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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장관 국회의원 제위님께 한마디 당부말씀을 드릴까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만들어 놓고 어디에서도 부끄럽지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우리조국 대한민국의 명운이 풍전등화 입니다 느끼시질 않으십니까?
메우 시급을 요하는 바이라 결사 구국의 신념으로 뜻을모아 시국선언을 하고 우선 흥진호를 조사하여 적국과 내통한 간첩들을 제발 좀 잡아 주십시오
당장 내 기억에 떠 오르는 검사는 반공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오재도검사님이 생각납니다 옛날 민주당(지금 사기꾼들이 당명조차 도독질한 민주당이 아니고 신익희 조병옥 같은분들이 이끌었던.....윤보선, 장면, 박순천 정일형등등...많은 이름들이 생각나지만 들먹이고 싶지 않습니다 )시절의 조재천 검사님도 생각이 나고요 검사님들 제발 부탁입니다 간첩 빨갱이들 로 부터 나라를 구해주소서
전직 장관 국회의원 여러분,
여러분들이 국록을 받고 출세가도를 걸어온 그 조국을 망하게 내버려 둘것입니까?
특히 법을 아는 전직 법무장관님네들 권성동이란 저런 자식을 법사위 위원장이라고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발휘할수 있는 모든 영향력을 행사하여 저 문재인 일당을 타도하여 주십시오
어러분들은 내가 이렇게 적으면 혹시 죽포은사님의 아드님을 상상하실지 모르겠으나 법무장관을 지내신 분들도 서너분은 인연이 있지요 배모 장관님은 정선배님 보다 더 먼저 전두환 대통령때 법무부 장관을 지낸걸로 압니다 나랑은 일면식도 없지만 그집 문패에 그양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배검사 집 바로 문앞에(동인동 철도관사) 마당이 제일넓고 큰집이었던 집에 제 형님이 살았으니까요 우리집도 엎어지면 코 닿을 자리에 있었고요 어느날 신문에 보니까 법무부 장관이 되신걸 알았지요. 내 형님은 공무원 신분이라 그 관사에 3-4년 사시다가 부산으로 다시 전근을 가셨고 내가 어렸을 적엔 동인동 파출소의 남쪽으로 길건너에서도 살았었고(6 25도 나기전) 부산에서도 거제리 관사에서 또 경주 황오리 철도관사에서 마지막엔 부산 수정동 철도관사에서 살았었지요
내 형님 이라서가 아니라 그 형님은 품성도 좋고 귀공자 타입에 이름도 착할선자가 들어 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참 어질다고 할까 멋있는 형님 이었답니다
그후 형님도 부산으로 다시 전근가시고 나도 대학교 들어가면서 고향을 떠나고... 세월이 흘러 68년 초봄에 무슨 일이있어 중구청에 들렀다가 그건물이 아마도 나중에 시립도서관이 되었지요 그리고 그 맞은편에 대구일보사가 있었는데 그 당시 대구일보사 사장이 여상원씨 였다는게 생각나고 그집딸인지 자주색 빨간 네타이를 맨 사대부중 교복을 입고 들락거리는 것을 많이 보았던 기억도 ... 내가 옛날 경북중학교엘 다닐땐 주로 하교길엔 그 길을 많이 다녔답니다 왠고하니 그 쪽엔 대구여중도 있었지만 자주 들락거렸던 빵집도 있어서... 권기진 권희광이도 그부근에 살았었답니다 동네 이름은 완전동 그 붉은 벽돌담장의 집들은 일정시대 조선식산은행인지 동양척식은행인지 관사였을 겁니다
하여간 옛 생각도 나고 그길을 어떤 사람과 둘이서 걸어 간일이 있었는데 그길을 쭉 따라가다보면 배검사집과 내 형님이 살던집 사이를 지나게 됩니다 그때 우리집도 동인동에 있던 집을 팔고 대명동 남대구우체국 뒷쪽으로 이사를 가고 없었는데 옛날 배검사네 집도 여관으로 바뀌어 있는걸 보았습니다
