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공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 후에 코펜하겐으로 가다!
2022년 5월 9일 슬로바키아 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 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을 나와 걸어서
시내를 한바퀴 돌면서 구경하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뷔페식 늦은 아침 을 먹습니다.
호텔에 체크아웃을 하고는 중앙역 Bratislava hl.st. 으로 가서 기차를 타거나 아니면 61번 버스 를 타면
브라티슬라바 공항 ( Bratislava Airport, 슬로바키아어 : Letisko M. R. Štefánika ) 에 갈수 있습니다.
공항은 브라티슬라바 중심지에서 북동쪽으로 9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Bus No. 61 번 이 주요 기차역인 Hlavná 그리고
železničná 와 stanica을 거쳐 공항 Letisko / Airport 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호텔에서 기차역(중앙역) 까지 배낭을 메고 10분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데다가
공항이 멀지 않으니 리셉션에 택시 를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로비를 구경하다가 차가
도착했다고 말하기에 밖으로 나가니 택시는 아니고..... 자가용 영업 인지 모르겠습니다?
호텔을 출발한 택시는 시가지를 벗어나더니 교외로 나가서는 무서운 속도 로 달리는데, 드디어 공항에
도착해 25유로 를 달래는데..... 50 유로 지폐를 내니 잔돈이 없다기에 카드로 결제 하기로 합니다.
슬로바키아 청년은 몇주 전에 영국에서 승용차 택시를 탔을 때 처럼 어디론가 전화를 해서 승낙 을 받는
데.... 우리가 카드깡 이라고 해서 다른 기업의 매출 전표를 끊는 것과 비슷한 것 같은데, 유로로
결제하더니 잘못됐다며 다시 원화로 결제 하기에 의심이 들었더니, 귀국 후에 보니 한번만 결제되었습니다.
이제 다뉴브(도나우) 강변 에 자리한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도시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에 언제 다시 한번 더 이 도시에 와야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아이헨도르프 시인 의 “그리움” 이란 시가 떠오릅니다.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다.
나는 홀로 창가에 기대어
고요한 마을
멀리서 들리는 역마차 피리소리를 들었다.
어쩐지 가슴이 타오르듯 뜨거운
이렇게 아름다운 여름밤
저렇게 함께 여행할 사람이라도 있다면 좋겠네.
그런 생각을 슬쩍 하기도 했다
젊은이 두사람이
산비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노래하는 소리가
고요한 산자락을 따라 멀어져간다.
살랑살랑 속삭이는 숲을 맴돌고
현기증 나는 바윗길을 맨돌아
낭떠러지를 뚝 떨어져서
숲의 어두움속에 사라지는 샘물을 맴돌고간다.
그들은 대리석 조각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다.
어두컴컴하게 우거진 갈퀴덩굴속의
바위 있고 잔디밭 있는 정원과
달그림자에 떠오르는 궁전을 노래했다.
아름다운 여름밤
아가씨들이 그 창가에 기대어
아련한 샘물의 솟삭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칠현금 소리 울리기를 기다린다고.
원래 슬로바키아는 헝가리의 일부 였다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전쟁에 패하니 이웃 체코와 함께 합쳐져서
체코슬로바키아 라는 나라로 독립을 했다가 분리 되어 슬로바키아가 됐으니 평화적으로 헤어 졌는데
비해 한반도는 6.25 전쟁 을 치러야 했으니.... 문득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문병기씨의 글이 떠오릅니다.
“한국 지키려 모든걸 바친 삼촌… 영웅으로 기억해준 한국에 감사” 한미동맹 영웅 새기다, 4만3808명
이름 새긴 ‘추모의 벽’… 제막식 하루 앞 500여명 헌화식, 친구 이름 찾고 눈시울 붉힌 80대…
오빠 사진 그려진 셔츠 착용 70대, 새겨진 부친 이름 탁본 한국인 등… “추모의 벽이 우리의 근거지 됐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에서 ‘추모의 벽’ 제막식이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더글러스
엠호프 미국 부통령 남편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이종섭 국방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왼쪽부터) 이 6·25전쟁 참전국 국기와 한미 정상이 보낸 화환 앞을 지나고 있다.
