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수 맑음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비디오 카메라에 비쳐서 보여 주었다. 오늘 공부는 이미 그려진 해바라기에 색칠을 하는 거다. 아이들은 자기 그림이 텔레비전 화면으로 나오니 웃고 난리가 났다. 마침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가 있어 마치는 종이 울려도 보여주려고 했다. 아이들이 고흐 그림에 잔뜩 흥미를 가지고 텔레비전 화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그 때 갑자기 "드르륵" 하고 뒷문이 확 열렸다. 고흐 그림을 보고 있던 아이들 머리가 일제히 뒷문 쪽으로 쏠렸다. 한 남자 아이가 아래 웃니를 다 드러내고서는 웃고 서 있다. 키가 제법 큰 게 일학년 아이같지 않다. 좀 모자란 아이 같기도 하고. 잘 잡아 놓은 분위기를 깬 그 아이가 원망스럽기 그지 없다.
"야, 너 몇 반인데 교실 문을 그렇게 여노? 우리 공부 중이니까 문 닫아 줘."
그 아이는 여전히 씨익 웃으며 미안해 하지도 않는다. 우리 반 아이들을 한참 둘러보더니 "여기 1학년 3반" 하고는 문을 닫고 가 버렸다. 아이들은 그 틈을 타서 흐뜨려지려고 한다. 어이구, 어떻게 해서 잡아 논 분위긴데. 막 화가 났다.
"선생님, 저 얘 누구지요?" "2학년 같은 데." "으하하, 웃긴다."
"자아, 여길 봐. 2학년 언니가 저렇게 하니까 이상하지? 그러니까 우리 일학년은 잘 배워서 저렇게 안 해야 돼."
그리고는 아이들을 겨우 추스려서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을 비디오카메라에 비춰서 보여줬다.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 그림을 위에서부터 천천히 훑어 오면서 그림 전체를 보여줬다. 아이들이 끽소리도 내지 않고 보더니 막 손뼉을 쳤다. 어머나, 고흐 그림은 정말 명화는 명화인갑다. 오늘 둘째 시간은 고흐가 아이들을 가르친 셈이다. 내 마음도 뿌듯했다.
몇 분 남지 않은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내 보내고 의자에 앉았는데 민지가 나에게 왔다. 민지는 아주 조용하고 그 큰 눈을 하고서도 잘 웃지도 않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나에게 와서는 또박또박 말했다.
"아까 그 오빠야, 우리 오빠예요. 우리 오빠 장애인이예요."
"어? 민지 오빠라고? 엄마야, 미안해서 우짜꼬? 오빠가 우째서 장애인이 됐노?"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아팠어요. 나 보려고 왔어요."
"엄마야, 민지야 미안하대이. 나는 그 오빠야가 아픈 사람인 줄 몰랐대이. 나는 2학년 오빠야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아이가."
"우리 오빠가 내가 1학년 3반 인 거 알고 나한테 온 거예요."
"민지야, 우리 민지는 우째 이래 착하노? 오빠 이야기를 이렇게 잘 해 주고. 야아, 민지야 니는 정말 용기있는 사람이다."
나는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고 민지를 꼬옥 안아줬다. 그리고 민지 귀에다 말했다.
"민지야, 니가 오빠를 많이 많이 도와주라."
민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지는 이번 금요일에 사천으로 이사를 간다. 입학하고 일주일도 안 된 날, 아프리카 음악을 들려줬을 때 아프리카 사람들이 오아시스를 찾으러 가며 부르는 노래라고 말해서 나를
놀라게 했던 민지다. 민지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내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남기고 떠나려고 하는가 보다. 정말로 정말로 다른 학교로 보내고 싶지 않은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