장님이 봐도 흥진호가 북한을 청와대놈들 묵인하에, 아니 묵인이 아니라 주도하여 다녀온게 보일것입니다 이런 하늘이 내려준 천우신조의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김평우 변호사 같은 사람도 불러서 같이 문제들을 해결해 보십시오 진정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교수님들도 몇사람 보이고 지만원이란 애국자를 도와주어 5 18의 실체를 밝혀야 하지만 더 시급한것은 금년이 끝나기 전에 사기꾼 빨갱이일당을 청와대에서 끌어내야 합니다 명재형 당신도 그렇지 검찰총장직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사표도 내던진 그런사람이 지금 이 시국에 가만히 있어서야.... 4 19 혁명이라지만 사실 수성천변에 일요일날 민주당유세에 학생들이 못가게 모든 대구시내 고등학교 학생들을 등교시킨게 가장 큰 원인이었고 2월 28일날 대구에서 우리가 거리로 뛰쳐 나오지 않았던가요 벌써 다 잊었나요? 간발적으로 데모가 났으나 결정적인건 마산에서 김주열군의 시체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채 바닷가에서 발견되어 학생데모가 심화되고 결국 고려대생들이 주동이 되어 4 19 혁명이 일어났었지요 . 제발 부탁입니다 벗들이여 다시한번 정의롭게 살다가 죽읍시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않았습니까 지금이 당신네들 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긱수 있는 좋은 기회란걸 잊지마시라 철언형은 어디서 뭐하나? 김영삼이를 샅샅이 캐내어 전직대통령직을 박탈하는데 앞장서야 하지 않겠나? 참 그러고 보니 철언형도 청소년체육부 장관인가 했제... 내가 또 청소년 체육부 장관도 철언형보다 먼저 지낸 사람을 알고있지요 이양반은 원래 직업이 의사랍니다 동산병원 내과과장을 지내기도 했고... 대구사람이면 다 알만한 사람입니다 옛날에 미국가서 꼬부러진 창자를 바람을 불어넣어 치료를 하는 그런 기술로 박사학위를 하고 그양반 부인도 의사인데 내당동 춘전 정미소(봄춘 밭전 하루다 정미소)자리에서 개업을 한 여 의사였고... 이 장관을 한 사람도 내 형수의 이종사촌오빤지 고종사촌 오빤지는 모르나 아무튼 그런 관계입니다
그 아들이 지금도 옛날 아버지의 소아과(대구경찰서 맞은편 만경관쪽)자리에서 병원을 하고있는지...
내가 아는 이런 저런 연분이 있는 학연은 빼 놓고라도 아마도 원내교섭단체 (지금도 20명 인가요?) 하나는 만들지 싶습니다 사실 내가 불의를 보고는 못참는 성품이라 한국에 있었으면 내 명대로 살지도 못하고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거라는걸 내가 압니다 김화봉형은 직지사 조실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았고 서천봉형도 해인사방장님으로 부터 법명을 받았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한 고명한 스님이 내가 멀리 멀리 나가서 살것이고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단명할 것이라고 하신 예언을 내가 어릴때 들은 일이 있었답니다 내가 직접들은게 아니라 소금집어머니에게서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때 쯤이 아니었던가 싶네요
제주 4 3 사건 대구 10 1 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 처럼 증거가 확실한 빨갱이 폭동을 뭐라? 민주혁명이라고 미화한 그 죄를 묻지 않고서야 나라의 기강이 바로 잡히겠나요 철언형, 오민웅, 이순국, 정영웅, 조운제등등 내 친구들도 41회에 몇명이 있었고요 백정호가 형의 부근에서 얼씬거린다는걸 어디서 들은것도 같은데... 독일에 있는 어떤 못난 인간이 형이 장관으로 있을때 찿아가서 물어본적이 있답디다 그랬더니 누군공? 그러더라나... 내가 어디 학교 이름이나 팔고 다니겠소 어디서 줏어 들었는지 저희들 끼리 TK TK 씨불럭 거리고 다녀서 내가 정말 화를 낸적도 있다오. 아마 전국체전때나 한민족 체전이나 뭐 그런게 있는지... 별의 별 인간들이 다 있구료 정말 나서서 풍전등화같은 조국의 명운을 건 싸움에 동참해 주시구려 차제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명예도 회복시키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런 역적놈들을 단죄해 주시구료 그 자식새끼들 까지 모조리... 