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은 어릴때 뛰어 놀았던 거리풍경을 어디에서도
찾을수 없다는 현실에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면에서 전에 본 60년대 초반 영화에서 그시절 그거리를 볼수 있어서
정말 잃어 버린 고향을 가본 느낌이 들었다.
61년 유현목감독이 만든 오발탄이라는 영화인데
영화줄거리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6.25 피난민 일가가 남한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잘못 발사된 총알인 오발탄으로 비유한 내용으로
너무 비관적이고 퇴폐적이다 하여 군사정부에 의해 61년 우리나라 최초로
상영금지 되었다가 63년 재개봉 되었다.
출연인물로는 한국전의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되어 누워서
연방 가자 가자(고향으로)만 외치는 어머니
전쟁중 복부관통상을 입고 제대하고 영화판을 기웃거리며 노는 동생(최무룡)
양갈보(같이 영화를 보던 아내는 양갈보의 뜻을 몰라 내게 물었다) 노릇을 하는 여동생
현실에 찌든 음대출신의 병약한 아내와 화신(백화점)에 가서 고무신을 사는게
꿈인 딸과 신문팔이 고학생인 막내동생
그 많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고지식한 가장인 송철호(김진규)는
가난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고자 한다.
주인공 김진규의 고뇌하는 모습도 좋지만 젊은 시절 최무룡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나온다.
특히 군시절 후송병원에서 알았던 간호원을 기차건널목에서 우연히 만나
전후의 폐허 비참한 현실속에서 서로 사랑하게 되는 장면은 가슴을 짠하게 한다.
이제는 여대생이 된 그녀는 까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허름한 건물 꼭대기에서
혼자 기거하는데 최무룡은 그녀와 깊은 키스를 나누고 헤어진 다음날
그녀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그녀를 짝사랑하던 옆방 학생이 그녀를 끌어 안고 옥상에서 투신했기 때문이다.
최무룡은 그녀의 집에서 우연히 손님이 두고간 권총 한자루를 습득하게되는데
자신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탈피하고자 은행을 털지만 10분만에 검거된다.
멋도 모르고 범행에 동행된 옛 부하역에 젊은 시절 앳된 모습의 이대엽이 나오고
6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육체파배우 김혜정이 최무룡의 여자친구(극중 여배우)로 나온다.
김진규는 아내가 출산중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디부터 갈까 방황하다가
그동안 돈을 아끼느라 뽑지 않았던 사랑니 두개를 치과에 들러
모두 뽑아 버린다.
그는 과다 출혈로 몽롱한 정신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아내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병원으로 갈까 동생이 구금된 중부경찰서로 갈까 방향을 잡지 못하고
택시기사에게 자신의 어머니처럼 가자 가자를 외친다.
택시 운전사는 오발탄 같은 놈이 걸려 들었네 하는 말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는 이제는 찾아볼수 없는 그리운 내고향 용산의 당시풍경과 ,
해방촌 언덕우에 다닥 다닥 붙은 하꼬방(판잣집)과 공동우물에 걸린 두레박,
중구 일대 거리 모습, 거리를 질주하는 지프차와
운전사옆에 조수가 타고 있는 당시의 코로나 택시내부 풍경
당시 서울거리 주요 대중교통수단이었던 전차의 모습 등이 나온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당시 인도와 차도를 경계에 있는 무궁화 문양 깃봉이 달려있고
쇠사슬로 연결되있던 철막대는 정말 기억에 새로웠다.
영화 오발탄은 6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꼽히며 영화의 히트로
라디오에서도 오발탄(진행 오승룡?)이라는 시사프로를 방송하여 오발탄이라는 말이
한동안 대유행했던 기억이 난다.
첫댓글 너무나 못살던 시절의 영화를 구해서 보셨군요.. 저두 서울토박이로 서울서 대표적으로 못살던 동네였던 금호동 언덕배기 판자집서 자랐답니다. 어디서 구하셨는지 사진도 올려주시고 옛추억에 잠시 젖었답니다.
반갑습니다
이영화가 61년개봉했는데 상영금지되었다가 63재개봉했다
합니다. 금호동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셨군요
제가 어린시절을 보낸 원효로와 청파동에도 그당시 논밭과
초가집이 있었습니다. 가난했어도 따스한 정은 있었던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기라성같은 배우들. 총출연이였네요..
그시절. 상황설정도 현실감있겠구요.
영화좋아하는 사람들중엔 옛날 풍경들에 더 찐한 느낌을 갖는 사람도 보았네요
한번 보구 싶습니다~
ㅎ 오발탄?
