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통신 하이텔에서 시작해 지금은 없는 네띠앙(Netian)을 거쳐 신비로(Shinbiro) 라는
포털에 둥지를 튼 카페가 있었다. 당시 문화로 보면 나이에 비해 일찍 인터넷을 접하고
나름 진취적인 사람들이 모여 실명을 사용하고 나이별 예절이 엄격한 곳이었다.
40 대가 인터넷을 하면 노티즌(老티즌) 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면 믿을지 모르겠다.
700 여명이 모인 곳인데 거의 단일 게시판에 소위 글빨(?)이 센 집합체었다.
그곳에 주로 원정 산행기와 해외출장기를 올리던 내게 어느날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남쪽 어느 항구도시에 산다는 회원으로 댓글로만 알던 사람이었는데 불쑥 자기 친구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정중하게 거절했다. 별 기대감도 없었고 난데없는 청이라 그랬다.
그녀의 청은 계속 되었는데 알고 보니 애들 둘이 희귀병으로 시한부를 사는 탓에 밖으로
물건을 사러 나가는 것조차 사치일 정도로 힘들게 사는 사람이었다.
자기에겐 내 글이 세상을 보는 창窓이라 하는 말에 친구가 되었다.
마치 펜팔하듯 가끔씩 메일이 오갔고, 일 년에 한두 번 모이던 오프라인 모임에 그녀가
남편과 함께 불쑥 참석하면서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미인이었고 표정이 어두웠다.
그 뒤로도 가끔씩 메일이 오가고 그녀가 일 년에 한 번 여동생을 만나러 서울에 오는 때
동생과 함께 만난 적도 있었다. 무표정하고 어둡고 단단해 뵈던 그녀는 그날 오랜만에
긴장을 푼 탓인지 인사불성이 되었고, 여동생이 부축해서 가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메일로 소통하다가 문자로 소통을 한지 얼마 안 되어 단절되었는데, 알고 보니 아들이
세상을 떴다고 했다. 어미로서 이 얼마나 참혹한 일이었을까.
작년에 남쪽에 출장을 갔다가 업무를 본 후 연락이 닿아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내가 조그만 할배가 되었듯이 그녀의 빛나던 외모 또한 사라지고 평범한 시골 할매가
되어 있었다. 딸마저 세상을 떠나고 홀가분해지나 했더니 시어머니 병수발을 한단다.
내가 "우리 인연이 25년쯤 되었는데 몇 번이나 만났을까요?" 라고 묻자 그녀가 정확히
7 번이라고 알려주었다.
꾸미지 않은 얼굴로 나를 버스터미널에 내려주고 가던 그녀의 덜덜거리는 고물차가
오래 뇌리에 남았다. 이런 인연을 뒤로 하고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간다.
몇 년 전부터는 소통하지 않는다. 모든 종교에 비판적인 나는 어느 종교에든 편향된
이들을 힘들어 하기 때문이다.
그저 그만큼의 인연이었지만 그와 나의 아름다운 시간들이었기에 그저 감사한다.
남은 날들엔 그녀가 여행도 다니고 자유도 누리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2024.02.28
앵커리지
첫댓글
한창 때 만났던 인연이었을텐데,
초노의 나이에 다시 만나면
두 분 모두의 감정이 어땠을까요.
어느 글에서,
옛 인연을 구태어 찾지 말라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동창이나 고향친구일지라도,
오랫만에 만나면,
변한 모습에 마음 설렁해지던데요.
동창은 그래도 계속 만날 수도 있지만,
사이버상은 보고파서 만난다 해도
그것으로 끝일 것 같습니다.
기억 저편의 인연일지언정,
앵커리지님의 글은 잘 읽었네요.^^
맞아요. 40 대 초반 한창일 나이였어요.
옛 인연을 구태여 찾을 이유도 없겠지만 찾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연이란 수없이 다른 형태로 찾아오고 존재하니까요 ^^
저 또한 예전에 천리안, 하이텔 동호회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푸르던 시절 이었지요.
아련하네요.
좋은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 방면에 밝은 친구가 있어서 하이텔 종교쪽 동호회에서
시작했어요. 그땐 그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대단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요 ^^
앵커리지님도 그녀도
정말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면
짧은 시간에도 친근해지고
이성으로서 야릇한 감정이 생기던데
도대체 도 닦으셨나요?ㅋㅋ
저는
이성간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그래요.
제 감정이 좀 헤픈 탓일 수도 있고요ㅋㅋㅋ
그래서 시도조차 안 합니다.
현실감과 거리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녀는 멀리 있었고, 가까이 산다 해도 도저히
외출이 안 되는 사람인데
무슨 기대(?) 를 하겠어요.
