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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론
한국에서 내셔널리즘, 일본이 번역해서 한국에 민족주의는 우파와 보수측에서도 그리고 좌파와 진보측에서도 정파나 입장에 따라 마음대로 사용되곤 합니다. 문제는 이 민족이란 녀석은 동아시아 지역과 같이 고립된 지형에 위치한 세계사적으로 보면 상당히 예외적인 사례에 있는편입니다.
이 내셔널리즘이 서구에서 번역되어 들어올때부터 기본 원 뜻과 상당히 뉘앙스나 의미가 다르게 들어왔을뿐더러, 초창기 일본제국 시기 좌파에서는 타파의 대상이자 아시아주의를 위해서 넘어서야할 관문으로 인식하기도 했고, 그 반대로 제국주의를 휘두를 국력이나 공업력이 되지 못했던 한국과 중국 베트남등 식민지 내지 반식민지 지역에서 기존 좌파적 통념에서 국제주의적 연대로 넘어서야할 그것에서 식민지 해방을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 또는 반제국주의란 공산주의와 민족주의가 혼합되는 경우도 흔했지요.
대표적으로 북베트남과 호치민이 그러한 경우였고, 조선시대 독립운동가중 사회주의자가 많았던게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근현대 즉 서구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해 직접적으로는 서구의 식민지,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서구화에 박차를 가한 일본이나, 서유럽의 사상이었던 사회주의를 이어 받아 세계 최초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었다던 소련등을 통해 그외 세계로 더 뻗어나가 작금에 이르러서는 전세계적으로 인식하는 현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고찰해봐야될점은 민족주의와 민족은 과연 어떻게 정의되는가 그리고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동아시아에서 어떤방식으로 유입되고 해석되었는가입니다. 동시에 작금의 민족주의의 양상은 어떤가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면 글을 들어가겠습니다.
I. 내셔널리즘의 정의
내셔널리즘의 뜻은 민족과 국가의 이해관계와 이익이 그 국가내 개개인과 각종 이해집단의 그것을 초월하는 최우선이자 지고의것이 되어야 하는 개인과 국가간의 계약이자 대전제입니다. 단순 내 공동체라고 느끼고 인식한다로는 충분하지 않다는것이죠. 오히려 그런 개념은 ~주의라고 붙일만한 이데올로기라기보다 그냥 인간 그리고 인간 이전에 영장류 동물이 하는 자신의 가족과 영역 침범에 대한 호전적인 성향으로 나오는 생물 고유의 본질적인것입니다.
하지만, 내셔널리즘은 내 집안과 고향으로부터 수백~수천km 떨어진 지역의 이해관계일지라 하더라도 같은 국가이기에 내 자신, 가족, 그외 내가 속한 여러 집단을 넘어선 자기가 속해있다고 믿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마땅히 희생하고 국가의 이익과 국가에 위협이 되는 세력을 누르기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게 만들었죠.
그렇기에 내셔널리즘이 서구사회에서 절정에 도달했던 1~2차대전기는 설령 내 가족과 지역사회가 후방에서 큰 위협을 느끼지 않더라도, 수백 수천만이 입대 하는것을 사회에서 묵인 및 동조했고 실제로 독일은 1939~1945년 5년간 총동원 병력 1,810만, 소련은 3,447만, 민주정이라는 미국조차 1,635만명을 동원할수 있었지요. 그리고 이 때 군대에 입대하지 않은 자들은 경원시되거나 조롱감이 되기 일수였고 말입니다.
애초에 소련 및 스탈린이 초기에는 그래도 국제주의와 세계 노동자들의 연대 및 공산화등 좌파적 이데올로기로 단결을 외치다가, 2차대전기에 진입하면서 러시아의 민족주의적 신화의 상징이 되버린 넵스키등을 포스터로 만들어 민족주의를 부추기자, 부
르주아지를 타파하자는것보다 독일놈을 쳐부수자는게 훨씬 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소련은 성공적인 총력전을 진두지휘할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민족주의의 형성은 공교육과, 철도등의 교통, 우편 시스템과 라디오등의 통신 및 교류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같이 가는수밖에 없던것이지요. 왜냐면 일단 민족주의가 뿌리잡기 위해선 각 지역끼리의 동질적인 정체성을 심어주는게 기본인데 전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언어와 관습은 물론 제도마저 18~19세기 이전까진 제각기였기 때문이죠. 아예 외세 왕조가 대대로 군림했던 이집트 및 중동이나 인도 지역은 말할것도 없었고 말이지요.
물론 이러면 왜 서구 얘기를 하느냐 하겠지만, 그것은 그들이 최근 전지구적으로 정복과 지배에 성공하면서 역사의 승자로 적어도 현재까진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부분입니다. 동아시아는 최근 K-pop과 같은게 오기전까지만 해도 항시 미국-유럽등지에서 사상과 문물을 전파 '받는' 입장이라고 심지어 한국 지식인들마저 그리 생각했지, 역이 될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으니까요.
당장 주위를 둘러보시면 동아시아인들이 입는 일상복과, 거주하는 집등은 이미 완전한 서구화를 이룬게 좋은 사례가 되겠지요. 여하간, 동아시아나 한반도 전통의 것이 아닌 여하간, 애초에 현재 세계 자체의 달력, 시간부터 거의 모든 기준 자체가 서구의 것으로 되어있고 그것은 싫건 좋건 현실 그 자체가 된 상황입니다.
마찬가지로, 민족주의 아니 민족주의란 용어 자체부터가 서구에서 수입된 서구의 용어인건 역사적으로 아예 기록으로 남은것이
라, 이건 부인할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이 내셔널리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유래를 찾을려면 서구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과거의 궤적을 따라가보는수 밖에 없지요.
II. 내셔널리즘의 기원
헌데, 한국과 동아시아 등지에서는 외세의 저항이나 이민족에 대한 반감이 타 지역보다 더 강했기에 특수성을 주장하기도 합니
다. 그래서 우리는 서구의 그것보다 일렀다고 하는것이죠. 하지만 이는, 위에서도 말했듯 시대 불문하고 보인 흔한 이질적인 세력에 대한 배척과 같은 감정이지 내셔널'리즘' 이라고 불리기엔 미비한 측면이 많습니다.
