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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1 - 노르만의 도시 오슬로에서 페리를 타고 바이킹 박물관에 가다!
7월 22일 : 오슬로시내 : 카를요한 거리 - 박물관거리 - 시청
이번 유럽 종단 배낭여행 은 우리 부부와 선배님 부부등 4명 일행으로
타이 항공으로 방콕을 거쳐 덴마크의 코펜하겐 으로 입국했습니다.
덴마크를 구경하고 기차로 노르웨이 를 한바퀴 돌면서 보고는 스웨덴으로 넘어간
후 기차로 프랑스와 스위스 및 스페인을 보고는.... 밤차로 파리로 가서
파리 시내를 구경하고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귀국하는 스무날 여정 입니다.
어제 오전에 코펜하겐에서 기차를 타고 밤 10시쯤 오슬로역 에 내려 차로 10분 거리로
숙박 요금이 2인 1실에 121$ 하는 "바스티온" 호텔에 묵고는.... 아침을 먹고
귀중품을 호텔 프론트 에 맡긴 후에 시내지도를 보며 걸어 오슬로 중앙역 으로 갑니다.
중앙역 광장에 위치한 인포메이션 센타 인 "트라피칸덴" 에 들어 서니 창구가 둘인
데.... 짧은 줄은 현금 으로만 "오슬로 카드" 를 살 수 있는 줄 이고, 신용카드
를 쓸수 있는 줄은 여행자 상담 까지 하다 보니 너무 길고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줄이 너무 길기로 역으로 들어가서 환전 을 하는 데, 600유로 가 넘으면 여권 을 보잡니다?
호텔에 맡겼다고 사정해도 안된다기에 선배님과 900유로를 둘이서 반씩 나누어
서 450유로씩 환전하니 이런 편법 이 있는 데도 그래도 굳이 규정 은 지켜야 하나 보네요?
오슬역에 온 김에 노르웨이에서 스페인 까지 기차표를 예약 하는데, 예약창구가 너무 한산해
8코스 에 이르는 기차표 를 모두 예약할 수 있어 좋은데.... 오슬로에서 베르겐 가는
구간은 기차 타는 시간이 낮인 탓도 있지만 좌석 예약요금 이 없는게 뜻밖이라 너무 기쁩니다?
유레일 패스 를 사용할수 없는 사철(私鐵) 인 뮈르달 - 플롬 간 산악 열차표도 30% 할인 된 가격
인 120크로네 (1만9천원) 에 구입할수 있어 마음이 놓이는데, 단지 제네바에서
바르셀로나 가는 야간 1등실 침대표 가 1인당 무려 800크로네(12 만원) 로 너무 비싼게 흠입니다.
밤에 스페인에 입국하는지라 좀도둑 을 피하려다 보니.... 돌아서서 생각하니
그냥 슬리핑카 대신에 쿠셋 으로 하는건데 하는 후회도 듭니다.
순간의 망설임..... 그러나 일행 중에 연로한 분도 계시고 해서 어쩔수 없네요!
체력을 회복해야 악명 높은 바르셀로나의 소매치기 를 피할 수 있을거라고 자위
하는데, 나중에 보니 6인실 쿠셋 (침대는 4인실) 에도.....
보통 4명 정도 밖에는 들어오지 않으니.... 그럴줄 진작 알았다면 쿠셋으로 할건데?
*** 오슬로 카를 요한거리에 선 선배님 ***
역을 나와서는 지도를 들고 보행자 전용도로인 "카를요한 거리" 로 접어드니
여긴 매우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아름다운 거리 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리 중간 쯤에 회색빛으로 덮어쓴 중세 기사상 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을
놀래게 하는데..... 이른바 사람이 그렇게 꾸미고 서 있는 것이지요?
오슬로 성당 을 보니 생각외로 수수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거리를 돌아 내려오니
오슬로 시청이 보이는 데, 여긴 나중에 보기로 하고 그냥 지나쳐서 부두 에
도착하니 분수며 화단 이 너무나도 잘 꾸며져 있어 모두들 사진 찍느라 바쁘네요?
이제 바이킹 박물관 이며 콘티키호 박물관, 프람호 박물관 등 선박 박물관
거리로 가기 위해서는 시청앞 부두에서 배 를 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여기 오슬로 시청 앞에 자리한 부두 에서 바다를 건너서 드로닝겐 을 거쳐
뷔그되위 가는 페리 부두 는 항구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다고 들었는데....
미리 들은대로 두리번 거리면서 부두를 찾아서는 고속 페리 에 올라 좌석에
앉으니.... 직원이 돌아 다니면서 각인기로 패스에 시각 을 찍어 줍니다.
우린 바다 를 건너 첫 번째 도착하는 드로닝겐 에 내려서는 유럽인들의 뒤를 좇아
언덕을 10여분간 걸어 오르니 민속박물관 을 지나 "바이킹 박물관" 이 나옵니다.