내가 바보도 아니고... ^^ 그리고 25년간
7번 만났다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어요 ㅋ
무슨 초월감 같은 게 아니라도 남녀간에 친구가
가능하다고 봐요.
특히 나이가 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앵커리지
그래서 제가
대단하시다고 한거예요.
그러기 쉽지 않은 일이라서요.
저 같으면
가슴이 칠락팔락 했을거예요.ㅋㅋ
그분에게 큰 힘이 되어주신 앵커리지님
멋지십니다^^
@제라 가슴이 칠락팔락(?) 하신다면 아직 많이
순수하다는 뜻일 겁니다 ^^
그녀'는 늘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힘이 되어줄 수 있어 제가 고맙지요.
그녀의 힘든 삶에 앵커리지 님의 글이
한 줄기 빛이었나 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글 쓴 분에게
만남을 요청했을까 싶네요.
때론 누군가의 글에서 저도 큰 위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아들 딸
그렇게 보낸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요.ㅠ
힘든 삶이 그녀로 하여금 종교에
의지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종교에 편향적일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앵커리지 님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베리아님 댓글을 보면 생각이 깊은 분이네요.
맞아요. 그녀는 어려운 환경에서 종교적으로
지독하게 편향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종교마저 없다면 너무 힘들었을
테니까요. 저 또한 고집이 세서 종교적으로 급격히
경도된 사람은 힘들어 하니 그만큼에서 인연이
멈추었고 그게 다행이기도 해요 ^^;;;
당시에는 제 글이 그녀에게 창이고 빛이었다고 해요.
젊었으니, 그리고 그 시절이었으니 편지로 주고
받았겠지요 ^^ 지금 시선으로 보면 많이 답답해
보이겠지만 그 시절엔 다 그랬으니까요.
충청도 어느 산골에서 태어나(늘 말씀하시는 대로의 표현)
아직까지도 귀한 첨단산업의 역군으로 활동하시는 중에도
저리 귀하고 아릿한 추억까지 많이 가지고 계신듯하여
서울에서 태어나 촌 넘처럼 아무일 없이 그럭 저럭 살아가는 저랑
비교가 너무 됩니다. 그래서 간혹 그 이야기들이 부럽습니다. ^^
계룡산 골짜기에서 태어나 겨우 보리밥 먹고
자랐는데 아직도 비행기 화장실 청소하믄서
'생계형 알바' 로 살고 있으니 출세한 거지요 ㅋㅋ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어렵게 핵교 댕기고
군대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신산스럽고 다양한
경험이 좀 있습니다 ^^;;;
저는 둥실님이 부러워요.
옛날사연은 항상 추억속에 남겨두어야 정리가 됩니다. 묵혀둔 사연을 그렇게 꺼내서 보여주는 것은 그만큼 자신있고 간단명료하다는 듯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때 당시 유명한 학생잡지였던 <학원>지 학생기자를 2년간했습니다. 죽은 마광수도 같은 기자였고 배우 허장강아들도 학생기자였답니다.. 당시 펜팔이 대유행이었는데 학원지에 펜팔란에 제이름을 올렸더니 일주일사이에 전국여고생한테 편지 700통이 온적이 있답니다.. 그 여고생중에는 지금 유명인사도 있습니다. 추억은 그저 추억으로 앨범속에 넣어야 속이 편합니다.
추억은 존재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누군가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면 가끔씩
꺼내서 보아도 좋구요.
40대에 처음으로 카페 활동을 하셨군요. 남쪽에 사는 그녀도 참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입니다.
친구가 되어 달라는 청을 거절하셨다니....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내 마음이 아픕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녀가 꿋꿋하게 잘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처음엔 거절했다가 좋은 친구가 되어
잘 지냈습니다. 만나는 건 적었지만요 ^^
살면서 기억에 오래 남거나
추억으로 간직할 인연들이
사실 그렇게 많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분의 깊은 아픔은 짐작할 수도
없겠지만, 서로에게 좋은 추억 인연으로 남았으니 좋아 보입니다.
좋은 추억으로 오래 남는 사람은 사실 적지요.
어쩌면 비현실적인 인간관계였지만 이러한
인연도 있었습니다.
그만큼의 인연이었던 게지요.
그녀와의 추억이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으니
그로써 족하다고 생각 됩니다
글 친구는 글 친구로 남는 게 좋을 듯. .
글과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어요 (실망)ㅎ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옛날에도 사람을 평가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
이라고 했습니다. 두루 보고 평가를 해야겠지요.
마무리 할 것도 없는 그저 좋은 추억이었어요^^
진솔하게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는 사람은 큰 행복을 누리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전 생각합니다. ^^~
맞아요. 소소한 일상에 감사할 일들이 지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