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동시집 47권. 2010년 봄부터 동시를 쓰기 시작해 같은 해 가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 이후 꾸준히 동시를 써 오고 있는 장동이 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시인은 화목보일러를 지피다가, 풀을 매다가, 친구가 데려온 어린 고라니를 산에 놓아주다가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하고 작품으로 다듬었다. 그렇게 완성한 5년간의 작품들 중에서 또다시 가려 뽑은 첫 동시집은 장동이의 시 세계를 딴딴하게 보여준다.
이 동시집의 배경이 된 마을, 오도 가도 못하게 고라니의 마음을 묶어놓은 산골 마을은 경상북도 산북면 가좌리이다. 전쟁이 나기 전엔 큰마을, 새터, 산막, 묵은터, 네 개의 마을이었다가 이후 묵은터 사람들을 큰마을로 이주시켜 세 개의 부락이 되었는데, 동네 지형이 달라져도 이 마을엔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음이 가는 재혁이 아재, 어릴 적 세상을 떠난 절름발이 친구 정삼이, 중학교 간 혁이 오빠에게 설레어하는 아이와 새의 죽음에 예의를 갖출 줄 아는 강아지 보리, 그리고 할머니들의 고장 난 텔레비전이나 보일러를 고쳐 주는가 하면 밤참으로 제삿밥을 얻어먹고 어울려 화투 치고 자장면 내기도 하는 시인 장동이가 그들이다.
할머니들은 동네에 밥 짓는 연기 보기 어렵던 흉년이어도, 자식들이 다 떠나가 텅 빈 땅이어도 감나무처럼 굳게 이 오지를 지켜왔다. 곳곳이 이야기로 무성한 이 마을을 시인은 고대로 떠내 종이에 옮겨 놓았다.
제1부 : 산골 아침/어미 새/새끼 새/외양간 소야!/외양간 쇠파리야!/머위 잎 빵집/여우비/엄마 몰래/소리개/제비꽃은 궁금해/나비/새순 몇,/머위의 봄
제2부 : 여름/첫 싸움/지는 해/복날/겉과 속/나도 모르게/어떤 장례/또, 일요일/시치미/편지/감나무/보름밤
제3부 : 요 며칠/겨울/까불 할매/재혁이 아재/지동 할매/윤경임 할매/새삼시룹게/김정희 할매/숭년/내 친구, 정삼이/날날이
제4부 : 봄소식/자벌레의 콩밭/추석/고욤나무의 겨울/사과밭 새들은/뒷집 할머니와 아빠/들깨와 도토리/저, 초롱꽃/고라니의 말/감나무의 가을은/하늘 소식/새들이 늦잠을 자는 아침이면
해설-김이구
5년의 열매를 담다, 장동이 시인의 첫 동시집
장동이 시인은 2010년 봄부터 동시를 쓰기 시작해 같은 해 가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 이후 꾸준히 동시를 써 왔다. 화목보일러를 지피다가, 풀을 매다가, 친구가 데려온 어린 고라니를 산에 놓아주다가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하고 작품으로 다듬었다. 가능한 한 오래도록 대상을 바라보기에, 그들은 구체성을 띠고 작품에 등장한다. 장동이 시인은 그들이 “이름 없는” “이름 모를” 것들이 되게 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바라보고 말을 걸고 그들의 입장에 섰다. 「제비꽃은 궁금해」는 마지막 한 연을 얻는 데 1년이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한 5년간의 작품들 중에서 또다시 가려 뽑은 첫 동시집은 장동이의 시 세계를 딴딴하게 보여준다.
흰 점 촘촘 밤색 어린 고라니는
산 너머 마을이 너무 궁금해
우거진 풀숲에 몸 숨겨 두고
마음 혼자서 구경하러 간대
엄마 몰래 바람결처럼
그럼 어린 고라니는
마음이 돌아올 때 헷갈릴까 봐
그 자리서 꼼짝 않고 기다린대
마음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들이나 산엘 가면 가끔
이런 고라닐 만날 수 있어
그럼 모른 척 그냥 지나가
마음이 돌아오는 대로 녀석은
엄마한테 얼른 가야 혼나지 않거든
「엄마 몰래」 전문
오래된 이야기가 있는 마을 일대기
이 동시집의 배경이 된 마을, 오도 가도 못하게 고라니의 마음을 묶어놓은 산골 마을은 경상북도 산북면 가좌리이다. 전쟁이 나기 전엔 큰마을, 새터, 산막, 묵은터, 네 개의 마을이었다가 이후 묵은터 사람들을 큰마을로 이주시켜 세 개의 부락이 되었는데, 동네 지형이 달라져도 이 마을엔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음이 가는 재혁이 아재, 어릴 적 세상을 떠난 절름발이 친구 정삼이, 중학교 간 혁이 오빠에게 설레어하는 아이와 새의 죽음에 예의를 갖출 줄 아는 강아지 보리, 그리고 할머니들의 고장 난 텔레비전이나 보일러를 고쳐 주는가 하면 밤참으로 제삿밥을 얻어먹고 어울려 화투 치고 자장면 내기도 하는 시인 장동이가 그들이다. 할머니들은 동네에 밥 짓는 연기 보기 어렵던 흉년이어도, 자식들이 다 떠나가 텅 빈 땅이어도 감나무처럼 굳게 이 오지를 지켜왔다. 곳곳이 이야기로 무성한 이 마을을 시인은 고대로 떠내 종이에 옮겨 놓았다.
