이미 7.3%의 감소세를 보였고, 러시아가 크림반도(Crimea)를 병합하고 도네츠크(Donetsk) 및 루한스크(Luhansk) 일부 지역을 침공한 2014년에는 이들 지역의 생산 설비를 상실한 우크라이나 제조업에 대규모 위기가 닥쳐왔다. 이후 2016~2017년 일시적 회복기를 거친 산업생산지수 성장률은 점차 미미한 수준까지 둔화되었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제조업에 치명타를 가한 2020년에는 5.9%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여기서 2014~2021년의 수치를 종합하면 우크라이나의 산업 생산이 약 12% 감소했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림 1> 우크라이나 산업생산지수의 전년 대비 증감률 추이 단위: %
* 자료: SSSU
제조업이 우크라이나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가 정체하거나 감소했다는 사실은 다른 여러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데, 일례로 기업이 창출한 일자리 중 제조업의 비중은 2013년의 21%에서 2021년에는 17%로, 기업 매출액 내 제조업 비중은 같은 기간 22%에서 19%로 각각 줄어들었다.
주요 제조업 부문별 현황: 고기술 산업의 부진
2013년 이래 우크라이나에서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여준 제조업 분야는 많지 않다. 다만 여기서 소수의 예외적 사례 중 하나인 (목재)제재업은 팬데믹의 중심에 있던 2020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연도에서 생산액 성장을 기록한 유일한 부문으로, 2014~2021년 57%라는 준수한 누적 성장률을 보였다. 유관 산업인 목재 상품 제조업 생산액도 같은 기간 18% 늘어났는데, 해당 부문이 선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15년부터 시행되어 보호주의적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우크라이나 정부의 미가공 목재 수출 금지 조치가 존재한다2). 한편 가구 제조업도 국내 수요 증가 및 우크라이나 화폐 가치 평가절하에 힘입어 지난 8년간 생산액을 36% 늘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성장세가 확인된 산업들은 빠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수준이 낮다는 한계를 지니고, 전체 제조업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4%에 지나지 않아 제조업 부문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다.
<그림 2> 우크라이나 제조업 매출액의 부문별 비중
* 자료: SSSU
<그림 2>는 우크라이나 제조업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부문별 기여도를 보여준다. 여기서 2위를 기록하며 우크라이나 경제에서 중요도가 높은 농식품 부문은 성장 측면에서 일정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 일례로 식품산업은 2021년 기준 제조업 매출액 중 27%라는 적지 않은 비중을 담당했지만, 전년 대비 생산액은 5.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 2014년부터 당시까지의 누적 성장률도 3.6%라는 저조한 수치에 머물렀다. 단, 농식품 하위 부문 중에서 유지(油脂) 제조업, 과일·채소 가공업, 육류 가공업, 육류 상품 제조업은 같은 기간에 상대적으로 준수한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다음으로 우크라이나 제조업에서 전통적 강세를 보이는 금속 부문은 2021년 제조업 전체 매출액 중 최대 비중인 29%를 차지했지만, 여기서 나오는 생산액은 2014년 대비 27% 줄어들었다. 여기에 더해 과거에 우크라이나의 중점 분야 중 하나였던 기계장비 제조업이 생산해 낸 상품의 가치는 같은 기간 24% 추락했고, 2021년 제조업 매출액 비중도 9%에 그쳤다.
현재 우크라이나 제조업이 기술적 수준이 낮은 부문 위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수출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2021년을 기준으로 수출액 비중이 가장 큰 품목은 농식품(41%)이지만, 소비자용 최종재 식품의 비중은 이보다 현저히 낮은 6%에 그쳤다. 이외에도 가공금속(24%), 광석·슬래그·재(11%), 미가공·가공 목재 및 가구(4%) 등 기술 집약도가 낮은 품목의 선전에 비해 기계장비 부문의 수출액 비중이 8%에 머물렀다는 사실도 지적해 볼 수 있다. 또한 2022년도 글로벌혁신지수(Global Innovation Index)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수출액 중 첨단기술 품목의 비중은 단 2%에 불과하다.