또는 아예 민족주의가 고대 중세부터 있었다는 주장에서 수위를 낮춰, 원민족주의 내지 초기형 민족주의 ( Proto-Nationalism ) 이 있었다고 주장이 되기도 하나, 이는 자본의 재창출이 가능해짐으로서 '~주의' 로서 자본주의와 단순 상업적 정
신을 가진 중세 이탈리아나 남서유럽 상인들에 의한 "상업적 정신"을 역사학자들이 구분하면서 자본주의가 이미 수백년 내지 거의 천년전부터 싹텄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것과 비슷한것이지요. 한반도의 경우 이런게 다른 지역보다 심하지 않고, 우리와 다른 외세에 대한 구분이나 배척은 있었을지언정 총력전을 시행 가능한 국민국가의 기반이 되는 내셔널리즘과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애매하고요.
물론 동아시아내 국가간 서로 멸망전이라 불릴만한 대규모 전면전이 있었음을 예시로 드나, 서로간 멸망까지 가는건 중동 지역이나 심지어 그리스내 폴리스간 전쟁에서도 있었던것입니다. 총력전의 본 의미는 후방에 있는 여성 및 모든 민간인까지 그 전쟁을 위한 생산 및 동원체계에 구성되어 전쟁역량에 일조하게끔 하는것인데 이는 해당 국가가 그것을 실현시킬수 있는 집행력과 그걸 인민들로부터 공감대를 받을수 있는 지지세가 기반이 되어야만 합니다. 한 예로, 중국 통일왕조들의 국방비는 재정대비 해선 80~85%에 육박하곤 했지만, GDP 대비 해선 2~3%였던 반면 총력전 당시 열강들의 GDP 대비 국방비는 평균적으로 65~99%에 이르렀습니다.
중국에서의 사례만 보더라도 원나라의 대도독이라 불리던 장홍범은 엄연히 한족장수 였으며 주원장에 맞서던 지역내 향신들 상당수는 원나라에 충성을 바치던 지방 유지였습니다. 사실 한족부터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그런 순혈적인 민족보다는 한나라 이후 기존 중원지역의 국가들과 초, 진 등 오히려 당대 기준으로 오랑캐가 더 많다고 하는 국가들이 한나라의 오랜 치세 이래 점차 동화되어 정체적인 공유감을 지니게 된거니까요.
그러면 본제로 돌아와 내셔널리즘은 어디서 시작된것일까요? 마키아벨리가 처음 언급했고, 스튜어트 밀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떠할정도의 극악한 범죄조차도 허용하는" 국가이성 (Raison d'Etat)의 발현이 본격화되고 본격적으로 근대적 관료제를 통한 행정력으로 전국에 파리와 일드프랑스에서 쓰이는 프랑스어의 보급으로 오히려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와 더 비슷하게 들린다는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아어까지 프랑스란 국민국가가 통치하는 영역내에 있는 모든 집단을 프랑스의 이익에 헌신하고 복종케 만들면서 탄생했다고 봅니다.
비록 영미권의 몇몇 학자들은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혁명을 세계사 최초의 내셔널리즘과 국민국가의 태동이라고 보기도 하나 (1), 일단 학계의 통론은 18세기말-19세기초 프랑스와 프랑스 혁명을 시작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2)(3)(4)(5)(6) 과는 다르고 특히 영국은 공교육의 시작이나 발전과정에서만큼은 프랑스나 프로이센보다 후발주자에 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래서 정치적 근대화는 프랑스 혁명으로, 경제적 근대화는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비롯되었다는 얘기가 있을정도니까요.
그러나, 프랑스에서 시작해 프랑스 혁명으로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던 내셔널리즘에서 슬슬 분기점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왜냐면 전세계적으로까지 갈 것도 없이 유럽내에서조차, 프랑스와 같은 강력한 행정력을 가진 정부와 집행력을 행사할만한 무력을 보유하며 동시에 교육 및 통신 인프라를 구성까지 가능한 국가와 정부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One Nation, One State는 커녕 수백개의 국가로 쪼개진 독일에서 사상과 현실과의 괴리는 심각했습니다.
III. Ethnic group과 Nation
독일의 경우 대공위 시대 그리고 금인칙서 이후 영방국가화 되던것이 30년전쟁 이후 아예 공식화 되면서, 설령 비슷한 독일어와
습속을 지닌 집단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하나로 묶을 정치조직은 존재하지 않았고, 저지대 독일어와 고지대 독일어의 차이도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었고, 독일 일부는 덴마크나 스웨덴에, 일부는 폴란드의 영토거나 종속된 속국이었기에 더더욱 난해해졌죠.
그렇기에 이러한 정치체들마저 각기 사분오열된 상황에서 이것들을 하나로 뭉치고 단결케 해서 현 중부유럽 지역에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줄만한것으로 내셔널리즘이 주목받았으나 방금 말했듯이, 통일된 국가로서 수백년을 이어온데다, 각 지역들을 파리와 일드프랑스의 그것과 정체성을 동일시하게끔 만드는 작업을 할만한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등지에서 내셔널리즘은 기존 Nation을 중심으로 삼는 그것에서, 독일어랑 독일 관습을 따르는 그들 (Ethnic Group) 을 아우르는 사상으로 독일의 현실에 맞게 변형을 거칩니다. 여기서 게르만족의 '혈통' 은 나치독일에선
내세웠지만, 실증적으로는 운운하기 힘든게 애초에 엘베강 이동으로 즉 추후에 독일 통일의 주력세력인 프로이센의 상당수
주민들부터가 "게르만적인 관습과 언어를 받아들인 Oborite등의 서슬라브족" 이였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독일 내셔널리즘이 현실화된 독일제국은 독일내 상공인들의 신화이지, 기존 봉건귀족들의 그것이 아니라고들 합니다. 애초에 융커 및 지주계층은 독일이란 국민국가의 일원보다, 자신의 영지를 통치하며 군림하는 영주로서의 정체성이나 자부심 및 이해관계가 더 컸으니까 말입니다.
