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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소환명령이 있었습니다.농약 뿌릴 일이 있다는 것이었죠.
사실은 소환명령이라기 보다는... 일당을 주고 사람을 구해서 농약을 뿌리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느니 겸사겸사 제가 뿌리겠다고 했지요.
소환명령이라기 보다는 자진 귀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여름 뙤약볕에 타 죽을지도 몰라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합니다. 새벽 네시에 동이 트네요. 동트자 마자 작업을 시작했어요. 오전 열시가 다 되서 끝이 납니다. 예정보다 빨리 끝을 봅니다. 첨단 농약분무기 덕분이예요. 완전 자동 시스템입니다.
펌프질 할 필요가 없어요. 농약과 물을 비율대로 섞어 넣은 후 등에 짊어지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알아서 살포됩니다. 물론 팔은 흔들어 줘야겠지요. 흔들기 귀찮다면 줄맞춰서 걸어가도 됩니다. 좀비 등에다 매줘도 살포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강아지 등에다 매줘도 됩니다.
일을 마치고 늦은 아침을 먹으려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옵니다. 자산관리 공사네요.
얼마 전에 낙찰받은 물건이 있음을 떠올립니다.
이 물건입니다. 모자이크 한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남들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해 본겁니다. 모자이크해도 어디에 있는 물건인지 귀신같이 잘 들 찾아냅디다. 등기부를 뒤적거려 얼마에 팔아먹었는지 까지 확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확인하고 이런 말을 하기도 하지요.
"뭐야.. 천만원에 사가지고 왜 천오십만원에 팔았어. 이거 등기비나 건진거야? 빌딩샀다며..? "
그렇습니다. 우리는 거의 자선사업가라고 보면 됩니다. 내 돈 들여서 상대방 토지 등기부를 깨끗하게 정리해주는 자선사업가라고 할 수 있어요. 늘 손해보고 팝니다. 그래도 돈이 모이는걸 보면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왜 그럴까...? 아는분은 알지도 모르겠네요.
밭뙤기 1400여 제곱미터 입니다. 대략 428평입니다. 토지 모양은 부정형입니다. 그리고 토지를 볼때 이것인지 먼저 확인해 보는것 있지요? 이것이면 침뱉고 돌아서고 이것이 아니면 관심을 가지고 봅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답은 맹지입니다.
불행히도 이 토지는 그 운명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맹지이죠. 많은 사람들이 침뱉고 돌아섰거나 아예 처음부터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맹지가 아니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또 있습니다. 분묘기지권. 많은 분들이 그토록 무서워한다지요.
분묘기지권이라는 특별매각조건이 매각명세서상에는 붙어있지 않습니다. 공매물건의 정보는 스스로 캐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듯 하지요. 그러나 그게 붙어있건 말건 곧바로 눈에 뜨이는 것이 있습니다. 밭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묘지이죠.
맹지에다 묘까지 있으면 이건 죽음의 토지입니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래서 유찰이 매우 많이 되었습니다. 40%까지 떨어졌어요. 그냥 놔둬도 누가 사갈것 같지는 않습니다.
천육백만원 조금 더 합니다. 428평의 가격이 천육백이죠. 평당 4만원 정도 합니다.
완전히 깊은 산골이 아니라면 임야도 삼사만원 합니다. 더구나 이건 밭이예요. 이정도면 매우 저렴합니다.
묘지를 유심히 들여다 봅니다. 관리가 잘되어 있습니다. 비석도 세우고 봉분을 대리석으로 둘러치기도 했어요. 묘지앞에 국화 비슷한것이 놓여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납골당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 요즈음 케어를 잘받고 있는 복받은 분이 아닌가 합니다. 정성들인 흔적이 매우 많이 보여요.
등기부를 확인해 봅니다.
