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여론조사』 언급, 역린을 건드리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 황 장 수
1. 양재동 파이시티 시행사 브로커로부터 거액을 수수한 것으로 알려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드디어 『역린』을 건드리고 나섰다.
『역린』이란 용의 턱 밑에 꺼꾸로 박힌 비늘을 의미하며 사전적 해석은 최고 통치자의 치명적 약점을 건드리는 것을 말한다.
이번 『파이시티』 시행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법원의 파산부에서는 약 1000억 가량의 지출용도가 불분명하다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03년 이모 사장이 인수한 이 사업이 인허가로 고전하다 2009년 인허가가 났으나 결국 그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부도가 났고 이제 포스코 등에 사업이 넘어갈 위기에 놓이자 워 시행자 측에서 분노하여 모든 사실을 폭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 있어서는 거액의 선급금환수보증을 현 정권에서 받고도 파산해 회사를 뺏겼다는 SLS 이국철 사장과 흡사하다.
공교롭게도 이 사업에도 포스코, 멕쿼리 등이 인수대상자로 거론되었거나 거론되고 있는 점 또한 특이하다.
양재동 파이시티는 강남 내에 연건평 25만평 가량되는 백화점, 쇼핑몰, 오피스타운, 물류센터가 건설되는 초대형 이권 사업으로 물류센터 외형에 실제 얼마나 상업성이 높은 용도를 허가 받아내는가가 관건이라 그 인허가가 5년 정도 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 재산을 털어 이 사업에 뛰어든 사업자가 거액을 인허가 로비 자금으로 썼으나 결국 인허가를 받고도 파산한 뒤 파산관리인 측과 법적 분쟁을 해오다가 사업이 포스코와 우리은행 측에 뺏기게 되자 이것이 권력층에 자기 사업을 탈취 당한 것이라 생각한 원 시행사 사장이 반격에 나서 폭로한 것으로 보인다.
항상 도와주고 엮어놓고 끝이 좋지 않은 현 정권의 행태가 SLS, 민간인 사찰에 이어 또 터져 나온 것이다.
2. 최시중 전 방송위원장이 어제 받긴 받았고, 지난 대선 때 『여론조사』 등의 용도로 썼다고 말한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지난 2002년 노통-MJ간 여론조사 방식에 의한 후보 단일화로 사실상 대통령이 결정된 뒤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결정은 대세가 되어왔다.
2007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또한 20%의 여론조사를 80%의 대의원, 당원, 일반국민(18만 9000명) 직접투표와 병행해 실시했다.
3가지 형태의 직접 투표에서는 박근혜 측이 근소하게 이겼으나 여론조사 결과 조사자 1명을 6표로 계산하는 방식 때문에 MB가 한나라 대선후보로 결정되었고 당내 경선 승리가 사실상 대통령 당선 확정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동아일보 간부, 갤럽회장 출신이며 SD와 가까운 최시중은 지역 연고 등으로 일찌감치 MB를 대선후보로 점 찍고 한나라당내 조직이 거의 전무한 MB를 자신이 언론사와 여론조사 회사 등을 커버하며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낸 것이다.
2006년 10월 북한의 핵 실험 이후 시장에서 사퇴한 MB의 지지가 갑자기 폭등한 뒤 2007년 8월 중순 대선 경선까지 지속적으로 여론조사 우위를 유지해 온 것은 『여론은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를 몸소 실천해 언론사, 여론조사 회사 등을 작업해 온 최시중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3. 사실 2007년 대선후보 최종 경선 결과를 놓고 보면 박근혜가 MB에 결코 뒤지지 않고 대의원, 당원, 일반국민 등의 여론에서 근소한 우위에 있었는데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는 대선 직전까지 15~10% 이상의 격차로 계속 지고 있는 것으로 나온 것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당시 여론조사를 한나라 경선 방식에 집어넣은 경선 방식 협상 또한 여론조사의 본질을 꿰뚫고 있던 최시중의 역할과 조언이 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이 여론조사 샘플 몇 백 개가 대통령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당시 나는 해외 전문가로부터 박근혜 측이 결코 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들이 지고 있다고 『불리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스스로 믿고 있기에 근소하게 질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역 방향의 밴드웨건 효과가 박 캠프 내부에 작용한 것이다. 주요 언론사 간부와 여론조사 회사에 대한 작업(?)은 인맥, 정보, 네트워크와 자금이 있어야 가능하지 아무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당시 여의도 국회 앞에 있던 최시중의 사무실을 언론사 여론조사회사 간부들로 문전성시를 이뤘고 이들이 이렇게 몰려든 것은 MB의 당선 가능성도 있었지만 당연히 이들의 생리를 읽고 기름치는데(?) 능숙한 최시중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반면 박 캠프는 언론을 다룰 줄도 모르고 승리를 확신하는 이도 없고, 기름 칠 줄도 모르는 여론조사에 관해 아마추어 집단에 불과했다.
