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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유산] 28
S#1. 아파트 옥상 (이른 새벽)
27회와 연결해서...
옥상 난간에 올라서는 백성희, 똑바로 선다.
이미 이 세상에서 버틸 기력 없이 무너 진 상태라 두려움이나 흔들림 없이 앞 쳐다본다, 그 위로...
승미(E) : 왜 하필 엄마가 내 엄마야?
<27회 40씬에서>
승미 : 왜 엄마 같은 사람이 내 엄마여서 날 이렇게 미치게 만들어?
<27회 41씬에서>
-니가 사람이냐? 하던 고평중.
-고평중 팔 잡으며 ‘엄마야!’ 하던 은우.
백성희 : (현재, 회한과 참담함으로 허공 쳐다보다가 눈 감는데)
승미 : (옥상 입구에서 뛰어올라온다, 엄마 보는, 절박한 비명처럼) 엄마!
백성희 : (멈칫, 눈뜨는)
승미 : (급하게 다가오며) 엄마 안 돼!...
백성희 : (돌아보지 않는, 차게) 오지 마! (바로 한발 내딛는)
승미 : (동시에 절박하게 소리치는) 엄마, 죽지 마!
백성희 : (멈칫하는) ...살 이유가 없어... (다른 발 앞으로 내딛는)
승미 : (간절한) 날 위해서 살아줘!
백성희 : (예상 못했던 말이다. 멈칫하는)
승미 : (절박하게 쏟아내며 다가오는) 아무리 비참해도 죽지 마! 엄마가 나를 핑계로 어떤 짓을 했어도 난 엄마 필요해!
그러니까 죽지 마요, 혼자 도망치지 마.
백성희 : 버티고 싶지 않아...
승미 : (너무 두려운, 덜덜 떨며) 엄마까지 가버리면, 난 아무도 없어...
백성희 : (딸 두려움 느끼고 흠칫 놀라는, 약간 돌아보는)
승미 : (두 손 모으고 울며) 이제 이 세상에서 날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 밖에 없는데, 엄마까지 없으면 나 어떻게 살아...
백성희 : (딸 가련한 모습에 마음 찢어지는, 흔들리는데)
승미 : 그래도 갈 거면... 나도 같이 가...
백성희 : (헉 놀라는데)
승미 : 같이 가! (달려오는)
백성희 : (놀라) 안 돼! (확 돌아서는데)
승미 : (엄마 허리춤 확 끌어안으며) 제발,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끌어안은 팔 달달 떨리는)
백성희 : (그런 딸 보고 무너지듯 주저앉는)
S#2. 안방 (이른 새벽)
아직도 안심 안 되는 듯 엄마 가슴팍에 태아처럼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승미. 그런 딸 회한으로 가슴 아프게 보고 있는 백성희.
<시간 경과>
백성희 없이 혼자 자고 있던 승미, 퍼뜩 눈 뜬다. 엄마 없는 거 알고 다시 겁에 질려 벌떡 일어나 앉는 승미.
S#3. 거실
겁에 질려 ‘엄마!-’ 하며 뛰어나오는 승미. 백성희, 외출복 차림으로 주방에서 나온다.
승미 : (엄마 보고 안도하며 눈물 어리는) 엄마...
백성희 : (자책으로 승미 보는) 아침 차려놨어, 잠깐 나갔다 올게.
승미 : (불안한) 어디 가는데?
백성희 : (소파에 놔둔 가방 집어 들며) 걱정 마, 남은 일 처리하고 올 거야.
승미 : (꼭 그래달라는, 불안한 미소로 끄덕이며) 어... 다녀 와... (하는데 두 손 떨면서 깍지 끼는)
백성희 : (그런 승미 울컥해서 보는)
S#4. 보험회사 사무실
담당자와 마주 앉아있는 백성희, 참담한 꼴이라 시선 다른 곳 보고 있다.
담당 : 고평중씨 생명 보험금 전액 환급 하셨구요, (영수증 내밀며) 환급 영수증입니다.
백성희 : (담담히 받아드는, 가방에 넣는)
S#5. 까페
찻잔 놓고 마주 앉아있는 고평중과 백성희.
고평중, 굳은 얼굴이고 백성희, 그간의 백성희가 아니라 딸을 위해 살아줘야 하는 그녀라 독기 빠진, 처연한 상태.
백성희 : (영수증 먼저 테이블에 놓으며) 보험 회사에 당신 보험금 다 돌려줬어, 이건 그 전액 환급했다는 영수증이고, 이건...
(빼돌렸단 말하기 참담하지만 하는) 승미 명의로 사놨던 아파트... 그거 팔아서 지금 집 전세 얻고 남은 돈,
(돈 봉투 놓고 부동산 봉투 놓으며) 전세 계약서야.
고평중 : (예상 못했던 얘기에 뜻밖인 듯 백성희 보는)
백성희 : 부동산에 집 내놨어, 은성이 핸드폰으로 연락처 남겨 놨으니까, 집 빠지면... 전세금 받아.
고평중 : (백성희 답지 않은 행동에 의아한) ...무슨 속셈이야?
백성희 : 승미가 다 돌려주래서... 돌려주는 거야.
고평중 : (뜻밖인) 승미가?
백성희 : (딸 생각에 눈에 물기 어리는) 다 돌려주고 떠나고 싶어 해.
고평중 : (화난 듯) 당신이 한 짓을 덮어달라는 거야?
백성희 : 내가 엄마로 필요하대... 내가 없으면 저 혼자니까... (맘 아픈) 나 같은 사람도 엄마라고... 옆에 있어 달래네.
고평중 : (멈칫하는)
백성희 : 나는... 살아주는 걸로 승미한테 지은 죄 갚아야 해. 당신한테 지은 죄도 많지만...
당신도 알잖아, 자식한테 죄짓는 게 어떤 건지...
고평중 : (무슨 일인가 있었다는 느낌 드는) 살아줘야 한다구?
백성희 : 그래서... 당신 처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건지, 떠나도 되는 건지... (떨리는) 자수하라고 하면... 자수 할게요...
고평중 : (갈등하며 백성희 보는)
S#6. 까페 앞
초라한 모습으로 쓸쓸히 걸어가는 백성희 뒷모습 보는 고평중.
S#7. 부암동 집 앞
환이 준 쇼핑백 들고 은우와 걸어오는 은성.
승미, 햄버거 세트 메뉴 담긴 패스트푸드점 쇼핑백 들고 서있다. 애잔한 눈으로 은우 보는 승미.
은성 : 내일부터는 학교 알아볼 때까지 복지관 가는 거야?
은우 : (끄덕이며) 복지관 갔다가, 피아노 치는 거야.
은성 : (웃으며) 그렇지! (하다 승미 보는, 뚝 멈춰서고)
승미 : (눈물 어려) 은우야...
은우 : (보는) 누나!
승미 : (쇼핑백 내밀며) 이거, 그 때 누나가 못 사줬던 거야.
은우 : (반색하며 받아드는, 기억하는) 한우 불고기 버거 먹자, 햄버거에는 콜라.
승미 : 여전히 기억력 좋네... (은성 보는)
은성 : (굳어서 보다가 열쇠 꺼내서 은우에게 주며) 은우야, 들어가 있어.
은우 : (열쇠 받고 신나서 안으로 들어가는)
승미 : (다급히) 은우야!
은우 : (돌아보면)
승미 : 잘 있어?... (손 흔드는)
은우 : (한 번 씩 웃고 들어가는)
은성 : (정색하고) 다음부턴 은우한테 이러지 마.
승미 : (은성 보는) 떠나기 전에 인사하러 왔어.
은성 : 떠나다니?
승미 : ...엄마가 죽으려고 했어.
은성 : (흠칫 놀라는)
승미 : (눈물 어려) 내가 살아달라고 빌었어... 나 혼자 남는 게 너무 무서워서...
은성 : (약간 굳어서) 죽으려고 했으니까, 용서해 달라는 거야?
승미 : (자기 탓으로 다 돌리는) 내가 진작 포기 못해서 미안해. 내 잘못이었어, 내가 진작 오빠 포기했으면
엄마도 욕심 부리지 않았을 텐데, 내가 오빠만 쳐다보니까... (떨리는) 오빠네하고 수준 맞추려고 보험금도 욕심내고,
그거 들킬까봐 은우도 그렇게 하고, 하나를 감추려다 보니까 자꾸 자꾸.. (눈물 그렁해) 우리 엄마가 정말 많이 잘못했지만..
