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역: 道의 의지에 따라 우주는 생기 가득하고 만물은 德을 품었기에 그 작용은 어린아이에 비교할 수 있다. 생기가 충만하였기에 벌, 전갈, 독사도 물지 않고, 맹수도 덤비지 않으며, 독수리도 채가지 않는다. 근골은 무르고 약하지만 단단하게 쥘 수 있고, 음양 합을 모르지만 道와 德을 모두 품었기에 精(生氣)의 충만함은 극에 이른다.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조화의 지극함 때문이다. 生氣가 충만하면 절대로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 조화로움을 아는 것을 常이라 하고, 常의 이치를 깨달음을 밝음이라 한다. 살고자 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고, 기를 써서 사용하는 마음은 강하여 억지스럽다. 物이 극에 이르면 늙어갈 뿐이다. 이는 道가 아니요,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55章은 德의 속성을 갓난아기에 비유한다. 德은 아기와 같은 성질이다. 아이란 어떤 의미일까? 참고로 道德經에서 설명하는 道와 德의 차이를 비교해보자.
道 - 우주 근원, 氣와 質 모두를 포함한 에너지 - 壬
德 - 지구자연을 운행하는 도리, - 癸
道나 德과 같은 용어들은 이해하기 어렵기에 癸의 특징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癸(계)는 빅뱅당시의 폭발력으로 척력이며 팽창하며 균형을 유지하며 만물에 생기를 부여하는 에너지다.
含德之厚 比於赤子(함덕지후 비어적자)
德을 품은 두터움은(德의 작용력은) 어린아이에 비교할 수 있다. 이 문장을 德을 품은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다.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막 태어난 새끼들은 어떤 짐승도 건들지 않으며 본능적으로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신기한 작용이다. 그것이 神의 의지리라. 갓난아이를 등장시킨 老子의 의도는 순진무구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갓난아이에게는 생기의 충만함이 넘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위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다. 갓 태어난 짐승을 보호하려는 태도는 생명에 내재한 道 때문이다.
蜂蠆虺蛇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봉채훼사불석 맹수불거 확조불박)
벌, 전갈, 독사도 물지 않고, 맹수도 덤비지 않으며, 독수리도 채가지 않는다. 갑자기 동물농장이 등장하지만, 老子가 강조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弱者, 道之用이다. 부드러움이 道의 본성이다. 조물주는 부드러운 생명체들을 쏟아내려는 것이다. 老子는 이런 이치를 동물의 위협에 비유하였다. 막 태어난 생명체는 어떠한 위협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짐승들의 위협도 두렵지 않다. 생기를 가졌기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골약근유이악고 미지빈모지합이전작 정지지야)근골은 무르고 약하지만 단단하게 쥘 수 있고, 음양 합을 모르지만 도와 덕을 모두 품었기에 精의 충만함은 극에 이른다. 갓난아이의 근골은 무르고 약하기에 힘이 부족하지만 필요할 때는 강한 힘으로 쥘 수 있고, 아직 세상의 이치를 모르지만 도와 덕 모두를 내면에 갖추었기에 精(生氣)이 지극히 충만하였다. 精은 生氣의 충만함이다. 생기가 넘쳐 최대로 부드러운 상태가 갓난아이다. 생기가 충만한데 어떤 위험이 있을 것인가.
終日號而不嗄 和之至也(종일호이불사 화지지야)
종일 울어대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조화의 지극함 때문이다. 종일 우는데도 목이 쉬는 일이 드물다.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을 정도로 목청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생기로 충만하면 절대로 지치지 않는다. 和는 冲氣以爲和의 和다. 생기로 가득차 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사방팔방에서 아이를 보살피려고 하는 이치다. 누가 감히 아이를 싫어하는가?
知和曰常 知常曰明(지화왈상 지상왈명)
조화로움을 아는 것을 常이라 하고, 常의 이치를 깨달음을 밝음이라 한다.
益生曰祥 心使氣曰强(익생왈상 심사기왈강)
살고자 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고, 기를 써서 사용하는 마음은 강하다. 인위적으로 추구함을 祥이라 부르며 자연스럽지 못한 기운을 사용하는 것을 强이라 부른다. 이런 행위는 모두 덕을 벗어난 것이다. 常, 明의 이치를 따르고 祥, 强의 억지스러움은 버려야 한다.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물장즉노 위지불도 불도조이)
物이 극에 이르면 늙어갈 뿐이다. 이는 도가 아니요, 죽음을 재촉할 뿐이다. 모든 물형은 生旺墓 과정을 벗어나지 않는다. 陽氣가 극에 이르면 陰氣로 바뀌어 物形을 갖추고 쓰임을 얻지만, 딱딱해져 생기를 잃고 죽음에 이른다. 억지로 益生하고 心使氣하려는 행위는 명을 재촉할 뿐이다. 삼각형으로 표현하면, 物壯은 꼭지점으로 상승과 하강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위로 오르던 사람은 꼭지에 도달하고 추락할 일만 남았다. 이런 상태가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