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문화(52) - 프랑스의 미주 대륙 진출
*미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프랑스와 영국의 다툼을 다룰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노르망디와 부르고뉴 지방 사람은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다.(바이킹의 후손) 이들은 아프리카 서해안에 식민지를 건설한 후 더 진출하여 미주 대륙에 닿았다. 카나다 지역에 정착했으나(심지어는 뉴플랜드에서 한 해 겨울을 보내기도 했다.) 모험 선원들은 죽도록 고생했다. 국가도 이들로부터 이득이 없었으므로 미주지역 모험 활동에 보조금을 끊어 버렸다.
이후 60년이 흘렀다. 프랑스도 다른 나라를 보고 해외에 관심을 가졌다. 앙리 4세 때는 내전이 끝나자(위그노 전쟁) 미주대륙으로 눈을 돌린다. 카나다 지역과 무역을 텄고, 1604년에는 모험 이민자를 모집하여 카나다에 정착시켰다 이들은 고생고생 끝에 퀘백에 정착촌을 만들었다. 이때의 지도자가 상플랭이다.
이들은 퀘벡 지역의 인디언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면서 도움을 받는다. 인디언 부족이 적대 부족인 이로퀴아 족과 싸울 때 총을 공급하여 승리하도록 한다.
퀘벡에서 이득이 될만한 것들이 없자 서쪽으로 진출하여 오대호 지역에 이르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미시시피 유역을 프랑스 지배 지역으로 만들었다. 루이지니아 지역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