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깡통! 넌 장작 안가져가냐? "
" 야~ 우리집에 장작이 있어야 가져가지 ! 까짓것 오늘도 파바박!! "
시골 길을 가다보면 논뚝이 무너지지 말라고 말뚝을 박아 놓은 곳이 있다.
말뚝이 뽑히면 해빙기에 논뚝이 물러앉고, 장마철이면 뚝이 터지기 일쑤다.
그러나 호적에 잉크나 말랐을까하는 열살배기 초딩들이 알리가 없다.
60년대 중반이니 40년이 훌쩍 지났나보다.
당시엔 급식으로 보리개떡같은 옥수수빵을 한개씩 주었는데,
겨울방학후 개학 때면 장작을 한개피씩 제출해야 탈 수가 있었다.
그것도 때검사를 한 후 때가 많으면 회초리로 한대씩 맞아가며 빵을 탔고,
때가 많아 맞기 싫으면 옥수수빵을 포기해야만 했던 때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땔나무를 일찌감치 장만을 하였건만
깡통은 병석의 모친과 형 뿐이라 가난도 가난이지만 집안엔 겨울을 날 나무조차 없었다.
근근이 이웃에서 땔감을 도와주었고
논마지나 농사를 짓는 양씨네가 이따금 쌀을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 말뚝이 왜 이렇게 무거운거야.."
" 얼어서 그렇지 깡통아~"
" 야~ 너 자꾸 깡통 깡통 할래? "
" 그럼 깡통한테 깡통이라고 그러지 뭐라 그러냐? "
" 간스매!! 넌 간스매다. 간스매!! "
간스매는 명찬이의 별명이고 깡통은 경수의 별명이다.
명찬이는 샘밭 미군부대의 양공주가 먹으라고 준 씨레이션을 쪼옥쪼옥 빨다 생긴 별명이고
영수는 머리가 찌그러진데다가 공부가 하빠리라 붙여진 별명이다.
통조림을 시골 아낙들이 간스매라 부른데서 생긴 간스매,
찌그러진 깡통에서 줄여진 깡통.
뿐아니라 초딩들의 별명은 하나같이 못난이 오형제의 파생어들이다.
늙은이, 밴댕이, 달팽이, 쪼다, 며루치, 닭대가리, .......
변변한 별명 하나 찾아보라면 머리 긁적이고 두눈을 반짝반짝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하지만 둘은 무척 친했다.
등수대로 자리가 배치됐는데 뒷서거니 앞서거니 꼬래비를 다퉜으니 동병상린이랄까.
" 조경수! 손 내밀어 ! "
(ㅋㅋㅋ 오늘은 두대, 아니 세대쯤 맞을거다 짜슥.)
간스매의 통쾌한 웃음은 크흡..으로 끝났지만 속으론 쾌재를 불렀으리라.
" 맞고 먹을래? 안맞고 안먹을래? "
" 맞고 먹을래요. 선생님. "
두대를 때리던 선생님은 방과후에 깡통을 남으라고 했었고
그 이유를 고등학교 졸업하고야 알았으니 극비의 썸씽이 오갔을 것이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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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었다.
깡통은 말수가 줄어들었고
성적은 달이 갈수록 책상을 건너뛰었다.
간스매와의 의리가 깨졌다느니 세상이 바뀌었다느니 반에서는 온통 난리가 났다.
깡통이 홀려도 단단히 홀렸슴이고
천지가 개벽됐슴이 확실했다.
담임선생이 틀린 답에도 동글뱅이를 쳐준 것은 아닌지
깡통녀석이 그간 똑똑한 머리를 속였던 것은 아닌지 책상을 마주보며 수근덕거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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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도 간스매도 어였한 고교생이 되었다.
깡통은 춘고에, 간스매는 강고에 들어갔고
학교는 틀려도 부랄재기하던 모습은 그대로였다.
둘은 토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교당 옥상에서 만난다.
교당은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원불교를 의미하는 것이고
교리는 진리를 찾자는 것이다.
" 경수야!"
" 응? 왜? "
" 지금껏 궁금했던게 있어."
" 뭔데? "
" 옛날에 ..옥수수빵을 타먹을 때 말이야..
그때 선생님과 무슨 이야길 했는지 알고 싶어. "
" 그게 그렇게도 궁금하니? 음....아직은 아니야. 이담에 말해줄께."
" 너와 나 사이에도 비밀이 잇는거야?"
" 비밀은 없지만 선생님과의 약속은 지켜야지."
경수와 선생님의 약속이 무척 궁금했지만 명찬은 듣기를 포기하고
법회에 임했으며 일상수행요법을 암기하면서도 내내 궁금증이 뇌를 자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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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스매가 강대를 가는 것은 그리 큰 뉴스거리가 되질 못했다.
어쩌면 시골에서 서울대를 갔다는 것에 포옥 파묻혔는지도 모른다.
깡통이 그렇게도 힘들다는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이웃에 마시를 다녀오던 간스매 어머니로부터 들은 간스매.
자신의 일처럼 기쁨이 넘쳤고 말할 나위없이 깡통네로 줄달음을 치는 간스매.
" 축하한다. 깡통! "
" 응 고마워. 너도 합격했다며? 축하해.."
" 우리 술 한잔 어때? "
" 그럴까? 그런데..."