신보에서 돈을 좀 빌려썼군요. 1억입니다. 신보에서 끌어다 쓴것 치고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의 액수가 중요한것은 아닌것 같군요. 신보에서 돈을 빌려줬다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신보는 돈 내주는 조건을 매우 까다롭게 하는 기관중에 하나입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줘요. 상환조건도 쿨하지 않아요. 그런곳에서 돈을 주었으니 토지소유자는 일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 빠져 있을 뿐 언젠가는 회복할 것으로 보입니다. 뒤에 압류가 덕지 덕지 붙고 공매로 까지 나왔어도 극복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람이 촉이라는게 있습니다. 그리고 촉을 더해주는 한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명당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눈으로 보더라도 이 자리는 명당이 아닐까 하는 것이죠. 풍수지리를 따져서 명당인지 악당인지 구분하잖아요.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것도 명당이라고 해서 정한것이고 한양안에 경복궁을 지은것도 한양에서도 최고의 좋은 땅이라고 해서 그런것아니겠습니까.
이사진은 한양지도 축소판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 물건지는 경복궁 비슷하지요? 아니면 말고...
명당이라면 토지의 주인이 다시 사가겠다고 열심히 쫓아다니지 않을까요?
이 정도 분석이 끝났어도 쉽게 입찰은 할수 없었습니다. 명당이라는것도 좋지만 촉만을 믿고 갈수는 없잖아요. 돈이 크던 작던 잠기면 짜증나는 겁니다. 확인할 것은 확인해 봐야지요. 물건지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아요.
답사는 필수입니다. 답사하다보면 종이로는 알 수없 는 많을 것을 알 수 있어요. 당장 이 물건과 관련된 것 뿐 아니라 계속되는 답사는 내공을 쌓아주기도 한답니다. 답사는 실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봐야 많이 알수 있고 눈이 날카로와 지는것 아니겠습니까. 답사의 중요성은 그곳에 있다고 이 연사 소리높여 외칩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입니다. 비록 맹지라고 하지만 차를 끌고 올라갈수도 있었어요.
발견!
감정평가서의 사진과 다른 점이 있어요. 묘지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평가한 이후에 어떤 분이 돌아가신거겠죠. 기존의 묘지보다 더 근사합니다.
묘비석들을 살펴봅니다. 소유자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로 추정이 됩니다.
경치도 좋아요.
축소판 서울시를 내려다 보는 느낌입니다.
송달을 받았기 때문에 공매로 들어간 사실을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새로이 묘지를 썼어요. 어떤 느낌이 듭니까? 공매에 들어갔음에도 하늘이 도와서 문제를 해결해 줄것이므로 계속 조상들을 모실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분묘기지권으로 낙찰자에게 대응하겠다는 다짐을 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해결할 준비가 이미 되어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지등기부는 지저분합니다. 경매나 공매아니면 해결할수가 없어요. 마침 공매가 들어왔네요. 그냥 내버려두는 겁니다. 예전 매입가보다 한참 떨어져도 그냥 놔두는 거죠. 왜? 맹지라는 악조건도 있고 묘지도 있으며 나름 높은곳에 있는 토지를 누가 사겠느냐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적절히 떨어지면 다른 사람 명의로 낙찰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답사 결과 매우 좋은 물건으로 판단되었어요. 상대방이 되사갈것임이 확실했거든요. 토지주인 불변의 법칙이 작용하는 물건입니다.
상대방은 이번 기일 아니면 다음 기일에 입찰할 것 같았습니다.
상대방이 이번 기일에 입찰을 한다면 최처가에 만원이상 올려쓰지 않을듯 했어요. 경쟁자가 없을것이라고 생각할게 뻔하니까요. 그래서 입찰가를 만원보다는 조금 더 올려썼어요. 어차피 그 사람만 이기면 될테니까요.
결과가 나왔습니다. 낙찰이네요. 삼만육천원 떡사먹었어요.
이렇게 낙찰을 받았던 물건입니다.
잔금은 재빨리 내버렸으니 후일 내용증명이나 잘 닦아서 날려야 겠다는 생각정도만 있었지요.
내용증명에 반응을 하면 좋은 것이고 반응이 없을 때에 사용할 플랜B도 확실히 서있기 때문에 급할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먼저 움직여버렸네요.
자산관리 공사에서 말하기를 상대방이 연락을 기다리고 있으니 전화를 걸어달라는 거였습니다.
