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에는 약 1조개의 뇌세포가 있는데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기억, 언어, 감정 또는 성격 같은 복잡한 인지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마치 컴퓨터가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수많은 칩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칩들이 전기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뇌 안에 어떻게 기억이 등록되고 저장되는가에 대한 설명은 1949년 캐나다 심리학자인 헵(Hebb)이 처음 하였다. 헵에 따르면 기억이란 뇌세포끼리의 연결부위인 시넵스가 강화되어서 여러 개의 뇌세포가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학자들도 동물실험에서 전기자극을 연속적으로 가할 때 시넵스의 연결이 강화되는 현상을 확인하였다.
이 현상은 특히 뇌의 여러 부위 중 기억과 가장 밀접하다고 여겨지는 해마 부위에서 일어난다.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하여 어떤 자극을 반복해서 받아들이면 이 자극이 뇌의 여러 부위, 특히 해마에 뇌세포간 연결고리를 강화시킴으로써 기억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서 뇌세포가 새로 탄생되는 것은 아니며, 뇌세포와 뇌세포의 연결이 강화되면서 회로가 형성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전화를 걸려고 한다 하자. 전화번호부에서 전화번호를 찾아서 또는 전화번호를 들어서 전화를 건 다음 우리는 보통 그 전화번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 번 사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전화번호를 계속해 사용해야 하는 경우, 반복 사용하다 보면 그 전화번호를 외우게 된다. 우리가 어떤 전화번호를 1회 목적으로 사용하였을 때 전화번호를 누르는 동안 약 수초 간 그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을 단기기억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기억으로서 작업기억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7자리 전화번호를 불러주고 그것을 거꾸로 말하게 시켰을 때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7자리 전화번호를 머릿속에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이 정보를 조작해야 거꾸로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정보를 잠시동안 가지고 있으면서 이를 조작하는 기억을 작업기억이라고 부른다. 단기기억과 작업기억은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단기기억을 반복하면, 다시 말해서 7자리 새 전화번호를 반복하면 나중에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장기기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어떤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기 위해서는 단기기억 또는 작업기억 상태로 있다가 이것이 반복되는 학습에 의해서 장기기억으로 넘어간다는 의미이다.
단기기억이나 작업기억은 이마의 바로 뒤쪽에 있는 전두엽에서 이루어지며, 장기기억은 주로 해마에 저장된다. 어떤 정보에 반복해서 노출되면 시넵스 강화가 일어나서 기억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1999년 굴드와 그로스는 과학잡지 ‘사이언스(Science)’에 색다른 논문을 발표하였다. 물론 원숭이 실험이기는 하지만 어떤 자극을 가했을 때 해마 부위에 있는 신경세포의 개수가 증가함을 알게 되었다. 이는 신경세포는 한번 가지고 태어나면 더 이상 수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기존 가설을 뒤엎는 결과였다.
더욱 놀랍게도 해마에서 생긴 새로운 세포가 뇌피질로 이동함이 밝혀졌다. 이 실험 결과는 인간에게서는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우리가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고자 할 때 신경세포와 신경세포의 연결부위인 시넵스의 강화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뇌세포가 증가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단기기억은 전두엽, 장기기억은 해마에 저장
인간은 기억을 한 뒤 첫 이틀 동안에 66%를, 1개월이 지나면 79%를 망각하고 나머지 21%는 오랫동안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어버리는 것이 적어진다.
사람의 일생에서 기억능력이 최고점에 도달하는 시기는 10대 말에서 20대 초반이다. 이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습하는 데 소비하므로 뇌기능이 최고로 발달하는 시기이다. 그 후로 점차 전반적인 뇌기능이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25세를 전후로 기억력 저하가 진행된다. 청소년기에는 해야 하는 일이 공부로 집중되어 있지만 성인이 되면서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생활을 통해서 각종 스트레스도 받고 가정일, 친구관계, 직장일 등 해야 할 일이 다양해지기 때문에 기억력이 쇠퇴할 수밖에 없다.
또 술과 담배 등으로 인해 건강관리가 부실해지는 것도 원인 중의 하나이다.
노화현상이 시작되는 40대 후반에 가장 큰 폭으로 기억력이 떨어지고 70세가 넘으면 기억력은 한창 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개인마다 기억력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유전과 환경(교육과 훈련 등)의 요인에 의한 것으로 과학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유전학의 관점에서 보면 뇌세포의 많고 적음 또는 뇌 단백질의 구조에 따라 기억력 차이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나 명쾌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과학이 더 발달하면 기억력을 급격히 증진시킬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 전에 인류는 수만 번 이상 자문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는 것이 과연 행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