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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징조들은 현재 성경예언에, 크고 엄숙한 사건의 문어귀를 보여준다
세상역사의 과거와 그 교훈과 예언 성취와, 현재의 급박한 마지막 종말의 시대를 일깨우는 말씀의 경고
크신 “자존자”(출 3:14)께서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에 이르기까지 예언의 사슬을 하나씩 연접(連接:이어 맞닿게) 시키면서, 그분의 말씀 가운데 구획(區劃:경계구역)해 놓으신 역사는, 시대의 진행과정[역사흐름]에서 오늘날 우리가 어디에 처해 있는지, 또 장래에 무엇을 예상할 수 있을지를 말하여 준다.
현재까지 일어나리라고 예언된 모든 사건들은, 역사의 페이지를 봄으로 그 형적을 찾을 수 있는데, 이로써 우리는 장차 올 모든 사건들도, 그 차례대로 성취될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Ed 178.3)
이세상의 모든 통치권이, 결국은 붕괴(崩壞:허물어 무너짐)된다는 것이, 진리의 말씀 중에 명백히 예언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에게 하나님께서 선고를 내리실 때에 주신, 예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기별이 있다.(Ed 179.1)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지라. ...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겔21:26,27).(Ed 179.2)
‘이스라엘’에서 벗겨진 왕관은 ‘바벨론’, ‘메데·바사’, ‘헬라’, ‘로마’의 순[순서]으로 계속 넘어갔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겔 21:27)고 하셨다. (Ed 179.3) 그 때가 가까이 왔다.
시대의 징조들은 우리가 크고 엄숙한 사건의, 문어귀에 와 있는 것을 말하여 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정세는 동요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구주의 예언이 우리의 목전에서 성취되고 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곳곳]에 기근[흉년의 굶주림]과 지진이 있으리라.”(마 24:6,7)(Ed 179.4) 현대는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시대이다.
통치자나 정치가들, 책임과 권위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 또 모든 계급의 지각 있는 사람들은,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들은 국가들 사이의 긴장되고 불안한 관계를 주목[주의 깊게 살펴보려]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요소[필요]를 점유하고 있는 고조된 긴장감을 보고, 거기에 무슨 결정적 대사건이 일어나려고 한다는 것, 즉 세상이 이제 말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을 인식한다.(Ed 179.5) 천사들은 장차 올 운명에 대하여, 세상이 경고를 다 받을 때까지 투쟁의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폭풍이 모여들어, 지상에서 폭발하려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그 바람을 놓으라고 명하실 때에, 세상에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전란의 광경이 전개될 것이다.(Ed 179.6)
성경, 성경만이 이런 일에 대해, 올바르게 관찰할 수 있게 해 준다. 거기에는 세상역사의 최후에 있을 큰 광경, 즉 이미 그 그늘을 먼저 드리우고, 실물[세상의 종말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이 오는 소리에 땅을 떨게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사로잡는, 사건들이 나타나 있다.(Ed 180.1)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空虛:텅 비어 허망)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고 뒤집어엎으시고, 그 거민을 흩으시리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破:약속을 깨뜨려버림)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저주[재앙과 불행사태]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거하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마치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사24:1-8).(Ed 180.2)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생축이 탄식하고 소떼가 민망해 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떼도 피곤하도다.”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및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욜 1:15-18,12).(Ed 180.3) “내마음속이 아프고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 네가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렘 4:19,20).(Ed 180.4) “내가 땅을 본즉 ...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고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렘 4:23-26).(Ed 181.1)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 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렘 30:7).(Ed 181.2)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사 26:20).(Ed 181.3)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시 91:9,10)(Ed 181.4)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시 50:1~3).“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시 50:4,6).(Ed 181.5) “딸 시온이여,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이제 많은 이방이 모여서 너를 쳐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 모략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미4:10-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내가 포로 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 그 거하는 곳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렘30:17,18).(Ed 181.6)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 하시리 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사25:9).(Ed 182.1)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 하셨느니라,”(사 25:8).(Ed 182.2)(Ed 182)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사 33:20-22).(Ed 182.3)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사 11:4).(Ed 182.4)
그때에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되고 그분의 나라의 원칙은, 해 아래 모든 사람에 의해 존중될 것이다.(Ed 182.5)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사 60:18).(Ed 182.6)
“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사 54:14).(Ed 182.7) 이런 장엄한 광경을 본 선지자들은, 거기 함축[깊이축적]된 의미를 깨닫고자 열망하였다.
