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군중과 사진적 별자리 심은주의 사진들을 오래 보다가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건 ‘카메라의 시선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이었다. 카메라의 시선이란 혹시 새의 시선과 사람의 시선 사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시선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제 3의 시선은 어떤 시선이고 그 시선은 어떤 풍경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심은주의 사진들에 대한 이해는 아마도 이 질문 붙들고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심은주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건 메트로폴리스의 풍경들이다. 그 풍경들은 저마다 때와 장소가 다양하다. 풍경의 시간은 관광객들이 운집하는 바캉스 철이기도 하고 아이스 링크와 스키장이 보여주듯 한겨울이기도 하다. 장소 또한 나라 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파리, 베니스, 오사카, 스위스의 알프스 등 심은주의 사진 풍경들은 국경을 넘나든다. 그러나 그렇게 사진 속 시공간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프레임 안의 풍경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그건 새처럼 높은 곳에서 풍경을 내려다보는 조감도(Birds-Eye View)의 시선이다. 프레임 밖 어딘가 높은 곳에서, 그것이 에펠탑의 꼭대기이든 오사카의 어느 마천루 옥상이든, 심은주는 카메라를 든 새 한 마리처럼 대도시 풍경과 그 안의 군중들을 내려다본다. 그런데 사진가 특유의 강인한 기질을 엿볼 수 있는 (특히 작가가 작은 몸집의 여성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 기질은 남달리 눈에 뜨인다) 이 조감도에의 경도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이 단순히 대도시 풍경을 가능한 전체적으로, 그러니까 파노라마적 장관으로 포착하려는 이미지 현시적 시도일까? 아니면 심은주가 선택한 시선 속에는 또 다른 의도들이 들어 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 의도는 보는 이들에게 어떤 사진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심은주가 보여주는 사진적 조감도의 효과는 내 경우 크게 세 가지로 읽혀진다. 우선 정상적 높이의 시선과 원근법적 구도 대신 선택된 조감도적 시선은 ‘대도시를 무대화 (Inszenierung des Metropolis) ’ 한다. 심은주의 조감도적 시선은 사진 속 풍경들을 현실 공간의 충실한 재현이 아니라 그것을 구경꾼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연극적 상황으로 탈바꿈 시켜 습관적으로만 바라보던 대도시 풍경을 새로운 관찰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다음으로는 ‘공적 공간의 익명화 (Anonymisierung der Oeffentlichkeit) ’이다. 심은주의 사진들이 일관되게 오브제로 삼는 건 익히 알려진 국내외의 공적 장소들이지만 그 공적 장소들은 작가의 과감한 프레이밍 작업을 통해서 보편적 공간으로 탈 상징화 된다. 예컨대 에펠탑은 단순히 타워의 하단부만 보여지도록 프레이밍 되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타워형 철 구조물들 중의 하나로 익명화 되는데 그 결과 에펠이라는 공적․상징적 공간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문화적 내러티브로부터 해방되어 사진적 공간으로 독립한다.
마지막으로 지적되어야 하는 건 ‘도시 대중의 성좌화 (Konstellation der Masse) ’이다. 대도시를 무대화 하고 공적 공간을 익명화 하는 작가의 의도가 독립적 사진 공간을 구축하는데 있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 공간 안에서 심은주가 주목하고자 하는 정작의 오브제는 다름 아닌 도시 군중이다. 잘 알려져 있듯 대도시 군중들이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이미지에 매혹되었던 사람 중에는 W. 벤야민이 있다. “거리를 흘러 다니는 군중들은 대도시 파리를 환상의 공간으로 바꾼다” 라고 말하듯 벤야민에게 도시 군중은 대도시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시각적 판타지의 매개항이었다. 하지만 벤야민의 도시 군중 판타지가 무산계급의 해방이라는 역사철학적 관심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면 심은주의 도시 군중 이미지에 대한 관심은 보다 순수하게 사진 조형적 관심인 것처럼 여겨진다. 예컨대 조감도적 시선으로 무대화되고 익명화된 사진 공간 안에서 도시 군중들은 어떤 특별한 의미로 이념화되는 것이 아니라 19세기 인상주의자들이 대상을 그렇게 보았듯 점묘법의 작은 단자들처럼 포착된다. 하지만 대상을 수없이 많은 빛의 입자들로 분해하는 인상주의적 점묘법의 이유가 분해된 입자들의 시각적 재구성을 통해서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발견케 하는데 있었듯 심 은주의 단자화 된 군중들의 파편들 역시 새로운 이미지 경험을 촉발 시키는 시각적 장치로 작용한다. 여럿이서 둘이서 혹은 혼자서 거리와 실내 공간을 배회하는 군중 단자들은 심은주의 사진 공간 안에서 마치 밤하늘 위에 점점이 뿌려진 별들처럼 포착되지만 그 단자들이 무정형 상태로 방치되는 건 아니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흩어진 별들 사이에 선을 그어 별자리를 만들 듯 점묘화된 군중의 단자들은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르는 사이에 그 무질서 속에서 이미지를 발견하는 조형적 실험을 시도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이 스스로 구성하는 단자들의 조형 이미지가 한 번 만들어져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자체로 조형의 틀을 제시하지 않은 채 군중의 단자들만을 제시하는 사진 공간 안에서 새로운 조형 이미지는 연속적으로 만들어지고 그 조형 실험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조형의 자유와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심은주의 사진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새의 시선을 취한다. 그러나 프레임 공간 안에 점점이 흩어진 군중의 단자들은 마치 밤하늘을 바라볼 때 그렇게 하듯 관람자의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향하게 만든다. 그렇게 모르는 사이에 변주되는 두 시선 사이에서 심은주의 사진 공간은 열리고 그 공간은 무정형 속에서 스스로 이미지를 찾고 발견하고 경험하는 연속적인 조형 실험의 유희공간이 된다. 아마도 이것이 심은주가 의도하는 사진적 시선이고 그 시선으로 보는 이를 유도함으로써 그녀의 사진이 경험케 하려는 대도시 풍경은 아닐까? 글 / 김진영 (예술비평)
-------------------------------------- 심은주 1979 生 2003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 신문방송학과 졸업 2006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학과 수료
개인전 2006 Chaosmos_혼돈적 질서展-갤러리 룩스 그룹전 2004 불시착氏의 자아탐구展-쌤쌤쌈지회관 단체전 2004 홍익대학교 사진학과 동문전-관훈갤러리 2005 광복60년기념사진전-세종문화회관별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