2000년대 이후 동시나 동화에 할머니 소재가 유행처럼 등장하기도 했는데, 장동이 시인의 할머니 동시는 할머니 자신들의 삶과 목소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어린이와의 접점에 중점을 둔 다른 동시들과는 차별화된다. 그의 첫 동시집에서 가장 특징적이고 독보적인 성과는 바로 이 할머니 동시들일 것이다._김이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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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이 시인은 2010년 봄부터 동시를 쓰기 시작해 같은 해 가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 이후 꾸준히 동시를 써 왔다. 화목보일러를 지피다가, 풀을 매다가, 친구가 데려온 어린 고라니를 산에 놓아주다가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하고 작품으로 다듬었다. 가능한 한 오래도록 대상을 바라보기에, 그들은 구체성을 띠고 작품에 등장한다. 장동이 시인은 그들이 “이름 없는” “이름 모를” 것들이 되게 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바라보고 말을 걸고 그들의 입장에 섰다. 「제비꽃은 궁금해」는 마지막 한 연을 얻는 데 1년이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한 5년간의 작품들 중에서 또다시 가려 뽑은 첫 동시집은 장동이의 시 세계를 딴딴하게 보여준다.
흰 점 촘촘 밤색 어린 고라니는
산 너머 마을이 너무 궁금해
우거진 풀숲에 몸 숨겨 두고
마음 혼자서 구경하러 간대
엄마 몰래 바람결처럼
그럼 어린 고라니는
마음이 돌아올 때 헷갈릴까 봐
그 자리서 꼼짝 않고 기다린대
마음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들이나 산엘 가면 가끔
이런 고라닐 만날 수 있어
그럼 모른 척 그냥 지나가
마음이 돌아오는 대로 녀석은
엄마한테 얼른 가야 혼나지 않거든
「엄마 몰래」 전문
오래된 이야기가 있는 마을 일대기
이 동시집의 배경이 된 마을, 오도 가도 못하게 고라니의 마음을 묶어놓은 산골 마을은 경상북도 산북면 가좌리이다. 전쟁이 나기 전엔 큰마을, 새터, 산막, 묵은터, 네 개의 마을이었다가 이후 묵은터 사람들을 큰마을로 이주시켜 세 개의 부락이 되었는데, 동네 지형이 달라져도 이 마을엔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음이 가는 재혁이 아재, 어릴 적 세상을 떠난 절름발이 친구 정삼이, 중학교 간 혁이 오빠에게 설레어하는 아이와 새의 죽음에 예의를 갖출 줄 아는 강아지 보리, 그리고 할머니들의 고장 난 텔레비전이나 보일러를 고쳐 주는가 하면 밤참으로 제삿밥을 얻어먹고 어울려 화투 치고 자장면 내기도 하는 시인 장동이가 그들이다. 할머니들은 동네에 밥 짓는 연기 보기 어렵던 흉년이어도, 자식들이 다 떠나가 텅 빈 땅이어도 감나무처럼 굳게 이 오지를 지켜왔다. 곳곳이 이야기로 무성한 이 마을을 시인은 고대로 떠내 종이에 옮겨 놓았다.
2000년대 이후 동시나 동화에 할머니 소재가 유행처럼 등장하기도 했는데, 장동이 시인의 할머니 동시는 할머니 자신들의 삶과 목소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어린이와의 접점에 중점을 둔 다른 동시들과는 차별화된다. 그의 첫 동시집에서 가장 특징적이고 독보적인 성과는 바로 이 할머니 동시들일 것이다._김이구(문학평론가)
뭐든지 너무 아는 척해 싸서 싫어.
뭘 고렇게 아는 척하는지 몰라.
요 며칠, 고 할마이네
아무도 마실 안 가 뿌맀어.
고 할마이네 가 봤어
집구석에 콕 처박혀 안 나오데!
요 며칠, 봉순네서 놀았자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할마이들이
울매나 쿠사리를 주던지
요 며칠, 꼴도 안 비치서
내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런데 장동이 양반,
요누무 할마이들이
요 며칠, 누들 집에 모이등가
「요 며칠」 전문
두 할머니가 넌지시 묻는 서로의 안부 내지 염탐이 재미있다. 할매 방에 앉아 군밤이라도 까먹으며 듣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시인은 여기에 어떤 해설도 달지 않는다. 때로 할머니들은 “망할 눔의 다람쥐”가 들깨를 훔쳐 달아났다고 욕하면서 다람쥐 먹이인 도토리를 산에서 잔뜩 주워 오기도 하고, 이웃이 집을 비운 줄 알고 이웃집 개한테 욕을 하기도 한다. 편집되지 않은 할머니들의 일상이 무구해서 더 실감난다. 일상뿐 아니라 오랜 시간을 지나며 얻은 혜안과 삶의 자세도 담았다. 밥은 한 술이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연산댁 할매의 음식 철학이 지동 할매에게 대물림되고(「지동 할매」), 혼자 사는 까불 할매는 운수 사납다는 아이들의 운수를 모두 다 사 버리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기도 한다(「까불 할매」). 아이들이 공감해 줄까, 할머니들을 시화하며 시인에게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인은 아이들이 겪어 보지 못한 삶과 마을에 대해 말해 주기로 한다.