1952년 경기 연천군 ‘포크촙 힐’ 전투에서 전사한 한상순 씨의 아들 한신희
씨가 카투사 장병 이던 부친과 어린 시절 찍은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우리 부부는 몇년 전에 워싱턴을 찾아 포토맥 공원 안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을 방문했는데.... 한국전쟁 전물자 위령비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는 전에 사진으로 처음 보았을 때도 그랬지만 참으로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위령비 라고 하면 보통은 돌로 비를 세우는 법인데.... 여기는 “판초 우의를 입고 M1 소총” 을 멘
미군들이 수색을 나가는 장면으로 19명의 걸어가는 모습 이 뛰엄 뛰엄 서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예전에 강원도 철원 휴전선 일대에서 3년을 군복무한지라 저런 풍경 이 낯설지는 않습니다!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추모의 벽 ’ 을 찾은 앤 임리 씨(67)의 삼촌 로버트 씨는 1950년
7월 제2 보병사단 소속으로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았으니 로버트 씨는 1950년 11월 평양
인근에서 부대가 중공군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몰리자 전우들이 후퇴 할수 있도록 부상당한
손으로 끝까지 기관총을 놓지 않았다. 앤 씨는 “삼촌에 대해 물으면 할머니와 아버지는
늘 고개를 돌렸다. 두 분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먼 한국 땅에서 실종된 삼촌을 그리워했다” 고 말했다.
삼촌의 유해는 실종 50년 만인 2000년에 발견됐다. 미군은 유전자검사 를 통해 삼촌의 신원을 확인
한 뒤 2007년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은성훈장을 수여했다. 앤 씨는 추모의 벽에 새겨진
삼촌의 이름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할머니와 아버지도 하늘에서 기뻐하고 있을 거예요.
전우들을 살리고 한국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삼촌을 영웅으로 기억해준 한국에 감사합니다.”
6·25전쟁 참전용사와 유가족 500여명 은 제막식을 하루 앞둔 이날 추모의 벽을 찾아 헌화식 을
했다. 휠체어를 타고 온 노병 부터, 아빠 손을 잡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증조할아버지를
찾아온 어린아이까지 다양했다. 참전용사의 이름을 새긴 티셔츠를 맞춰 입은 유족들 도 있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온 참전 용사 로버트 자무디오 씨(88) 는 친구인 제임스 크리번 씨의 이름
을 찾고 있었다. 크리번 씨는 쌍둥이 형과 함께 나이를 속이고 1950년 18세에 참전 했다.
1953년 경기 연천군 전초기지를 방어하던 크리번씨는 중공군 공격으로 전우 40여 명과 함께 전사 했다.
약 1km 후방에 배치됐던 형 월터 씨는 박격포탄에 부상을 입은 채로 동생을 찾으려
구호소의 시신을 하나하나 뒤졌지만 끝내 데려오지 못했다. 자무디오 씨는 빼곡한
이름들 속에서 친구의 이름 을 찾자..... “이제 내 소망이 이뤄졌다” 며 눈시울을 붉혔다.
1950년 청천강 전투에 참전했다가 실종된 오빠 조지프 셀버그 씨의 동생 재닛 씨(71)는
‘결코 잊지 말라(Never Forget)’ 는 문구와 함께 오빠의 사진과 이름,
실종 장소가 새겨진 티셔츠 를 입고 있었다. 재닛 씨는 아직 오빠의 유해를 찾지 못했다.
재닛 씨(71)는 “미 정부로 부터 받은 파일 안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전장에 있던
오빠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들이 그대로 있었다” 며 “미국인들이 오빠의
이름 앞에 경의를 표하는 추모의 벽 이....... 가족을 잃은 우리의 근거지” 라고 했다.