내가 그렇게 만든 거야... 잘못했어, 은성아...
은성 : (환까지 잃고 혼자 남기 두려운 승미 심정 전달되는, 기막혀 눈물 어리는)
S#8. 2호 점 매장
카운터에서 점장, 수재와 얘기하고 있는 환.
환 : 점장님, 입사 지원 접수가 언제까지 에요?
점장 : 이번 주까지네요.
환 : 요새 하도 일이 많아서, 클 날 뻔 했네.
수재 : 근데 형님은 사장님 손잔데 뭐 하러 지원을 해요?
환 : 넌 아직도 장숙자 사장님을 모르냐? 손자라고 낙하산, 절대 안태우신다. (핸드폰 울린다. 보면 ‘승미’ 떠있다. 멈칫하는)
전화 좀 받을게요... (창가 쪽 으로 가서 받는, 어쩔 수 없이 어색한) 어, 승미야.
승미(휠) : 오빠, 퇴근 시간 다 됐지?... 나 지금 2호 점 앞인데...
환 : (내다보면 등 돌린 채 통화하고 있는 승미 보인다)
S#9. 2호 점 앞
서있는 승미. 환, 퇴근 차림으로 나온다. 마음 다지고 온 터라 담담하게 환 보는 승미.
환 : (복잡한 표정으로 다가가면)
승미 : (먼저) 부탁이 있어서 왔어.
환 : 부탁?
승미 : 오빠랑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 한 번도 못 해본 거... 한번만 해줄래?
환 : (마지막 정리하려는 승미 의중 느껴지는)
S#10. 버스 안
제일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있는 환과 승미, 서로 말없다.
<시간경과>
버스 안 사람들 바뀐 채 그대로 앉아있는 둘. 승미, 차창 밖 바라보고...
<시간경과>
여전히 말없이 앉아있는 환과 승미. 버스 안, 거의 비어있다.
승미 : (처음으로 말문 여는) 나 그동안...
환 : (멈칫, 승미 보는)
승미 : 내가 원하는 사람만 생각했는데...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았어, 우리 엄마...
환 : (무슨 말인지 알겠는) ...
승미 : (담담히) 그동안 옆에 있어줘서 고마웠어... 오빠 때문에 외롭지 않았어.
환 : (마음 안 좋은, 진심으로) 미안했다...
승미 : 은성이한테 잘해 줘....
환 : (멈칫 보면)
승미 : 이제 됐어, 오빠 먼저 내려.
S#11. 버스 정류장 + 버스 안
서있는 버스에서 내리는 환. 버스 안의 승미, 올라오는 감정 누르고 환 보고 있다.
환, 내려서 돌아보면 눈물 안보이려 애쓰며 환 보고 웃는 승미. 짠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 환.
승미, 고개 돌리고 앞 본다. 동시에 버스 출발하고...
S#12. 버스 안
멀어지는 환 돌아보려다 멈칫하는 승미, 다시 고개 앞으로 한다. 이 악물고 버티는 승미, 눈물 툭 떨어진다.
S#13. 버스 정류장
멀어지는 버스 마음 아프게 보고 서있는 환.
S#14. 부암동 방 (저녁)
놀란 얼굴로 고평중 보고 있는 은성. 앞에 돈 봉투 등 놓여있다.
은우, 한쪽에서 큐빅 하고 있고...
은성 : 승미가 다 돌려주라고 했대요?
고평중 : (끄덕이는) 다 돌려주고 떠나자고 했다드라.
은성 : 그래서 아빠 뭐라고 했어?
고평중 : (미안한 듯) 미안하다, 은성아. 승미 엄마 때문에 고생은 니가 다 했는데, 너한테 허락도 안 받고... 떠나라고 했다.
은성 : (뜻밖인) 떠나라고 했어?
고평중 : (미안한) 마음 같아선, 당장 경찰서에 끌고 가고 싶었지만... 이 모든 일에 원인제공자가 나 아니냐... 내 책임도 있고,
그래도 에미라고 승미 생각해서 자수하겠다는 말까지 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게 뭔가 싶드라...
은우가 평생 엄마로 기억할 사람... 이미 더 잃을 거 없이 바닥 친 사람인데... 감옥살이 시킨다고
이 분노가 사라진다면 모를까, 에미 잘 못 만난 승미도 걸리고... (하다 은성 걸리는) 애비가... 잘못 했냐?
은성 : 아니야, 나두 승미한테 잘 가라고 했어...
고평중 : 승미 만났어?
은성 : (끄덕이는) 엄마 지킬려고 울면서 비는데... 승미 혼자 남겨지면, 쟨 어떻게 살까...
내가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으면, 승미는 엄마처럼 하지 않았을 거에요.
고평중 : 할머니 손자 얘기로구나, 널 좋아한다는...
은성 : (대답 대신) 다행히 우리 은우가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그리고 나는 은우도 찾고 아빠도 만나고, 마음고생은 했지만...
잃어버린 건 없어. 아니 얻은 게 더 많아요, 배운 것도 많구.
고평중 : 그래,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은성 : 용서는 안 되지만, 잊고 살고 싶어서 떠나라고 했어.
고평중 : 그래, 잊자... 죽일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으면 잊어야지...
은성 : (심정 복잡한, 자기도 모르게 한 숨 내쉬는데)
고평중 : 젊은 놈이 한 숨이야? 지나간 일은 다 잊고 앞 일만 생각 해. (하다 퍼뜩 생각난 듯) 그래, 너 다시 공부하러 가면 되겠다.
은성 : (? 보면)
고평중 : 너 요리가 좋아서 아빠 몰래 전공까지 바꿨다며? 그거 다시 하러 가.
은성 : (생각도 못했다가 벙해서 아빠 보는)
S#15. 환 집 거실 (저녁)
소파에 앉아서 얘기하고 있는 할머니, 영란, 정. 승미네 떠나기로 했다는 말 들은 뒤다.
영란 : 아니 성희네를 그냥 떠나라고 했대요? 그렇게 당해놓고는?
할머니 : 그러기로 했다는 구나.
영란 : (황당한) 근데 어머닌 가만 계셨어요?
할머니 : 가만 안 있으면, 내가 당사자야? 당사자들이 보내준다는데 내가 뭐래?
영란 : 그래도 소행이 괘씸하잖아요. 우리한테도 좀 거짓말했어요?
첫 남편도 이혼이면서 사별이라고 속이고, 거짓말이 한두 개에요?
할머니 : 그 극악을 떨면서 원하던 거, 하나라도 가졌어?
정 : 맞아, 지난번에 할머니가 그랬잖아? 평생 지옥도 있다구...
할머니 : 오래 살리지도 못할 감옥 보내봤자, 마음 편한 사람 하나도 없어. 환이도 은성이도 은성 아버지도.
정 : 진짜 오빠도 승미가 맘에 걸리나 봐? 계속 우울모드야.
할머니 : 당연히 걸리지... 죄지었다고 연민도 없어? 환이가 승미한테 받은 정이 있는데... 환이 생각해서도 좋게 잘 정리됐어.
영란 : (영문 몰라) 그게 왜 환이 생각해서 잘 정리된 거에요?
정 : 엄만 그것도 몰라? 승미 엄마가 감옥가면 승미 혼자 남는데, 오빠 맘이 편하겠어? 이게 다 오빠 때문에 생긴 일인데!
할머니 : (씁쓸한) 자기 손으로 딸 인생 지옥으로 만들었는데, 그보다 더한 벌이 어딨어...
S#16. 승미 방 (밤)
박스 몇 개 놓여있고 안에 옷 짐 정도 들어가 있다.
침대에 앉아서 핸드폰에서 환 열쇠고리 빼고 있는 승미, 빼낸 열쇠고리 본다.
떨리는 손으로 휴지통에 넣고 책상 위에서 마지막 한 장 남은 환 사진 집어서 휴지통에 넣는다.
S#17. 승미 아파트 (다음 날)
S#18. 승미 집 거실
흰 천으로 가구들 덮어놓은 거실.
S#19. 아파트 앞
작은 용달 트럭에 냉장고와 서랍장 정도의 가구와 옷 박스 몇 개 실려 있고 기사, 막 뒷정리 끝내고 운전석에 탄다.
운전석 옆에 좁게 앉아있는 백성희와 승미, 담담한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있다.
기사 : 근데 가시는 데가 영천 어딥니까?
백성희 : (방 구해놓고 가는 게 아니다) 일단... 가주세요.