4. 2002년에 이어 2007년에도 여론조사라는 정치공학이 대선후보를 결정한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 있어 대선후보나 주요 대표자를 결정하는 방식에 소수의 영향에 의해 좌우되는 방식이 될수록 비민주적이며 정치공작이 쉽다는 것이 『독재자의 핸드북』이라는 책에 나와있다.
이 때 핵심집단이라 불리는 소수측근만 관리하고 나중에 논공행상만 하면 되는 것이다.
좌우간 최시중에 의해 주요언론사 간부, 여론조사 회사 등이 적절히 관리되며 이들 소수에 의해 조성된 여론이 한국의 대선후보를 사실상 결정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다.
나는 이것이 직접 민주주의를 왜곡시키고 다수가 아닌 여론조사로 위장한 소수에 의해 결정지은 것이라는 점에서 비민주적인 정치공학적 꼼수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측에서 최시중에 대해 즉각적으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터져 나온 것은 이런 과정에 대해 쌓였던 『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5. 최시중의 이러한 특수역할 수행에는 당연히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었을 수 있다.
당시 MB 캠프에서 자금을 조달했을 수 있는 사람들 중에 감방에 간 사람은 천신일 뿐이다. 그는 당비 대납 등에 관여했지만 MB 측근 주요인사 중 일본까지 피신했지만 결국 몇 달 간의 투옥 생활을 했다. 그는 기업인이고 특정 재벌 등과 특수관계라 그러했을 것이다.
그 이외에는 SD, 박영준, 최시중 등이 차례로 주요 의혹의 당사자로 거론되었지만 아무도 아직 구체적인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고 본격적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지난 2008년 2월 초대 개각 때에 최시중은 정보기관장으로 거론되었지만 본인의 전공을 살려(?) 결국 방통위원장이 되었다.
이것도 방송통신 통합, 종편허가 미디어법 등으로 막강했지만 애초 최시중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MB의 창업 1등 공신으로 동업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6. MB 주변의 실세들이 아무도 총대 메고 흔쾌히 MB 치하에서 감방에 가 미리 매를 맞고 나오며 총대를 메주는 일을 자처하지 않는 것은 자식조차 재임 중에 방에 보내 미리 알아서 처리한 YS나 DJ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다.
MB 캠프는 『이해 결사체』였지 『정치 결사체』가 아니기에 주군을 대신하여 혹은 부친의 부담을 들고자 미리미리 정권이 바뀌기 전에 빵에 갔다 오는 희생양이나 자진하는 자가 없는 것이다.
MB 정권 들어 빵에 간 측근들은 사실상 측근이라 부르기에 비중이 떨어지는 경량급 들이다.
얼마 전 진짜 실세 한 명은 검찰조사와 소환이 예고되자 언론과의 인터뷰를 스스로 요청했다가 철회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내가 보기에 핵심 측근, 형님 모두가 창업 공신이자 대주주들이라 생각해 누구도 순순히 들어갈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시중은 지난번 양아들(?) 정모 사건으로 방통위원장에서 물러난 뒤 이런 저런 자신에 날아올 화살을 생각해 봤을 것이다.
돈을 건넨 브로커 이모의 운전기사 조차 최의 사진을 찍어 협박하는 마당에 어떤 것이 자신의 최선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동남아에서 들어오겠다고 했던 양아들은 들어오지 않았고 자신을 향한 구설수는 뭉개 뭉개 피어나자 그는 결국 『여론조사에 받은 돈을 썼다』는 최후의 카드를 뽑아 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히 용도를 말한 것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경선 당시 자신이 수행한 특수작업과 그곳에 투입된 cost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 뇌관이 열릴 경우 폭발력은 역대 최강이 될 것이다. 최시중이 자폭을 각오하고 언론사, 여론조사에 수행했던 구체적 내역과 operation을 깔 경우 정권이 입을 데미지는 상상이 안 간다.
7. 나는 정치권에서 최고 통치자의 약점 즉 『역린』을 건드리다 성공한 사람은 별로 본적이 없다.
처음에는 혼자 안 죽겠다고 협박하다 결국은 지 혼자 goal in 하는 게 권력의 생리다.
그러나 최시중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는 최고 학부 출신에 이 정권의 주요 대주주였음에 언론과 정치의 생리를 연구하여 상업화하는 한국 최고의 여론조사 회사 사장으로 권력작용 메커니즘을 잘 아는 인물이다.
지금부터 최가 던지는 메시지와 보이지 않는 물밑 메시지가 매우 흥미진진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는 『역린』을 정면으로 건드리며 승부를 걸고 나섰다.
이번 일을 보며 이 정권이 엄청난 노하우와 장기를 갖추고도 뒷마무리에 매우 취약하며 결국 이것이 이후 정권의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해 결사체 정권의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