그들은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자세히 검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 1:10-12).(Ed 183.1)
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한 이런 묘사는, 바야흐로 그 성취를 보게 될 접경에서 있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중대한 의미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그 사건들이야말로 인류의 부조들이 ‘에덴’을 떠난 이래,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목하고 기다리고 사모하며 기도해 온 것이다.(Ed 183.2)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최후의 중대한 위기를, 앞에 두고서도 마치 홍수 전의 사람들처럼, 향락에 열중하여 관능의 욕구를 추구하고 있다.
목전의 사물과 일시적인 일들에 몰두하여, 그들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과 함께 없어질 사물을 위해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부(富)를 희생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은 고상해져야 하고, 인생관은 넓어져야 한다. 그들은 세속적 몽상(夢想:헛된 생각)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야 한다.(Ed 183.3)
성경의 페이지들에, 명백히 설명된 모든 나라들의 흥망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표면적이고 세속적인 영광이, 얼마나 가치 없는 것인지를 배워야 한다. 후세에도 그런 예가 없을 만큼, 큰 권세와 화려함을 가졌던 ‘바벨론’, 당시의 백성들이 견고하며 영속적이라고 생각했던, 그 권세와 화려함이 얼마나 철저하게 사라져 버렸는가!
“풀의 꽃”과 같이, 망하고 말았다. 하나님께 근거를 두지 않는 것은, 다 이와 같이 멸망할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목적과 연결되고, 그분의 품성을 나타내는 것만이 영존할 수 있다.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의 율법만이 유일한 불멸성인 것이다.(Ed 183.4) 이 위대한 진리야말로, 노소를 물론하고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제국의 역사와 장차 올 일들에 대한 계시 중에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연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물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참된 가치를 평가할 수 있고, 인생의 참된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 수가 있으며, 당면한 사물을 영원한 빛에 비추어 봄으로, 그것들을 가장 참되게, 가장 고상하게 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칙을 배우고, 그 나라의 신민과 시민이 됨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과 더불어,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Ed 184.1) 그날이 가까웠다. 교훈을 배우며 사업을 마치고, 품성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Ed 184.2)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의 보는 묵시[계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먼 때에 대하여 예언하는 도다 하나니,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지니, 나의 한 말이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겔 12:27,28).(Ed 184.3)
성경의 가르침과 연구에 따른 우리의 자세와, 예언된 시대의 임박한 현실직시와 재림과 부활의 깨우침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감춰진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며”(잠 2:2,4)(Ed 185) 예수님께서는 유년, 소년, 그리고 성년시절을 통하여, 성경을 공부하셨다. 어린 시절에, 그분은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날마다 선지서의, 두루마리[구약성경]에 기록된 성경을 배웠다.
젊은 시절에는 이른 아침과 저녁 황혼에 산속에서, 또는 숲 속에서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면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셨다.[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와 똑같이 성경말씀을 직접 연구하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스스로 깨우치셨다]
봉사의 생애에 나타난 성경에 대한, 그분의 정통한 지식은 그분께서 성경 연구를,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가를 증명한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능력으로도 가능한 방법으로, 지식을 습득하셨으므로 그분의 훌륭한 영적·지적 능력은, 교육의 한 방편으로서의 성경이 가진, 가치를 입증[증명]해 준다.(Ed 185.1)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주실 때에 어린 아이들을, 소홀히[얕잡게] 보지 않으셨다. 과연, 사람들이 기록한 글로서 성경의 이야기처럼, 어린이들의 마음을 붙잡고 그들의 흥미를 일으키기에
적합한 것을, 달리 또 찾을 수 있을까!(Ed 185.2) 이 쉬운 이야기들 중에는, 하나님의 율법의 대 원칙이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부모와 교사들은 이처럼 어린이의 이해력에, 가장 적합한 예증(例證:말씀에 맞는 생활에서의 실재적 예-얘기]들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훈계,
즉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신 6:7)라는 말씀을, 자녀와 학생들이 매우 어릴 때부터 실행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Ed 185.3)
어린이들에게 이런 교훈들을 설명하여, 기억에 남게 하는 데에는 실물교훈, 흑판, 지도, 또는 그림 같은 것을,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부모와 교사들은, 항상 향상된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성경을 가르치는 데는 가장 새로운 생각과, 가장 좋은 방법과 가장 열렬한 노력이 필요하다.(Ed 186.1)