핀란드의 건국 주역중 하나인 만네르하임은 자신이 핀란드에 대대로 거주한 스웨덴계라는것보다, 러시아 제국의 귀족이자 로마노프 황가에 충성하는 신하로서의 정체성이 실제로 강했고, 그가 러시아에게 등을 돌린건 러시아 민족주의에 대한 핀란드인의 수호라기보다, 러시아 황조를 살해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반발감이 더 컸던것과 비슷하지요.
여하튼, 민족주의는 프랑스와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미 그레이트 브리튼이라는 단일 국가를 이루고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등 ethnic group이 다른 여러 지역을 통합한 영국의 Civic Nationalism 즉 시민 민족주의와, 습속과 언어등을 중심으로 하여 Nation 이전에 ethnic group이 중심이 되서 통합을 외친 Ethnic Nationalism 종족 민족주의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 와중 흑선이 들이닥쳐 미국이 일본을 개항시키고, 일본이 유럽과 미국에 지식인들을 견학 보내어 서구의 문물을 배워오며 정치제도, 무역, 세제, 법제, 군사제도등을 배워오면서 동시에 학습한것은 국가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뭉치게 하는 이 국민국가란 녀석이었고, 막부와 여러 번과의 이해관계로 조율되었고 그마저 분쟁으로 단합성이 깨진 당시 일본의 상황에서 매우, 매우 매력적일수 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여기서 일본의 자신에게 유리한것만 취한다는 특유의 습성답게, 해군과 식민지 및 금융은 영국의 그것에서, 건축, 요리, 민법 및 초기 육군제도는 프랑스에서, 보불전쟁 이후 국가발전 방식과, 제도, 육군, 내셔널리즘은 독일에서 가져오게 됩니다. 이렇게, 동아시아에서 서구화와 근대화를 가장 일찍 단행한 일본은 당시 만세일계와 야마토 정신으로 표방되는 단일민족국가를 주장해야만 했고, ethnic group과 nation이 크게 다를게 없다는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8~9세기까지만 해도 현 아이누족의 조상뻘이라 할만한 죠몬계가 현 일본 도호쿠 지역에 엄존하고 있었다는것은 사실입니다.
즉 상당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자의적 해석을 했고, 또 일본을 통해서 서구의 문물과 사상을 수입하던 한국, 중국, 베트남등지에 이러한 개념은 즉각 퍼져나갔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민족 세력에 대한 거부감이 종종 보입니다만, 중국의 내셔널리즘 발전사라는논문에서도 지적하듯(8) 중국의 이민족에 대한 반발은 중화라는 민족에 대한 내셔널리즘이라기보다는 중화세계를 이루는 문명과 천하관을 어지럽히는 오랑캐 (夷) 들에 대한 반발감 및 적대심에 가까웠고요.
하지만 이는 자신과 이질적인 집단에 대한 선민의식 및 적대감으로 고대 그리스 폴리스 사회에서도 보이는것으로 동아시아 이외 역사에는 큰 관심이 없는 한국에서는 인지를 못하는경우가 많으나, 아주 특별한 동아시아만의 특수사정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현재 중국이 가지고 있는 내셔널리즘의 양상과 전개는 아편전쟁 이후 중일전쟁과 국공내전까지 공산당에서 말하는 굴욕의 100년을 통해서 단계적으로 형성된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8) 실제로 굴욕의 100년 이전의 중국 왕조들은, 국민국가의 필수적인 요소중 하나인 국가를 대표하는 "공식 국명" 이나 "국기" 란게 없었고, 청말에 가서야 생기기 시작합니다. (9)
이렇게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내셔널리즘, 또는 민족주의라 불리는 그것은 그 외 동아시아 국가들에도 일본을 통해 수입됩니다. 조선시대의 경우 여진족 및 왜인들을 구분키 위해 족류라는 말을 사용하긴 했으나, 이는 민족주의의 그것과는 의미가 달랐고 본격적으로 "민족" 이란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것은 1900년경으로 특히 근대 중국 사상사의 거성중 하나인 량치차오가 음빙실문집에서 지리, 혈통, 형질, 언어, 문자, 종교, 풍족, 경제 생활의 공통성을 지닌 집단이라고 한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일본이 받아들인 독일의 종족적 민족주의의 그것과 거의 일치하고 있죠. 중화사상과 민족주의가 다름을 보여주는 명확
한 근거로, 량치차오는 당시 "중국이 공식 국명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것만큼 나를 창피하게 만드는 일은 없을거" 라고 개탄한바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한반도의 민족이란 용어의 역사를 보자면, 일본에서 번역된 민족이란 개념을 중국 사상계를 통해 받아들였고, 이것이 대중에게 확산된 기점은 1919년 3.1 운동과 1920년대 들어 신문 및 잡지가 발간되며 촉발된 문화운동입니다.
사실 이와중 독립운동가에서도 이 민족 개념에 대해서 첨예하게 갈렸는데, 민족주의자들에게의 민족은 "영속적인 유기체" 였던 반면,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하나의 소비에트가 되야한다는것을 목표로 삼던 사회주의자 입장에선 "민족이란 자본주의 시대에 나타난 일시적인 역사의 열병이자 계급 투쟁을 방해하는 반동적 사상" 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민족주의 광기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북한조차 1960년대까지 "민족주의는 곧 부르주아 민족주의" 라고 얘기했습니다. 물론 이후로 주체사상의 대두와 함께 "조선민족 제일주의" 로 대체됩니다.
즉 단일민족론은 이 시기조차도 확고한 주류가 아니였고 본격적으로 대두된것은 일제가 무너지고 미-소 군정이후 One Nation One State의 현실이 사실상 무너져버리는 위기에 직면하자, "한민족 = 단일민족" 설이 제기 되기 시작해 국민적 단결을 위해 대중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퍼져나가는 민족주의를 애초에 일제시기 종족적 내셔널리즘이 각인되다시피했던 박정희가 군부시기 더욱 더 강조했지요. 그것이 바로, 일부 좌파 진영에서 민족주의는 단순 군부와 자본주의적 산물이라고 오도하는 이유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5.18 이후 항상 우파의 전유물이었던 민족주의가 좌파 진영으로 넘어가는데, 이때 좌파는 기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보다는 오히려 3세계에 유행하던 해방주의와 마오주의의 영향을 진하게 받았고 제국주의 타파라는 반제국주의적 속성을 제외하고는 기존 좌파와 사회주의 조류에서 벗어난 민중적 민족주의론이 형성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좌파는 민족주의적이다라고 생가하는 한국 대중내 오해인데, 원래 좌파는 위에서도 얘기했듯 민족을 제국주의자들이나 자본주의 열강들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이자 우월한 사회주의에 의해서 소멸할것이라고까지 보았습니다.