기사 : (이상한 듯 보지만, 출발하는)
백성희 : (회한으로 아파트 돌아보는)
승미 :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있고)
S#20. 사장실
회의 테이블에 찻잔 놓고 마주 앉아있는 할머니와 고평중.
할머니 : 어린 자식들 혼자 키우는 여직원들 살게 사원 아파트 지으려고 김포에 부지 사놓은 게... 한 십년 됐나?
고평중 : (놀라) 그 사원 아파트를 저한테 지으라는 말씀이세요?
할머니 : 신원회복 되는 동안 전에 회사 직원들 모아 회사 설립 준비하면서 설계 뽑고 그러면 될 거 같은데.
고평중 : (믿기지 않는 듯) 사장님, 저한테 왜 이렇게까지...
할머니 : (눈치 채고) 나, 인맥으로 무조건 일 맡기는 사람 아닙니다?
전에 고사장이 하던 건설 회사 내막 다 알아보고 부탁하는 거지.
고평중 : (울컥해서) 사장님...
할머니 : 그리고 (돈 봉투 내밀며) 이걸로 집부터 구해서 이사하시게.
고평중 : (집까지? 얼른) 아닙니다!
할머니 : 들어서 알겠지만, 은성이는 내 생명의 은인이요... (애잔한) 그 어려운 형편에 시티까지 찍어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그러고도 지금껏 나한테 뭐하나 바라는 게 없었던 애요.
고평중 : 신세지는 것도 그렇지만, 이젠 그런 집이 필요 없습니다.
할머니 : 필요 없다니?
고평중 : 은성이, 은우 데리고 다시 유학 가기로 했거든요.
할머니 : (놀라) 유학?
S#21. 2호 점 앞 (혹은 옥상)
유니폼 차림으로 영석 앞에 화난 얼굴로 서있는 환.
유학 얘기하려고 침울하게 걸어오는 은성, 시선에 영석 뒷모습만 보인다.
영석 : (사정하고 있다) 제발 신고만 하지 말아주라, 환아. 내가 영재, 아니 은우 구박하진 않았잖아. 피아노도 치게 해주고,
환 : 구박을 안 해? (화나는, 영석 멱살 확 잡으며) 이 자식아! 은성이가 동생 때문에 얼마나 피눈물 흘렸는지 알아?
영석 : (멱살 너무 잡혀서 말도 못하는)
은성 : (싸우는 줄 알고 달려오는) 손님하고 싸우면 어떡해요? (영석 보는, 어?)
환 : (돌아보는, 갑자기 은성 보고 놀라 멱살 푸는) 너 웬일이야?
영석 : (캑캑거리는데)
은성 : (영석 알아보고 화나는) 이 사람... 우리 은우, 그 사람이죠?
영석 : (은우라는 말에 놀라서 은성 보는데)
은성 : 야!- (하며 있는 대로 분노의 주먹 날리는)
영석 : (맞고 얼굴 확 돌아가는)
S#22. 옥상
벤치에 앉아서 손 아픈 듯 만지고 있는 은성. 환, 찬 물수건 들고 뛰어온다.
환 : (옆에 앉는, 은성 손잡아 당기며) 이리 내봐. (물수건으로 감싸고 주물러 주는)
은성 : (놀라) 그 정도 아닌데... (하면서도 뭉클해서 환 보는)
환 : 성질 여전하다니까...
은성 : (무안한) 그럼 그런 놈을 가만 둬요?
환 : 영석이 팬 거 뭐래? 니 주먹 뼈 나갈 뻔 했잖아!
은성 : (찡해서 보는)
환 : 근데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야?
은성 : (현실 인식되는, 손 빼는) 할 말 있어서요...
환 : (뜻밖인) 할 말?
은성 : (끄덕이며, 일부러 담담하려 애쓰며) 나... 유학 가기로 했어요.
환 : 뭐? (놀라) 너 지금 뭐랬어?
은성 : 승미네가 아빠 돈을 돌려주고 갔는데, 아빠가 하던 공부 계속하라고 하셔서 그러기로 했어요...
환 : (전후좌우 사정 생각도 안 나고 유학 자체에 충격 받아 벌떡 일어서는) 가지 마!
은성 : (기세에 놀라서 환 보면)
환 : (기막힌) 너는 진짜, (하다 버럭) 양심 좀 있어라! 너 만나 지금까지 한 거라고는,
(옥상 가리키며) 맨날 이 옥상에서 길에서 싸운 거 밖에 없는데, 이제 뭐 좀 할 만 하니까 유학을 가?
은성 : (이렇게까지 화낼 줄 몰랐다) 그럼 유학을 가지 말라는 거에요?
환 : (멈칫) 가는 게 당연하다는 거야?
은성 : (가야만 하는 상황 반, 진심 반) 사정 생겨서 중단한 거니까... 가야죠.
환 : (서운한) 말 참 쉽게 한다. 너한테는... 내가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니었냐?
은성 : (당황해) 그런 말이 아니라...
환 : (화나서 버럭) 그러니까 결정하고 와서 말하는 거 아냐!
은성 : (약간 오르는, 일어나서) 내가 왜 결정하기 전에 그쪽한테 얘길 해요? (서운했던) 며칠 동안 전화 한 번 안하는 사람인데!
환 : (멈칫하는)
은성 : (말 해놓고 당황하는)
환 : (솔직하게 털어놓는) 너한테도 미안하고 승미한테도 걸리는 거 있고,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어.
승미가 그렇게 된 거 내 책임도 있으니까. 승미가 마음 표현했을 때, 내가 분명하게 거절하지 않았으니까.
은성 : (승미 생각에 어두워지는)
환 : (기막힌) 그렇다고 그 동안에 유학을 결정해 버렸어?
은성 : 은우 때문에라도 가야 돼요...
환 : (멈칫하는)
은성 : 우리 은우, 음악 교육만 제대로 받으면 피아니스트로, 작곡가로 살 수 있어요...
환 : (은우 얘기라면 할 말 없어진다) 은우... (의자에 털썩 앉는, 고개 푹 떨구는)
은성 : (버티던 마음 흔들린다. 가슴 아파 보는)
S#23. 피아노 학원 앞
옆에 자전거 세워 두고 적당한 곳에 앉아서 핸드폰에 저장해 뒀던 환의 공장 연설 동영상 보는 은성,
줌 해서 찍은 환 얼굴 보며 글썽이는데...
은우, 피아노 학원에서 나와서 누나 보고 다가온다.
은우 : (누나 핸드폰 들여다보는) 라면 형아!
은성 : (깜짝 놀라 은우 보는) 은우야, 언제 나왔어? (얼른 핸드폰 닫는)
S#24. 동네 길
뒤에 은우 태우고 자전거 타고 가는 은성.
<17회 36씬에서... 환 뒤에 앉아서 설레었던 은성>
은성 : (찡해서 눈물 어리는데)
은우 : 라면 형아는 스파이 좋아 해.
은성 : 뭐?
은우 : 스파이 이뻐, 말 엄청 안 들어.
은성 : (자전거 세우고 돌아보는) 은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은우 : (웃으며) 라면 형아, 스파이 좋아해. (환이 했던 말) 너를 싫어하는 사람 좋아하는 기분 모르지? (피식 웃는)
은성 : (그동안 환 마음 느껴져 울컥해서) 형아가... 그런 말을 했어?
S#25. 은성 방 (저녁)
휑하니 비어있는 방. 환, 착잡한 표정으로 은성 침대에 누워있다.
환 : (한숨 후- 내쉬며 옆으로 뒤척이는데)
할머니 : (갑자기 문 열고 들어오는)
환 : (할머니 보고 기겁해서 일어나 앉는)
할머니 : (시침 뚝) 너 은성이 침대에서 뭐하냐?
환 : (당황해서 벌떡 일어서며) 아 그게... 그러니까...
할머니 : (와서 옆에 앉으며) 은성이 유학 간다던데, 들었냐?
환 : 어? 어...
할머니 : 은성이랑 헤어지는 게 싫으면 너도 같이 유학 가. (놀리는) 이렇게 웃긴 꼴로 속 끓이지 말구.
환 : (놀라) 할머니 어떻게 알았어? (내가 은성이 좋아하는 걸)
할머니 : 사랑하고 기침은 숨기지 못한다는 말이 괜히 있어?
환 : (내가 그렇게 티냈나? 머쓱해서 머리 만지는)
할머니 : 지난번에 할미가 그랬잖아? 유학 가겠다면 이제는 너 믿고 보내준다구.