성경에 대한 흥미를 일으키고, 그 흥미를 높이는 일은 대체로, 예배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석[아침저녁]의 예배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예배 시간에는, 염려나 불친절한 생각이 들어서는 안 되며, 예수님과 만나기 위하여, 또 거룩한 천사들을 집에 영접하기 위하여, 부모와 자녀들이 모인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예배는 간단하고 활기차고 경우에 맞게 드리되, 때에 따라 형태를 다양하게 한다. 온 가족이 성경연구에 참여하게 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자주 반복하여 배우게 한다. 때때로, 자녀들에게 읽을 성경을 선택하게 하면 그들의 흥미가 더하여질 것이다. 읽은 것에 대하여 어린이들에게 질문하고, 또 그들이 질문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의 의미를 깨닫도록, 유효(有效:효과가 유력)한 예증을 말해 주어야 한다. 예배가 길지 않으면 어린이들에게도, 기도를 하게하며 한 절만이라도, 함께 찬미를 하도록 한다.(Ed 186.2) 예배를 정당한 방법대로 하려면, 그 준비에 마음을 써야 한다. 부모는 날마다 자녀들과 함께, 성경을 연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이를 실행하는 데는 노력과 계획과, 어느 정도의 희생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나, 이 노력은 장차 충분히 보상[은혜의 축복]될 것이다.(Ed 186.3)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이 그분의 훈계를 가르치기 위한 준비로, 그 훈계를 마음에 잘 간직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신 6:6,7)
자녀들이 성경에 취미를 갖도록 하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성경에 취미를 가져야 한다. 그들이 성경연구를 즐기게 하려면, 우리들이 먼저 성경연구를 좋아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훈계는 우리 자신의 모본과, 정신이 가진 감화력의 무게만큼 힘을 발휘할 것이다.(Ed 187.1)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분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게 하는 한편, 그를 택하여 큰 나라의 조상이 되게 하셨는데, 그것은 그가 그 자녀들과 권속들을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으로, 가르쳐 인도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가르침에 힘이 있게 한 것은, 그가 몸소 실행한 생활의 감화였다.
그의 대 가족은 천 명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많은 사람이 가장[각 집안의 어른]이었다. 그 중에는 이교[우상숭배]로부터 새로 개종[종교를 바꿈]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많았다]. 이런 가족의 지도자로서는, 견고[신앙심이 굳건]한 인물이 필요하였다. 약하고 흔들리는 방법을 가지고는 부족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명령]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바르고 착한 도리]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창 18:19). 그는 또 사람의 마음을 끄는 지혜와 친절함을 가지고, 자기의 권위를 행사하였다. 거룩하신 순찰자[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감화는, 그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미쳤다.
그가 천막을 쳤던 곳에는 어디에나 그 옆에다가 희생[제사예물]을 드리고, 예배하기 위한 제단이 쌓아졌다. 천막을 옮기면서도, 제단은 남겨 두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종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을 배운 많은 ‘가나안’ 사람들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그 제단에 발을 멈추고 여호와께 희생[제사예물]을 드렸던 것이다.(Ed 187.2)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이, 교사의 생활에서 충실히 반영(反映:영향을 끼침]될 때에, 오늘날에도 옛날 ‘아브라함’의 경우와, 다름없는 효과를 낼 것이다.(Ed 187.3) 다른 사람이 성경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배웠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심판을 받을 때에는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 대해 명백[자세하고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그러므로 각자[각각의 개인]는 진리가 무엇인지, 오늘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연구에 효과를 내려면,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특별히 기질(氣質:타고난 성질]과 훈련과 생각하는 것이, 전혀 다른 소년과 청년들을 대하는 교사에게 있어서, 이 점은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에는, 그들의 마음의 경향(傾向:생각방향)과 관심거리가 무엇인가를 관찰해서, 그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 그들의 흥미를 유도[꾀어 바르게 지도]하는 방법이 매우 유익하다. 사람들을 각각 여러 가지 경향을 가진 자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 가운데 각 사람을 위하여 요긴[긴요]한 교훈을 주셨다.
학생들이, 성경의 교훈이 그들의 생활에 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교사는 그들에게 성경을 충고자로 앙모(仰慕:우러러 간절히 사모]하도록 가르쳐야 한다.(Ed 188.1) 학생들이 성경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매력[진리말씀의 위대함]을, 평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문학적 가치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진정한 가치가 없는 책들과, 불건전하고 자극적인 책들이 많이 권장되고, 또 권장까지는 아니 하더라도 적어도 사용하도록 허용[무심히 허락되며 용납]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깨끗한 샘물을 자유로이 마실 수 있는데도, 어찌하여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런 더러운 물줄기에서, 마시도록 지도해야 한단 말인가?
성경은 풍부하고 힘이 있고, 의미가 깊은 것이 실로 한이 없다. 청소년들로 하여금 성경의 보물을 사고(思想:생각)과, 표현[의견발표]의 측면[부분]에서 찾아내도록 장려(獎勵:권장격려)해야 한다.(Ed 188.2) 이런 귀한 것들에 마음이 이끌릴 때에, 부드럽게 하고 복종케 하는 힘이 그 마음을 감동시킬 것이다.