국회를 청소하는데 앞장서 주시구려 나도 예전에 여기서 뭐 하십니까 들어 가십시다 한 사람도 있었고 한국에 들어오셔서 무슨일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라며 금박의 휘장이 박힌 명함을 준 사람도 있었다오. 나는 내 분수를 압니다 내 성격과 생리에 맞지도 않고 41회 최모씨는 내가 좀 잘 알았는데 무슨 제약회사 사장인가 한다더니 언젠가는 도봉구청장인가 또 양천? 구청장인가 한다는걸 보았고요 모두들 힘을합쳐 조국재건에 진력해 주시길 정말 부탁하오 건투를 빕니다
김중태형,
늙으막에 뭘 한다고 저러실까 생각 했었지요만 이왕지사 나선걸음, 김지하씨를 만나시구려 뭣 땜에 김관진이를 그냥 놔두라고 했었는지 질책하시고(나는 미국에서 김지하가 했던 인터뷰를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녹화된 증거가 있습니다) 형이 주도하여 이문열, 김지하의 이름으로 격문을 만들어 만 천하에 공표하십시오 지금 단 한번의 개과천선으로 만고에 역적이될것을 우국지사로 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될것이란걸 인식시키고요 김지하가 백낙청이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나 김지하가 백낙청이 못지않은 빨갱이인데 헤게모니 싸움에서 밀려서 그렇게 된것이지요 내 눈에는 그게 보입니다
조정래씨,
나는 소설가 조정래씨를 엄청 좋아합니다 어쩌면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도.... 왜냐하면 소설가 조정래씨 보다는 소설 태백산맥이 더 좋다는 표현이 적절한 표현입니다 나는 고향이 8대를 대구에서 살아온 대구 토막이라 말투부터가 순 경상도 억양이라 처가가 있는 광주나 나주지방을 여행할땐 핍박도 많이받고 심지어 80년대에(나는 독일에서 살아온게 47년이 넘었습니다 ) 광주에서 택시를 타려는데 승차거부도 당하고 식당에서 쫒겨난적도 있고... 하지만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광주시내를 달려보면 대주건설이라고 쓰인 아파트들도 많고 광주민방이 지금은 누구의 소유인지 모르겠으나 그 방송사를 설립한 사람을 잘 압니다 목포에 300억을 희사하여 성당을 지어준다던 그 사람, 내가 도와주고자 했던 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만약 내가 누구였던지 알았다면 깜짝놀랐을 것입니다 나도 나중에 알았지만.... 희안하게도 대주그룹의 홍보책자에 그의 군경력이 나 있던데 그의 군번을 보니 어라 나와 군번을 받은 날자가... 그 사람은 보나마나 논산훈련소 26교육연대 1 2 3중대를 나왔을겁니다 나도 그 교육연대를 나왔는데 나는 6중대를 나왔거든요 그런데 내가 왜 같은날 군번을 받았다고 단정을 하느냐 하면 그 당시 내 기억으론 하루에 650명씩 교육연대로 훈련병이 넘어 갔는데 그 양반군번과 내 군번이 3,4백번 차이밖에 안 났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아주 젊게 보였던지... 내가 주빈으로 초대받은 점심식사 자리에서 (나는 머리가 새까만 40대 였는데 합석한 사람들의 면면은 전남대 무슨대학장, 대주건설 사장, 서울 강남물류사장, 서울문화방송 무슨국장등등 광주지방 유지 7-8명 이었지요) 늙수구레하게 생긴 좌중에 나를 소개하기가 어색했던지 독일에서온 내 친구 동생이라나... 대략 그렇게 소개를 하더군요 그날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소위 흑산홍어회라는것... 지금 생각만해도 등줄기에 생땀이 납니다 허회장님 이란사람이 내 바로옆에 앉아서 그 홍어회를 자꾸 내 앞으로 갔다 놓는데... 멋도 모르고 한점 입에 넣었다가...여러 사람이 힐끔 힐끔 쳐다보는데 목구멍에서 넘어가진 않고... 구역질이 나서 토할것같아 손수건을 꺼내서 입에서 뱉어내고 정말 못먹겠어서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했던 기억이...