바이킹 박물관 에는 옛날에 바이킹의 여왕이 탔던 배 가 원형과 복원 된 모양
으로 모두 전시되어 있는 데....... 배는 날렵하고 무척이나 빨라 보입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며 스웨덴에 거주했던 노르만족 바이킹 들이 이 날랜 배 들을 타고는.....
"영국과 노르망디에서 시칠리아" 까지 전유럽을 누볐던 그 날을 실감할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니까 북 유럽에 살았던 게르만족의 한 갈래인 노르만 바이킹족 의 한 갈래는 동쪽
으로 러시아 로 들어가서는 러시아의 드네프르 강을 따라 흑해 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까 발트해에서 배 를 타고 강을 거슬러 내륙으로 올라가는데.... 강이 막히거나
아님 다른 강으로 갈 때는 바이킹 전사 들이 배를 어깨에 메고(?) 갔다고 합니다.
후일 오스만 투르크의 메흐메트 2세 가 1453년에 비잔틴(동로마제국)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을 공격할 때 금각만 입구에 쇠사슬 을 두른 것을 보고는..... 강으로 올라가서
콘스탄티노플성 옆구리를 공격하는게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스만 투르크군은 100여척의 배(전투함) 를 통나무를 깔고 소와 말 을 동원해
끌고서 산을 넘어 금각만 으로 흐르는 강의 상류로 내려와서는.....
천년 고도 콘스탄티노플 성을 함락 시켰던 것 정도가 이와 비견할수 있을런지!
노르만 바이킹의 지도자인 루리크 는 러시아 최초의 국가 인 노보고르드 공국
을 세웠고 그후 남진해서는 키에프 공국 을 세웠으니..... 그러니까
러시아인들이 자기들 최초의 왕으로 이민족인 바이킹 을 받아 들인 것입니다?
러시아인들은 작은 부족국가로 자기들끼리 맨날 싸우다 보니 오히려 이민족 침략자를 왕 으로
받아 들인 것인데 루리크왕의 증손자인 블라디미르 는 988년에 바이킹 신화를 버리고
그리스 정교를 받아들여 기독교로 개종 함으로써...... "러시아 정교" 를 창시했던 것이지요!
서쪽으로 간 바이킹의 한 갈래는 아이슬란드 를 거쳐 그린란드 를 발견하고... 캐나다
북동부에 상륙하여 콜럼부스 보다 400여년 전에 신대륙을 발견 했다고 합니다!
9세기 초에 바이킹들은 서남쪽인 영국 노섬브리아를 약탈 하기 시작했는데, 865년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아들들 은 본격적으로 침공해서는 영국 동남부 켄트 지방에
상륙한 후 노섬브리아, 동앵글리아, 머시아 및 웨섹스 의 앵글로 색슨 4왕국 군대와 싸웁니다.
바이킹들은 866년 끝무렵 영국 북부에 위치한 노섬브리아로 북진하니 앨라 2세는 수도인 요크
에서 항전했으나 성은 함락되고 피의 독수리형으로 처형 당했으며, 바이킹들은 더럼 에
수도를 정하고는 에크베르흐트를 괴뢰왕으로 내세운후 노섬브리아를 실질적으로 통치 합니다.
바이킹들은 남진해 머시아의 수도인 노팅엄 을 함락했으며 이후 머시아, 웨식스 엽합군 을
격파하니 영국인들은 엄청난 금화와 은화 를 바치자 철수하는데... 훗날 데인족(덴마크)
의 크누트는 앵글로 색슨족의 항복 을 받고는 영국에 제국을 세우니 햄릿의 조상 입니다?
*** 이 사진부터 아래 4장은 바이킹 불 축제로 슈트름게슈쯔에서 가져왔습니다 ***
또 한 갈래 노르만 바이킹 전사들은 남쪽으로 세느강 하류 에 상륙해 거슬러 올라
프랑스 왕국의 파리를 위협 해서는 "노르망디 공국" 을 세워......
프랑스 여자들을 차지하고는 노르망디에서 자손 대대로 백수십년을 살았습니다.
후손인 노르망디의 윌리엄 은 같은 바이킹 (노르만) 인 덴마크 데인족의 크누트 가 한때 점령하기도 했던
잉글랜드에 5천 기사와 1만 보병을 이끌고 상륙해 에섹스, 웨섹스, 킴브리아등 앵글로 색슨족의 일곱
왕국을 정복하고는 영국 최초의 통일왕국 노르만 왕조 를 세워 런던에 웨스터민스터 사원 을 지었습니다.
노르망디 세력의 일부는 남으로 내려가는데.... 기사 루제로(로제르1세) 는 불과 수백명의 노르만
기사 를 이끌고 중과부적에도 20여년간 전투로 날을 지새워... 비잔틴과 이슬람 사라센 을
쫓아 내고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섬을 아우르는 나폴리-시칠리아 왕국 을 세웠던 것 입니다!