그들은 친히 그분을 그렇게 나타내신, 하나님께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사업과 그 방법을 더욱 깊이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Ed 188.3) 성경을 연구하려는 사람은, 배우는 자의 정신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기 위하여, 성경의 각 페이지를 연구해야 한다.(Ed 189.1)
성경에 대한 참된 지식은 말씀을 주시는, 성령[신앙심의 깊은 생각과 마음에 이끌림]의 도움을 받아야만 얻을 수 있다. 또한 이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생활에 실천해야[믿음의 확신과 사랑의 생활로]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명령-언약의 축복]하시는 것을, 모두 다 순종해야 한다.
그 말씀에 있는 모든 허락[약속]을, 우리의 것으로 주장해야 한다. 하나님이 명하시는 생애를, 그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서, 그대로 살아야 한다. 성경을 이처럼 지지(支持:믿음의 신앙으로 지탱하고 보전)할 때만, 그 연구가 실효를 거두게 된다.(Ed 189.2) 성경을 연구하는 데에는 가장 부지런한 노력과, 인내성[인내심] 있는 사고가 요구된다.
마치 광부가 땅 속의 금광을 찾아 파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보물을, 열심히 끈기 있게 찾아야 한다.(Ed 189.3) 매일의 연구에 있어서, 성경을 절절이 배워가는 방법은 매우 유익하다. 성경을 연구하는 자는 성경의 한 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그 속에 어떤 사상을 두셨는지, 확실히 알기 위해 모든 생각을 계속 집중하여, 그 사상[말씀주제의 의미와 뜻]이 자기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 의미가 분명해질 때까지, 한 절씩 연구해 가는 것은 일정한 목적도 없이, 적극적으로 어떤 교훈을 얻으려는 생각도 없이, 다만 여러 장의 성경을 통독(通讀:처음부터 끝까지 읽고자]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Ed 189.4) 지적[지식적] 무능력과, 도덕적[성령 깨우침]결함의 중요한 원인은. 바로 가치 있는 목적을 향한 정신집중의 결함(缺陷:흠집, 부족함]에 있다.
우리는 인쇄물이 널리 분포되는 것에 자만하고 있다. 서적자체가 유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 증가는 일종의 적극적인 악이 될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간단없이 쏟아져 나오는 인쇄물의 대홍수로 인하여, 사람들은 노소를 물론하고 조급하고 피상적인 독서를 하는 습관이 붙어서, 일관성 있고 건전한 사고를 할 마음의 힘을 잃고 있다.
그보다도, 옛적 ‘애굽’의 개구리처럼 온 지면에 퍼지고 있는 서적, 잡지들의 대부분은 평범하고 사람을 게으르게 하며, 원기를 없애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럽고 타락하게 하는 것들이다. 그 영향은 마음을 마비시키고 무력하게 하여, 영혼이 타락하고 멸망하게 만든다.게으르고 목적없는 심혼(心魂:마음 정신)은, 악의 표적이 되기 쉽다. [병의 균과 같은 죄악성향] 균은 생명이 없는, 병든 조직에 뿌리를 내린다.
게으른 마음은, 마귀의 일터이다. 높고 고결한 이상에 마음을 지향해 생애의 고상한 목표, 즉 열중할 수 있는 목표를 가짐으로, 악이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게 하라.(Ed 189.5) 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조심성 있게 연구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지금시대는 컴퓨터와 휴대폰 등을 통한 해독은, 너무나도 심각한 실정으로 두려운 상태임]
그분의 말씀이 사람의 심령에 받아들여지게 될 때, 유혹에 대한 유력한 방벽이 될 것이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시 119:11,17:4).(Ed 190.1) 성경은 그 자체의 해설자이다.
성구[성경구절]는, 성구끼리 비교되어야 한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은, 성경구절을 그 전체적인 입장에서 관찰하는 동시에, 그 부분적인 관계를 알아내도록 배워야 한다. 그는 성경의 중요한 중심 제목인,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목적, 대 쟁투의 시작과 구속 사업의 기원에 대한, 지식을 얻어야 한다.
그는 주권을 다투고 있는 두 가지 원칙[선과 악]의 성질을 이해하고, 역사와 예언의 기록을 통하여, 그 큰 종국[결말, 지구창조와 에덴동산에서의 첫 조상인, 아담하와의 불순종 범죄와 인간의 생로병사와, 영멸의 죽음의 심판, 하나님 아들 예수님의 초림(아기예수)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승천, 제자들의 순교와 재림과 세상종말]에 이르기까지, 그 원칙들의 활동을 연구해 보아야 한다.
