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존스라는, 18세기 영국 변호사 겸 언어학자를 아시는지요? 해로와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그는 인문 교양이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라틴어와 고대그리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함은 물론이고 히브리어, 페르시아어, 아랍어에도 능했다고 합니다. 나중엔 중국어까지 포함해서 28개 국어를 익힌 것으로도 알려져 있지요. 윌리엄 존스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캘커타에 법관으로 파견돼 일하면서 고대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다 생각지도 않았던 것을 발견합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와 산스크리트어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닮아 있었던 겁니다. 이들 세 언어는 기초 어휘가 서로 비슷(음운 대응)했습니다. 기초어휘는 하나, 둘, 셋, 넷 같은 수사나 손, 발, 얼굴, 머리 같은 신체언어, 엄마, 아빠 같은 친족 언어로, 언어들 사이에 차용이 잘 안 되는 단어를 뜻합니다.
인도에서 아시아학회를 만들어 활동하던 윌리엄 존스는 유럽 학계에 이 사실을 보고합니다. 그 때부터 언어학자들은 인도에서 유럽 지역에 이르는 언어들이 어쩌면 한 언어에서 갈려나왔을지 모른다는 가정 아래 연구를 시작합니다. 언어학 연구사에서 가장 큰 전기를 이루었던 역사비교언어학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연구 결과 언어학자들은 인도와 이란, 러시아, 유럽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하나의 어족에 속해 있다고 보았습니다. 본래 한 언어였는데 그게 분화됐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최초이자 하나의 언어를 인도유럽어족이라고 불렀습니다. 인도이란어파인 힌디어, 페르시아어, 우르두어, 로망어파인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게르만어파인 영어, 독일어, 노르웨이와 스웨덴어, 네덜란드어, 슬라브어파인 러시아어, 폴란드어, 불가리이어, 그리고 사라져가는 켈트어파(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어, 만어 등)등이 이 어족에 속한 언어입니다. 역사비교언어학은 19세기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언어학의 태두 소쉬르가 청년 시절 제네바 대학에서 공부한 뒤 라이프치히 대학에 유학한 것도 이 대학의 언어학 연구가 최고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어느 어족에 속하는 것일까요. 한국어의 계통 문제는 학계의 논란거리입니다. 한국어는 한때 우랄알타이어어족이었습니다. 우랄알타이어는 일부 비교역사언어학자들이 핀란드어, 헝가리어, 리투아니아어에서 터키어, 몽골어, 만주어, 한국어, 일본어까지를 아우르는 것으로 내세운 커다란 어족입니다. 나이가40~50세 이상인 사람들이 중고교 시절 외우기도 했던 “한국어는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말은 그러나 학계에선 이미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우랄알타이어족이란 개념 자체가 폐기된 겁니다. 대신 핀란드어, 헝가리어, 리투아니어어 등을 포함하는 우랄어족과 몽골어, 만주어, 한국어, 일본어 등을 아우르는 알타이어족이 있다는 것으로 정리됐지요.
지금까지 한국어는 알타이어라고 보는 주장이 다수이지만 의견의 일치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제 당시 <한국어 어원사전>을 펴낼 정도로 한국어를 깊이 있게 연구한 뒤 한국어를 알타이어족에 포함시킨 핀란드 외교관 구스타프 람스테트도 만년에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지요. 오늘날 많은 학자들도 한국어와 일본어가 같은 어족이라는 확신은 가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기초 어휘에서의 음운 대응이 드물고 불규칙적이어서 같은 어족에 필수적인 친연성을 가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현재 한국어는 어느 언어와도 친족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립어라는 주장도 유력합니다. 피레네 산맥의 일부 지역에서 쓰는 바스크어처럼 세상의 어떤 언어에서도 친족관계에 있는 언어를 찾아내지 못한 언어를 고립어라고 한답니다.
여기,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한 뒤 한국어와 산스크리트어 사이에 놀라운 친연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대 제어계측학과를 졸업한 뒤 국방과학연구원과 삼성전자연구원에서 일했던 권중혁 선생입니다. 그의 주장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며칠 만에 산스크리트어를 해독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와 산스크리트어는 유사성이 많다는 겁니다.