환 : (갈등되는) 나... 가도 돼?
할머니 : 이놈아, 결정은 니가 해야지... 하는데... (일어서며) 덜 후회하는 쪽으로 해. (나가는)
환 : 덜 후회하는 쪽? (심각하게 생각에 잠기는)
S#26. 부암동 방 (저녁)
얘기하고 있는 고평중과 은성. 은우, 한쪽에서 잠들어있다.
은성 : (믿기지 않는) 사원 아파트에 남부 공장까지?
고평중 : (벅찬) 어르신이 어찌나 생각이 깊으신지, 아빠 자존심 상할까봐 그동안 했던 공사들까지 다 조사해 보시고는
실력 믿고 맡기는 거라고 하시드라.
은성 : (너무 좋은) 아빠... (아빠 손잡으며) 너무 잘됐다...
고평중 : (찡한) 내가 다시 회사로 재기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고평중이, 딸 하나 정말 잘 뒀어.
은성 : 아빠는? 아빠 실력이 좋아서 그러신 거지...
고평중 : (좋아서 싱글벙글) 이제 너도 아무 걱정 없이 유학 가게 돼서 좋지?
은성 : (가기는 가지만 마음 편치 않은, 애써 미소로) 그럼요...
고평중 : (딸 기색 느끼는) 유학 간다니까 맘이 복잡하냐?
은성 : 아니? (얼른 웃으며) 아빠가 좀 걸려서 그렇지, 난 좋아. 원래 은우 데리고 갈려고 들어왔던 건데요...
고평중 : 환인가 하는 할머니 손자 때문에 가기 싫냐? 많이 좋아했어?
은성 : (얼른) 아니에요, 나 유학 갈 거야.
고평중 : (가슴 아픈) 미안하다.
은성 : (영문 몰라 보면)
고평중 : (맘 아픈) 그 동안 세상에 얼마나 휘둘렸는지, 너무 참고 누르고 그러네, 우리 딸이.
은성 : 내가 뭘 참고 눌러? 아니에요?
고평중 : 예전에 너는... 착하고 남 배려하고 그러긴 했지만, 자기감정에 솔직한 아이 였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은성 : 지금도 그래요?
고평중 : 아냐... (메여서) 혼자 버티고 살아내느라고, 니 마음 감추는데 이골이 났어.
은성 : 내가... 그래?
고평중 : 이제부턴 그러지 마. 아빠가 니들하고 헤어져 있으면서 뼈저리게 느꼈어,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야 돼...
은성 : (울컥해서 아빠 보는)
S#27. 부암동 집 앞 (저녁)
뛰어 나오는 은성, 골목길 달려 내려간다.
S#28. 환 집 거실 (저녁)
티 테이블에서 지난번 유언장 놓고 생각에 잠겨있는 할머니.
환, 2층에서 급하게 뛰어 내려와서 쌩 현관으로 나간다.
할머니 : (보는) 저런 멍청한 놈, 차 좀 빌려 달래서 갈 일이지... (웃기는) 차 없이 다니더니...
S#29. 환 동네 버스 정류장 (저녁 혹은 밤)
숨 헉헉 대며 뛰어오는 환, 정류장에 서자 멈칫한다.
환 : 아! 할머니한테 차 좀 빌려 달랠 걸. (스스로 황당한 듯 보다가) 버스는 왜 탈려고 하냐고!
(택시 타려고 버스 정류장 벗어나는)
S#30. 환 동네 도로 + 버스 안 (저녁 혹은 밤)
반대편 도로 보이는 쪽 창가 자리에 앉아 있다가 내리려고 막 일어서던 은성,
무심코 창밖 보다가 반대편에서 택시 잡으려고 손들고 있는 환 본다.
은성 : (놀라는) 어? (얼른 차창 열고) 저기요!
S#31. 거리 / 버스 안 (커트 백, 저녁 혹은 밤)
택시 잡고 서있던 환, 어디선가 들리는 ‘안돼요!’ 소리 듣고 앞 보려는데 택시 와서 선다.
막 지나쳐가는 버스 안에서 몸 내밀고 ‘안돼요!’ 소리치고 있는 은성.
환 : (막 택시 문 열다가 소리에 쳐다보면)
은성 : (막 환 쪽 지나쳐 가면서 있는 대로 소리 지르는) 거기 서!
환 : (은성 보고 깜짝 놀라는)
은성 : (손 흔들고 얼른 내리려고 돌아선다)
S#32. 반대편 버스 정류장 (저녁 혹은 밤)
환이 서있는 쪽에서 앞으로 몇 십 미터 떨어진 버스 정류장.
서있는 버스에서 내리는 은성, 그대로 도로로 뛰어든다.
S#33. 환 쪽 도로 (저녁 혹은 밤)
은성이 탄 버스 정류장 방향으로 뛰어가고 있던 환, 무단횡단해서 오고 있는 은성 보고 기겁해서 놀란다.
‘쟤가 쟤가!...’ 하며 자기도 건너려는데 쌩 지나가는 차에 주춤 뒤로 밀리는 환.
차들 오가는 대로 위태롭게 뛰어오는 은성 보고 애가 타 어쩔 줄 모르는 환.
환 : (버럭, 조심 하라는) 위험하잖아!
은성 : (환 앞에 와 서는, 숨 헐떡이고)
환 : (기막혀) 너 진짜? 뭐하는 짓이야!
은성 : (처음으로 자기감정 터트리는, 눈물 어려) 그 쪽이 기다리면 되잖아요!
환 : (벙해서) 뭐?
은성 : (자기 상황 설명하는) 난 안 갈수 없으니까, 기다려요.
환 : (믿기지 않는 듯 은성 보는)
은성 : (대답 안하는 환에게 버럭) 기다리라구요!
환 : (눈물 어려 은성 보는)
은성 : (눈물 어려 환 보는)
서로 마주 보면서 서로의 마음 확인하는 둘, 동시에 서로를 깊게 안는다... 안도감과 감동으로 안고 있는 둘...
환 : (은성 뒷머리 쓸어내리며) 등신, 당연히 기다리지 안 기다릴 줄 알았냐?...
S#34. 공원 일각 (밤)
벤치에 앉아서 얘기하는 은성과 환, 손잡고 있다.
환 : 난 여기 못 떠나. 할머니한테 좋은 기억 남겨준 게 너무 없어서, 할머니 혼자 두고 갈수가 없어.
은성 : (당연하다는 듯 끄덕이는)
환 : 할머니가 과거를 자꾸 잊어버리는 병이라면... (마음 아픈) 나한테 안 좋았던 기억, 실망했던 기억은 하나씩 잊고,
그 자리에... 할머니를 사랑하는 손자, 할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손자 기억을 심어주고 싶어...
그리고 선우환, 내 이름 석 자로 뚜벅뚜벅 내 인생 살아가는 모습 보여드려야 해...
은성 : (감동으로 환 보는)
환 : (시선 느끼고 머쓱) 왜?
은성 : 좀 멋있네?
환 : 좀?
은성 : (웃으며 손 꼭 쥐어주며) 당연히 그렇게 될 거에요, 할머니 손자니까...
S#35. 부암동 집 앞 (밤)
은성 걱정돼서 나와서 서성이고 있는 고평중, 골목 돌아보다 어? 멈춰 선다.
손잡고 걸어오는 은성과 환, 서로 쳐다보면서 오느라고 고평중 보지 못한다.
고평중 : (기어이 저렇게 됐구나... 웃는데)
은성 : (아빠 보는, 놀라 손 풀며) 아빠!
환 : (놀라 보는, 얼른 한걸음 다가가 꾸벅 인사하며) 안녕하셨어요?
고평중 : 그래요, 또 보네.
환 : (승미 일 걸리는, 진심 담아 꾸벅하며) 죄송합니다, 아버님...
고평중 : (무슨 뜻인지 느끼지만 뭐라 할말 없는, 복잡하게 보는데)
환 : (또 꾸벅하며) 앞으론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은성 : (찡해서 보고)
고평중 : 됐네, 늦었으니까 가봐. 은성이 데려다 줘서 고맙네.
환 : (또 꾸벅하며) 감사합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은성에게) 간다, 잘 자.
은성 : (아빠 때문에 어색한) 가요...
환 : (다시 가볍게 인사하고 돌아서 가는)
은성 : 아빠...
고평중 : (은성 어깨 다독이며) 됐다, 됐어... (가는 환 돌아보며) 인력으로 되는 게 마음이더냐...
