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봄은 우리 곁에 내려앉았다. 더불어 온갖 생명체는 새로운 삶을 위하여 버벅거리겠지.
한 솔기의 바람이 나긋이 지나는 밭머리에 늙은 화상은 지겟다리를 놓는다. 연식이 가물가물
하여 진즉 폐차 되었을 형색이다. 아마 저 정도면 부품도 단종 되어 수리나 교체도 안 된다.
공동묘지에 있는 부품이나 대충 꿰어 맞출 수 있는 형색이고 작동 여부 또한 종합병원의 모든
곳을 두루 섭렵할 지경의 갈음걸이다.
살아 있는 것이 다행인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인지 안타깝다. 그러나 어
찌 하겠는가, 부실한 노구를 이끌고 나 때는? 해가며 오지게 개기는데 할 말이 없고 어이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뭔가를 웅얼거리며 대차게 각오를 다지는데 품은 사
연이 궁금하다.
때는 70년대 초반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을 앞두고 진로를
걱정하는 소년이 있었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고교 진학은 물 건너갔고 남은 학년도 마치
기 힘든 지경이었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인원을 한 개반에 몰아
반 편성을 하였다. 일명 모지리반 학생들에게 담임선생님 지시사항은 '하고 싶은 대로 해라'였
다. 때를 기다린 듯 소년이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 저는 공장에 취직 하겠습니다'. 허락을 받고 취직한 곳은 서울 왕십리에 있는 철공소
였다. 기술 하나만 제대로 배우면 먹고살 수 있다는 말에 소년은 공장으로 향했다. 그 때는
전철이 없었다. 인천 부평 역에서 경인선 기차를 타고 서울 역에서 내린다. 남대문 시장을 지나
퇴계로를 따라 걸으며 왕십리 까지 가는 것이다. 독산동에서 나오는 76번 버스를 타면 되지만
차비가 아까워 걸어 다녔다.
공장 생활은 쉽지 않았다. 툭하면 상급자가 줘 패고 잔심부름을 시키며 괴롭혔다. 길가에 떨
어진 담배꽁초를 주워오는 일도 시켰다. 그 것을 풀어헤쳐 습자지에 말아 온전한 50 개비를
만드는 것은 일상이었다. 여름엔 소나기나 비 올 때 비닐우산 떼어다 준비해 놓는 일도 있었
다. 그렇게 영글지도 않은 피폐한 삶을 살면서도 '내일을 향해 쏴라' '언젠가 한 방은 맞는다.'
를 되 뇌이며 최면을 걸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에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내가 만약 힘이 세다면 암울한 환경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힘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상대가 나
보다 힘이 없을 때가 언제인가? 를 생각하니 문제는 쉽게 풀렸다. 점심 먹고 잠깐 쳐 자빠져
자는 상급자 대가리를 줘 밟고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들었다. 어그적 거리며 발버둥치는 것을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고꾸라지는 틈을 타 옆구리를 무릎으로 찍어 차고 엎어트린 후 신체 곳
곳을 마구잡이로 밟아 조졌다.
그 날 이후로 잔심부름은 없어졌고 비닐우산 판매권과 나와바리를 접수했다. 여름철 비만
오면 함께 물 만났다. 사보이 호텔을 돌아 오비스캐빈 옆으로, 명동 꽃 다방 앞을 뛰며 맨발
로 우산을 팔았다. 그 시절 할배에겐 지극히 낭만적인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세월을 건너 뛰
다 65세가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권유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다보니 대학
에 진학하게 되었다. 2년을 다니고 졸업하는데 뭔가 아리송한 게 있었다.
중졸로 수십 년을 살아내면서 정작 자신에게 해 준 일이 뭐가 있는가? 먹고살기 위해서 또는
가족을 위해서 물불 안 가리는 소방수 역할을 했지만 정작 남은 게 무엇인가? 도대체 자신에
게 어떤 보상이 있었던가? 를 떠올리게 되었다.
돈도 필요 없고 건강만 지키자고 생각했지만 인생의 보람은 자신의 노력이며 쉬지 않고 세상을
돌파하는 것이다. 큰돈을 벌 수 있는 시기는 물 건너갔고 부귀영화는 꿩새 울은 지 오래다.
뭐니 뭐니 해도 대가리에 집어 넣는 지식은 계속 써먹을 수 있고 치매 예방에도 한 몫 한다.
지금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치지 말자. 그렇게 할배는 편입학 3년 합격 통보를
받고 쉽지 않은 도전을 해 보리라 마음먹는다. 오늘 따라 날씨는 더럽게 좋다. 할배 꼬라지도
그러하다.
첫댓글 어머 어디 또 입학하시는거에요? 3학년으로요? 정말 멋지십니다. 그리고 이 구절 '인생의 보람은 자신의 노력이며 쉬지 않고 세상을 돌파하는 것이다.'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상급자를 뚜까 팬 기개, 가히 부럽습니다.
또 편입학하셨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위트 있고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그 나이에 2년 졸업하고 3학년 편입까지? 대단하네요.
나는 50대에 방송대 다녔는데 학점이 안 나와 6년인가 걸렸어요.
수업 때는 자고 시험 하루 앞두고는 기출 문제 대충 훑어보고 갔으니 당연한 결과겠죠.
60대에 공부라... 부럽네요.
어려움 있겠지만 도전해 봅니다. 뭐든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서... ㅎ
관심 주신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착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
응원하고 또 부럽습니다.
그리고 가족분들께도 박수를 보냅니다
격려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
이 작가님
참 부지런하십니다.
그리고 작가님 도전에 응원을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