지금은 곱창부터ㅇ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듯요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유튜브에가면 영화전편을 무료로 볼수 있습니다
위 출연인물중에 생존해계신분은 윤일봉님 밖에 안계신것 같습니다
저는 오발탄을 주말의명화에서 봤고 꿈은 사라지고는 62년 우리집에서
일하던 누나와 남영동 금성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60년대 영화를 보고,
어린 시절 자라나던 동네의 모습이
영화속으로 빠져 옛 시절에 젖어보는
마음도 추억인가 싶습니다.
경제, 산업, 문화가 지금에 비하면,
엄청 뒤쳐졌던 그 시절의 영화를 보는 맛도
나름으로 의미가 있을 듯 하네요.
오발탄, 오랫만에 들어보는 오발탄입니다.ㅎ
동영상은 1, 사진은 2, 이렇게 올렸으면 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방장님 감사합니다
따로 공지가 없어서 동영상1개 사진3을 올렸는데
일단 영화와 관계없는 사진 1개를 삭제했습니다
동영상1개와 사진2개까지 가능한것으로 알고
향후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디오에서 점심시간 쯤에 방송에서 '오발탄 !' 이라고 하던 기억이 납니다.
반갑습니다
조회해보니 63~72년까지 MBC에서 오승룡님이
진행한걸로 나옵니다 ^^
그 당시에는 가난이 주제 이었던 영화가 많았습니다
나도 이영화 본 기억이 납니다
그당시는 가난했던 대한민국 이었지요
나도 어릴때 , 젊을때 내 주위 사람들 중 가난에 찌든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요새도 가난한 사람들이 눈에 띠지만 많이 줄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많이 발전 한 것이지요
충성 우하하하하하
반갑습니다
당시는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빈부격차가 적었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서울로 상경하는 분들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즐거운 대보름되시기 바랍니다 !
60년도는 제가 아직 어릴 때라
다는 모르지만
오발탄 이라는 말은 들어본 듯 하네요
한 편의
옛날 영화를 본 듯 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루루님 반갑습니다
63년도에 재개봉했다는데 저는 90년대에 TV명화극장에서
이영화를 봤습니다. 무대가 제가 어릴때 살던 동내와 옛서울시내라
몰입해서 봤고 글로 남겼었지요. 루루님도 행복한 주말되세요 ^^!
그산님의 옛서울 모습 추억은 정말 흑백필름 속에 많이 남아있겠군요.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하고 트위스트박이 신성일의 친구로 나왔던
'맨발의 청춘'을 보셔도 그런 추억 많이 되살아 나시겠어요.
'오발탄'과 '맨발의 청춘'은 TV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제 고향 대구의 옛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는 신영균이 주연을 맡았던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입니다.
제가 두달 다녔던 명덕국민학교,
2.28 대구학생의거 기념탑이 있던 명덕로타리 주변의 옛모습과 그당시 골목길 풍경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지요.
그산님 덕분에 흑백영화 추억에 빠져듭니다.
마음자리님 반갑습니다
옛날영화는 낡은 흑백영화를 보면
그시절의 모습이 더잘재현되는것 같습니다
맨발의청춘에서 젊은날의 엄앵란과신성일을
봤는데 그대사가 너무 재밌었습니다
저하늘에도 슬픔이는 남영동 성남극장에서
단체관람했는데 육교에서 구두닦이하는모습이
떠오르네요. 얼마전 주인공이 고생만하시다
작고하셨다는 기사를 본기억이 납니다
오발탄이라는
영화가 있었군요.
최무룡 이름은 많이 들어 봤지만
실제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깡촌에서
워낙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먼 세상을 살았으니까요.
서울은 너무 변해서
그산님 어릴적 풍경은
온데간데 없겠네요.
제라님 반갑습니다
최무룡님은 요즘세대에게는 최민수의 아버지로 많이 알려졌지만
50년대~60년대 최고의 배우이자 가수였습니다
빨간마후라, 꿈은 사라지고 외나무다리 등 수많은 영화의 주인공이었지요
저는 서을에서 태어나 30년을 살았지만 떠나산지 40년가까이되어
서울가면 어리버리합니다 ^^
지금도 귀에 쟁쟁한
라디오의 음성 오!발!탄!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기회되면 찾아보고 싶습니다
꿈은 사라지고
노래가 좋아 많이 볼렀어요
반갑습니다
아침 학교가기전 라디오에서 오발탄하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 오발탄은 유투브에서 바로 보실수 있습니다
최무룡님은 목소리가 참 깨끗하고 발성이 좋았고
노래도 참 멋지게 잘부르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