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鷄林) 김자정(金子靜)이 땅을 사서 집을 짓고 띠풀로 덮고는 스스로 동두(童頭.대머리)라 별호하였다. 사람이 물으니 말하기를, “나의 얼굴이 광택이 나고, 나의 머리칼이 본래 드물었다. 내가 비록 잘 마시지는 못하나 혹 술만 있으면 진하거나 묽거나 맑거나 탁하거나 사양하지 않으며, 취하면 모자를 벗고 머리를 드러내니 보는 사람들이 모두들 나를 대머리라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이에 별호로 삼은 것이다. 별호라는 것은 나를 부르는 것이다. 나는 대머리이니, 나를 대머리로 부르는 것이 또한 옳지 않은가. 사람들이 나의 모습대로 부르고, 나는 받는 것이 또한 마땅하다. 옛날 공자께서 태어날 때 이마가 웅덩이처럼 들어가서 이로써 이름과 자(字)를 했다 하는데, 그 형체가 지리(支雜)하게 된 자는 지리라 부르고, 그 몸이 곱추처럼 된 자는 낙타(駱馳)라 불렀으니, 옛 성현이 형체로써 그의 호를 삼은 것이 또한 많았는데 내 어찌 홀로 사양하겠는가. 또 속담에 말하기를, ‘머리가 벗어진 자는 걸식(乞食)하는 자가 없다.’ 하니, 어찌 그 복의 징조가 아님을 알며, 사람이 늙으면 머리가 반드시 벗어지니, 또 어찌 그 장수의 징조가 아님을 알리요. 내가 가난으로 걸식하게 되지 않고 수명 또한 바르게 마친다면, 내 대머리가 나에게 덕을 입힌 것이 어떠하겠는가. 부귀하고 장수하는 것을 사람이 누가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늘이 만물을 낳으실 때 이빨을 준 자에게는 뿔을 주지 않았고, 날개를 붙여 준 자에게는 발을 둘만 주었으니, 사람에게도 또한 그러해서 부귀와 수(壽)를 겸한 자가 드물다. 부귀하고도 보전하지 못하는 자를 내가 또한 많이 보았으니, 내 어찌 부귀를 바라리요. 초옥(草屋)이 있어 내 몸을 가리고 거친 음식으로 나의 주림을 채우니, 이와 같이하여 나의 타고난 수명을 마칠 따름이다. 사람들이 이로써 나를 호칭하고, 나도 이로써 자칭하는 것은 내가 나의 대머리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하였다.
내가 듣고 말하기를, “심하도다. 그대의 뜻이 나와 같은 것이 있음이여. 내가 얼굴빛이 검어 사람들이 작은 까마귀[小烏子]로 지목하므로 나도 일찍이 받아들인 바 있다. 대머리와 까마귀는 겉으로 꾸민 것이 아니다. 그러나 또한 외모로 말미암아 명목을 지은 것이니, 그 속에 있는 것으로 말하면 나의 기른 바 여하에 있는 것이다. 얼굴이 악단(渥丹)같이 아름답고도 사나운 자가 있으니 어찌 용모로써 그 진부(眞否)를 단정하겠는가. 김군이 크고도 넓은 학문과 큼직하고 민첩한 재능으로, 조정에 벼슬한 지 여러 해 되어, 대간(臺諫.사헌부와 사관원)의 요직을 역임하고 시종(侍從)직에 오랫동안 있어, 빛나는 명성이 크게 전파되어 사람들이 모두 멀리 또 크게 기대하였으나, 그 마음이 매우 겸손하여 부귀를 사모함이 없이 장차 초옥에서 평생을 마칠 것 같이 하니, 그 수양한 바를 가히 알겠다. 이른바 ‘내가 흠잡을 것이 없다’는 그 말이 바로 이 사람에 해당된 말이 아니겠는가.”하였다. 임자년(1372) 가을 8월 12일에 소오자(小烏子.권근)는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