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읍내 저잣거리에 웬 못보던 녀석이
나타났다.
키는 팔척장신이요, 어깨 등짝은 떡판처럼 벌어진 데다 손바닥은 솥뚜껑이요, 면상 또한 가관이다.
한쪽 눈알은 어디서 빼먹었는지 가죽 안대로 막았고 콧잔등은 주저앉았다.
그가 주막에서 벌컥벌컥 탁배기를 마시고 있는데 터줏대감 왈패들이 텃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상판대기를 보아하니 전력이 화려한 듯한데 이곳에 왔으면 신고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요?”
애꾸는 고개를 돌려 시비 건 놈을 쳐다보더니 멱살을 잡고 패대기를 쳤다.
“이게 신고다!”
깔린 목소리로 한 마디 하고 다시 탁배기를 마시자 왈패 다섯 놈이 손에 몽둥이와 방망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우당탕탕 와장창하더니 왈패들이 모두 뻗고 처박혀 부리나케 도망갔다.
이튿날 곽 참사가 동산처럼 솟아오른 배를 흔들며 뒤뚱뒤뚱 주막을 찾아왔다.
주모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참사 어른, 여기는 어쩐 일로….”
“애꾸눈 젊은이를 만날 수 없을까?”
“우리집 객방에 보름째 묵고 있습죠.”
곽 참사가 애꾸의 숙박비와 밥값, 술값을 계산하고
전날 왈패들과 싸워 부서진 문짝 값도 내자 주모는 입이 벌어졌다.
“나를 보자는 일이 뭣이요?”
애꾸가 끄트머리 객방에서 나왔다.
너비아니 안주에 청주를 권하며 곽 참사가 부지런히 소곤거리니 고개를 끄덕인 애꾸가
객방에 가서 단봇짐 하나 달랑 챙겨 곽 참사 뒤를 따랐다.
고래등 기와집, 곽 참사네 행랑채에 애꾸가 단봇짐을 풀었다.
곽 참사는 저잣거리 요소요소에 가게 열두 개를 두고 세를 받고
고리채 돈놀이도 하는 무산 제일 부자다.
왈패들이 가게를 보호해준답시고 돈을 뜯어가는 게 항상 골칫거리였는데,
애꾸가 매일 가게 열두 곳을 순찰하니 왈패들이 얼씬도 못했다.
애꾸가 하는 일은 그것뿐이 아니다.
돈을 빌려 원금을 갚지 않거나 이자를 안 내면 애꾸한테 박살이 났다.
머슴과 하인들 일년 새경이 애꾸의 두 달치 삯밖에 안 되니
보통 남정네 여섯 배를 받는 셈이다.
애꾸는 곽 참사의 충복이 돼 팔자가 늘어졌다.
곽 참사네 하인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논밭으로 나가는데,
애꾸는 행랑채에서 늘어지게 자고 해가 중천에 오를 때 부스스 일어나
찬모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어슬렁어슬렁 저잣거리로 나갔다.
여자 후리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어서,
그 상판대기로 어느새 찬모를 쓰러뜨려 상차림이 곽 참사 밥상과 진배없다.
곽 참사에 버금가는 부자 최 참봉이 개성인삼을 싹쓸이하겠다며 곽 참사에게 돈을 빌려가더니,
돈 갚는 날짜를 놀부가 제사 미루듯이 차일피일 미뤘다.
곽 참사가 화가 났고 애꾸가 최 참봉네 대문을 발로 차고 들어갔다.
최 참봉네 하인들이 안마당에 널브러지자
저녁에 최 참봉네 집사가 돈보따리를 들고 곽 참사를 찾아왔다.
그날 밤, 곽 참사가 애꾸를 치하하며 술상을 마주했다.
“자네는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나?”
“평안감사를 패대기치고 도망왔지요.”
사실은 평양의 색주 골목을 휘젓는 평안감사의 당질을 반 죽도록
패주고 도망치다가 무산까지 온 것이다.
애꾸가 말했다.
“나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뒤뜰 별채에는 뭐가 있기에 중문을 꼭 잠가놓고 개미 새끼 하나 얼씬도 못하게 합니까요?”
곽 참사는 술을 한 잔 들이키더니 비통한 목소리로 “곧 알게 될 걸세.” 하고서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한로가 지나자 무량천에 살얼음이 얼었다.
무량 다리 아래는 가마니 쪼가리로 움막을 친 거지떼들이
올 겨울도 얼어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다리 위에선 며칠째 곽 참사와 애꾸가 난간에 기대어 서서 거지떼들을 내려다봤다.
“저기 저놈 말이야.
모닥불 가에서 윗도리를 벗고 이를 잡는 놈.”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데요.”
그날 밤, 그 거지아이는 애꾸의 손에 이끌려 곽 참사네 행랑채로 와
곰국에 조기가 오른 저녁상을 받고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
“먹어라, 몇 년 전에 죽은 막냇동생이 생각나 너를 데려왔다.”
목간을 시키니 귀골이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새하얀 피부에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착잡한 마음에 밤늦도록 지각술을 마시다가 벽에 기대어
잠이 들었던 곽 참사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났다.
새벽닭이 울었다.
“참사 어른, 나와서 보세요.”
곽 참사가 와들와들 떨면서 방에서 나와 초롱을 들고 앞서가는 애꾸를 따라갔다.
“한참 끓였는데도 고놈이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네요. 히히히.”
뒤돌아보는 애꾸가 초롱불 빛에 전혀 다른 얼굴로 비치자 곽 참사가 간신히 입을 뗐다.
“나는 보지 않으려네.”
곧장 뒤돌아 사랑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아침이 되자 애꾸가 피묻은 옷을 입은 채 사랑방으로 들어왔다.
“해골과 뼈는 몽땅 추려 두만강에 버렸습니다.
밤새 끓였더니 살이 흐무러져 걸쭉한 곰국이 됐어요.”
그날부터 중뜰 구석 담 밑에 걸린 가마솥에서 곽 참사가
아침저녁 손수 곰국을 퍼서 중문을 열고 뒷뜰 대나무밭 속 별채로 날랐다.
별채 안에는 코가 문드러져 내려앉고 손마디도 떨어져 나간
짐승 같은 문둥이가 거지아이 곰국을 받아마셨다.
곽 참사의 삼대 독자다.
의금부에서 진무와 부진무가 무산에 오자 평안감사가 뒤따랐고 무산 사또는 졸개처럼 허리를 못 폈다.
갑자사화로 정 판서 일가족이 몰살 당할 때 충직한 늙은 하인이 여섯 살 난 정 판서의 손자를 데리고
야음을 틈타 도망쳐 무산까지 왔다.
늙은 하인이 독한 고뿔로 죽자 정 판서의 손자는 거지가 돼 무량 다리 아래서 목숨을 부지했었는데….
한양 궁중에서 중종반정이 일어나 의금부 진무가 된 정 판서의
동생이 형님의 손자를 찾아 소문의 끈을 잡고 무산까지 온 것이다.
거지 대장의 귀띔을 듣고 곽 참사네 집을 덮쳤다.
곽 참사는 오줌을 설설 싸며 후원 별채 문둥이 아들 이불 밑에 고개를 처박았는데,
애꾸는 태연하게 그들을 데리고 산 속으로 걸어가 무수암에 다다랐다.
까까머리 동승이 작은 할아버지 품에 안겼다.
문둥이가 마신 곰탕은 보신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