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바람, 그리고 키를 쥔 선원
: 플라톤과 복음서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에 대하여
1. 질문의 시작 : 아테네의 의인들
플라톤의 만년작 《법률(Nomoi)》 제7권에는 얼핏 아테네를 향한 극찬처럼 보이는 기묘한 구절이 등장한다.
“아테네인 중 선한 자들은 남다르게 선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신의 섭리(θείᾳ μοίρᾳ)로
참되게 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칭찬을 가장한 뼈아픈 반어법이다. 당시 아테네의 교육과 법 제도는 이미 시민을 바르게 기를 능력을 상실해 있었다. 국가 시스템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훌륭한 인간이 되었다면, 그것은 국가 덕분이 아니라 오직 거친 광야에서 홀로 자라난 천성이나 신의 기적적인 은총 덕분이라는 씁쓸한 고발이다. 플라톤은 이 역설을 통해 제대로 된 법치와 교육을 잃어버린 공동체의 무능을 매섭게 질타하고 있었다.
2. 두 개의 죽음, 두 개의 유산
공동체의 시스템이 타락했을 때 스승이 처형당하는 비극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었다. 아테네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예루살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눈먼 대중과 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사후,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기록했고 예수의 제자들은 복음서와 서신서를 남겼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본 대안과 의미의 지평은 달랐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희생을 아테네인들의 어리석음이 낳은 비극으로 바라보며, 인간의 이성으로 ‘무엇이 옳은 길인가’를 치열하게 탐구했다. 반면 예수의 제자들은 그 그릇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죄를 고치시고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와 섭리를 바라보았다. 예수의 죽음은 인간의 실패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특별한 사건이 되었다.
이 차이점은 인류에게 두 가지 위대한 유산을 선물했다. 플라톤의 고민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통제하고 정의를 실현할 ‘더 나은 제도와 민주주의’를 찾는 외적 토대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제도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영적·도덕적 고양을 이끌어냈다. 이 두 가지는 결코 서로 배척되지 않으며, 외적 시스템과 내적 양심이라는 양 날개로 인류를 지탱하는 상호보완적 존재다.
3. 결론 : 은총의 바다에서 키를 잡는 인간
혼란스러운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나오고, 타락한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 근원적인 겸손을 요청한다. 인류의 생존은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나 인간 자체의 위대함 덕분이 아니라, 파멸의 벼랑 끝에서도 은총처럼 의인들을 보내주시는 거대한 자연의 섭리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대양을 항해하는 배와 같다. 바다와 바람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주어짐이 없다면 배는 애초에 항해를 시작할 수도, 생존할 수도 없다. 역사 속에 찾아왔던 위대한 스승들과 생명의 터전은 전적으로 바다와 바람 같은 ‘신의 은총’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한들, 돛을 올리고 바른 길을 선택하여 키를 돌리는 것은 결국 선원들의 몫이다. 플라톤이 남긴 이성의 나침반과 예수가 남긴 사랑의 지도를 들고, 오늘도 거친 폭풍 속에서 항해를 이어가는 것—그것이 은총의 바다 위에서 인류에게 주어진 위대한 책임이자 주체적인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