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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백제 토론방 8. 웅략천황의 죽음
과거와 미래 추천 0 조회 88 25.07.09 20:47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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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7.10 02:41

    첫댓글 송서에서는 왜왕 무가 478년 전후로 즉위했다고 나와 있으므로 일본서기의 웅략의 재위 기간과 확실하게 다르지요 왜왕 무의 국서 내용에 부형 즉 아비와 친형이 갑작스럽게 사망해서 부형의 상을 치르는 상황이라는 표현 내용은 갓 즉위한 새왕의 정황을 담은 색채가 강한 내용이라 18년전에 즉위했다는 웅략 천황의 재위 정황과 거리가 먼 내용으로 웅략이 그래서 왜왕 무가 될수 없는게 자명한 법입니다 송서에 기록된 왜왕 무가 웅략이라는 주장은 왜왕 무의 국서 내용을 제대로 고려치 않은 무리한 주장일수밖에 없지요

  • 작성자 25.07.10 13:52

    "송서에서는 왜왕 무가 478년 전후로 즉위했다고 나와 있으므로"
    => 송서의 어떤 내용을 근거로 왜왕 무가 478년에 왕이 되었다고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처음 듣는 내용입니다) 송서에 왜왕 무는 462년에 이미 왕이 되었다고 나옵니다. 따라서 그의 즉위는 462년 이전입니다.
    世祖大明六年(462) 「倭王世子興,奕世載忠 作籓外海 稟化寧境 恭修貢職。新嗣邊業 宜授爵號 可安東將軍 倭國王。」 興死 弟武立 自稱使持節 都督 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 七國諸軍事 安東大將軍 倭國王。
    송서에 왜왕 무가 처음으로 나타나는 462년이나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478년을 뜻하는 연도가 안 나와도 삼국사기와 일본서기만 보면 유송에 사신을 보낸 이유를 알 수 있으므로 그 연도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462년의 자심감(7국제군사 자칭)과 전혀 다르게 비통함으로 가득찬 478년의 왜왕 무의 국서를 한 줄씩 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 25.07.12 13:11

    @과거와 미래 송서 왜전의 대명 6년(462년)의 잘못 해석하시는데 송서 왜전 ;"제(濟)가 죽자, 세자인 흥(興)이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세조(世祖) 대명(大明) 6년(462)에 조를 내려 말하기를, "왜(倭)의 왕세자 흥(興)은 여러 대에 걸쳐 충성을 바쳐왔고, 바다 바깥에서 번국이 되어 교화를 받고 그 변경을 편안케 하였으며, 공손히 조공해왔다. 새로 변방의 업(業)을 이었으니, 마땅히 작호(爵號)를 내려 안동장군·왜국왕으로 한다."하였다."

    흥(興)이 죽자 아우인 무(武)가 즉위하였는데, 스스로 칭하기를 사지절·도독왜백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칠국제군사·안동대장군·왜국왕이라 하였다.

    위의 송서 대명6년의 기사는 남조 조정이 무의 형인 흥을 왕세자에서 왜국왕으로 승진 책봉시킨다는 성격의 내용이지
    무가 그해에 즉위했다고 설명하는 기사가 아닙니다 왜국왕 책봉 이후의 다음 문장 내용에서 흥이 죽고 무가 즉위했다는 내용들은 대명6년(462년)이후에 벌어진 후속 연도에 벌어진 사건 팩트들을 언급 설명한 것이지 흥 책봉 당해년도인 462년에 벌어진 사건들을 언급한게 아니었습니다




  • 25.07.12 14:29

    @과거와 미래 님이 웅략의 왜왕 무 동일인 설의 근거로 인용하는 송서의 462년은 일본서기에서 웅략의 즉위연도로 기록된 456년과 6년의 연도차이가 너무 많이 날수밖에 없어서 전문 기록인 일본서기와 맞지 않은 송서의 연도 기록만 가지고 웅략을 왜왕 무와 동일인이라고 보기 힘든게 그런 이유입니다 그리고 연도차이뿐만 아니라 왜왕 무의 국서에 부형의 상을 치르고 있다는 내용은 462년 즉위설에 반대되는 내용이라 웅략 왜왕 무 동일인 논리대로 462년에 즉위한 왜왕이 재위 18년이나 될때까지 남조 송 같은 타국에 사신을 보내지 않다가 18년이 흐른 늦은 시점에 와서 부형을 상을 당하고 계승하는 사실을 늦게서야 알릴수가 있는지요 아무리 교통 거리상의 장시간을 이유로 들어도 그렇게 3,4년 이상을 걸린다는게 말이 안되지요 그래서 왜왕 무가 웅략이 될수 없는게 그 때문입니다 478년 국서에 부형을 상을 치르는 상황이라고 말한 왜왕 무가 그래서 웅략이 되기 힘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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