현지 산업계가 지목하는 주요 문제점
러시아의 침공 이래 전개된 군사 작전은 분명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안보 위기를 초래했지만, <그림 3>이 소개하는 현지 산업계 의견에 따르면 기업활동의 가장 큰 장애물은 따로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례로 IER에서 9월에 각 기업이 실제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알아보고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시 상황이 몰고 온 안보(Security) 문제를 지목한 응답 비율은 18%에 지나지 않았고, 설비나 자재의 손실 문제를 보고한 경우도 전체의 6%에 그쳤다3). 다만, 러시아군은 설문조사 이후 10월 초순부터 미사일과 무인기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전역을 타격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10월 10일 이래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의 30%가 소실된 것으로 집계되는 등 에너지 부문이 큰 타격을 받아 앞으로 전시 안보 문제의 가시성이 이전보다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필자가 본고를 집필하는 현시점에도 아직 우크라이나의 많은 지역에서 전력 공급 문제가 지속되며 경제적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가중되고 있고, 이에 따라 향후 제조업의 원상회복 과정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그림 3> 우크라이나 산업계가 꼽은 러시아 침공 이후 기업활동의 주요 장애물
각 항목이 문제라고 응답한 비율순
* 자료: IER – 신규 월간 기업 설문조사(EMES, New Monthly Enterprises Survey)4)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한 러시아의 전면 공습이 일어나기 직전인 9월을 기준으로 할 때, 우크라이나 기업의 대부분은 개전 이후 경제 환경의 급변이 야기한 각종 어려움을 핵심 문제로 지목했다. 여기에 포함되는 사례로는 현재 최대 문제점으로 부상한 재료 및 자재 가격 상승 이외에도 자본, 연료, 인력 부족이나 상품 수요 저하 등이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서 재료와 자재를 운송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보고한 기업의 비중이 41%로 전체 2위를 기록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문제는 운송 과정이 필수적인 상품 수출·입 분야에서 더욱 크게 부각되는데, 현지 수출업계는 서부 국경 통제, 해상 봉쇄, 열차나 트럭 등 운송 수단이나 운전자 부족 문제를 수출 분야가 마주한 주요 장애물로 지목한다. 비록 러시아와의 합의를 통해 열린 흑해 연안 곡물 수송로가 육상 물류 현황을 개선하는 데 일부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는 우크라이나 제조업이 맞닥뜨린 도전과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
제조업 부문이 거둔 최근 실적
기업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제조업계는 전시 상황에도 불구하고 생산 규모를 점차 회복해 가고 있다. 여기서 9월을 기준으로 전쟁 이전에 비해 생산 가동률 저하가 없다고 응답한 기업의 비율은 비록 8%로 낮았지만(5월 수치는 15%), 상대적으로 양호한 75~99%의 가동률을 보고한 기업의 비율은 41%를 기록해 5월의 17%에 비해 두 배 이상 개선된 수치를 보였다. 이처럼 생산 가동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은 제조업 생산이 회복 수순을 밟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림 4> 우크라이나 기업의 생산변동지수 및 생산변동기대지수 추이
* 자료: IER – NMES
<그림 4>에 담긴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5월에는 우크라이나 기업 대부분이 이전보다 생산을 줄이면서 생산변동지수(Index of Changes in Production)가 -0.58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로는 해당 수치가 달마다 점차 개선되어 9월에 이르면 0.05라는 양의 지표를 보였는데, 이는 생산을 늘린 제조 기업의 수가 생산을 줄인 기업의 수보다 많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 향후 3개월간 생산 증대를 계획하는 기업의 수도 그 반대를 넘어서면서 생산변동기대지수(Index of Expected Changes in Production) 또한 같은 기간에 대체로 양호한 수치를 보였다. 특히 9월에 해당 지수가 0.31로 크게 올라간 현상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작전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희소식이 전해지며 기업계의 긍정적 기대가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제조업 하위 부문 각각이 거둔 실적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9월까지 생산변동지수가 증가세를 보인 사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여기서 호성적을 거둔 분야는 대체로 인간의 기본 수요를 충족시키는 품목과 관련이 있는데, 예를 들어 식품산업은 0.26, 의복 및 신발 제조를 중심으로 하는 경공업은 0.24, 인쇄업은 0.11의 수치를 보였다. 반면 여타 부문에서는 많은 기업이 이전보다 생산을 줄이면서 금속가공업은 -0.44, 목재가공업은 -0.35, 화학산업은 -0.17, 기계장비 제조업은 -0.03라는 생산변동지수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생산변동기대지수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실제 생산 증감 여부와는 무관하게 모든 부문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나타났다.
