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 공원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공원 산책로 한편에 기다란 웅덩이를 파고 가녘에는 자연석을 쌓아 놓았는데 봄이 되면 연못 주위로 억새와 각종 수초가 자라 연못의 모양새가 한결 자연스럽고 아름다워진다. 이 연못에 늦은 가을이 오면 물은 빠지고 봄이 오면 다시 채워진다. 물이 빠지면 주위의 억새도 베어지고 시들어지거나 생명이 다한 수초들은 제거된다. 누런 억새는 눈이 올 때도 그 모습이 멋있는데 인위적으로 모두 베어내는 것은 섭섭하기까지 하다. 봄이 와 동토가 풀어지면 움츠렸던 생명들이 다시 돋아나는 건 늘 보아왔던 자연의 이치이니 새삼 신기할 건 없다. 그러나 겨울동안 물 빠진 연못의 바닥이나 주위의 돌멩이들조차 얼어붙어 그 속에 있었던 물속 생명들은 모두 살아지고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만 봄이 되고 물이 채워지면 금방 수초도 자라고 개구리와 올챙이도 어디서 나타났는지 돌아와 있다. 벚꽃이 질 때쯤이면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주 작은 물고기도 눈에 띈다. 없을 것만 같은 맹꽁이도 장마철이 되면 어김없이 연못에서 울어댄다. 모두 어디에서 추위를 견디었을까? 경칩이 지난지도 열흘이 넘었다. 우수 경칩이 지나면 개구리가 돌아온다고 했는데 아직은 물이 채워지지 않았으니 뛰어다니는 봄손님을 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지금 남녘에는 매화가 한창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작다고 생각하지만 그 남녘의 흐트러지는 매화를 수도권에서 보려면 좀 더 시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작은 땅에 매화가 필요한 기온차와 시간차가 있다는 것은 크고 작음의 욕심을 버리라는 자연의 가르침 같다. 내가 사는 동네 공원 어디에 매화나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다니는 산책로 주변 양지바른 곳에서는 벚꽃이 꽃망울을 내밀고 있다. 요 며칠 높아지던 기온이 조금 움츠러들었다. 순리를 앞지르려는 봄을 아직은 아니라고 자연이 붙잡는 모양이지만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오늘이 지나면 공원 연못에도 물이 채워져야 할 것 같다. 동토가 풀어지며 깨어난 개구리가 질척거리는 진흙에서 빠져나와 몸을 의지할 산뜻한 연못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모두가 온기를 그리워한다. 지붕이 없는 곳에서 겨울을 견뎌야 하는 자연친화적 동식물들이야 노출된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되었지만 같은 동식물이라도 사람들에 의하여 지붕 안으로 들여진 것들은 지붕 밖에서는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엔 사계절이 있었다. 내가 학창시절이었을 때도 그 사계절이 매우 뚜렷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 경계가 매우 애매하다. 더군다나 사람의 경우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추우면 난방을 심하게 하면서 계절 변화에 적응하는 힘이 약해졌다. 그러니 작종 새로운 질병에도 취약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요새 도시의 여름과 겨울엔 이름에 걸맞은 계절이 없다. 어디 어느 지붕 아래를 가나 더위를 식혀주고 추위를 녹여주며 심지어 버스 정류장까지 지붕이 생기고 냉난방이 이루어지니 사람들이 계절을 느낄 새가 없다. 그래서 사계절을 감지하여야 하는 우리 몸속의 계절감지 센서는 작동을 멈춘지 오래되었다.
난방과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데워주던 겨울철 TV광고가 있었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라는 카피를 지닌 광고였다. 부모라는 한자어에는 아버지가 앞에 놓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게 자신들의 부모를 한자어 대신 순수 우리말로 호칭할 때는 아버지 보다 어머니를 앞세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부르는 게 통상적이기 때문에 어머님 댁이 아니고 ‘아버님 댁’이라는 대사는 상품을 인식시키는 또 하나의 기발한 역발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 광고는 당시 자식들의, 특히 며느리가 시부모 생각하는 효심의 상징이었다. 그 당시 자식들이 보일러 놔주겠다고 하면 아마 많은 부모들이 그 보일러를 지칭하였을 것 같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의 겨울 TV에 그런 따뜻한 광고는 더 이상 없었다. 아마도 겨울이 예전처럼 춥지도 않았을 뿐더러 요새는 모든 곳에 기본적으로 보일러는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보일러 대신 요새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각종 건강보조식품 광고가 TV를 점령하고 있다. 그러나 자식들이 ‘부모님께 000 사드려야겠어요’라는 대사는 없다.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강제적 가르침보다는 따뜻한 광고카피 한 마디가 더 효과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현실을 모르는 라테의 독백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2026년 3월 19일 하늘빛
첫댓글 水流花開 물이 흐르는 곳에 꽃이 핀다. 대화가 소통되는 곳에 행복이 찿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