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은 누가 풀어 놓았을까 / 김성신
예감은 때로 정지신호,
가늘어진 말들이 마른기침 소리를 낸다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두리번거릴 때,
아프다고 소리치지 못하고 나를 잠글 때,
벼린 시간들은 나뭇등걸에 매달려 있다
침묵은 세상 밖의 노선
허공이 뱉은 마른기침을 먹고
음률을 옮긴 듯한 떨리는 손의 음표들
편백은 무심히 반백이 되어 다닥다닥 붙어 가계를 꾸리겠지
슬픔 위에서도 가볍게 내려앉아 기꺼이 날아오르려는 눈빛
공손한 자세로 공벌레들이 웅크리고 있다
그늘이 거느리는 길을 묵묵히 따라간다
나방을 뒤따르는 한 무리의 서늘한 빛들 속으로
울고 남은 몇 개의 말들이 저녁으로 기우는데
당신이 버린 칼날의 哭들은 어디에 기대어 있을까
흰 뼈들이 공중을 떠돌고
입술 달그락거리던 석양이 홰를 친다
낯설게 웃고 있는 얼굴들
어떤 생각은 날개가 꺾인 방향으로 고개를 묻고
핏기 없는 바람이 난간 끝에서 발끝을 모은다
진눈깨비처럼 쌓여가는 당신 어깨의 夕會
버스가 마지막 정류장에 정차했을 때
눈 속의 혀는 오랫동안 습기를 핥고 있다
비로소 인적이 사라진 고행 속으로 날아가는 나방들
오늘의 바깥이 자꾸만 겨드랑이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 《문예바다》 2022년 봄호
* 김성신 시인
1964년 전남 장흥 출생, 원광대학교 졸업,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2016년 원주 생명문학상, 2016년 상사화 공모전 금상, 2016년 용아 박용철 전국 백일장 차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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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예감. 그것이 일종의 반사적인 신호가 되어, 순간 몸을 멈칫하게 되는 것.
이는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생존 본능이다.
살아가면서 이따금 “마른기침”을 하여 주위에 아직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리고, 조심성이 있는 탓에
언제나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가 많았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아프다고 호소하기보다는 제일 먼저
자기 자신부터 걸어 “잠글 때”도 있었으리라.
그러다가 문득 추억에 쓸 시간들은 조용히 “나뭇등걸”에 매달아두었을 것이다.
불쑥 찾아오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일어났던 생체적 정지 신호가 어디 ‘나방’에만 있었을까.
삶의 희망이 힘없이 꺾이고, “핏기 없는 바람”에 밀려나 급기야 막다른 곳으로 내몰린 상황은
화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절망에 맞서 “기꺼이 날아오르려는 눈빛”을 보인다고 한들 언제나 희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흰 뼈들이 공중을 떠”도는 장면에서도 화자의 눈에 비친 메마른 세계가 얼마나 황량한지를 보여준다.
“고행 속으로 날아가는 나방들”의 날갯짓에 깃든 삶의 환희와 죽음의 절망은 동시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뱉어진 “가늘어진 말”에 함축된 허약성은 크게 두 가지로 드러난다.
하나는, 시적 화자의 병약함을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언어적 세계의 빈약함이다.
병약한 몸은 세계를 낯설게 느낀다.
이전에 건강했던 몸으로는 느끼지 못했던 낯선 지점들이 열린다.
화자의 ‘마른기침’이 “허공”을 흔들고, 그렇게 “떨리는 손의 음표들”로 덧칠되는 낯선 세계는
우리가 알던 곳이 아니다.
인적이 사라진 곳에서 고행의 날갯짓을 펼치는 나방의 여정은 사전에 계획되거나 의도된 것이 아니었으리라.
“당신이 버린 칼날의 哭들”이 언제 갑작스럽게 울릴지 모르는 것처럼 나방의 날갯짓도 “정류장”이라는
정해진 노선, 배차 간격이라는 계획된 시간과는 무관하다.
이렇게 밤에만 활동하는 나방만큼이나, 시적인 말들도 습작의 밤에 더 왕성하게 움직였으리라.
한낮 동안 “울고 남은 몇 개의 말들”이 저녁을 지나, 어둠 속으로 서서히 잠겼을 것이다.
이처럼 “바깥”의 무늬가 드리워진 말들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가.
“낯설게 웃고 있는 얼굴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화자의 “눈 속의 혀”가 그토록 “오랫동안 습기를 핥고 있”던 이유는 어쩌면 한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무늬와 함께 떠오른 낯선 얼굴에서 자신의 진짜 얼굴을 마주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 《문예바다》 2022년 여름호
* 정재훈 / 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