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처음 한국에 갔을때 명보극장 맞은편의 어느영화관에서(국도극장이었남?) 태백산맥이 상영되고 있길래 본적도 있었답니다
맛깔스럽게 서술되었던 남도지방의 사투리가 태백산맥이 대중의 인기를 많이 받는데 큰몫을 했지않나 싶습니다 나는 멋쟁이 전라도 친구들이 많습니다 박재철(법정스님 속명)씨도 엄청좋아 했고요
어떤 분이 뭘 하나 해주면 좋겠느냐고 묻길래 무언가 주겠다는 마음을 생각해서 법정스님의 혹시 최근에 나온 책이 있으면 책 한권만 보내 주십시오 라고 부탁을 했더니 서점에서 물어봤던지 아닌게 아니라 날자를 보니까 몇쇄째 인쇄한 날짜가 최근인것은 맞았으나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이었답니다 한권만 보내 달랬는데 2권의 수필집을 보내왔고 둘 다 내가 가지고 있는것이었답니다
각설하고,
조정래님, 내 기억에 약 2-3년전에 당신께서 조선일보 에서인지 어디에서인지 기억은 확실치않은데, 박근혜대통령님께서 한번 더(재임) 대통령직을 수행했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글을 쓴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일이 있었지요? 내가 잘못 착각하는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때 님이 쓰신 논거로는 몇가지가 있었겠으나 다른건 기억에 남아있지 않으나 가장 뚜렸이 기억에 남는것이 청렴성이 아니었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 후에 뇌물을 받았다고 누명을 씌워서 쫓아내놓고 촛불혁명을 빙자하여 군중심리를 부추겨 홍석현이란 권력에 눈이 먼 놈과 협잡질을 하고 그마저도 부정선거로 대통령이랍시고 청와대에 들어앉아 나라를 팔아 넘기려는 반역자 문재인을 그냥 보고만 있을것입니까?
박근혜대통령때는 그런 생각이었는데 문재인이가 대통령이라고 청와대에 들어 앉으니까 생각이 바뀌신 건가요?
글을 쓰는 지성인들은 소설가이건 시인이건 양심에 따라 행동을 하지요
쏘련의 보리스 빠스테르나끄 체코의 블라디슬라브 하벨 대통령을 보십시오
문재인이가 하는짓이 정의롭고 옳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이 쓰는 글 한줄이 어쩌면 수천 수만의 군중이 데모하는것 보다 더욱 힘을 발휘할수 있다는 것을 모르시지는 않을것입니다 제발 부탁 입니다
위암 장지연 선생이 "시일야 방성대곡" 이란 격문을 써서 온 백성의 심금을 울렸던 것처럼 님께서도 글 한편으로 역사에 길이남을 문호로써 새겨질수 있는 기회를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부탁드리며 이만 맺습니다
첫댓글 白廷浩 學友에 대해서
7년전인가? 의 상황이었습니다
어찌어찌 하다가, 졸업 후, 처음으로 백정호와 연락이 닿았는데,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만나자고해서 “어디에서 만날꼬” 하니, “자기 동네인 수유리에서 만나자” 고 했습니다
부리나케, 수유리로 달려가, 고기집에서 만났는데, 백정호를 만나보니 나이듦으을 속일 수 없었고 또 수척해 보여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아들이 의사로서 수유리에서 개업하고 있는데 ㅡ아직 장가를 가지않았다고 하면서 응당히 중신해달라는 부탁아닌 부탁을 했습니다
