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靑龍寺位田碑記
寺有位田所以備香火需也 靑龍寺𦾔而臣置田多而悉爲兼竝 所攘緇徒隨綠更求田又有求福者捨之而猶未滿百畝有長老 崇徽與同志者各捐私營以爲永久供佛之費凡水田幾結旱田 幾(원문은 幾의 古字임)結將立石未就而終闍梨玄玄等克述師志乃卒業焉時
康熙三十一季壬申四月 日
功德主 通政大夫 崇徽
원문(표점·교정)
靑龍寺位田碑記
寺有位田,所以備香火之需也。靑龍寺,舊而臣置田,多而悉爲兼幷所攘,緇徒隨緣更求田。又有求福者捨之,而猶未滿百畝。
有長老崇徽,與同志者各捐私營,以爲永久供佛之費。凡水田幾結,旱田幾結。將立石,未就而終。闍梨玄玄等克述師志,乃卒業焉。
時康熙三十一年歲次壬申四月日。
功德主 通政大夫 崇徽
<번역>
청룡사 위전비기
절에 위전(位田)을 두는 것은 향화(香火, , 불전에 향을 올리고 등불을 밝히는 일)를 올리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청룡사에는 예전부터 신도들이 시주하여 마련한 전답이 많았으나, 모두 다른 사람에게 겸병(兼幷)되어 빼앗기고 말았다. 이 때문에 승려들은 그때그때 인연을 따라 다시 전답을 구하였으며, 복을 구하는 사람들이 희사한 토지도 있었지만, 그래도 백 묘(畝)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에 장로 숭휘(崇徽)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각각 자신의 재산을 내어 영구히 부처님께 공양하는 비용으로 삼았다. 모두 수전(水田) 몇 결, 한전(旱田) 몇 결이었다.
장차 비석을 세우려 하였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뒤에 사리(闍梨) 현현(玄玄) 등이 스승의 뜻을 이어 마침내 이 일을 완성하였다.
때는 강희 31년(1692, 숙종 18) 임신년 4월이다.
공덕주
통정대부 숭휘(崇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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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호 판독 원문>
靑龍寺位田碑 寺有位田所以備香火需也靑龍寺舊而巨置田多而悉爲兼竝 所攘緇徒隨緣更求田又有求福者捨之而猶未滿百畝有長老 崇徽與同志者各捐私營以爲永久供佛之費凡水田幾結旱田 ▨結將立石未就而終闍梨玄玄等克述師志乃卒業焉時 康熙三十一秊壬申四月 日 功德主通政大夫崇徽
※빠진 글자는 幾자의 고자(古字)다.
<신진호 판독 번역문>
절에 위전을 둔 것은 공양하는 데 드는 비용을 대기 위한 것이다. 청룡사는 오래되고 거대하여 위전을 많이 두었지만 모조리 겸병(兼幷)하는 이들에게 빼앗겼다. 승려들이 인연을 따라 다시 위전을 구하고 또 복을 구하는 자들이 시주하였음에도 여전히 100묘가 채 되지 않았다. 장로인 숭휘(崇徽)가 동지들과 함께 각각 자신들의 사유지를 출연(出捐)하여 영원히 부처를 공양할 비용으로 삼았는데, 도합 수전(水田) 몇 결, 한전(旱田) ▨결이었다. 비석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사리(闍梨) 현현(玄玄) 등이 스승의 뜻을 능히 계승하여 마침내 일을 마쳤으니, 때는 강희(康熙) 31년 임신년 4월 일이다. 공덕주(功德主) 통정대부(通政大夫) 숭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