전화번호를 받고...
느긋한 마음에 천천히 전화를 걸었습니다. 번호도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여유있게 눌렀습니다. 신호가 가네요.
중년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여보세요."
그에 대답합니다.
"여 보 세 요."
길게 늘어뜨려서 합니다. 여유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용건을 말합니다.
"아. 일전에 자산관리공사에서 전화가 온적이 있어요. 아무개씨가 맞 습 니 ....."
이렇게 말하고 있는 중 상대방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예 맞아요. 아무개씨 인가요?"
그러면서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부터 먼저 합니다. 속사포로 쏘아붙입니다.
내용을 요약을 하면 이렇습니다.
'이 명당을 구하는데 매우 애먹고 상당히 고생이 많았다. 이 명당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명당이다. 대한민국에 이만한 명당은 없다. 유명한 지관에게 명당을 찾아달라고 어렵게 부탁한 결과, 같이 명당을 찾아 헤맨 결과, 여러 명당 후보지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명당같은 명당은 없었다. 우리의 고생과 명당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염두해 둔다면 이 명당을 우리에게 반드시 넘겨야 할것이다. 놓칠수 없는 명당이다. 명당! 명당!'
그러면서 얼마에 팔것인지 물어봅니다.
대답은 뜸을 들입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져봅니다. 명당이라고 하네요. 그들에게는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땅인듯 합니다. 조금만 붙여먹고 말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꾸 명당을 강조하니 생각이 바뀝니다. 명당을 말한 횟수 곱하기 백만원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충 떠올려봐도 14번이고 실제로는 20번이 넘는 것 같습니다.
답은 대충 나왔습니다.
"저 도 명당임을 잘 알 고 있고 그래서 산 것 입니다. 저의 작은 아버지가 지관 이신데 이 땅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저의 아들이 장관이 된다고 하는 군요. 절 대 팔 지 않겠습니다."
있지도 않은 아들을 끌어대며 그렇게 말했지요.
상대방은 더 숨넘어 갑니다. 이번에는 애원을 합니다.
말속에 제발이라는 말이 들어갑니다. 명당이라는 말이 20번이었고 제발이라는 말이 네번 정도 됩니다.
명당 곱하기 백만원을 한것에 제발이라는 횟수를 곱한 가격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가격은?
16,500,000 +(1,000,000X 20X 4)=96,500,000
이렇게 부르면 전화기 터지겠지요?
잘 안돌아가는 머리로 더하기 곱하기 하면서 시간을 죽여댔어요. 결코 의도적으로 뜸을 드린것은 아닙니다.
급한 상대방은 자기의 가격을 제시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가격입니다.
상대방이 붙여댔던 명당과 달리 이제는 팔지 말아야될 이유를 명당이라는 단어를 붙여대며 설명을 했습니다. 명당이라는 이유를 들어 한번 자빠지니 상대방의 제시가격이 대폭 상승합니다.
한번 더 자빠집니다. 또 올라갑니다. 한번 더. 더 . 더 계속 자빠지니 자빠지는 대로 올라갑니다.
얼마까지 자빠졌을까요?
어느 정도 가격에 이르니 명당이라는 명분으로 팔지 말아야 할 이유도 바닥나 버리고.... 더 이상 올릴 가격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딱 거기에 멈췄습니다.
그리고 만날 약속을 했지요.
물론 전화 한 통화로 가격선만 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 하여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매도가격의 십 퍼센트를 보내라고 하는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만일 답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는 없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답사의 중요성.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토지주인 불변의 법칙! 우리에게 수익을 안겨다 줄 좋은 법칙입니다.
첫댓글 파딩님 특강들었었는데 여기서 특강듣고 다시 여기서 뵈니 더 반갑습니다~
읽으면서도 너무 흥미진진해서 끝까지 멈출수가 없었어요~ㅋ 만남후 2탄도 기대됩니다^^
너무 재미 있었습니다~^^^^
흥미진진합니다. 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아침 잠에 덜 깬 상태에서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현장 답사를 통해 남들이 보지 못한 가치를 찾는 것.. 너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배우고갑니다 멋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