“베풀기만 하는 할매들의 고된 삶,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존재들의 사연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로 조부모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대부분인 마을, 이런 마을을 품고 있는 자연이 있다는 것도요. 아이들이 학교 학원 집이라는 좁은 틀 안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느꼈으면 해요. 어느 산골 마을에는 할매들이 살고 풀과 나무와 벌레와 짐승들이, 어렵지만 복닥거리며 지내는 모습이 동시대에 있다는 것을, 또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들은 서로 배려하고 산다는 것을요.”_장동이
『엄마 몰래』에는 마을에서 5킬로 거리에 있는 분교에서 시인이 함께 글쓰기를 하며 만난 아이들도 있다. 첫싸움을 하거나 첫사랑에 눈뜨거나 어른들의 겉과 속이 다른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웃음을 짓게 한다. 자라는 환경은 다르지만 어느 아이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마을이 품은 오늘의 이야기, 마을을 품은 우주의 이야기
이 모두가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동네 이야기를 들려준 시인은 이 동네에 공존하는, 이 동네를 품고 있는 자연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평론가 김이구는 이 안에선 “머위는 머위 방식대로, 달팽이는 달팽이 방식대로, 나비는 나비 방식대로 살고, 계절이 바뀌고 비가 오는 자연의 변화에 거스름 없이 조화롭게” 지낸다고 말한다. 모두 제 몫을 살며 하나의 우주를 이루는 것이다.
이른 아침 담벼락 밑
꽃잎 한 장,
꽃에서 꽃으로만 다니더니!
「나비」 전문
이른 아침 담 밑에서 발견한 죽은 나비. 꽃에서 꽃으로만 다니더니, 땅 위에 피어난 꽃잎인 듯 누워 있다. 단 세 줄로도 나비의 삶과 죽음을 감당한다. 간결하여 읽는 이에게 더 많은 생각의 길을 열어 준다.
장동이의 동시들은 가만히 뜯어보면 결벽스러울 정도로 말끔하다. 눈으로 직접 보고 감각으로 생활로 잡아낸 세계만을 그리고 그 너머로 건너가거나 상상하지 않는다. 이는 경험주의의 한계나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 아니라 리얼리스트로서의 엄격성에 기인한다. 그러한 엄격성과 결벽성이 빚어낸 깔끔한 세계는 어느 순간 이 세상에는 없는 마을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이 흔한 장면들이 이 세상에 없는 장면이라니!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마을을 마치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자, 이런 세상/그림은 아름답지 않나!_김이구(문학평론가)
꽃주먹을 내밀며 처음 세상을 만나는 머위에게서 힘을 얻고(「머위의 봄」), 고라니의 목소리를 빌려 저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하고(「고라니의 말」), 사과를 통째 다 먹지 않고 남겨 놓는 새들(「사과밭 새들은」)을 통해 공존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고라니를 만나면 참견하지 말고 못 본 척 지나치라는 말이 아까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고라니가 다치지 않고 무사히 엄마 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자연을 해치고 간섭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삶’을 묻는 말은 아닐까.
시인은 현재 농사를 지으며, 동시전문지 『동시마중』의 2기 편집위원으로 4년째 활동하고 있다. 그사이 동시 문단은 더 풍성해지고 유연해졌다. 여기에 동시의 폭을 한 발 더 확장한 장동이 시인, 그의 두 번째 동시집은 얼마나 더 넓은 마을을 그릴지 기대해 본다.
“동시는 폼을 잡는다든가 뭐뭐인 척을 할 수 없어요. 어깨 힘을 빼야 해요. 또 쉽고 단순하게 들어가야 해요. 시처럼 말재주를 부린다거나 어렵게 할 수가 없어 좋아요. 그래서 점점 동시의 매력에 빠져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문학 가운데서도 변방인 아동문학 그 가운데서도 또 변방에 있는 동시가 전 좋아요. 어쩌면 동시는 시의 ‘오래된 미래’일지도 몰라요.”_장동이
첫댓글 장동이 선생님, 첫 동시집 출간을 축하합니다. ^^
늦은 밤인데 조심스럽게
빗소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할 말이 있는 눈치여서
마루로 데리고 나왔다
까만 어둠도 기다렸다
금방 하늘을 다녀왔으니까
함께 들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너무 심심했다
토닥토닥 등 두드리며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는 할매처럼
<하늘 소식> 전문, <<엄마 몰래>>, 문학동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