이 투쟁이, 인류역사의 갈피[책장]마다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리의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이 어떻게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정신 중의 하나를 나타내게 되는지, 그리고 자기가 원하거나 원치 않거나 이 대 쟁투의, 어느 한 편에 스스로 참여하는 자로, 결정되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Ed 190.2)
성경의 모든 부분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말미암아, 기록된 것이며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다. 예수님 오시기 전의 “구약”과, 예수님의 초림이후의 “신약”에, 똑같이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구약성경”을 연구해 보면, 이를 주의하여 자세히 읽는 사람은, 사막밖에 볼 수 없는 곳에서 생명을 주는, 샘물이 치솟아 터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Ed 191.1)
구약의 ‘다니엘서’와 관련하여, 신약의 ‘요한계시록’은, 특별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교사들은, 예수님께서 그분의 종 ‘요한’에게 알려 주려고 친히 오셨던 복음을, 어떻게 하면 가장 밝히 이해하고 남에게 잘 나타낼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것이다.“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 1:1).
얼른 보아 신비적인 상징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요한계시록’의 연구를 단념하여서는 안 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Ed 191.2)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예수님 재림과 세상종말시기]가 가까움이라.”(계 1:3).(Ed 191.3)
성경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생기고 그 넓은 범위와, 귀한 보물을 깨닫기 시작할 때에, 학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붙잡으려고 열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장소나 시간에 제한받지 않고, 성경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렇게 끊임없이 연구하는 일은 성경에 대한, 사랑을 가지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수단 중의 하나가 된다. 학생들로 하여금 언제나 성경을 가지고 다니게 하자.
기회 있는 대로 성구를 읽고, 그것을 명상하라. 길을 갈 때, 정거장에서 기다릴 때, 약속한 사람을 기다릴 때, 그 시간을 이용하여, 진리의 보고인 성경에서 어떤 귀중한 생각을 얻도록 하라.(Ed 191.4) 심령의 큰 원동력은 믿음, 소망, 사랑인데, 올바른 성경연구는 이런 것들에게 호소하게 된다.
성경의 외면적인 미, 그 비유와 표현의 미는 그 진정한 보화, 즉 신성의 미를 나타내기 위한 배경[뒤 배경]에 불과하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의 기록에서, 우리는 그분의 영광의 섬광[영광의 광명]을 볼 수 있다. “그 전체가 사랑스러우신”(아 5:16)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 천지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은 다 그분에게서 비취는 빛의 몽롱한 반영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공중에 들리시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고 말씀하셨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이 구주를 바라볼 때에, 그의 심령에는 믿음과 동경과 사랑의 신비로운 능력이 생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목하는 삶을 살면, 그가 경모(敬慕:숭경하고 사모]하는 형상에 점점 가까워진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빌 3:8-10)노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이 바로 우리 영혼의 말이 될 것이다.(Ed 192.1) 영감으로 된 말씀으로 말미암아, 심령에서 솟아나오는 하늘의 평화와 기쁨의 샘은, 위대한 감화의 시내가 되어서, 그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끼쳐 준다.
오늘날의 청소년들, 성경을 손에 들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가 되게 하고, 또한 그 말씀들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는 경로가 되게 한다면, 과연 얼마나 큰 축복의 시내[시내 물: 성경말씀의 진리전파]가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향하여 흐르게 될 것인가?
이 축복의 시내가 사람을 고쳐 주고, 안위함을 주는 감화는 실로 측량할 수 없을 것이요, 생명수의 강이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 이 될 것이다.(Ed 192.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2)(Ed 195)
우리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열심을 보이지 않아서 되겠는가? 우리들 앞에 이처럼 장엄하고 고상한 구원의 주제가 있건만, 어떻게 우리가 대리석으로 만든 비석처럼, 차디찬 상태로 냉담하게 그냥 있을 수 있는가?
크리켓(야구와 비슷한 원형경기장)경기, 경마 및 어리석은 사물에 대해서, 그처럼 쉽사리 흥분하는 인간인 우리가 구속의 경륜이 전개되는, 감격적인 장면을 보고 어찌 가만히 있을 것인가? 이제 후로는 학교와 교회가 주님께, 기쁨의 찬송을 올리는 축제를 가져야 할 것이다.(교육에 관한 특별한 증언 77-82). (CT 371.1)
성경은 신학과 철학의, 단순하고 완전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책은 우리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는 책이다. 성경은 구속의 경륜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말해 주고 있으며, 모든 학생들에게 긴요한 지식 곧,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주고 있다.... (CT 4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