1987년대선에서, 우리 동창생들의 헌신은 그야말로 끝간데가 없었고 우리 42회도 마찬가지였지요
뒤에 내가 강태승을 만났고 신종송도 만났는데, 두 學友가 하는 말이 ‘나는 노선배를 위해서 한량없이 物心 兩面으로, 엄청나게 헌신했다’고 했습니다
진계덕 학우는 노태우후보의 팜프렛을 지계에 짊어지고 다니면서까지 홍보를 했다고 합니다
백정호도 월계수에서 활약한 관계로 박철언 장관의 주위에서 보여졌을 것입나다
노태우 대통령이 임기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월계수를 챙기는 마음이 옅어지게 되었고,
이에따라 박철언장관의 영향력도 점차 줄어들게 되고, 그 대신 虛舟선배가 노대통령의 마음을 틀어쥐게 되었습니다
허주선배가 어떻고... 원평재형도 허주선배 말년에 임종이 가까워 방문한 적이 있답디다
솔직히 말씀드려 박대통령때 전대통렬때 노대통령때 김영삼이때 허파에 붙었다 간에 붙었다
한것이지요 그사람 아버지도 국회의원 신분 이었고요 지금도 살아계신 백선엽 장군이 1 사단장으로
낙동강 전투를 할때 윤환선배의 집에서.... 이러쿵 저러쿵 그런 비사가 있지 않습니까 무식하고 개뿔도
모르는 기자놈들이 King maker라니 뭐라니 병신들... 노대통령이 32회 일겁니다 내 자형도 28회 입니다
내가 숨겨진 역사 한가지 읊어 볼까요. 내가 알기론 노대통령도 전대통령과 같이 대구공업 학교을 다녔을 겁니다
@臥雲 金景郁 경북중학교엔 해방무렵에 빨갱이 바람이 불어서 좌익사상을 가진 학생들이 많았답디다
수업중에 형사들이 학교에 와서 학생들을 검거하려고 찿으니까 달아 나기도 하고 매일
찿아오니 아예 학교도 안나오고... 학생들이 많이 모자라 편입생을 받았는데 노대통령도
편입생으로 입학한 케이스... 28회인 내 자형한테 들었지요 아버지가 국회의원입네 하며
나쁜짓은 골라하는 자식들이 지금 국회에도 수십명이 되지 않습니까 정우택, 유승민 김무성
정대철 조순형 김홍일 김현철인가 하는 저 병신은 그것도 못하고..........
.여기에 거명 안된 자식들이 수십명이 됩니다 시정잡배들도 아니할...
이놈들아 다음 당명은 불한당 이라고 짓지
@臥雲 金景郁 내가 어머님께 감사 드리는 것은 내가 못된짓 아니하고 권력의 편에서서 눈치보고 그런짓 못하게
바르게 길러주셨기 때문에 감사 드리지요 오뉴월 숫개x자랑 하드시 천박스럽게 살기 싫어서 어휴~~
김윤환 선배가 살았다는 그집은 원평재형의 레포트를 보니까 방배동 효령대군 능이있는 그 언저리
어디쯤인걸로... 내 아는 사람들만도 몇이나 그 동네에 살고 있답디다 소위 고관대작이랄까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때 친구는 관주형 말을 들으니 건물만도 몇백억 되는 빌당도 방배동 어디에 있답디다 그친구의
공원같은 별장도 엄청나고... 87년에 노대통령이 문경에 왔을때 문경이 지역구였던 채문식씨하고 같이 왔었는데
나도 만났지요
@臥雲 金景郁 사실 그때 경북지사도 내 고모의 사위였고 내 형님이 당시 문경군수 였답니다 그 자형도 언젠가 문경군수를 지낸적이 있었을 겁니다 내 형님은 사실 그 어렵던 고등고시 사법시험을 2번이나 합격했던 정말 천재였답니다 지금처럼 합격자를 백여명씩 뽑는 시절이 아니었고 어떤 해는 십여명 남짓 합격되던 그런시기에.... 소신껏 살아가는 성품때문에... 여자를 잘못 만나면 패가망신 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 형님이나 나도 그런 케이스 입니다 모자란 인간들이 감사 할줄도 모르고 제가 잘난체 하고... 내가 87년에 한국엘 가니까 내 조카가 (큰집 사촌누님 아들) 강남 구청장을 하고 있더군요 옛날부터 서울시청에서 근무한다는 소리는 들었지요