실제로 1930~1940년대까지만해도 소련의 코민테른은 당대 열강들이었던 프랑스나 이탈리아 공산당에도 영향을 끼치고 국제적 연대를 강조할정도 였으니, 세계의 변방에 속했던 동아시아 변방 지역은 말할것도 없었지요. 그리고 프라하 진압 이후 코민테른의 영향력은 큰 쇠락을 겪고요. 이로부터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소련과 구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중국,베트남, 쿠바, 라오스, 북한등 4~5개 국가를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를 외치던 국가들이 전부 붕괴함에 따라 기존 민중적 민족주의와 민중의 변혁주체론에 대한 세가 사그러들고, 동시에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가 진행되며 굉장히 흥미로운 변화가 관찰되죠.
바로 한국내 자유주의적 우파의 탄생입니다. 민족주의와 배타주의는 앞서 말씀드렸듯 우파의 전유물이었으며 우파는 권위주의, 보수주의, 가족주의를 통해 국가가 크나큰 가정이 되기를 지향했고 지역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산업화마
저 거부해야 된다는 세력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포르투갈의 유연한 파시스트라고 불렸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있습니다.
허나,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자 제 3세력의 대표중 하나였던 자본가 세력이 산업혁명으로 공장주가 되어 새로운 기득권으로 자리잡았듯이, 19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진보주의 운동의 아방가르드이자 좌파와 협력하는 입장에 있던 자유주의자들은 인류역사상 전례 없는 자본과 인력의 노동과 함께 자본가들이 국제주의, 자유주의를 표방하게 됨으로서 오히려 기득권에 가까워지게 되는 기묘한 결과를 낳고, 기존 국제주의를 외치던 좌파 및 진보주의 세력들 또한 소위 말하는 거대자본과 손을 잡게 되는 기묘한 형상을 보게 되죠. 10년전까지만해도 서로 적대하던 그 세력들이 결혼까지 성사하게 된것이고요.
이에 따라 기존 민중과 노동자 진영을 대변하는 대표자가 사라졌고, 그 자리를 꿰차는건 기존 권위주의 우파도 아니고, 세계화 이후 대두된 시장주의 및 자유주의 우파도 아니며, 해방주의를 외치는 3세계 마오주의 세력도 아닌 1960~70년대 트로츠키주의에서 변형된 신자유주의 세력도 아닌, 인종주의-백인우월주의를 외치며 하류층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으며 성장한 "대안 우파" 세력입니다.
IV. 내셔널리즘의 초양극화
이렇게 기존 내셔널리즘은 더 이상 지식인층과 지도 엘리트들이 이끄는 사상도, 제국주의에 대한 억압을 타파하는 민중의 사상도 아닌 다른 의미로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가 섞인 대안우파가 서구권에서는 그 자리를 꿰차게 되었습니다.
한국도 최근 그것을 수입해서 우파에서는 이미 사실상 사멸되가고 있는 전통적 권위 보수주의 우파대신 시장 & 자유주의적 우파와 대안 우파가 대립하고 있는 한편, 좌파 진영에서는 대안 우파의 사회현상에서의 극우적인 요소는 혐오하지만, 동시에 내셔널리즘 선호라는 측면에서는 접점이 생기는 희한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고요.
이것은 위에서 말했듯 거대 자본과 자유주의자 및 국제주의 및 소수인종 & 민족 존중을 외치는 PC등으로 대표되는 신좌파 진영의 영합에 따른 결과로, 개도국들과의 임금경쟁 및 자신이 나고 자란 커뮤니티에 유입되는 소수인종 및 다문화에 따른 일자리 경쟁이나 자산 가격 폭등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 틈을 노린것이 바로 대안우파인것입니다.
한편으로 이 불가능해보일거 같던 좌-우 대합작이 가능해졌던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드리자면, 일단 첫번째로 19세기와 20세기초까지만 "본래 보수주의자" 를 통칭하며, 상당한 세력을 지니고 존재하던 왕정주의자 및 봉건주의자들은 사실상 정치세력으로서 구심점을 잃고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원래 이 봉건주의자 및 지주에 대항하던 자유주의 세력은 기득권으로 올라섰고, 그들 입장에서 자본의 세계화 및 노동자의 레버리지를 약화시킬수 있는 인간과 자본의 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이동은 크나큰 이득이 됩니다.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적 좌파 입장에선 애초에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야 된다는 입장이니 자국 노동자가 '마르크스주의 이론적으로 자본주의의 일시적인 현상인 민족주의 때문에' 자국 노동자들이 더 경쟁하게 된다해도, 지구 반대편 노동자들에 이익이 되고 전세계 노동자들의 소득이 성장하고 의식이 각성될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죠.
또한, 신좌파들 입장에서는 인종 차별 반대 및 소수인종과 소수민족 비주류 세력를 안고 가는게 그들의 알파이자 오메가인데, 백인 제국주의 국가들 및 그 일원들의 세가 약해지고 동시에 여러 개도국들이 성장하며 개도국 시민들이 서구 선진국에서 힘을 키우는것을 반대할 이유가 크게 없습니다.
다시 말해, 기존 주류 정치계는 사실상 일종의 신성동맹을 맺은 셈이죠. 실제로 한국만해도 윤석열부터 홍준표, 이재명부터 이낙연까지 다문화나 이민 관련해서는 큰 반대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한국의 외국인 인구는 인구비중에서 5%에 근접하기 시작했죠. 일본이나 중국에 대한 스탠스나 역사 문제에 대해선 말이 많지만 이런 부분에선 놀라운 일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사실상 정치세력이라고 보기 힘든 민중당 같은 극소정당이나 그나마 부정적인 스탠스이고요.