S#36. 진성 외경 (다른 날)
S#37. 사장실
책상에 앉아서 직원들 입사 지원서들 하나씩 보던 할머니, 깜짝 놀란다. 지원서에 ‘선우환’ 써있고 환 사진 붙여있다.
할머니 : (설마 했는데) 이 녀석이 회사 일하고 싶다드니... (신기한 듯 다시 보는)
S#38. 준세 집
가방에 옷 넣고 있는 준세. 형진, 옆에 서있다.
형진 : 형 은성이 잊으려고 너무 일에 빠지는 거 아냐?
준세 : 쓸데없는 소리할 거면 더 자!
형진 : (슬쩍) 형 앞으로 자주 동해 왔다 갔다 할 건데, 그쪽에 방을 하나 구하지 그래?
준세 : (속 빤히 보는) 왜, 담달부터 강릉으로 파견 나간다더니, 숙소비 아낄려구?
형진 : (속 들키고) 형은 어쩜 그렇게 내 속을 잘 알아?
준세 : 혜리씨가 너 그 쪽으로 장기 출장 온다니까, 심심해도 놀러오지 말라드라.
형진 : (서운한) 걔는 왜 그렇게 뒤끝이 길어?... 가서 놀 사람 있어 좋다 했드니.
E 현관벨 울린다.
형진 : 누구야? (나가는)
<시간경과>
소파에 앉는 박변. 준세, 맞은편에 앉아있다.
준세 : 미리 전화를 주시죠, 점심 약속 있는데요.
박변 : 백수 특징이 이런 거드라? 내가 한가하니까 남들도 다 한가한 줄 알아.
준세 : 다음 달에 로펌 들어가시면, 지금이 그리워지실 겁니다.
박변 : (본론) 어, 안 그래도 그래서 니 엄마 좀 보고 올라구.
준세 : (놀라) 어머니요?
박변 : (멋쩍은) 내가 좀 쉬어보니까, 그 사람 기분 알겠드라. 몸이 근질근질하고 답답해.
준세 : (뜻밖인) 그럼... 화해하러 가시는 거에요?
박변 : (무안해서) 화해는 무슨! 헤어질 때 미안하단 말 한마디 못한 게 걸려서 사과하러 간다.
S#39. 까페
얘기하고 있는 은성, 혜리, 준세. 혜리 옆에 큰 옷가방 놓여있다.
혜리 : (속상한) 너 유학 갈 때 배웅 못하고 내려가서 서운해 죽겠다.
은성 : (서운한) 겨울 방학 때 나와서 만나면 되지... 혜리야, 우리... 언젠가 꼭 같이 여행 가자.
준세 : 이거 내가 두 사람 생이별 시키는 거 같네?
은성 : 오빠, 혜리 잘 부탁해요.
준세 : 그래... 유학 준비는 잘 되가? 9월 학기 맞춰 가려면 바쁘겠다.
은성 : 다니던 학교로 가니까 괜찮아요, 전에 나올 때 은우 학교도 정해 놨구요.
준세 : 크루즈 오픈 일정 때문에 너 출국 때 못 올라오는 게 아쉽네.
혜리 : 내말이요. (하는데)
인영 : (들어와서 은성 일행 찾는, 얼른 다가오며) 은성아... (앉는)
은성 : (돌아보는, 웬일이야? 놀라는)
혜리 : 내가 불렀어, 너 떠나기 전에 사과해야 한다구 하도 그래서.
인영 : (마음 급한) 미안해, 은성아... 내가 승미 말만 듣고 너 오해했어...
혜리 : 야, 사과할 거면 확실히 까! 오해가 아니라 출발은 시기, 질투 아냐?
인영 : (한번 흘기고) 인정 해! 솔직히 할머니한테 유산 받는다지, 남자들한테 인기 많지... 너 불쌍해 하다가 확 깨드라,
샘나고 질투 났어.
은성 : (웃는) 너무 솔직히 인정하는 거 아니니?
인영 : (은성 팔 잡으며) 미안해... 옛정을 생각해서 용서해주고 떠나라, 어?
은성 : (손 다독이며) 알았어... (하다) 대신, 앞으로 또 그러면 그땐 끝이다?
S#40. 까페 앞 도로
길가에 세워져 있는 준세 차. 혜리, 옆 좌석에 타서 기다리고 있고 은성과 준세, 한쪽에서 얘기하고 있다.
준세 : 이거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서운한데?
은성 : 왜 마지막이에요? 한국 들어오면 볼 텐데...
준세 : 환이가 제일 힘들겠다, 너 보낼려면.
은성 : (희미한 미소 짓고) 오빠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나도 고맙지만 우리 아빠 어려울 때 도와주고, 정 주고...
잊지 않을게요.
준세 : (농담처럼) 우리가 인연은 인연이었던 거 같은데...
은성 : (타박) 나한테 미안하단 말 듣는 게 그렇게 좋아요?
준세 : 아냐, 절대 미안해하지 마... 대신, 환이하고 잘 지내, 오래도록.
은성 : (끄덕이는)
준세 :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행복해야 내 아쉬움이 적어지는 거야. 나보다 저 사람을 선택하길 잘했구나...
은성 : (찡해서 보면)
준세 : 잘 지내라? (손 내미는)
은성 : (악수하며) 오빠도 잘 지내요...
S#41. 환 집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할머니와 표집사. 탁자 위에 30대 초반 아가씨 사진 놓여있고 표집사, 난감한 듯 고개 숙이고 있다.
영란, 현관에서 빨래 들고 들어온다.
할머니 : 아니 왜 선을 안 본다 그래? 평생 혼자 살 거야?
영란 : (멈칫하는)
표집사 : (난감한 듯) 모르는 여자 만나서 결혼하고 싶진 않습니다.
할머니 : (황당한) 처음부터 아는 남녀가 어딨어?
표집사 : (얼른) 인상도 별로 정이 안가구요.
할머니 : 그래? (하다 영란 보는) 에미야, 이 아가씨 좀 봐, 이쁘지 않냐?
영란 : (사진 보는) 불여우 같이 생겼네요! (짜증스럽게 빨래 소파에 탁 놓는)
할머니 : (뜻밖의 반응에 황당해서 보는)
영란 : (싫은) 어머닌 왜 싫다는 사람을 자꾸 선자리에 내보내세요? (주방으로)
표집사 : (뭔가 느껴진 듯 영란 보는)
할머니 : (황당한 듯 영란 보다가 표집사 보는, 어라? 느낌 오는)
S#42. 주방
냉면 넣을 물 끓고 있고 영란, 냉면에 넣을 오이 채 썰려고 어슷썰기 하다가 심란한 듯 일손 멈추고 생각에 잠겨있다.
표집사 : 식사 준비 안하고 뭐하십니까? 벌써 한시 반입니다.
영란 : 하고 있잖아! (하다 끓는 물 보고) 이거 채 좀 썰어줘.
표집사 : 매주 일요일 점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음식 하시는 날입니다.
영란 : (서운한) 아우 그래! 내가 해! (오이 채 익숙하게 다다다 채 써는)
표집사 : 물이 팔팔 끓고 있군요.
영란 : (칼 놓고 옆에 있던 냉면 봉지 뜯으며) 알아, 알아! (냉면 물에 넣으며) 그 여자 때문에 선 안 보는 거지? 나이든 여자.
표집사 : 네.
영란 : (질투로 시비 걸 듯) 대체 언제 만난대? 우리 다 잠든 밤에 나가서 만나나?
표집사 : 꼭 만나야만 사랑하는 건 아닙니다.
영란 : (돌아보며) 나이도 많고, 철딱서니도 없고, 만나지도 않는 여자? (하다 뚝 멈추는)
<16회 41씬에서 ‘대체 몇 살까지 덜렁댈 겁니까!’ 하던 표집사>
영란 : (현재, 설마?... 하며 표집사 보는데)
표집사 : (그 시선에 당황해서 움찔하는, 어쩔 줄 모르고)
영란 :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자기 가리키며) 혹시 나?
표집사 : (얼어붙는데)
환 : (들어오며) 아저씨, 할머니가 부르시네. 엄마, 점심 안 줘?
S#43 할머니 방
할머니 앞에 앉아있는 표집사.
할머니 : 성철이 너... 그동안 우리 에미 때문에 이 집 못 떠나고 있었던 게냐?
표집사 : (갑자기 기습당하고 헉! 놀라는)
할머니 : 그래서 장가 갈 생각을 안했구나...