바이킹 박물관 을 나와 비그되위 부두로 향해 걸어가다가 땡볕 더위에 녹초가 되자
어렵게 지나가는 택시를 발견 하는 요행이 있었는 데... 이 녀석이 56크로네
가 나온 요금을 미터기를 한번 더 누르니 95크로네 로 바뀐 요금을
요구하기로 항의하니 뭐라 설명하는 데.... 노르웨이 말 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
유럽에서는 앞 좌석에 손님 이 앉거나, 짐 을 가지고 타면 추가요금 을 내야 하고,
이처럼 도심에서 떨어진 교외 에서는..... 요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기는 하다만.... 바가지인지, 정상적인 추가 요금인지 헷갈립니다!
"콘티키호 박물관" 에는 1947년에 6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페루에서 폴리
네시아" 까지 무려 8,000 km 를... 101일간에 걸쳐 표류 했다는 그
원시적인 모습의 뗏목 배 를 볼 수가 있는데, 참 믿기워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파피루스 갈대 를 엮어서 좀 더 개량한 La 호 를 타고 "모로코
에서 남미" 로 출발한 배도 역시 함께 전시되어 있는걸 봅니다.
이 사람들의 모험과 개척정신 은 참으로 경이롭기까지 한데.... 그래서 오늘날 서양이
세계를 주도 하게 된 것이 아닐른지... 모로코에서 남미까지 항해한
탐험대 중에는 일본의 젊은이(!) 도 한사람 섞여 있어..... 부러움을 자아내게 합니다!
배 이름인 콘티키의 뜻이 태양의 아들 이라...... "붉은 원을 상징" 으로
쓰다 보니, 일본의 국기 일장기 와 너무나도 닮은게 이채롭습니다?
하기야 일본 민족 자체가 대륙의 기마민족(부여 - 비류백제?) 이 해 뜨는
곳 을 찾아 동남으로 이동하여 바다 건너.... 규슈 남쪽 태평양연안
미야자키현 히유가 (日向 : 태양을 바라보는 곳?) 에 이르렀던 것이니!!!
후일 백제가 망해 탯줄이 끊어지자.... 새롭게 거듭나는 의미로 일본 (日本: 태양의 뿌리 - 해뜨는 곳) 이라
이름 했으니! 쇼토쿠 태자가 수나라 양제에게 보내는 국서에 " 해 뜨는 나라의 천자가 해지는 나라의
천자 에게 문안하니 그간 무양한가?" 라고... 중국의 정사 26사서 중에 수서(隋書) 에 나와 있는 것이지요!
"프람호 박물관" 은 난센 이 지휘하여 "북극을 탐험한 배" 로 얼음에 2년간이나 갇혔다가 무사히
귀환한 배로 선원들의 에스키모 복장이 눈길을 끄는데.... 귀환후 화물 중에 식량과 옷이 있었
으니, 저걸 사용했으면 얼어죽거나 굶어죽지 않았을 것임에도, 고객의 화물은 죽더라도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상인의 신용을 지키기 위해 쓰지않고 죽었으니.... 유럽인의 상도 를 알만합니다?
이 배는 후에 아문센 에게 양도되어 노르웨이를 출발하여 1911년 영국의
스콧 탐험대 에 앞서 최초로 남극에 도착한 배 이기도 합니다?
관련 유물이 배 속에 잘 정리되어 있어 산 교육장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프람호 박물관" 을 나오니 또 그 옆에 자리한 "해양박물관" 에는 배의
내부를 볼수 있는 시설과 배 모형 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을 나와 바깥의 매점 의자 에 앉아 맥주 를 한잔 마시는데, 야박하게스리
종업원이 자기 가게에서 산 음식물 외에는 못 먹게 제한을 가하고 있네요?
한편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나 인정 이라고는 없으니 그래도 얄미운데.....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근처 잔디에 앉아서 먹고 마시고 있네요?
여기는 바닷가 경치 하나는 일품 으로 정말이지.... 가히 환상적 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부두에서 보니, 긴 옷에 차도르 를 쓴 아랍 여인 세명이 10명의 아이
들과 함께 쉬고 있는 모습을보는데..... 애들은 서양옷(우리네 보통 옷) 을 입고
물가에서 뛰노는데, 여인들은 얌전히 그늘 밑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매우 정적 입니다!
다시 배에 올라타니 우리 배는 원래 출발했던 시청 앞 부두 로 되돌아 오는데......
여기서도 엄청 큰 유람선 들이 여기 저기 정박한 모습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부두에서 보니 해안가에는 보트 를 타거나 아니면 요트 나 심지어
범선 을 타고는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도 더러 눈에 보입니다.
*** 시청사 앞 꽃밭에 앉으신 선배님의 부인 ***
부두에 내려서는 걸어서 오슬로 시청 앞에 이르니.... 화단 한번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눈길을 끄네요! 그러고는 노벨상 시상식 이 열린다는 오슬로 시청으로 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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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봤습니다
고마운 말씀입니다.
오늘 강인한 바이킹들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