특히 세계화와 IT 혁명 이후, 서구권 내 정보와 문화 트렌드 자체를 다민족, 다인종 국가이자 PC를 강력히 표방하는 미국이란 초강대국이 완전히 주도하게 되면서 현 젊은세대일수록 탈민족주의 지지세력이 많을수밖에 없고, 브렉시트만 하더라도 "영국이란 국민국가의 순결성 및 자주성" 을 침해한다고 여긴 4~60대 이상에 의해 주도되었고.
하여간, 그렇기에 소위 자신들이 기존 세력에게 버림받았고, 입장이 충분히 대변되지 않는다고 여긴 기존 열강들 및 선진국들의 하류 노동자 계층은 소위 약 90년전 1930년대 파시스트들보다 덜 극단적이면서 동시에 덜떨어지고 사상적 완결성을 지니지 못한 대안우파에 기대게 된것입니다.
그것이 최근 미국에서 트럼피즘의 약진과, 유럽내 극우들의 당선로 나타난것인데, 한국에서는 우파하면 복지 감소 이런 이미지만 떠올리니 "유럽에서는 극우도 복지를 찬성한다" 며 놀라곤 하나, 애초에 유럽의 극우 즉 대안우파들은 애초에 복지국가에 문제가 있는 자본주의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고, 오히려 하류층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아 그 복지를 "유럽 백인 노동자" 에게만 부어야된다는걸 자신들 집권 대의명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남은 현실은, 마르크스는 기술과 시대의 발전으로 노동자가 단결하여 자본가들 및 기득권
세력을 몰아낼수 있을것이라 한 때 전망했지만 그와 반대가 일어난것입니다. 오히려 기존 기득권들이 정파를 가리지 않고 범지구적으로 인종, 민족, 정파를 가리지 않고 단합하고 있으며 어릴때부터 사립 국제 학교등을 통해 영어란 세계공용어로 친목질을 하며, 강력한 단결성을 보여주는 한편, 각국의 하류층들은 정파, 종교, 인종, 민족등으로 갈리고 있는 상황으로 바야흐로 국가, 기업, 개인간의 초양극화를 넘어 세계 각국의 기득권과 서민층간의 초양극화도 이루어지고 있는것입니다.
간단한 예로 한국 굴지 재벌인 삼성회장 이재용 딸의 친구들은 미국 연방의원 딸, 독일 코메르츠방크 회장의 딸, 인도네시아 최대 담배기업 회장의 딸 및 중국 바이두 회장의 딸등 인종, 민족, 국적을 가리지 않고 사귀며 인맥풀이 커져가고 있는 한편, 중국 전랑 외교의 나팔수이던 화춘잉과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중국을 떠나 해외에 오래 기거하는 몇 안되는 이벤트가 미국에 있는 자기 자식들의 부모 상담일정도니까요.
서방을 멸망시키겠다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딸은 런던에서 명품을 사재끼기 바쁘며, 미국과 서구를 사탄이라고 칭하는 이란의 고위 자제들은 미국과 서유럽에서 유학을하며 최고급 세단과 요트에서 인생을 즐기고 있으며,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플로리다의 해안가에서 한껏 휴양을 보내는데다, 팔레스타인 지도층도 중동 부국에서 현대화된 인프라에서 럭셔리 라이프를 만끽하고 있고.
그리하여, 인종부터 종교, 관습 모든것이 다른 세계 여러 기득권들은 자신의 계급과 지위와 재산으로 민족과 국경을 넘어 통합되는 반면 하류층들은 한 때 세계 만인이 교류하고 통합되는 계기가 될 거라고 보았던 인터넷에서 오히려 더욱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며 반목하고 분열되고 있는 초양극화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V. 결론
이렇게 우리는 민족주의의 정의와 기원 그리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어떤 궤적을 따라 세계와 한국에서 발전이 되었는지에 대해 고찰하였고 이해하시리라 짐작합니다. 인류 초창기부터 있던 자기 공동체와 이질적인것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더 정교화되고 자기가 인생에서 단 한번 만나보지도 못한 이들에게까지 동질성과 공유감을 지니게 한 민족주의가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국민국가와 프랑스 혁명과 1으로 퍼져나간 유럽, 유럽이 식민지화한 전세계에 어떻게 퍼져나갔는지를 말이죠.
또한, 유럽에서 민족주의는 영국, 프랑스와 같은 이미 중앙집권 국가가 형성되어있고 여러 ethnic group이 혼재해있던 상황에서 나온 국가 그 자체에 헌신을 바치는 시민적 민족주의와, 비슷한 문화, 관습, 언어를 공유하는 ethnic group이 여러 지역에 존재하는데 통일된 국가가 없어서 고안된 독일의 종족적 민족주의라는 양대 축으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는 서구화 및 근대화를 가장 이르게 시작한 일본에서 nationalism을 민족주의로 번역하면서 동아시아는 본격적으로 공동체주의 내지 잘해야 원민족주의에 가까운것을 본격적인 국민국가의 형성 기반을 위한 민족으로 바꾸게 되고, 청출어람이라 했던가요? 2023년 현재 동아시아 지역은 세계대전으로 수천만 사상자를 냈던 유럽보다 내셔널리즘이 강성한 지역들이 되었지요.
이 동아시아 지역내에서 한반도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그 민족이란 단어가 지니는 영향력은 이루 비교하기가 힘들정도입니다. 북한은 건국 초기만 하더라도 부르주아지의 민족주의라고 통렬한 비판을 가했지만, 오히려 조선민족 제일주의와 주체사상으로 세계에서 민족주의와 국수주의가 가장 강성한 국가로 발돋움했고, 한국은 3.1운동과 문화운동 이후 민족주의가 숙성되고, 분단 이후 위기로 더더욱 국가의 단결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면서 한국 국민 다수에게는 아직도 단일민족 의식이 지배적인 시대정신으로 떠올랐습니다.
