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지난 13일- 나는 모처럼 화이트 로브(evening meditation)를 안하고 살 것이 있어 친구랑 시내(MG road)에 가 있었다.
8시경 릭샤를 타고 돌아오는데 다리 건너기 전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교통통제를 하고 있었고 릭샤 드라이버가 우리더러 차량은 통제해도 걸어 갈 수는 있으니 걸어 가라는 거였다. 영문을 알 수 없던 우리는 투덜거리며 일단 내려서 길가에 지나 가는 사람에게 물어 보니 져먼 베이커리에서 6시 50분에 폭탄테러가 있었고 8명이 사망, 4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순간 귀를 의심했고 쇼크를 먹었다. 우리가 아는 친구들 중에서 가끔 거기서 저녁을 먹는 친구도 있고 또 거기서 일하는 귀엽고 착한 네팔리 10대 소년들을 생각하면..걱정을 하며 30분 정도 걸어서 집으로 오는 길엔 국가비상 사태가 났을 때의 술렁거림과도 같은 두려움과 무거운 에너지가 깔려 있었다. 차량을 통제해서 텅빈 대로엔 몇 대의 엠뷸런스만이 부상자들을 실어 나르고.. 내가 머물던 집은 져먼 베이커리 레인 끝에 있었고 집에서 아쉬람을 가려면 져먼 베이커리를 지나서 가야 하기에 하루에도 최소 서너 번은 지나 가던 길이었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죽거나 다쳤다고 하니 어쩌면 내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집에서 사건현장까지 걸어서 채 2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기에 집근처는 아수라장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뉴스를 보거나 거리에 나와서 수군대고 north main road 를 통제해서 그리로 가던 차량이 다 우리집 앞을 지나 강변쪽으로 난 한적한 도로로 몰려서 릭샤 자동차 트럭 등 온갖 종류의 차들이 제각기 경적을 울리고 있었고..짐을 집에 갖다 놓고 사건현장을 가까이서 보려고 나갔지만 워낙 사람들이 겹겹이 몰려 있어 겨우 파편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광경을 어둠 속에서 멀리서 어렴풋이 본 게 전부였지만 그 장소로 다가갈수록 점점 실감이 났고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다...얼마 후 한 인도 할머니가 방금 뉴스를 보고 나왔다며 전해 준 소식에 따르면 폭발이 일어난 장소는 정확히는 베이커리 안이 아니고 바로 옆에 있던 골목길의 릭샤 안에 누군가가 폭탄이 든 가방을 들고 있었는지 놓고 내렸는지 그래서 그 릭샤와 드라이버는 완전 날아갔고 길 가던 사람들과 베이커리 안쪽 자리 중 골목에 면해 있던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과 서빙하던 워커들이 죽거나 다쳤다고...사망자는 몸이 파편이 되어 여기 저기 날아 가서 시신 신원확인 하는데 며칠이 걸렸다고 한다. 사망자 중 외국인은 한 대만남자 포함 4명이라 들었는데 확실치는 않고 눈이 초롱초롱하고 아주 어린 네팔리 워커 중 한명이 중상을 입었다가 어제 16일 죽었다는 소식을 봄베이 가는 택시 안에서 택시 드라이버 산딥에게서 들었다.ㅠㅠ 가슴이 아프다...
그 다음 날 새벽 5시30분 다이나믹을 하러 가려고 일단 집에서 나왔는데 릭샤도 안 보이고 라그빌라스 쪽으로 돌아서 걸어가면 늦을 것 같기도 하고..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그룹 중엔 특히 리발란싱은 세션 줘야 하니까 에너지 흐름을 위해서 다이나믹은 꼭 하는 게 좋고 갈 날도 며칠 안남았고 해서 언제 또 하랴 싶은 맘에 무작정 걷다 보니 아쉬람 셔틀이 빵빵거리며 와서 태워 줘서 어찌나 반갑던지...대로로 나가서 south main road로 들어가 돌고 돌아 메인게이트에 늦지 않게 도착...우여곡절 끝에 환상적인 다이나믹을 하고..샤워도구를 챙겨 오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새벽부터 모든 뉴스미디어 차량이 총출동 north main road와 아쉬람 진입로를 꽉 메우고 마이크 들고 보도, 인터뷰하는 모습이 보였다. 경찰,군병력도 그날 이후 아쉬람 일대에 쫙~ 깔렸고...장총을 든 군인 너댓 명이 메인게이트 앞에 늘 지키고 서 있고 모든 게이트 들어 갈 때마다 가방 검사하고 명상홀 안에 일체 가방을 못들고 들어 가게 하는 등 아쉬람 풍경이 사뭇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산야신들 사이에는 더 고요하고 깨어 있는 에너지가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걸어서 5분 거리를 삥~돌아서 가야 했고 (특히 리발란싱 그룹룸은 Sanai에 있어서 길만 건너면 됐는데..)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사건 다음 날은 아쉬람 곳곳에서 다들 생사를 확인하며 허깅하는 모습.."걱정했는데 살아 있었구나..." 하면서...
