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의 귀엽고 똘망똘망한 사진을 보고서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감히 사진을 올려봅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제 옆에 살고 있는 파트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오십여 년 전의 사진이지요.,
시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골덴바지를 입고 웃을락말락하는 입매를 하고 있습니다.
본인 사진도 아닌데 왜 여기에 올렸냐고 한말씀씩 하시겠지요?
저는 이 사진을 지갑에 넣어두고 다니면서 혹시라도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 사진을 꺼내보곤 합니다.
지금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 사람도 한때는 이렇게 예뻤던 때가 있었노라고.
지금은 너무나 다르게 변해버려 주름지고 거친 얼굴을 한 사람이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 세상의 풍파를 거치면서 살아오느라고 어쩔 수 없이 변한 거니까 이해해주자고 마음 먹는답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담긴,제 수필집에 실려 있는 글 한 편 함께 보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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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에 맞추어 나가느라고 지하철을 탔다. 오후 헐거운 시간이어서 그런지 지하철 안은 적당히 한가롭다.딱히 할 일도 없고해서 앉아있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기로 한다. 아직 퇴근시간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르긴 하지만 남자 어른들이 제법 눈에 띈다. 그들은 손에 신문을 펴서 읽고 있는 사람도 있고, 휴대전화로 어디론가 끊임없이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서류가방에서 서류인지 책인지를 꺼내 읽고 있는 사람도 있고, 피곤에 지쳐 창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사람도 있다. 적당히 배도 나왔고, 머리칼도 희끗희끗하며 얼굴에는 가늘고 굵은 주름이 훈장처럼 수놓여져 있다. 특별히 잘난 사람도 없고 있어 보이는 사람도 없이 그저그런 사람들이 앉거나 서 있다. 아주 보통인,이 사람들이 각자 자기 집에 들어가면 가족의 책임을 지는 가장이고 든든한 중년의 아들이고 소중한 남편이리라. 그러한 생각과 겹쳐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
결혼 전에 남편은 키에 비해 아주 말랐다. 허리가 가늘어 접힐 정도여서 건강에 이상이 있나 하고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던 그가 임신 육개월에 해당할 정도의 부른 배를 가지게 된 것은 나잇살 덕분이기도 하지만 결혼 생활을 해나오면서 겪어야 했던 갈등과 걱정과 불안이 배 안으로 쌓여 표면적으로 보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부른 배 안에는 경제적 어려움과 장자로서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한 회한 같은 것이 가득차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 가에는 굵은 주름이 잡혀 있다. 경제적으로 빡빡한 상황에서 유학을 떠나 공부하면서 낳은 아이를 키우며 수시로 병원을 들락날락하면서 가슴을 조리던 일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아 수술과 정기적인 진찰을 요하는 특별한 손길이 가는 아이였기에 부모로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긴 했지만 장래가 보장되지 않은 공부와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병원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이 걱정에 굵게 새겨진 훈장이 남편의 눈가의 흔적으로 남은 것이 주름이라고 생각한다.
희끗희끗해진 머리칼은 나이탓도 있겠지만 아버님이 입원 하룻만에 돌아가시게 되면서 받은 충격탓이 크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건강하시던 아버님이 갑자기 쓰려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어 고향에 내려가서 수술을 하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의사선생님이 별 탈 없이 잘 끝났다고 걱정마시라고 해서 그날밤 집으로 돌아가서 한 숨 눈을 붙이는데 갑작스런 연락이 와서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고 말았다. 자신이 맏아들로 고향까지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병상을 지키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아버님 혼자 임종을 하시게 했다는 자책으로 몹시 괴로워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어머니께서 병원에 있지 왜 그냥 집으로 왔냐고 하시는 말씀 한 마디가 가슴에 박혀 두고두고 쓰라려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리는 것 같이 빠른 시간에 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얗던 얼굴은 푸석푸석해지고 뺨은 살짝 파이고 입술은 까칠해져 삶에 지친 모습이 영낙없는 중년아저씨이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저렇게 퉁퉁하고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한,굵은 주름을 얼굴에 가득해 가지고 있는 저 사람이 뭐가 좋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중년의 바다를 헤엄쳐 오고 있는 바로 이 사람이 나와 아이를 키우면서 눈물과 웃음을 함께 나눈 사람이며, 추운 바람을 함께 맞으며 언젠가 따뜻한 햇살을 함께 누릴 것이라 꿈꾸던 사람이며,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외로움과 아픔을 함께 해주던 바로 그 사람이며, 사는 것이 힘겨워 그만두고 싶을 때 끝까지 손놓지 않았던 그 사람이다.