군부는 반공과 함께 국민의식 개조란 명분하에 민족주의 교육과 사회운동을 더욱이 강조했고, 좌파 진영들조차 80년대 이후 민
중 변혁론으로 대표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난 민중-민족주의를 받아들여 민족주의는 공히 한국내 좌-우 모두에게 거역할수 없는 역사적 사명과도 같았지요.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죽기 마련이듯, 냉전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세계화의 흐름은 한 때 서로 핵무기를 겨누고 지구상에서 소멸시켜야할 대상으로 여겼던 그 적수들이던 자본가들과 사회주의 운동가들을 한 편으로 묶어내게 되었으며, 그들의 자녀 및 손녀들 또한 영어를 사용하며, 국제학교 및 사립 명문교에 다니며, 국제적 커리큘럼에 따라 인종, 민족, 국적을 가리지 않고 세계 시민으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반면, 하류 서민층들은 국적과 국경을 초월해서 이전의 외부인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가 강화되던 2차대전 이후 흐름과 다르게 역으로 오히려 배타성이 강화되고, 국가 내에서도 그리고 같은 인종 및 민족내에서도 사람들의 연대를 촉진하리라던 IT에 힘입어 극단적인 파편화가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아이러니에 직면하고 있고요.
마무리 지으며 한국에 대해서 논해보자면, 저도, 그리고 이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도 아시겠지만 한국은 더 이상 80~90년대와 같은 젊은 국가가 아닙니다. 그 당시 한국은 중위연령이 20대 후반으로 아직 자신의 변화는 물론 더 뻗어나갈길이 있었지만,
이제 한국 중위연령은 46~47세로 곧 50대를 보고 있으며 자기 몸을 추스리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내셔널리즘 (민족주의)의 강점은 그 폭발성에 있으며, 약점 또한 그 폭발성에 기인하는 불확실성과 통제가 힘들다는 점에 있습니다. 하지만 금방 말했듯, 한국은 이제 너무 늙었고 더 이상 팽창과 확장, 성장보다는 안정과 유지, 그리고 노화에 따라오는 쇠퇴를 지연시켜보기위해 몸부림치는것이 주요 목표가 되버렸죠.
물론 통일이나 새로운 신산업의 창출등 돌파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단정짓긴 힘드나, 이미 북한도 한국만큼은 아니나 저출산 고령화 국가이며 한국과 통일될시 이민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출산율이 확 낮아지듯 얼마 안가 낮아질것이 유력한 상황이고, 4차산업으로 비롯되는 신산업은, 현재 14억으로 덤벼드는 중국과, 지구 90%를 지배했던 대륙인 유럽 모두가 단합해도 경쟁하기 힘든 미국이 바로 경쟁상대인게 현실입니다. 민족주의는 국운이 상승하거나 or 극단적인 위기일때 강력해지는 경향을 지니는데 한국은 둘다 아니고 점진적으로 하지만 확실하게 노화로 인해 말라 죽어가고 있고 말입니다.
다시 민족주의를 얘기해보자면, 한 때 세계 99% 인구를 지배하고 군림하던 군주정과 봉건주의, 서구 사회에서 위세를 떨쳤던 교권, 동아시아의 관학이었던 유교, 정치적 근대화를 촉발해서 생긴 고전 자유주의, 그에 반발해서 생긴 고보수주의도, 자본가를 타파하고 노동자들의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던 마르크스주의에,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세계를 뒤흔들었던 파시즘마저 모두 역사의 주역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죠.
근현대에서 가장 강력한 사상이라 불린 민족주의는 2023년 현재 지금 그걸 선도하는 제대로 된 리더가 없으며, 민족주의를 선도했던 구미에서는 PC와 다문화로, 현재 민족주의가 강성한 동아시아에서는 초저출산과 초고령화로 동력을 상실해나가고 있는 거대한 역사적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시대를 여전히 이끌수 있는 이념으로서 남을지, 아니면 옛날에 사회주의자들이 외쳤듯 일시적인 역사의 찰나에 불과한 현상에 그치고 역사란 무대의 주역에서 물러날지, 시간만이 말해줄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지금 목도하고 있습니다.
인용 출처:
1) Gat, Azar (2012). Nations: The Long History and Deep Roots of Political Ethnicity and National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214. ISBN 978-1107007857.
2) Calhoun, Craig (1993). "Nationalism and Ethnicity". Annual Review of Sociology. 19: 211–239. doi:10.1146/annurev.soc.19.1.211
3) Norman Rich, The age of nationalism and reform, 1850–1890 (1970).
4) Gregorio F. Zaide (1965). World History. . p. 274. ISBN 978-9712314728.
5) Kohn, Hans (1939). "The Nature of Nationalism".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33 (6): 1001–1021. doi:10.2307/1948728. ISSN 0003-0554. JSTOR 1948728. S2CID 144176353
6)Kramer, Lloyd (2011). Nationalism in Europe and America: Politics, Cultures, and Identities since 1775.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ISBN 978-0807872000.
7) Roeder, Philip G. (2007). Where Nation-States Come From: Institutional Change in the Age of National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5–6. ISBN 978-0691134673. JSTOR
8)Shameer Modongal | Zhouxiang Lu (Reviewing Editor) (2016) Development of nationalism in China, Cogent Social Sciences, 2:1, DOI: 10.1080/23311886.2016.1235749
9) Jiang, Y. (2012). Cyber-nationalism in China challenging western media portrayals of Internet censorship in China. North Terrace: University of Adelaide Press.
첫댓글 저도 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한국사 및 동아시아사 근세 이전에 대한 고찰은 전혀 없는 무의미한 분석에 불과합니다. 586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편집증적인 근현대사 과잉중독 및 서구중심주의가 역력하고요.
@마법의활 그러면 민족과 민족주의 개념이 고중세부터 실재했다는걸 실증하면 됩니다. 단순 연대감이나 동질성을 지녔다는 사례 몇개로 민족이 실증된다면 다키아 또한 민족이 존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근현대 사회가 서구에 의해 재단되었다는건 그냥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애초에 동아시아가 패배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왜 동아시아는 기존 생활양식을 버리고 서구식으로 전환한겁니까?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중심이 아니었다는거랑 비슷한 주장입니다. 애시당초 서구중심주의란 용어가 본격 떠오른것조차 서구지역이였고요.
