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04 - 260307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법정의 산중 편지)
법정 글 (박성직 엮음) - 책 읽는 섬
이 책은 서간문(편지글)으로 이루어졌다. 서간문이라는 문학적 분류가 편지글 형태로 쓴 에세이의 한 부류라고 정의한다면 이 책은 그 부류에 속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에 수록된 글 거의 모두는 글쓴이가 출가하고 나서 실제로 그의 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동생이 훗날 책으로 엮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편지의 주인공인 법정스님은 대학 3학년 때 휴학 중이던 1955년 홀연히 집을 나섰다고 한다. 그가 아직 본명 ‘박재철’을 쓰고 있을 때였으니 정식 출가(出家)는 아니나 그렇다고 가출(家出)이라는 표현도 참 애매하다.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고 집을 나갔으니 일반적 표현으로는 가출이 맞기는 할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엮은이의 표현은 ‘홀연히 집을 나섰다.’라고 하였다. 딸이 결혼을 하면 같은 ‘출가(出嫁)하였다.’라고 한다. 같은 음으로 읽기는 하지만 스님이 되어 집을 나가는 것과 구별하기 위함인지 집家에 여인(女)을 붙여 놓았다. 그럼 딸이 스님이 되면 어떤 한자를 써야 하나? 한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가 참 묘하다.
법정스님은 1956년에 사미계를 받고 1959년에 비구계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언제부터 그의 속명대신에 법명(승명)을 사용하였는지 정확히 적혀져 있지는 않으나 동생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956년 9월 6일자 편지 말미에 그의 승명이 ‘법정(法頂)’이라고 알렸다. 그는 불명(佛名) 이라고 일컬었다. 따라서 그는 사미계를 받을 당시 법명도 함께 받은 모양이다. 이 책은 그가 1955년 8월 12일자 편지로부터 시작되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법당에서 많이 울었다는 소식을 전한 1970년 11월 27일 편지가 마지막 장에 들어있다.
그는 법명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줄곧 형으로써의 속명을 사용하다가 법명이 법정이라고 알린 1956년 9월 6일 이후의 편지부터는 그의 말대로 불명, 법정을 사용하였다. 그의 편지 속에는 동생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책 많이 읽고 부모님 잘 모시고 주위 분들에게 잘 하라는 걱정이 많다. 예전에 어른들이 외지에서 공부하는 자녀들에게 보내던 편지의 대부분이 이런 내용이었다. 나도 학창 시절에 많이 받았던 편지 형식이 고스라니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동생에게 법명을 알려주고 난 후에는 ‘법정합장’이라고 늘 끝을 마무리하였다. 아마 이 때부터는 속계를 떠나보내는 마음이었나 보다.
그는 상과대학을 다니다 휴학을 하였다고 소개 되었는데 그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살피면 그는 상과의 학업보다는 철학에 더 관심이 있은 모양이다. 그가 편지에 열거한 책들도 상과 보다는 인생이나 철학 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그런 그의 생각들이 그를 가출로 이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저서들이 거의 모두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도 그런 그의 생각들이 기본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1960년 10월 21일자 편지에 “지금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하나의 무표정한 직업인이 된다는 것이다. 해서 나는 초연한 수도승이기 보다는 하나의 자연인으로서 진리를 모색하는 철학도가 되고 싶을 뿐이다.”라고 적었다. 이 생각이 그가 출가한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동생에게 보낸 그의 편지가 대부분이지만 장을 넘기면 수록된 편지들 중간 중간에 그의 저서들 중에서 한 페이지 정도 간추린 이야기, 혹은 산사나 들판에서 변화되는 자연의 멋진 모습이 사진으로 담겨져 있다. 그러나 사진에 대한 설명은 없다. 책의 후반에 벗을 그리는 그의 편지 말미에는 빗방울이 뚜렷이 흘러내리는 유리창 너머로 초점이 맞지 않은 도시의 아파트가 흐릿하게 보인다. 속세를 떠났지만 속세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유리창에 물방울로 맺혀져 법계와 속계의 이면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26년 3월 8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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