산스크리트어가 어떤 언어인가요. 인류가 만든 언어 중에서 가장 어렵고 정교한 언어로 정평 난 언어입니다. 힌두교와 불교 경전 등을 기록한 산스크리트어는 대대로 이 언어를 전승해온 인도의 브라만들도 머리가 희끗희끗해져야 비로소 능숙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배우고자 하나 너무 어렵고 외울 것이 많아 대부분 중도 포기한다는 언어가 바로 산스크리트어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제대로 하는 학자들은 극히 드뭅니다. 그 몇몇도 인도 등지에 몇 년씩 유학하며 어렵게 산스크리트어를 익힌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산스크리트어가 이토록 어렵다 보니 부작용도 없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한역(漢譯) 불교 경전의 난해함,또는 오역을 감내해야 한다는 겁니다.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을 포함한 대부분의 불교 경전은 산스크리트어로 고정된 뒤 한문으로 옮겨져 우리나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어의 난해함과 한문과의 서로 다른 언어 구조 때문에 간명하고 쉬울 수도 있는 경전이 추상적이고 어려워졌다는 것이 적잖은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또한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번역어를 쓰거나 아예 잘못 번역돼 본래 뜻이 왜곡돼 버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권중혁 선생이 산스크리트어를, 독학으로 공부하게 된 계기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뒤늦게 불교에 심취하며 한역 불경을 읽다 추상적이고 난해한 개념들을 산스크리트어로 읽으면 어떨까 해서 이 언어를 공부했고, 그러다 보니 한국어와의 강한 친연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겁니다. 공대 출신으로 연구원에서 일하며 언어학을 공부한 적이 없던 그는 공대를 나온 연구원 출신 답게 컴퓨터로 산스크리트어와 한국어의 주파수를 분석하며 파고들다 어렴풋하던 가설에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한국어와 산스크리트어는 뿌리가 같고, 훈민정음은 이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창제한 문자라는 겁니다. 그는 자신의 발견에 힘입어 독학으로, 몇 달 만에 산스크리트어를 익힙니다. 남들이 몇 년 걸려 익히는 난해한 언어를 단 몇달 만에 익힌 것만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언어를 익힌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그가 발견한 언어의 본질과 구조에 대한 새로운 이해입니다. 이를 체계화하기 위해 몇 년간 산스크리트어와 언어학 공부에 매달린 그는 거칠게나마 어원, 즉 말의 뿌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언어학 체계를 만들어 냅니다.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면 다른 언어권의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산스크리트어를 익힐 수 있는 방법도 체계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면 라틴어를 비롯한 여타 유라시아어의 학습에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재확인했습니다. 권 선생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 6월 대안연구공동체에서 특강을 열었습니다. 한국어를 하는 사람으로, 단 한 차례, 한 나절 강의를 들은 뒤 혼자서 며칠만 공부하면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가 그가 특강을 연 목적은 자신의 발견을 사람들과 나누면서 거칠게 수립한 자신의 새 언어학을 보다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다듬어갈 동료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윌리엄 존스가 18세기 후반, 산스크리트어에서의 새로운 발견을 토대로 아시아학회를 만들었듯이.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소문을 들은 이들이 참여를 희망하는 바람에 특강을 한 차례 더해야 했습니다. 중세 국어 연구자는 물론,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등을 공부한 학자들도 다수 참여해 난상토론을 벌였습니다. 2차례에 걸친 특강에 참여한 이들은 “단 한 차례, 한 나절 배운 힘으로 산스크리트어를 해독하긴 쉽지 않으나 산스크리트어와 한국어의 친연성과 한국어의 가능성에 대한 획기적인 뭔가를 찾아낸 것은 분명하다”는 점에는 대체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문제가 없진 않았습니다. 그는 “단 한 차례, 한 나절 강의를 들은 뒤 혼자 며칠만 공부하면 사람들이 산스크리트어로 된 문헌을 해독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혼자 며칠만 공부해” 산스크리트어를 떼는 일이 대다수 참여자들에게 쉽진 않았습니다. 언어 감각이 빼어나고 머리가 좋은 몇몇은 강의 현장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일부 해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한 나절 강의로 산스크리트어를 해독하기까지 혼자 공부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권 선생이 산스크리트어 특강에서 한걸음 나아가 산스크리트어로 금강경을 읽는 세미나를 개최하려는 것은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미나의 목적은 특강과 같습니다. 세미나를 통해 산스크리트어와 한국어와의 강력한 친연성을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놀랄 정도로 쉽고 빠른 속도로 산스크리트어를 익히게 하는 것으로 증명하겠다는 겁니다.나아가 그는 “세미나에, 언어학에 관심있는 명민한 사람이 참여한다면 거칠게 만들어놓은 새 언어학 체계를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 것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바람도 숨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발견으로,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언어학계에 바람을 일으켜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18세기 영국에서 윌리엄 존스가 했던 일을 21세기 한국에서 해보겠다는 겁니다.
출처:http://cafe.naver.com/paideia21/5425 느리게 살기 님
첫댓글 우리나라 범어의 산 증인 강상원 박사님도 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