표집사 : (당황해 얼른 자세 더 바로하고 조아리며) 죄송합니다, 어르신. 감히 저 같은 놈이... 죄송합니다...
할머니 : 이놈아, 사람 사이에 감히가 어딨어?
표집사 : (멈칫, 보면)
할머니 : 내가 요새 하나씩 하나씩 정리를 하고 있는데, 다른 건 다 끝냈는데 에미 하나 남아서 맘에 걸렸는데
너라면... 걱정 안 해도 되겠네.
표집사 : (놀라) 예?
할머니 : 너는 한결같은 온돌 같은 놈이니까... 철없는 에미, 평생 감싸줄 수 있지...
표집사 : (감격해서) 어르신... (고개 푹 숙이는)
S#44. 주방
냉면 먹는 할머니, 영란, 환, 정, 표집사.
영란, 표집사 감정 확인하고 당황해 고개도 못 들고 냉면 먹고 있고,
표집사, 할머니에게 허락 받은 터라 감격으로 눈물 맺히는 듯 눈가 찍어내면서 먹고 있다.
할머니 : (그런 둘 찡해서 보는데)
환 : 오늘 분위기 왜 이래?
할머니 : 왜? 분위기 좋구만.
환 : 아저씨랑 엄마랑 싸우셨어?
영란 : (고개 못 들고) 아냐...
정 : 엄마 왜 그래? 냉면 그릇에 코 빠지겠어?
영란 : 냅둬! 좀!
할머니 : (분위기 돌려주려고) 넌 쉬는 날인데 은성이 안 만나?
환 : (부어서) 점심엔 친구 모임, 저녁엔 요리특강 들으러 간대. 신났어.
정 : 그러니까 뭐 하러 유학 가는 여잘 사겨? 영양가 없게.
할머니 : 그럼 환이 안 나가면 오늘이 딱 좋구나.
환 : 뭐가?
할머니 : 점심 먹고... 다들 모여.
S#45. 환 집 거실
지난 번 유언장과 자필 유언장 담긴 A4 반 크기 서류 봉투 들고 와서 소파에 앉는 할머니.
영란, 환, 정, 유언장 보고 긴장해서 할머니 쳐다본다.
정 : 할머니, 그거 지난 번 유언장 아냐?
영란 : (밝아지는) 어머니, 유언장 찢으시게요?
할머니 : 눈치들은 빨라 가지구, 그래. 은성이가 진심으로 내 유산 받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유언장 들어 보이며) 이건 필요 없어졌어. (찢는)
환 : (막상 찢자 심각해지는)
영란 : 어머니, 그럼 이제 회사는 환이한테 가는 거죠?
할머니 : 아니다.
영란 : 아니, 왜요? 우리 환이 철들고 달라진 거 어머니도 인정하시잖아요.
할머니 : (무시하고) 니들 내가 회사를, 직원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이젠 다들 알지?
환 : (끄덕이는)
정 : 너무 잘 알지!
할머니 : 그래서 나는 내 회사를... 직원들 회사로 만들기로 했다.
모두 : (놀라서 할머니 보는)
영란 : 직원들 회사요?
할머니 : 내가 갖고 있는 주식 전부를, 직원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야.
정 : (헉! 놀라) 직원들한테 나눠 준다구? 공짜로?
환 : (생각도 못했던 결정에 놀라서 할머니 보는)
할머니 : (그렇다는) 지난 번 주총 겪으면서 느꼈다. 직원 모두가 주인이 되는 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게 진성을 진성답게 지키고, 직원들을 위하는 길이라 는 걸 깨달았어.
환 : (뜻밖인) 사원 주주제를 하시겠다는 거야?
할머니 : (끄덕이며) 그래, 내일부터 우리 회사 특성에 맞는 배분 방법과 운영 지침 만드는 작업에 들어갈 거야.
환 : (감탄하는) 우리 할머니, 정말 보통 분 아니시네...
표집사 : (감탄하는) 대단하십니다, 어르신.
영란 : 어머니, 그럼 나머지 재산은요?
정 : (툭 치며) 엄마, 아직도 그걸 물어보고 싶어?
영란 : 아니 그냥 궁금해서...
할머니 : (자필 유언장 담긴 서류봉투 내밀며) 니들이 궁금해 하는 거 여깄다. (환에게 내밀며) 환아, 할미 마지막 유언장이야.
환 : (영문 몰라) 유언장?
할머니 : 내가 손으로 쓰고 지장 찍은 거야. 공증 받은 게 아니라서, 이거 하나야.
환 : 이걸 왜 나한테...
할머니 : (믿는다는) 할미 죽으면, 그 안에 있는 대로 니가 처리해 줘.
정 : (궁금한) 그거 좀 보면 안 돼?
할머니 : (자식들한테 다 주는 건 아니라는) 특히 그 결손가정하고 소년소녀 가장 위한 재단은 환이 니가 맡았으면 좋겠어.
환 : (일단 끄덕이는) 알겠어요.
영란 : (울상) 나머지도 다 사회 환원하시는 거에요?
할머니 : 유언장 보면 알지! (다 끝났다는 듯 편한 숨 내쉬며) 내 숙원이었던 사원 아파트도 짓고, 회사 일도 정리 됐고,
(웃으며) 개운하다!
S#46. 환 집 뜰 (밤)
테이블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있는 환. 할머니, 다가온다.
환 : (할머니 보고 일어서는) 바람 쐬러 나오셨어?
할머니 : (앉으며) 본사 입사 지원까지 했는데, 너한테 회사 안 물려줘 서운하냐?
환 : (앉는) 아닙니다! 혹시 어떤 한 사람한테 물려주는 거라면, 서운했을 거야. 근데... 직원들한테 주신다니까 할머니답다 싶어.
할머니 : (찡해서) 진심이야?
환 : 돈이야, (하다 스스로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으며) 할머니, 내가 석 달 동안 한 달에 백만원도 안 쓰고 살았어?
그 돈에서 은성이 빚도 갚고.
할머니 : (신통한) 그래, 그랬지...
환 : 그리고 회사는... 왜 할머니가 회사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지, 지난 번 주총 때 직원들 보면서, 내 몸으로 느꼈잖아.
할머니 : (뭉클해서 보다가) 근데 본사는 왜 들어오려는 거야? 설렁탕 싫어하면서.
환 : 이젠 설렁탕 냄새도 구수하게 느껴지고... (애잔해지는) 아버지 일하던 곳에서 일해 보고 싶었어.
할머니 : 아버지?... (뭔가 생각난 듯 환 보며 표정 굳어지는)
환 : (할머니 표정에 놀라) 할머니 왜 그래? 머리 아파?
할머니 : 병원에 누워있을 때... 이승인지 저승인지 모를 안개 속에 길 찾아 헤매고 다니다가... 니 말소리를 들었어.
환 : (놀라 굳어지는)
할머니 : 니 애비... 사고 얘기였는데... (혹시) 환아?...
환 : (할머니 반응 걱정에 떨리는) 할머니... 들었어?
할머니 : (눈물 어려) ...그랬던 거였어?
환 : (눈물 어려, 다시 죄책감에) 죄송해요...
할머니 : (가슴 아픈) 아이구 이놈아, 진작 말을 하지, 그 돌덩이를 왜 가슴에 얹고 살았어?
환 : (뜻밖인 듯 보면)
할머니 : 설마 내 자식이 지 새끼 구하려다 죽은 걸, 널 원망할까봐?...
환 : (미안한) 내가 고집을 피워서 그렇게 된 거니까...
할머니 : (환 손 잡으며) 아무리 그렇다구 그걸 담고 살았어?.... 힘들어 어떻게 살았어...
어떤 자식이 지 부모 심장을 팔아먹으려고 꺼내서 도망치다 넘어지면서 심장을 땅에 떨어뜨렸는데,
흙투성이로 구른 부모 심장이 그러더란다...얘야, 괜찮냐?... 그게 부몬 거야...
환 : (미어지는) 할머니... (할머니 손잡고 꺽꺽 우는)
S#47. 환 집 외경 (한 달 후)
S#48. 환 집 거실
깔끔한 양복 입고 서류 가방 든 환, 2층에서 후다닥 뛰어 내려와서 현관으로 간다.
영란 : (주방에서 내다보며) 아침 먹어야지!
환 : 늦었어! (나가는)
영란 : 툭하면 아침을 안 먹어?
정 : (뒤이어 2층에서 후다닥 뛰어 내려오는)
영란 : 정아, 넌 왜 아침부터 나가?
