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정호승
당신을 만나러
서울구치소로 가는 밤길에 함박눈이 환히 길을 밝힙니다.
눈송이들은 눈길을 달려가는 어린 쥐들의 눈동자인 양 어여쁘고
당신이 기대어 잠들던 벽들은 길이 되어
추운 나무뿌리들의 가슴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던 날
눈길에 십자고상 하나 던져버렸던 일이 부끄럽습니다
이제 곧 나무를 떠난 나뭇잎들은 돌아옵니다
적게 가질수록 더 많이 갖게 된 나뭇잎들은 썩어 다시 싹을 틔웁니다
당신은 상처입을 때까지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아직도 바람에 흔들리는 까닭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새벽별들이 가끔 나뭇가지에 걸려 빛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나무뿌리들의 고요한 기쁨 때문입니다.
===[정호승 시집-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
***십자고상 [十字苦像]: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상/다음사전에서***
정호승: (鄭浩承, 1950년 1월 3일~)
본관은 동래(東萊).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중학교 1학년(62년) 때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도시 변두리에서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고, 경희대가 주최한 전국고교문예 현상모집에서 “고교문예의 성찰”이라는 평론으로 당선되어 문예장학금을 지급하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68년 입학)를 들어가게 되었으며, 같은 대학의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당선되어 시인이 되었으며,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소설가로도 등단하였다/위키백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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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아버님께서 사업에 실패하여
겨울 어느 날 면회하러 갔던 마음을 시로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저의 추측입니다.
천주교인(세례명: 프란치스코)이신 정호승시인,
눈길에 십자고상을 던져버렸던 것은
왜? 어린 나에게 이런 고통을....하며
원망하였던 것을 부끄러워했던.
구치소의 벽, 추운 나무뿌리, 겨울새, 겨울바람이 부는 저녁부터
새벽별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을 때까지 밤을 지새운 어린 시절
정호승시인의 모습을 봅니다.
"다 지나가리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저 하늘의 구름처럼 흘러갑니다.
어쩌면 사는 것은 기다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름이 아름다운 날에
행복한 일이 많으시길 바랍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