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데이비드 이글먼 (알에이치코리아, 2024)
6장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틀린 질문인 이유
- 무차별 총기 난사 살인범 찰스 휘트먼. 13명 총격으로 사망, 아내와 어머니도 살해. 일생은 아주 평범. 정신과 상담은 받았으나, 계속 혼란, 유서에서 뇌 부검 요청. 뇌 시상부위에 동전만한 종양 발견. 편도체 압박하고 시상하부와 충돌. 편도체는 감정조절 두려움과 공격성 조절에 관여. 편도체 손상은 원숭이에게 두려움 사라지고 감정 무뎌지고 과잉반응이 나타나는 등 다양한 증상 연구됨. 뇌 손상 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그 사람에게 얼마나 잘못을 돌릴 수 있는가?
- 40살의 알렉스의 성적 취향이 변함. 두통 호소. 아내가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신경과에서 뇌스캔. 안와전두피질에서 커다란 종양 발견. 수술 후 그의 성적 취향이 정상으로 돌아옴. 생물학적 여건 바뀌면 사람 의사결정, 취향, 욕망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 취향이나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보통은 개인적인 자유로 여겨지지만, 증거를 조금만 조사해봐도 이런 생각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 드러난다.
- 금기에서 벗어난 행동은 전측두엽 치매 환자에서 흔히 나타남. 그들이 가게 주인 앞에서 물건을 훔치고,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고, 정지신호에 뛰어가고, 아무 때나 노래하고, 쓰레기통에서 주운 음식을 먹고, 물리적인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성추행을 저지른다.
- 뇌의 화학물질 균형이 조금만 바뀌어도 행동이 크게 변할 수 있다는 것, 환자의 행동을 생물학적인 현상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사람의 행동이 자유로운 선택 결과라고 믿고 싶어도, 위의 사례를 보면서 그런 믿음이 약해진다.
- 모든 성인이 똑같이 건전한 선택을 할 능력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좋은 생각이지만 틀렸다. 사람의 뇌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어른이 되었을 때 됨됨이는 많은 ‘병원체’(화학물질과 행동)가 영향을 미침. 이런 병원체에는 임신 중 모체의 약물 사용, 엄마 스트레스, 출생 시 저체중. 자라는 동안 아이의 방치, 신체적 학대, 머리 부상 등이 정신 발달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어른이 된 뒤에는, 약물 사용과 독성물질 노출로 뇌가 손상되어 지능, 공격성, 의사결정 능력이 변할 수 있다.
- 이런 깨달음이 범죄자의 죄를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사람마다 출발점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우리 행동이라는 배를 우리 자신이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만큼 조종하고 있지 않다. 특수폭행, 살인, 무장 강도, 성폭력이 유전자 차이로 10배 이상 압도적, 그 이유는 Y염색체. 사람의 됨됨이는 의식이 접근할 수 있는 수면보다 훨씬 아래에 존재하며, 세세한 부분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우리 지식이 범죄자에게 잘못을 벗겨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최후의 결론은 증거를 바탕으로 범죄자를 지금처럼 격리하는 시스템이 계속 작동하겠지만 처벌의 이유와 재활 기회가 달라질 것. 현대적 뇌과학이 자리 잡으면, 그 지식을 배제하고 사법시스템이 계속 가능하지는 않을 것.
- 사법 시스템 관점에서 인간은 실질적인 추론자다. 행동 결정에 우리는 의식적으로 숙고한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범죄 행동뿐만 아니라 죄를 저지르려는 마음까지 드러나야 한다고 사법시스템은 요구한다. 이렇게 인간을 실질적인 추론자로 보는 견해는 직관적이지만 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생물학적 법칙과 이 직관적인 사법 시스템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백지 상태로 태어나지 않고, 마음대로 세상을 받아들여 자유로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유전자, 신경회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의식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얼마나 되는지도 분명치 않다. 애당초 결정권이 있었는지조차 분명히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갖가지 행동에 대해 인간의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 할까?
-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회로들이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데, 그런 생물학적 법칙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방향을 지시해주고, 올바른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속삭이는 내면의 작은 목소리가 존재하는가? 그것이 이른바 자유의지 아닌가?
- 핵심적인 의문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근본적으로 자동조정인가, 아니면 생물학의 원칙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선택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가이다. 이 문제는 항상 철학자와 과학자에게 모두 난제였다.
- 우리가 아는 한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은 뇌 안의 복잡한 네트워크 속 다른 활동의 조종을 받는다. 좋든 나쁘든 신경활동 외의 다른 일이 일어날 여지는 없는 듯하다.