@이제동 그러면 혈연지연을 초월한 연대가 근세 서구식 민족주의로만 가능했다는걸 실증해보시죠. 그런 연대가 서구식 민족주의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 건 님인데, 거기서 무슨 서구근세 민족, 민족주의 존재 실증 여부가 나옵니까? 그런 논점 돌리기로 오류를 덮는 수법은 적어도 이 까페에선 안 통합니다.
@이제동 서구식 민족주의로만 국가적 연대가 가능하다는 공허한 틀린 언설은 다키아와 무관하며,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중심이 아니라는 주장과도 무관합니다.
@이제동 서구에서도 유행 지난 서구중싱적 역사적 경험과 이론만 추종하고, 서세동점 이전 동아시아사 맥락을 무시하는 이런 허접한 분석으로는 영어 논문 수십개 싸발라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덕일은 논문 안쓰고 동북공정은 논문 안 씁니까? 참 그....
@마법의활 계속 얘기하는데 서구식 민족주의가 아니라 그냥 민족주의입니다. 논점 돌리기라뇨. 제가 민주주의에 한국식 민주주의 따위같은 궤변이 통하지 않듯 민족은 민족이라고 얘기하는데, 계속 말을 돌리시는데, 전 일일히 출처를 대면서 지금 님이 말하는 그 고중세부터 민족은 존재하는 영속적인 개념이란게 얼마나 민족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서 비판당했는지 이미 다 얘기드렸습니다만.
@마법의활 서세동점 이전 동아시아가 있었죠. 그래서 중화사상이나 유교가 서구의 것이라고 했나요? 민족은 서구에서 수입된 용어이자 개념이란건 그냥 역사적 사료로 너무 잘 드러나는거라서 한국 일부에게나 설득되지, 세계 학계에서는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입니다. 오히려 님이 말하는 그런 낭만주의적인 민족주의야말로 주장전개에 오류가 너무 많아서 이덕일 취급을 받는겁니다.
동북공정은 아예 국가단위 주도 역사프로젝트인데 아예 100년 넘게 민족주의 문제로 동유럽 서유럽 아시아 지역에서까지 학자들이 서로 주장을 하고 가려낸 결과물에 대해서 이덕일 취급하면 곤란하죠. 계속 얘기하는데 국가적 연대 = 민족주의가 아니라는겁니다만. 연대감이나 동질감 자체는 민족주의 없이도 충분히 일어난다고 이미 수없이 말한건데 계속 허수아비 치기를 하시면 안됩니다.
@이제동 그건 그냥 유럽사의 상황일 뿐입니다.
@이제동 낭만주의가 아니라 그냥 이제동 유저가 한국사에 무지하고 민족이란 맥락을 모르는 겁니다.
@마법의활 그건 그냥 유럽사의 상황이 아니라 인도,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동북아 각 지역사에 대한 비교까지 거쳐서 나온 얘깁니다. 스탈린만해도 민족주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슬라브족, 코카서스,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제부족까지 러시아내 각 종족들을 다뤘는데, 민족주의 논쟁이나 논의사에 대해서 깊게 연구하신다면 이런말 하기는 힘듭니다.
@마법의활 님이 민족이란 맥락을 잘 아시면 민족의 구성요소와 어떻게 실증될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셔야지요. 하지만 아직도 못하시고 계십니다만. 그런 방식으로는 세계 학계 및 국제사회에서 설득 안됩니다. "니가 우리 역사에 대해 무지하니까 그런것" 중국애들도 지금 그외 세계한테 정확히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중국에 대해서 잘 모르기에 오해하는것일뿐.
@이제동 아닙니다. 해당 연구들은 적어도 동북아시아사에 대해서는 기초적 이해가 결여된 것입니다. 어디서 자기 논점이 논파당했고 스스로가 철지난 서구이론만 맹종함을 모르시니 아예 진지한 토론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네요.
@마법의활 님이 가지고 오시는 고중세에 민족이 이미 실재했다는 이론은 이미 서구에서 30~40년전에 주장 전개에서 논리적으로도 논파가 된지 오래입니다. 님이 말하시는 그 철지나지 않은 민족주의 이론을 가지고 오셔서 가르침을 주시지요. 계속 동북아시아의 특수성만 주장하시지 말고요.
@이제동 나는 고중세에 본문이 말하는 민족이 존재했다고 주장한 바 없습니다. 서구와 한국의 다른 역사적 궤적에 대해 설명했고 이제동 유저가 이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입니댜.
@이제동 아 됐고 이런 민족주의가 아니면 혈연지연 초월하는 연대가 불가능했다는 근거나 갖고 와봐요. 왜 못합니까? 논문여러개 갖고 와서 지금같이 해보라고요.
@마법의활 님이 신라까지도 가능하고 고려시절에도 이미 민족정체성이 형성된다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그러면 그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시면 됩니다. 애초에 안한말로 허수아비 치기 하시지 마시고요. 제가 혈연지연 초월하는 연대가 불가능했다고 어디서 어떻게 말했는지 가져오시지요.
@이제동 내가 언제 그런 말 했어 가져와봐 따위 단말마. 드디어 나오네요. 상대해주지 않겠습니다. 됐고 혈연지연 초월한 국가적 연대가 본문에서 말하는 그런거로만 가능하다는증거 가져오라고요. 또 논점 회피하면 나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마법의활 지금 님이 주장하신바에 대한 근거와 논문은 전혀 들고 오시지 않고서, 이런말 하시는겁니까?
복붙해드리지요.
이제동12:38 새글
@마법의활 말씀하셨듯이 한반도의 지리적 요건 및 역사적 맥락상 서로간에 동질성을 지닌 집단이 있다는건 위에서도 저도 인지하는것입니다. 하지만 그것과 민족 및 민족주의는 다르다는것입니다. 민족주의를 형성하는 일부 요건을 갖춘 공동체 집단이 존재했을지언정 그걸 민족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애매합니다. 고려-조선이 중앙집권이 뛰어나다는건 맞는 말씀이고요.
이렇게 얘기했는데도, "니가 무지하기 때문, 증거나 가져와라" 라고 하시면서 님에 대해 동의를 안한다고 "특단의 조치"를 운운하시는겁니까? 지금 협박하시는겁니까? 논점돌리기요? 서구적 민족주의 운운은 박정희 한국적 민주주의 드립이나 다를바없다에는 일언반구도 안해놓으시고, 말이 지나치신데요.