한편 판매변동지수(Index of Changes in Sales) 추이가 보여주는 경향도 위의 경우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림 5>에 의하면 9월에 처음으로 판매 실적 증가를 보고한 기업의 수가 그렇지 않은 기업의 수를 넘어서면서 해당 수치가 기준점(0.00)을 돌파하는 선전을 보였지만, 그 규모가 0.01로 매우 미약하다는 점에서 부문별 성과에 격차가 존재하리라는 점을 예상해볼 수 있다. 내역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판매 호조를 보인 제조업 분야에는 식품산업(0.19), 경공업(0.20), 인쇄업(0.17)이 있고, 그 반대로 판매가 줄어든 분야로는 기계장비 제조업(-0.08), 화학산업(-0.21), 금속가공업(-0.44)을 들 수 있다. 한편 판매변동기대지수(Index of Expected Changes in Sales)는 위에서처럼 모든 부문에서 긍정적 경향을 나타냈다.
<그림 5> 우크라이나 기업의 판매변동지수 및 판매변동기대지수 추이
* 자료: IER – NMES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제조업의 수출 실적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증거도 여럿 발견된다. 먼저 우크라이나에서는 2022년 2월 24일 전쟁 발발 직후 절반 이상의 수출기업이 해외 시장 활동을 중지했지만, 이로부터 7개월이 지난 9월에는 수출 활동 중단 기업의 비율이 16%에 불과해 5월에 기록된 47%보다도 훨씬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수출이 재차 활성화되면서 <그림 6>이 소개하는 수출변동지수(Index of Changes in Exports)도 -0.71이라는 지난 5월의 충격적인 결과에서 시작해 9월에는 -0.21까지 상당한 회복세를 보였다. 특히 식품산업과 경공업은 여기서 더 나아가 0.05라는 양의 지수를 달성했고, 이 두 부문의 수출변동기대지수(Index of Expected Changes in Exports)도 여타 부문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그림 6> 우크라이나 기업의 수출변동지수 및 수출변동기대지수 추이
* 자료: IER – NMES
우크라이나 정부의 전시 통제 정책에 따라 산업 생산량을 비롯한 기업활동 지표 공개는 불법인 상태이기에, 본고에서는 이러한 규제가 없는 무역 통계를 마지막 분석 대상으로 삼아보고자 한다. 수출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우크라이나에서는 농식품 부문이 2022년 1월부터 7월까지 수출된 상품 가치의 45%를 담당하면서 압도적인 실적을 낸 것으로 나타나고, 전년 통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향이 관찰된다. 비록 수출 품목에서 비가공 농산물 원재료의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지원을 받아온 우크라이나의 식품 부문이 앞으로 높은 수준의 회복 잠재력을 지닌다는 점은 희망적인 요소이다. 반면 금속가공이나 화학산업이 거둔 수출 실적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이들 부문의 고전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결론
여러 뿌리 깊은 문제를 내재한 우크라이나 산업계는 러시아의 대대적 침공을 맞이하기 전부터 정체 상태에 놓여 있었고, 해마다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여준 산업의 수도 많지 않았다. 그 결과 본고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은 설문조사에서도 이번 전시 상황을 강인하게 버텨낸 부문이 소수에 불과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다만 생산과 판매, 수출이라는 3개 분야 지표를 살펴보면 우크라이나의 기업활동이 점차 개선되어 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제조업계 전반이 이 모든 분야에서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한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특히 지금까지 가장 양호한 실적을 거둔 식품산업과 경공업이 우크라이나 산업계 전체의 회복을 주도하는 부문으로 떠오른 점도 희망적 징표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각주
3) 해당 설문조사는 우크라이나의 27개 지역 중 직접 교전이나 러시아군의 점령을 겪어 기업 접촉이 불가능한 곳을 제외한 21개 지역을 대상으로 수행되었다.
4) IER은 기업경향설문조사(Business Tendency Survey)의 형태를 차용해 기업 차원에서 본 경제 현황 정보를 신속히 수집하기 위한 월간 기업 설문조사를 새로이 실시하고 있다. 본 설문조사는 EU가 재정을 지원하고 국제르네상스재단(International Renaissance Foundation)과 아틀라스네트워크(AtlasNetwork)가 공동 후원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관세(For Fair and Transparent Custom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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