- 만약 자유의지가 몸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려면, 뇌에서 항상 벌어지는 활동에도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의지가 적어도 일부 뉴런과 물리적으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뇌에서 신경망에 속한 다른 부분의 조종을 받지 않는 지점을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
- (<- 이것은 문제가 있는 논리로 보여진다. ‘자유의지’는 인간들 간의 관계 속에서 유의미한 개념이지, 단일 개체의 생리학적 차원에서는 무의미한 것이라는 관점이 있다. 자유와 그것의 그늘상인 책임의 존재는 생물체 개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개체와 개체의 상호작용하는 관계성에서 창발 되는 효과적인 개념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자유란 마치 화폐와 국가, 종교처럼, 실체는 없지만 모두가 믿으면 사회적 기능을 하는 간주관적 실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이클 가자니가의 <뇌는 윤리적인가>에서)
- 현재 우리가 지닌 과학지식으로는 자유의지가 슬그머니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물리적인 틈새를 뇌에서 찾을 수 없다. 다른 부위와 인과관계를 맺지 않은 부분이 전혀 없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물리적 실체가 없는 존재(자유의지)와 물리적인 존재(뇌의 여러 부위들)의 상호작용이라는 문제 주위에 명확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 정말로 자유의지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과학은 아직 자유의지가 있다고 판명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는데도, 직감은 선뜻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 나는 자유의지 문제에 대한 답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자 한다. 적어도 사회정책이 목적이라면 그렇다. 우리가 확실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결정은 충분히 많다. 자유의지가 존재할지는 몰라도, 운신의 폭이 지극히 좁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충분한 자동증 원칙이라는 것을 제안 한다.
- 찰스 휘트먼, 알렉스, 전측두엽 치매로 절도범이 된 사람, 도박꾼이 된 파킨슨병 환자 등 공통점은 그들의 생물학적 상황과 행동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의지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 자유의지에 대해 우리가 혼란을 느낀다는 사실은 누군가를 처벌할 때 자유의지를 의미 있는 근거로 사용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 이것이 모든 범죄자에게 처벌을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다. 상황 설명과 무죄 증명은 같지 않다. 나쁜 사람이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처벌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처벌 방식을 다듬을 것이다.
- 책임 묻기에서 생물학적 설명으로 태도가 바뀐 원인이 무엇일까?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은 약물 치료의 효과일 것이다. 환자를 아무리 구타해도 우울증을 쫓아버릴 수 없지만, 플록세틴이라는 작은 알약 하나가 효과를 발휘할 때가 많다. 조현병 증상을 구마 의식으로 극복할 수 없지만, 리스페리돈이라는 약으로 조절할 수 있다. 조증은 배척이 아니라 리튬에 반응한다. 대부분 지난 60년 동안 이루어진 이런 성공은 여러 장애를 뇌 문제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영역 문제로 구분하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해 주었다.
-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다. 그에게서는 뚜렷한 신경학적 문제가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징역형이나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그는 신경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뇌에 측정 가능한 문제가 있다면, 범죄자는 관용을 얻는다. 그가 정말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기술로는 감지할 수 없는 생물학적 문제를 지닌 사람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틀린 질문이라는 것이다.
- 기술이 앞으로 계속 발전하면서 뇌 활동을 측정하는 솜씨가 좋아지면, 구분선이 점점 옮겨가서 지금은 불투명한 문제들이 새로운 기술 덕에 조사 대상이 되어, 언젠가는 특정한 유형의 나쁜 행동에 생물학적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 조현병, 간질, 우울증, 조증이 그런 길을 걸었다.
- 문제의 핵심은 어디까지가 생물학적 요인이고 어디까지가 그의 책임인가?, 라고 묻는 것이 이제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요인과 자발적인 결정을 의미 있게 구분할 수는 없다.
신경과학자 울프 싱어는 범죄자의 뇌에서 잘못된 부분을 측정할 수 없을 때조차, 반드시 뭔가 잘못되었다고 가정해도 무리 없다고 주장. 범죄자 행동이 뇌 이상상태를 알리는 충분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 때는 신경생물학적 이유가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 사람들의 생각을 제한할 수는 없다. 사법 시스템은 그런 것을 목표로 삼으려 해도 안 된다. 사회적인 정책을 바랄 수 있는 것은 충동적인 생각이 행동으로 기울어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장기적인 결과를 걱정하는 신경회로에 더 많은 통제권을 쥐어주는 것이 목표다, 충동을 억제하는 것, 성찰을 장려하는 것, 장기적인 결과를 생각해본 뒤에도 여전히 불법적 행동을 저지른다면, 우리는 그 결과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 전전두엽 훈련은 과학적으로 아직 시작 단계지만, 이 방법이 올바른 모델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 처벌의 목적에 관한 중요한 통찰. 잘못된 행동의 책임에 대한 직관보다는 교정 가능성. 행동을 교정할 수 있을 때에만 법을 내리는 것이다. 신경가소성을 기반으로 처벌을 결정할 수 있게 될 것. 처벌을 신경과학에 맞춰서, 잘못의 책임에 대한 관습적인 직관을 공정한 방법으로 대체.
- 언젠가 인간 행동의 모든 측면이 의지의 영역 너머에 있다고 알려지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학이 계속 나아가면서, 스펙트럼에서 의지가 작용한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구분하는 선의 위치도 계속 달라질 것이다.
- 목적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다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임을 법적 배경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잘못에 책임을 묻는 것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며, 인간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구성하는 유전자와 환경의 복잡한 연결망을 풀어내는 불가능한 작업이 필요한 일이다.
- 신경과학은 과거 철학자와 심리학자의 영역에서만 다뤄지던 질문들을 아직 표면적으로 긁적이고 있다.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방식,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운가’에 대한 질문들이다. 한가한 질문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들이 법률이론의 미래와 생물학 지식이 가미된 법체계라는 기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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