남이 보기에는 그냥 그저 그렇고 그런 남자 여자가 각자 자기 가정에서 부부만이 가질 수 있는 고통의 역사를 함께 했기에 남보다 더 잘나지 않아도, 남보다 더 돈 잘 벌지 않아도, 남보다 더 훌륭하지 않아도 바로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그 남자 그 여자의 마음과 몸에 새긴 그 역사의 흔적인 주름과 흰 머리와 뱃살과 투박한 손발과 푸석한 피부가 자기와 일상을 함께 하지 않은,잘나고 돈많고 멋진 사람보다 사랑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리라. 일상의 지리멸렬함을 함께 나누지 않은 사랑은 순간의 열정과 연정은 될지 모르지만 끈끈한 동질감을 갖는 정을 이길 수 없다.
그러기에 나는 약간 피곤해 보이는 내 남편의 약간 나온 뱃살과 주름과 거친 피부까지도 모두 사랑한다. 그것들은 세월의 흔적으로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오면서 고통의 강을 함께 건너온 발자취이기에. 아이 때문에 밤새워 아파하고 빠듯한 경제 사정 때문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노릇에 힘들어했고 고통스러웠던 적도 많았지만 바로 그 고통이 지금의 나를, 우리를 지탱하게 해 준 디딤돌이 되었다고 믿기에 중년의 인증이 된, 뱃살, 거친 피부, 주름까지도 예뻐 보이는 것이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 삶의 역사의 현장에 그가 서 있기에. 그리고 내가 서 있기에.
첫댓글 아우님 옆지기님이 왜 이렇게 귀엽게 생겼어요... 이 나이엔 모두가 귀엽다고 하겠지만 이목구비가
거워요. 반갑습니다...
아주 준수합니다.
청년이 되었을 때는 멋진 신링감이였을것 같으네요. 우리의 얘기같은 수필을 그림을 그려가면서
잘 읽었어요. 수필집을 발간한것 칭찬 드립니다. 좋은 글 솜씨 많이 보여주세요.
자유게시판에서 새 이름이 오르면 우리들은 눈이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앞으로 들려 글 올리겠습니다.
귀여운 아이 사진과 함께 올려준 수필 잘 읽었습니다.
창호지 바른 문살,좁은 툇마루,고무신... 모두 그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줘 감회에 젖게 합니다.
수필가시군요.
이런 좋은 수필 자주 좀 올려주세요.
문학 장르중에 수필을 가장 좋아합니다.
46회라면 셋째 동생과 동기가 되어 더 반갑습니다.
동생과 동기라구요? 글쎄 누구인지....
부족한 글이지만 칭찬해 주셔서 힘내 글 쓰겠습니다.
김경숙이고 지금은 독일에서 삽니다.
인터넷 동호회 정월 윷놀이마당에 딸과 함께 참석해서 사진이 나와있습니다.
참 귀엽고 잘 생겼네요. 후배님 반갑습니다. 수필 읽으니 글 솜씨가 작가이신가 봐요. 이렇게 좋은 글아간 젊믐과 부모 노릇 자식 노릇 다 하다 보면 다 늙고 .재미있는 표현이었습니다.
자주 올려주세요. 세월이
남편보고 귀엽고 잘 생겼다고 그러더라고 말했더니 기분좋아합니다.
지금 자기 모습은 생각하지 않고 말입니다.ㅎㅎㅎ
앞으로 자주 들리겠습니다.
햐~!
멋진 글과 향수스런 사진.
잘 읽고 보고 감탄하고 갑니다.
공감가는 글 또 보기 원해요.
옛날 사진 한 장 가지고 소위 말해서 떴습니다.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