@臥雲 金景郁 누구라고 하면 다 알만한 사람들이 엄청 많지만 단 한사람도 만나지를 않았습니다 아마 보통사람 같았으면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찿아 갔을겁니다 오라는데도 안 가니까 집으로 누님들이 찿아 오기도 합디다
집에서 만나지 말고 길건너 어떤 아파트 단지내의 한식집에서 만났던 적도... 대치동에서 약국한다는
친구는 마누라가 약사라서 약방을 경영하기도 했지만 집안도 누구라면 다 알수있는 친구라 그친구 자형이
또 국회의원인데 공정거래위원장까지 지냈지요 내가 개인적으로도 좀 아는데 독일대사관에서 상무관으로
근무를 했었답니다 이러다 소설 쓰겠네. 이만
감사하오, 탄아형, 우리 평리동 가교사 교문 바로앞에 네모 반듯한 과수원이 하나 있었지요
사방이 탱자나무로 울타리가 둘러쳐있고 중리동 방향으로 기와집이 큰 대문채와 함께 있던...
나는 지금도 중학교 졸업때 백정호가 나에게 그려준 Sign 지를 기억하고 있지요
10년 지우야 이제 헤어지게 되지만 또 만나겠지.... 또 만나겠지란 말은 저나 나나
경고에서 만날게 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글을 썼겠지요 그때 내가 그에게 써준
Sign지는 야자수를 그리고 한쪽 모서리에 대나무를 그리고 (만년필로 굵게 잉크를 몯혀
손가락으로 쓱 쓱 문질러서 대나무 줄기를 그리는 기법으로... 물감은 시장에서 염료를 사다가...
고맙구려
수유리 라면 도봉산쪽 쌍문동이 있는 그쪽이나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 이니 하는 그 쪽인가 보구려
내 이종사촌 누님이 그쪽 어디에 사신다고 전화로 통화를 한적도 있었지요 그 누님의 사촌동생이
(탄아형은 누굴 말하는지 알겠지요) 지금은 성북동에 살고 누님의 아들이 큼지막한 여행사를 한다고 하더이다
들리는 풍문으로 나도 들었을 뿐이외다 난 오늘 아침에 Kardiologe(심장, 혈관질환 전문의)와 예약이 되어 있어서
오래 노닥거리지 못해 미안하오 얌전하고 공부도 잘하고...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백정호가 그렇게
외우길래 나도 그렇게 외웠지요 물론 초등학교 시절.이었고요
지금 보니까 예약시간이 9시인데 지금 6시 35분 이니까 한숨 자고가도 될만큼 시간 여유가 있네요
이 양반에게 진료를 한번 받을려면 일반환자들은 6-9개월정도 후에 날자로 예약이 된답니다
Dr. Tudor Gheorghieu 루마니아 식 이름이지요
여러분, 25시란 소설을 읽어보신적이 있으시지요? 안소니 퀸 이 주연배우가 되어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작가가 Gheorghieu 였다는 생각이 나서
당신 혹시 25시라는 소설을 알며 그 작가가 루마니아 사람인데... 라고 한번 물어 물어본적이 있었지요
그랫더니 이 의사가 나를 뻔히 쳐다보더니 참 그걸 아는사람이 드문데... 라며 그 사람이 자기의 집안인데
아저써뻘이 된다고 합디다 성직자(카톨릭 신부)인것도 나는 그때 처음 듣고 알았습니다 자기도 의학을 빠리
에서 공부했는데 한국학생들이 있었고 그 둘은 결혼해서 부부가 되었다나... 뭐 그런사연이 있습니다
'소설 쓰겠네. 이만' ㅡ 하`하`하,소설이라니 웬 말씀을-------계속해서 達筆을 휘둘러주기를, 기대하고 있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