정 : 면접 가는데 미용실 들렀다 갈려구. (나가는)
영란 : (기막힌) 또 면접?
S#49. 진성 본사 외경
S#50. 사무실
들어오는 환, 직원들에게 ‘좋은 아침입니다!’ 등등 인사하면서 자리로 가서 앉는다.
S#51. 다른 사무실
한쪽에 놓인 테이블에서 면접 보고 있는 정.
담당 : (이력서 보며) 대학 졸업 후에 경력이 없네요?
정 : 거기 있는데요? 레스토랑 나무 서빙이요.
담당 : (어처구니없는 듯 보다가) 컴퓨터 다룰 줄 알아요?
정 : 인터넷 서핑 잘해요.
담당 : 영어로 자기 소개 한번 해보세요.
정 : (헉! 놀라는)
S#52. 사무실 앞
풀 죽어서 나오는 정.
정 : 영어 학원이랑 컴퓨터 학원부터 다녀야겠다...
S#53. 진성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뉴욕 내 한식당이나 한인 현황 등 파일 읽고 있는 환.
팀장 : (다가오는) 선우환씨, 사장님 호출입니다.
환 : (벌떡 일어서며) 사장님이요?
팀장 : 그거 때문인 거 같애, 제안서.
환 : (기대되는) 예... (얼른 옷매무새 가다듬으며 나가는)
S#54. 사장실
책상에 앉아서 사업계획서 읽고 있는 할머니. 환, 들어온다.
할머니 : (환 보면)
환 : (깍듯하게 인사하는) 부르셨습니까?
할머니 : 어이 선우환, (제안서 들어 보이며) 자네 이거 제안한 이유가 뭐야?
환 : (몸 바로하고 천연덕) 회사 확장 계획에 맞춰 진성 설렁탕을 세계로 알리기 위해섭니다.
할머니 ; 해외 진출 첫 매장이 뉴욕이라, 사적인 냄새가 너무 나는데?
환 : (시침 뚝) 아닙니다!
할머니 : 아냐?
환 : 절대 아닙니다! 뉴욕에 사심 없습니다!
할머니 : (일어서며) 그럼 앉아서 브리핑해봐. (회의 테이블로 오는)
환 : (내심 나오는 웃음 참으며) 예! (회의 테이블에 앉는)
S#55. 2호 점 매장
근무 년 수와 직급에 따라 차등 배분된 주식 증서 받고 웃고 있는 점장과 수재, 직원들.
수재 : 이거 진짜 받으니까 눈물 난다.
점장 : (뭉클한) 사장님 정말...
수재 : (들여다보다가) 점장님, 그럼 우리 매출이 늘면, 우리 배당도 많아지겠네요?
점장 : (놀리는) 그럴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죠?
수재 : (증서 점장에게 주며) 이거 좀 맡아 주세요! (얼른 가서 테이블 열심히 닦는)
S#56. 공장 (다른 날)
주식 증권들 받고 와- 환호하는 직원들.
할머니, 그들에게 둘러싸여 흐뭇하게 웃고 있다.
현실 : 사장님! 정말 이거 제꺼에요?
할머니 : 왜, 싫냐?
현실 : 아뇨,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래요.
인성 : (감격해서) 직원들한테 다 주시면 사장님은 어떻게 되시는 거에요?
할머니 : 뭘 어떻게 돼? 이제 나는 니들하고 똑같은 직원이야! 월급 사장! 것도 당분간, 내 정신이 버틸 때까지만.
직원들 : (안돼요... 등 웅성거리고)
할머니 : (정색하고) 이번 임시 주총을 겪으면서, 우리 진성을 그 누구보다 아끼는 직원들이야말로
진성의 진정한 주인인 걸 알았어요. 그래서 여러분한테 돌려드린 겁니다.
직원들 : (환호와 박수 치고)
할머니 : 앞으로 나는, 퇴장할 때까지 진성식품 직원의 한사람으로 여러분을 대표할 테니,
여러분은 더 노력해서 이 회사를 발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직원들 : (박수치는)
S#57. 김포 공장부지
아직 아무 것도 없는 공장부지.
고평중, 공장 설계도면 들고 설계사와 관계자 몇 명과 부지 가리키며 얘기하고 있다.
S#58. 보습 학원 외경
S#59. 학원 안
흑판에 초등학교 3학년 수학 문제 풀이 적혀있고 초등학교 3학년 정도 아이들 10여 명 앞에서 수업하고 있는 승미.
승미 : 오늘 숙제 내준 거, 꼭 해 와야 돼요.
아이들 : 네- (우르르 일어서며 안녕히 계세요- 등등 인사하고 나가는)
승미 : (교탁 위에 있던 교재 덮고 흑판 지우는)
S#60. 꽃집
꽃들 사이에서 마치 가게 주인처럼 우아하게 앉아있는 백성희,
여전히 곱고 품위 있는 차림새지만 허한 표정으로 꽃들 바라보고 있는데...
주인(50대, 여), 들어온다.
주인 : (들어오며) 오늘 매상 어땠어?
백성희 : (일어서며) 그저 그러네요...
승미 : (가방과 수업 교재 몇권 들고 들어오는, 밝게) 엄마!
백성희 : 왔어?
주인 : 아니 무슨 모녀가 매일 출퇴근을 같이 해?
S#61. 주택가 골목길
백성희 팔짱 끼고 골목길 걸어오는 승미. 골목에서 바로 들어가는 단칸방 설정.
승미 : 오늘은 저녁 뭐 해 먹지?
백성희 : 뭐 먹고 싶은데? 말 해, 해주께...
승미 : 오랜만에 칼국수 해 먹자, 엄마. 손칼국수. (하다 얼른) 아냐, 손칼국수 밀려면 엄마 팔 아프겠다.
백성희 : 해주께, 그깟 게 뭐가 힘들어? 돈 벌랴, 대학원 편입 준비하랴 니가 힘들지... (짠한 듯 승미 보는)
승미 : 하나도 안 힘들어... 엄마 난 지금이 좋아... (쪽문 열고 들어가는)
백성희 : (따라 들어가는)
S#62. 음료수 집
은우 데리고 카운터 앞에 서있는 환.
환 : 처남, 뭐 먹을래? 제일 맛있는 거 시켜, 두 개 시켜!
은우 : 망고! 오렌지!
환 : 망고하고 블루베리.
<시간 경과>
음료수 놓고 마주 앉아있는 환과 은우. 번갈아 마시거나 하고 있는 은우.
환, 은우 교육시키고 있다.
환 : 처남, 매형 번호가 뭐라고?
은우 : 010 *** ****
환 : 에이 그거 말고, 미국 가서 걸때 말야, 미국!
은우 : 82에 0000에 010 *** ****!
환 : 우리 처남은 천재야!
은우 : 처남 머리 좋아.
환 : 좋아, 머리 좋은 처남, 그럼 언제 매형한테 전화하라 그랬지?
은우 : 보고 싶으면 전화하는 거야.
환 : 또?
은우 : (환이 그랬던 듯 인상 팍 쓰며) 누나, 남자하고 밥 먹으면 안 돼, 웃지 마! 82에 0000에 010 *** **** 전화하는 거야.
환 : (씩 웃으며) 완벽해. 누나 잘 지켜라? (여유 있게 마시는)
S#63. 거리 일각
음료수 하나 들고 서있는 은우와 환.
은성, 저만치서 장본 비닐봉지 들고 웃으며 오고 있다. 아직 환과 은우 못 본 은성.
환 : (자기들 못 보고도 웃고 오는 은성 보는) 저 봐라, 좋댄다...
은우 : 좋댄다... (음료수 마시고)
환 : (기막힌) 혼자 유학 가면서 저렇게 신나하는 여잘 내가 기다려야 되냐?
은성 : (둘 보는, 더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왜 나와 있어요?
환 : (받아들며 타박) 미국 이민 가냐? 매일 뭘 이렇게 사!
은성 : 여기서 들고 갈수 있을 만큼 들고 가면 돈이 얼만데요? 은우야, 형이랑 잘 놀고 있었어?
은우 : (음료수 탁 들며) 매형이 사 줬어.
은성 : (탁 보며 민망한) 또! 자꾸 그러지 말라 그랬잖아요?
환 : (끄떡도 없이) 가자, 처남! 할머니 기다리시겠다. (은우 데리고 가는)
은성 : (기막혀 보고)
S#64. 할머니 방 (저녁)
협탁 치우고 할머니 바로 앞에 앉아서 얘기하고 있는 은성.
할머니 : 내일 밤에 떠나지?