@마법의활 ◎ 민족
우리나라에서 ‘민족’이란 개념의 기원은 근대 이전 여진족과 일본족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인 ‘족류’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족류’라는 용어가 조선 후기 이후 ‘동포’로 바뀌고, 20세기 이후 ‘민족’으로 바뀌었다. ‘민족’이란 개념은 1900년경 처음 들어와 1906년 이후 량치차오의『음빙실문집』의 영향으로 자주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민족’을 지리ㆍ혈통ㆍ형질ㆍ언어ㆍ문자ㆍ종교ㆍ풍속ㆍ경제 생활의 공통성을 지닌 집단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민족 개념은 민족 형성 과정에서의 ‘원초적 기반’과, 집단 내에서 공유되는 ‘문화적 기반’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https://books.google.ca/books/about/%EB%AF%BC%EC%A1%B1_%EB%AF%BC%EC%A1%B1%EC%A3%BC%EC%9D%98.html?id=BcRKAQAAIAAJ&redir_esc=y
@마법의활 ◎ 저자 소개
지은이 박찬승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미국 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 방문교수, 역사문화학회 회장, 한국사회사학회 회장, 목포대학교, 충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으며,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국학연구소) 소장,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상임연구위원, 한국사학사학회 부회장, 한국사연구회 이사, 기록학회 총무이사, 역사학회 편집위원,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김용구 교수를 중심으로 한 개념사 프로젝트의 연구진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동 박찬승 교수님 주장은 상징론쪽이지 님이 주장하는 근대론하고 알맹이는 달라보이네요
@마법의활 1. 서구와 한국의 역사적 궤적이 다른건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2. 국가적 연대 사례는 있을지언정, 19세기 이후 국민국가의 그것과 빈도와 정도에서 차이가 난다고 했으며
3. 동질감을 지닌 집단은 존재할수 있을지언정, 민족과 국민국가로 부르긴 미흡하다고
하고 최대한 서로간의 차이에서 합의점을 찾으려했는데 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시겠다면 저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松永久秀 박찬승 교수님 주장 또한 근대에 민족의 용어와 개념이 유입되었으며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는것이고, 이 본문에서 교수님 주장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마법의활 느낌적인 느낌으로 어쩌면 민족(Nation) 과 족속(Ethnie)을 혼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동 쪽지로 제게 주신 정중한 사과말씀 잘 보았습니다. 저도 사과드립니다. 좋은 하루되시길... 이 쟁점은 저는 여기까지 하고 물러나겠습니다.
@마법의활 서로간 미세한 차이로 논의를 넘어 굳이 감정적으로는 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면 논의 및 조언 감사드리며 수고하셨습니다.
민족이란 개념에 대한 토론이 이제와선 거진 쉰 떡밥이고, 솔직히 말해 본문도 민족의 기원과 정의에 대한 최첨단을 달리는 논의를 담은건 아니라서 (오히려 국사교과서급 정론같은 느낌...) 왜 위와같은 키배가 2023년에 일어나는가 좀 의아하긴 한데(...)
본문만 놓고 말하자면 근대적인 의미에서 민족,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민족주의란 개념이 도입된지 사실 굉장히 짧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이란 개념이 가진 힘이 빠르게 사그라든건 참 재밌고도 생각해 볼만한 상황이죠. 민족을 초월한 공동체 (자본이나 계급이라던지, 종교라던지)의 유구한 힘을 생각하면 어쩌면 민족이란 개념은 그저 한 개인의 문화적 정체성 확대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물론 그렇게 보면 1800년대부터 세계를 휩쓴 민족주의의 강풍을 설명하기 좀 곤란해집니다만.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세계화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흐름 속에서 민족 + 국가의 개념 결합에 균열이 커지고 있다는 관점으로 생각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서구 근대민족주의 관련 내용 자체에 한해서는 대부분은 동의하는 바 이고, 좋은 연구들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전근대 동양 특히 한국사에 적용시킬때 관점의 차이가 서로 발생하는 것 같네요. 서구권의 존 덩컨(John B. Duncan) 한국의 허준 같은 연구자 분들도 "특수성"을 강조하시는 만큼, 이런 관점의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
"일찍이 E. J. Hobsbawm과 Linda Colley 같은 학자들은 민족주의의 기원이 각각의 지역 사회가 가진 상이한 환경에 따라 다양할 수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지적은 ‘인쇄 자본주의(print capitalism)’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성의 출현’을 민족의식 형성의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한 Bendict Anderson의 전제가 모든 국가, 사회에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중앙 정부의 관료화를 바탕으로 장기간 사회 지속성을 유지해 온 한국 사회에는 유럽과는 달리 이미 전근대 시기부터 그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된 동질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사회적 집합체가 존재했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본 논문은 ‘민족’ 개념이 근대의 산물이라는 일반적 해석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을 제안한다.특히, 한국 민족의 형성이 서구 열강 혹은 일본 제국주의와의 접촉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했다는 근래 한국사 연구자들의 주장이 타당한가를 검증하고자 한다." 허준 (2021) 《조선시대 국가 정체성의 형성과 근대 ‘민족’ 관념의 출현》 국문초록
@배달의 민족 네 이전 논의에서도 얘기했듯이 nation 보다 ethnie로서 동질감을 공유하는 공동체에 가깝다 보이는데, 민족주의와 국민국가로 나아가는 민족주의적 토양이 타 지역보다는 더 갖춰져 있었고 거기서 서구에서 시작한 민족 개념을 일본을 통해 받아들이며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화했다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분 글보면 작심하고 쓰시는듯
폰으로 볼려니 장난 없네요 ㅎㅎ
엄청 장문이라 가볍게 볼수가 없네요
컴으로 다시 봐야 겠어요
좋은글 잘 읽어 볼게요
가장 탈민족주의(어쩌면 반민족주의)적인 것 같은 디씨 일뽕과 소위 "이대남"들이 PC의 수혜를 받고 그들과 손을 잡고 있다는건 좀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 같은데...
이대남들이 아닌 정치 기득권 사이에서의 얘기라 보시는게 적확할겁니다. 이대남들은 천지도 모르는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