원인이야 어찌 됐든 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살아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음을 인식하고 더 깨어 있으려고 했기에 그 일이 생과 사에 관해 그리고 이 순간에 어떻게 전적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해 더 깊이 명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한편으론 나쁘지만은 않았던 거 같다. 새삼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그 와중에 에너지가 최고조에 이를 수 있었음도 감사하고..
리발란싱 그룹 assisting 하면서 여러가지로 좋은 경험도 많이 하고 길지 않았지만 같이 한 8명의 친구들과 진정한 heart connection도 느끼고...아름다운 과정이었다. 그 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와야 해서 아쉬움도 컸지만 다시 뿌나를 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생긴 듯하다.^^달라진 지금의 아쉬람의 분위기에 대해 예전과 비교해서 불만도 많았고 물가도 어메이징하게 치솟고..그래서 다음에 또 가게 될까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 그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곳이 내겐 고향같은 곳이고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친구들도 많진 않지만 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명상을 하면서 높이 비상할 수 있고 동시에 그라운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곳이기에..
It's all upto how deep we can go and how far we can fly... *^^*
첫댓글 생생한 테러의 현장에 있었네.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야~
Wellcome back... 헐...
살아 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잘~ 살아야 할 거 같아..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애정 표현도 아낌없이 하고 쓸데 없는 일에 에너지 낭비도 하지 않고 말이야..죽음이 어느 순간 찾아올 지도 모르니까..
참, 오기 전에 들은 소식인데 져먼베이커리는 1년 후쯤에 다시 오픈할 예정이라고 하니 맛있는 빵, 생강맛이 강한 맛살라 짜이..등을 다시 맛볼 수 있을 듯..^^
사건 며칠 전에 산 큰 덩어리 통밀빵을 먹으며 이게 져먼 베이커리의 마지막 빵이구나 싶었는데..
져먼베이커리 애기가 어케 됀건지 궁금했었는데 나기나 글 잘 읽었어~ 그 소년.. 눈망울이 초롱 초롱하다니 거기서 일하는 라쥬가 아니길 빌어본다.. 그리고 고인들의 명복도..
이름은 들었지만 잘 기억이 안나는데 키가 작고 젤 어린 애라고 했던 거 같아. 산딥에게 물어 볼까?
어, 물어봐 줄래 언니? 자꾸 맘이 쓰이네..
나기나 글 잘 읽었어~ 그리고 무사히 와서 참 다행이다 ~~
다들 고마워~사실 그 날이 설 전날이라 시내에서 좀 더 일찍 돌아왔더라면 엄마한테 전화하러 져먼베이커리 바로 옆 트레블 에이전시에 갔을 수도 있었지..그랬다면.. ㅠㅠ 내가 아직 할 일이 좀 있어서 그렇게 빨리 가면 안돼서 살아 온 거라 생각해..근데 그런 친구들이 많더라. 리발란싱 리더인 독일여자 타루자도 그 날 거기서 저녁을 먹을까 하다가 신발이 필요하단 생각을 하고 시내에 신발 사러 갔다고 하고...오쇼가, 존재계가 보살펴 준 게 아닐까..싶다.
人命在天
왔구나^^ 그렇게 가깝게 있었다니...
사라사이랑 사마르판, 뿌나 일찍 잘 떠났어.. 조만간 센터 놀러 갈게~^^
피해입은 사람들은 안됐지만 나기나가 무사히 돌아오다니 기뻐요. 자세한 소식도 고맙고, 더 깨어있을 수 있다는 말이 눈에 띄네...
이샤, 반가워~ 얼굴 함 봐야지? ^^ 참..이란에서 온 페드람이 안부 전해 달라던데.. 그 친구랑 Breath group helper 같이 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