깡통은 그제서야 털어 놓을 수가 있었다.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켰으니깐.
선생님은 깡통이 마을에서 제일 가난했으며
모친이 아프다는 사실과 옥수수빵이 깡통의 주식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깡통은 누구보다 끈기와 의리가 있다는 것을 간파,
월급을 쪼개어 깡통네를 돌봐주는 대신 서울대를 합격하는 것으로 빚을 갚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 선생님께 먼저 감사의 전화를 드려야겠어"
" 그래. 그래야겠지? "
동네에 전화기라곤 이장님댁 밖에 없으니 그리 뛸 수밖에.
곤두박질 치듯 달려간 깡통과 간스매.
" 선생님 저 깡통인데요. "
" ㅎㅎㅎ 그래 안다. 네 별명이 깡통이었을걸 아마? 축하한다 경수야.."
불쑥 튀어나온 깡통! 자랑보다는 쑥스러움과 겸손의 복합어였으리라
" 선생님 어디세요? 뵙고싶어요."
" ㅎㅎㅎ 녀석. 네 고등학교에 있단다. 네 담임선생이랑 고교 동기란다 녀석아. 오거라.."
" 간스매라고.. 명찬이랑 같이 갈께요 선생님.."
" 그러거라 녀석들..."
그랬다.
옥수수빵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선생님과 약속을 했던 깡통, 훌륭히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선생님 또한 깡통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쏟았다는 사실,
그 사실에 간스매도 진정 정과 약속과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요.
그리고 간스매와 깡통도 복 많이 받길......
2008, 1, 8. 왕달팽이 상구書
원사 횐님들도 기쁨과 행복이 넘치시길요~
첫댓글 우리가 어린시절 초교 시절때 일을 소설로서썼네요...옛시절 어려웟던 시절 생각이 나는군요... 지금의 아이들 꿈에도 상상조차 못할 일이지요. 글 잘보고 갑니다...오늘도 해피데이.....!
옥수수빵에서 밀가루빵으로 바뀔 때쯤 장작 제출이 없어졌었지요..형님 그즈음 중딩이었겠구먼유 ㅎㅎ 형님도 해피 뉴 이어 입니다~
중앙시장에 세 상구도 그렇게 정든게 있지요? 그러면서 커가다가 이젠 더 클데가 없는게 아쉬워요...ㅎ
요즘 중앙시장의 명물들(두명의 상구)은 뭐하나 몰러..ㅎㅎ 지긋 지긋한 사람들이었지..우무개님아 오늘도 좋은 날여~~
내게는 내 사정을 뻔히 아는 선생님이 없었다는거...겨우 옥수수빵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의 형편이었다는게 아쉽다는거...모야...ㅋ
그 시절엔 손등에 때들이 많았지요. 추운데도 딱지및 구슬치기에 코가 흐르면 손등이나 소매로 쓱싹했으니 말입니다. ㅎㅎ 회초리로 맞으며 받아든 옥수수빵, 그 맛 아주 죽여줬습죠 네. ㅎㅎㅎ 좋은시간 되시길요~
예전에 상구 형님이 드뎌 나타나셨네...정겨운글 잘 보고 갑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돈 많이 버세요...
반가워요 태성씨... 그렇찮아도 버플과 통화하며 태성씨 야글 했었는디..잘 지내는거죠? 복 많이 받으시고..님도 돈 많이 버셈^^
깡통님은 훌률한 스승님을 두셨네요...그리고 깡통님은 지금 어떤일을 하고 계시나요 ~~~
모대학 교수로 있지요. 그래도 만나면 깡통 !! ㅎㅎㅎ 스승님은 3월 초에 정년퇴임이라시네요. 교대 졸업후 우리를 맡은게 처음이었다는군요. 퇴임식 때 친구들과 찾아가려구요.. 같이 가실래요? ㅎㅎㅎㅎ 계신 곳에 많은 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일생에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것.. 어느 한사람으로 인해 한사람의 인생이 바뀔수도 있다는것.. 비록 사학이지만.. 저도 선생님인지라 참 욕심나는 글이예요.. 돼지감자님 정감이 폭폭 묻어나는글.. 아침이 따뜻해집니다..
관심이겠죠. 사명감을 앞세운...자식에게 관심을 갖듯 ...보기 드문 선생님었답니다. 타이여트는 잘 진행이 되는가요? 지니양~ㅎㅎㅎ 제가 행복을 업혀드릴테니 행복을 업고 사시길요~~^^
맘이 푸근해 집니다.... 그런데 그런 선생님이 요즈음에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쩜 습쓸 합니다..... 그래도 찾아보면 계시겠죠? *^^*
요즘도 있을거예요. 선생님의 님자가 빠지기 전까지는요..훗날 좋은 이야기들이 나오길 기대하는 거죠...^^
아이들의 성적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제 직업이 싫을때가 많긴하지만 그래도 데리고 있던 녀석들이 가끔 찾아와주고 전화주고 그러면서 마음에 조금이나마 선생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다는것이 고마워질때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해야겠다는 반성이 드는군요.
김영희선생님 출퇴근이 힘드시죠? 항상 조심하시구요.... 저도 어릴 때의 꿈이 선생님이었는데..순위고사라도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있어요... 행복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