헌화식에는 한국인 카투사 장병 유족들 도 참석했다. 1952년 경기 연천군 ‘포크촙 힐’ 전투에서
아버지 한상순 씨를 잃은 신희 씨(72) 는 카투사 유가족을 대표해 추모의 벽을 찾았다.
그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함께 추모의 벽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탁본하며
“세계의 중심인 워싱턴에 이름이 각인됐다는 게 아버지의 원을 풀어드리는 것 같다” 고 했다.
박 보훈처장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포화 속으로 뛰어든
영웅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있다” 고 말했다. 조태용 주미 대사도 참석자
들에게 “여러분 가족들의 희생 덕분에 한국은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 을 이뤘다” 고 했다.
백악관과 미 연방정부는 제막식이 열린 27일 6·25전쟁 정전 기념일 을 맞아 조기(弔旗)를 게양 했다. 미국은
2009년부터 현충일인 메모리얼데이 에 이어 두번째로 6·25전쟁 정전일에도 조기 를 달아 기념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이제 덴마크 코펜하겐 을 거쳐 폴란드의 바르샤바 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들어가
대형 전광판 에서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는 비행편을 확인한 다음에 라인에어 부스 로
가서는 보딩패스 발급 수속을 하는데.... 우리가 이메일로 부쳐져온 e-티켓과 여권을 보입니다.
그러자 직원이 서류를 보고 컴퓨터를 한참 보더니 우리에게 사전에 체크인 을 했느냐고 묻기로 안했다
라고 말하니......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저 건너편에 라인에서 회사 창구 로 가라고 말합니다.
건너편 라인에어 창구로 가니 카드 가 있느냐고 묻기에 제시를 하니 대뜸 카드로 결제를 하고는 Receipt
(영수증) 을 주는데 받아보니 1인당 무려 55유로가 결제 되어 있기로 이게 뭐냐고 물으니 뭐라 그러는데...
무슨 과태료 라 는 것 같아서 영수증을 들고 다시 라이엔어 부스로 가니 비로소 부킹티켓 을
발급해 주는데 보니.... 여기 브라티슬라바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티켓 뿐 입니다?
다시 부스로 가서는 코펜하겐에서 폴란드 바르샤바 로 가는 티켓을 달라고 하니 그건 코펜하겐공항
트랜짓 구역에 있는 부스 에서 끊어야 한다는데..... 그기서도 과태료 를 내야 하느냐고
물으니 잘 모르겠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코펜하겐의 스칸디나비아 항공에서는 과태료가
없었으며 맨체스터 트랜짓 구역 라인에어 부스에서 브뤠셀 가는 비행기 티켓도 과태료는 없었다는?
유럽의 저가 항공인 라인에어 는 많은 항공편을 보유 한데다가 가격도 싼 편 이라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문제는 사전에 인터넷 체크인 을 요구한다는 것 입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항공권을 예약할 때 내 전화번호 를 적어 넣었는데.... 문제는
저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게 귀찮아 집에 두고 마눌 휴대폰을 가져왔는데
그마저 인터넷 데이터 는 사용하지 않고 와이파이만 이용해 전화 를 사용 합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는 한국에서 출발한지 이미 스무날 이나 넘은지라 그 사이에 저 라인에어
항공에서 고국에 두고 온 내 휴대폰으로 사전에 체크인을 하라는
문자가 몇차례 온 모양인데.... 나는 그걸 받지 못한 탓에 엄청난 과태료 를 물게 된 것입니다.
우린 시간 절약도 할겸 배낭은 부치지 않고 들고 비행기에 올라타니 저가항공인지라 좌석도 좁고
또 식사라던지...... 뭐 이런 서비스는 전혀 없으며 정 원하면 돈을 내고 사 먹어야 합니다.
브라티슬라바 공항 Bratislava Airport 에서 13시 05분에 이륙한 저가항공 라이언에어 FR 5740
비행기는 서북쪽으로 1시간 45분을 날아사 14시 50분에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 에 도착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