은성 : 네... 할머니, 저 겨울 방학 때 나올 거니까, 그 때까지 약 꼬박꼬박 챙겨드시고, 바둑도 두시고, 꽃꽂이도 하시고,
매일 걸으시고, 아셨죠?
할머니 : 겨울에 오면 너 못 알아볼까봐 겁나냐?
은성 : (펄쩍) 할머니! 할머니 이러시면 제가 가서 맘 편히 공부 하겠어요?
할머니 : 걱정 말고 맘 편히 공부 해. 나는 환이한테 맡겨 두고, 열심히 니 인생 준비해서 와...
은성 : 겨울에 오면 맛있는 거 많이 해드릴께요.
할머니 : (은성 손잡으며) 니 평생 할 맘고생 다 했으니까, 앞으론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은성 : (눈물 어려) 다 할머니 덕분이에요... 아빠 재기도 도와주시고,
할머니 : 우리 환이도 내덕에 만났지!
은성 : (웃는) 네... (안으며) 할머니 저 잘 다녀올께요...
할머니 : (서운한, 같이 꽉 끌어안는)
S#65. 부암동 집 앞 (다음날)
십자 목걸이와 환 목걸이 같이 하고 계단 내려오는 은성. 환, 스포티한 차림새로 차 옆에 기다리고 서 있다.
환 : (시계 보고 놀리는) 왜, 또 10분 늦으시지 5분이나 일찍 나와?
은성 : (시침 뚝) 남자하고 약속에 일부러 늦는 여자? (손 흔들며) 못 써요, 못써.
환 : (피식 웃고) 가자.
은성 : 근데 어디 가는 거에요?
환 : 전에 말했지? 너하고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어.
은성 : 어딘데요?
환 : 가서 말해줄게. (은성 손잡고 차 쪽으로 가는)
S#66. 도로 + 환 차 안
운전하는 환. 은성, 옆 좌석에 앉아 있다. 오른 손으로 은성 손 잡고 있는 환.
S#67. 저수지
저만치에 환 차 세워져 있고 환과 은성, 차 쪽에서 저수지로 걸어오고 있다.
저수지 가장 전망 좋은 자리에 이미 낚시대와 의자 두개 세팅되어 있고
한족에 야외 테이블과 그 옆 조리대로 쓸 만한 테이블이 하나 더 놓여 있다.
은성 : (영문 모르는 얼굴로 환 보는) 낚시 하러 온 거에요?
환 : 아니?
은성 : 낚시대 있는데?
환 : (애잔하게 낚시터 바라보면서) 여기...아버지 돌아가시던 날...아버지하고 왔던 곳이야.
은성 : (놀라서 환 보면)
환 : 평생 여기는 다시 못 올 줄 알았는데...너하고 꼭 같이 오고 싶었다.
은성 : (찡해서 환 보는) 진작 같이 오자 그러지...
환 : (손 끌고 가서 낚시 의자에 앉히는) 여기 앉아서 고기 큰 놈 한마리만 잡아. 난 가서 밥하고 있을게. 그걸로 매운탕 끓여 먹자.
은성 : (벙해서) 나보고 물고기를, (하다) 밥을 한다구요?
환 : (무섭게) 물고기 잡기 저에는 얼씬도 마? 못 잡으면 맨밥 먹어야 돼.
은성 : (황당해서 보는)
S#68. 저수지 일각 몽타주
- 한쪽에 잇는 조리애에서 도마 놓고 카레에 들어갈 단호박 정도 썰고 있는 환, 해본적이 없어서 칼질 힘들게 하고 있다.
옆에 야채 등 놓여 있고 코펠에 밥 끓이고 있다.
- 은성, 낚시 의자에 앉아 있다가 돌아보면 환, '쳐다보자마!' 버럭 소리치고. 찔끔해서 고개 돌리는 은성.
- 옆에 인터넷에서 출력한 레시피 몇 장 보면서 야채 볶고 있는 환, 땀 찔찔 난다.
- 카레 휘젓다가 소금, 잘게 썬 청양고추 등 넣는 환, 그러다 얼른 코펠 뚜껑도 열어 보고...
- 물끄러미 저수지 바라보고 있는 은성.
<시간 경과>
식탁보까지 덮은 야외 테이블에 약간 탄 밥에 카레 절반 덥혀 있다.
놀란 얼굴로 보고 있는 은성. 긴장해서 은성 보고 있는 환.
감자 대신 넣은 단호박 뭉그러져서 호박죽 비슷한 카레 된 상태.
은성 : (식사 용기 가리키며) 이런 건 언제 다 준비했어요?
환 : 새벽에 갖다놓고 간거야.
은성 : (몰라) 여기 왔다가 우리 집에 또 온거예요?
환 : 그래, 너 밥 한끼 해 먹여 보낼려고 애 좀 썼다.
은성 : (울컥 감동하는) 어떻게 나한테 밥해줄 생각을 했어요?
환 : (불안하고 안타까운 마음, 그 마음 감추려고 말투는 계속 타박에 윽박조) 잊지마! 너한테 최후로 밥 해준 남자는 나다?
은성 : (멈칫, 웃으며) 그래서 밥 해준 거에요?
환 : 그리고 또, 난 니 생명의 은인이야. 나 아니었음 너 이 세상사람 아니다?
은성 : (그덕이는) 그러네... (애교스럽게) 또?
환 : (자신 만만인 척) 넌 이제 선우환 손바닥이야!!!
은성 : 그건 아닌것 같은데?
환 : (계획 있는 지라) 뉴욕에서 돌아다닐 때 전후좌우 잘 살펴라? 언제 어디서 나 나타날지 모르니까.
은성 : (불안해하는 환 찡해서 보다가) 카레 좀 먹읍시다. 배고픈데. (웃으며 카레 비비는)
환 : (자기도 비비며 은성 눈치보는, 맛 궁금하고)
은성 : (먹는데 엄청 맛없다. 호박죽 맛에 짜고 달고...)
환 : 어때?
은성 : (눈물 어리는) 태어나서 처음 먹는 맛이에요, 너무 맛있어...(또 먹는)
환 : (간은 안 봤다) 그래? (한 숟가락 푹 먹는데 맛 이상한, 인상 팍 쓰는) 이거 카레가 왜 호박죽 맛이야?
은성 : 내껀 괜찮은데? (맛있는 척 먹는데 울컥 눈물 나는, 메여서) 눈물나게 맛있구만...
환 : (눈 빨개져서 은성 보다가 자기도 푹푹 먹는)
S#69. 저수지 인근
숲길이나 산책로 걷는 둘...손 잡고 걷다가... 환이 은성 뒷머리통에 손대고 걷다가... 은성이 환 어깨에 팔 올리고 걷가가..
애잔한 분위기로 말 없이 그렇게 걷는 둘...
S#70.
뉘엿뉘엿하는 오후 햇살 속에서....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커피 마시는 둘.
헤어짐 가까울 수록 심란해지는 환. 착잡한 마음으로 커피 잔 만지작거리고 있는 은성.
은성 : (환 보는) 공항 가려면...일어서야겠다...
환 : (가야하지만 일어나기 싫은, 앞만 보고 있다)
은성 : (환 마음 느껴져 가슴 아픈, 일부러 툭 환 식으로 표현하는) 회사 끝나면 바로 바로 집에 들어가고.
환 : (은성 보는)
은성 : (명령, 타박) 이젠 월급 좀 받는다고 막 술마시지 말고!
환 : (안 하던 짓 하는 은성 황당한 듯 보는)
은성 : 특히! 술 취해서 여자 집에 가서 문 두드리고 엎어지면 (환 말투 흉내내는) 죽는다?
환 : 뭐? (어처구니 없는 듯 웃지만 기분 좋은) 왜 그래?
은성 : 할말 더 있는데?
환 : (장난 인 줄 알고) 뭔 데? (툭) 해 봐!
은성 : 선우 환!
환 : (갑작스런 말에 어? 하고 보는데)
은성 : (환 귀에 대고 작게 '사랑해' 속삭이는, 겉으로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느껴지게)
환 : (듣고 뚝 굳어지는, 처음으로 듣는 고백이고 자기보다 먼저 해 준 은성이다. 놀라서 은성 보는) 방금 ...뭐랬어?
은성 : 못 알아들었어요?
환 : (들었지만 믿기지 않는) 다시 말해봐.
은성 : (말 대신 행동이다. 갑자기 환 얼굴 양손으로 감싸고 입맞춤하는데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