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완전히 무너져내리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인간은 누구나 병자이고 누구나 건강인이다. 아무런 가정이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고 누구나 성자이며 누구나 천재성을 가진 분야가 있고 누구나 둔재성을 가진 분야가 있다. 좀 더 포괄적인 표현을 쓰면 인간은 누구나 두가지 정반대되는 성향을 모두 가지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간혹 인생의 강요에 의해 혹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완전한 병자가 되기도 하고 완전한 건강인이 되기도 하며 완전한 악인이 되기도 하고 완전한 성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병자와 건강인 사이에서, 악마와 성자 사이에서 방황하며 살아간다.
건강 문제로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내가 또 딸의 강력한 권유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일회성이라 큰 문제가 없지만 드라마는 연속으로 봐야 해서 건강에 상당한 해악을 끼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작 하루에 2화씩 이틀을 보았을 뿐인데 나쁜 음식을 먹었을 때와 같은 부작용을 경험한다. 다행히 하루 가지고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자폐를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인데 그녀가 토론시 하는 행동이 나의 모습과 꼭 닮았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신경쓰는 일들에 집중하지 않고 사안의 본질로 바로 접근해 버린다. 평소 말하는 모습도 나를 닮았다. 상대의 기분을 잘 알지 못하고 나오는대로 말을 할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이론적 지식을 줄줄이 쏟아낸다. 다만 그 주제가 우영우의 경우엔 고래 이야기이고 나의 경우엔 물리학(젊은 시절)과 깨달음(현재)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만 다르다. 별로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자주 뱉어낸다. 자기 내면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머로 풀어보려는 시도이다. 자폐인의 처지야 어떠하든 보통 사람들은 당연히 학을 떼며 멀리하게 되어있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록 나에게 빠져 들던 나의 아내같은 사람을 제외하면...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된 특징은 고객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마구 밝힌다는 점이다. 이건 대단히 위험해서 나의 경우엔 학교 교사였기 망정이지 일반 회사였다면 월급을 주는 분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쳤을 것이다. 반면 학교 교사는 돈과 관계된 직업이 아닌지라 자폐아처럼 굴수록(손해가 나고 있음에도 고집스럽게 한 길을 추구할수록) 더 큰 칭송을 받아 다면평가 일위와 대한민국 최연소 주례와 재단내 최연소 부장의 영예를 모두 안을 수 있었다.
자폐를 가진 사람이 가장 빈번한 싸움의 장소인 법정에서 일을 하는건 극도의 고난을 자초하는 일이다. 자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발현되는지라 싸움에 임하면 무서워서 도망을 가 자기 방어도 못하게 되거나 궁지에 몰렸을 때에는 과도한 공격성을 표출하기 쉬운 질병이기 때문이다. 자폐인의 건강을 위하여 보다 평화로운 직업을 찾음이 지혜롭다 하겠다. 굳이 법정에서 세상의 정의를 찾고 싶으면 편이 갈리는 검사나 변호사보다는 공정한 판결을 목적으로 하는 판사가 낫다 하겠다. 이때도 큰 사건을 맡으면 자기의 직은 물론 목숨까지도 위험하니 작은 사건 전담 판사가 되는게 좋겠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엔 도대체 무엇때문에 자폐 성향이 극대화되어 허구헌날 진리타령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싸움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의도적으로 피해 다니면서도 일단 싸움이 발발하면 감당할 수 없는 강자에게도 달려들어 스스로 부서져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일까? 어른들은 한 번 싸우면 영원히 적이 되는걸 알면서도 우영우의 고백처럼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건 어려서 다친 머리때문이라 그러하다. 그때 두뇌의 일부 기능이 망가져 외부의 자극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극미량의 고엽제나 미약한 독성 음식 그리고 소금 섭취는 물론 사소한 물리적 심리적 타격도 감당하지 못하는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약한 공격을 막대한 공격으로 인식하니 도망 아니면 극렬한 저항만이 답이 되고 끊임없는 스트레스가 되는 세상의 불합리에 대해선 그를 무시하거나 바로 하고 싶은 욕망이 극한으로 발현된다. 그러다 보니 토론의 과정에서 명백한 악인이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드러나면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여 무시해 버리고 조금이라도 진심으로 바른 세상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하고는 냉철한 진리 논쟁을 감행하는 것이다.
자폐를 가진 사람의 도덕적 고민은 일반인보다 크다. 역시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정보 처리를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도덕을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악세사리나 승리를 위한 타인 공격용으로 잘 활용하며 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던 초기 투병 시절에 백약이 무효이나 수도만이 도움이 되는 상황 앞에서 천벌을 두려워하게 되어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런 성스러운 생활은 나의 자폐 증세와 이중 인격을 더더욱 악화시켰다. 성자가 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오죽하면 집안을 바로 잡기 위해 유산을 포기하고 동료 교사들에게 멋지게 남기 위해 억대의 명퇴금을 포기하고 실직 후에도 매월하는 기부를 계속 하고 미친 사람 소리 들어가면서 마음의 성전 활동을 멈추지 않겠는가?)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본성과 크게 충돌하고 죄를 짓기 쉬운 사회 생활로의 복귀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건강해져도 나는 자폐 증세가 있어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학생 상대 봉사직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성자대접을 받을지라도 진정한 깨달음이란 머리가 고장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하다. 돈과 권력을 버리지 않으면 더더욱 불가능하다. 자폐와 득도는 종이 한 장 차이일뿐인데 나는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자폐인이란 최악의 약자를 앞에 내세우지만 지적 초능력을 지닌 가장 강하면서도 매력적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창조해 놓았다. 일반적으로 강함은 약탈과 직결되는데 세상이 무서워서 뒤로 후퇴하는듯한 자폐인의 모습은 승리에 도움을 주면서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자폐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린 영화 '아이엠샘'보다는 특정 능력을 과대포장한 '포리스트검프'형의 캐릭터인 셈인데 여성성과 결합하며 더더욱 커다란 매력을 발산한다.
시청자들은 진짜 자폐인에게 열광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영웅,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에 열광하는 것이다. 역시 성공하는 드라마에는 뭔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