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에서 김용희-이재용과 함께, 가톨릭일꾼 첫 거리미사 봉헌
백 번의 덥고 습한 낮과 밤이 지났다. 거기에 더해진, 해가 지고 나면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서른 두 번의 밤과 낮이 지난 날. “100” 하고도 서른 두 번의 해와 달이 뜨고 진 날. ‘우리는’ 강남역의 철탑 아래에 모였다.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그리고 이재용. 얼마 전까지 동시대 인물인지도 몰랐던 두 사람의 이름이 지금은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하루에도 몇 번을 심장을 두드리는 그런, 이름이 되었다. 철탑 위에 사람이 있다고 했다. 50여일 곡기를 끊고 세상에 못다한 이야기를 품은 한 생명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어쩌다 내게까지 들렸을까.
이런 것도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차마 소리 내어 뱉을 수 없었던 한 서린 영혼의 울부짖음은 영혼에게 가닿게 되어있다. 누구든 심장으로 들을 수 밖에 없는 영혼의 고통을 들은 사람은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다. 어딘지 모르는 그 곳을 향해. 내게 와 닿은 영혼의 몸부림 앞에서 난 무력감을 느꼈다.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철탑위에 김용희 님만 농성하시는 줄만 알았다. “이재용 구속”이라고 새겨진 조끼를 입고 매일같이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분이 계셨는데, 연대하는 분으로만 알았던 나의 오해. 삼성의 부회장 이재용과 동명이인이었던 이재용 님 역시 김용희 님과 같은 삼성해고노동자로 두 분이 공조농성 중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 두 분이 삼성 본관 앞에서 농성하던 중 김용희 님이 유언장을 써 놓고 철탑 위로 올라갔다고 했다. 모든 것을 걸고 김용희 님은 철탑 위에서 이재용 님은 땅에서 긴긴 낮과 밤을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한 번의 발걸음은 두 번의 발걸음으로, 어느 덧 횟수를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하고 무색하게, 발걸음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강남역으로 향하는 날이 이어졌다. 어느 여름밤 눈에 들어온 반가운 베일. 한 수녀님의 뒷모습이 보였다. 매일같이 이어지던 거리강연회에서 만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살루스 수녀님. 반가운 마음에 가톨릭신자임을 밝히며 인사를 했고, 이곳에 왜 제대가 차려지 않는 것인지 답답함을 토로했다.
미사가 있으면 신자들에게 알려질 것이고, 연대할 수 있는 신자들이 올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었다. 불평만 늘어놓고 있던 내게 수녀님의 지혜는 기도회를 제안하셨다. 누구든지 와서 기도로 연대할 수 있도록 기도회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시겠다고 했다. 그렇게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님과 이재용 님을 위한 토요일 가톨릭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 많은 신부님과 신자들이 함께 한 미사 이후 기대감이 있었다. 현장을 보고 간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미사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만 갔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건네진 수녀님의 지혜. 기도회 웹자보의 문구를 ‘기도회와 미사’로 바꾸어 알리자는 제안이셨다. 토요일에 기존의 기도회는 이어가고, 신부님이 오실 경우 언제든지 제대를 차릴 수 있도록 미사에 필요한 제구와 제병, 미사주를 준비하시겠다고 했다. 한국천주교회의 신앙선조들이 떠올랐다. 신부님을 만날 수 없어서 신자들끼리 모여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초대공동체 신자들. 지금은 2019년이다. 언제 어디에서든 신부님을 만날 수 있는 시대지만 유독 강남역에서 만큼은 만나기가 어렵다.
한상봉 선생님께서 일단 미사 공지를 하고 신부님을 모셔오자고 제안하셨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미사는 늘 준비된 제대에 참석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사제에게 ‘고통받는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적극적으로 함께 하자고 초대 할 생각을 그동안 하지 못했다. 가톨릭일꾼에서 거리미사를 시작해보기로 하고 일단 미사 소식을 알렸다. 함께 할 신부님을 찾는 것은 나중 문제였다. ‘고통받는 현장’에 오시라는 초대를 거절할 신부님은 당연히 없을 것이기에.
지난 4월 가톨릭일꾼 세미나에서 함께 했던 서울교구 이기우 신부님께서 오시기로 했다. 그렇게 바라던 강남역 농성장에서의 미사가 봉헌 된 날이 지난 10월19일, ‘십자가의 성 바오로’ 축일이자 가톨릭일꾼 첫 거리미사였다.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했던 성인이다. 지금 이 시대에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기억은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가운데에 이루어질 것이다. 가톨릭일꾼이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려는 의지가 거리로 나와 길 위의 제대 앞에 서게 된 날이 ‘십자가의 성 바오로’ 축일이라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철탑 위의 김용희 님과 땅 위의 이재용 님의 농성 132일째 되는 날. 이기우 신부님의 주례로 강남역 철탑 아래에서 미사가 봉헌되었다. 지난 추석 차례상이 차려졌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동안 가톨릭일꾼에서 활동해 오신 많은 분들과 토요기도회에 함께했던 신자들, 기도회가 시작될 수 있도록 문을 여신 살루스 수녀님, 특별히 강남역에서 농성중인 두 분을 위해 기도 안에서 연대 해 오신 예수회 바오로 수사님, ‘가톨릭청년시민학교’ 율리아 자매님, 멀리 진도에서 올라오신 김형규 형제님, 기아해고노동자 박미희 님과 함께 한 가톨릭일꾼 첫 거리미사였다.
곳곳의 현장을 다니며 노래로 연대하시는 차익수 스테파노 님은 우쿨렐레 반주로 토요기도회를 풍요롭게 해주시는 분인데, 이날 미사에서 기타반주를 맡아주셨고, 미사해설은 유형선 아오스딩 님, 독서는 박은이 마리아 님이 봉독하셨다. 보편지향기도는 각자가 자신의 언어로 준비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기도를 나누었다.
1.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지금 우리나라는 밖으로는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위안부 문제로 한일관계가 악화일로에 있고, 북한은 우리를 위협하는 미사일 발사를 수십차례 하고 있으며, 북미관계 또한 우리를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보수,진보,여,야로 갈라져 싸움을 일삼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한심하고 보기 안타깝습니다.
주님! 저희 나라는 전쟁과 분단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아픈 민족입니다. 저희 나라를 굽어보시어, 더이상 저희 국민들이 강자들의 논리에 희생되거나 짓밟히지 않게 하시고, 일치의 성령께서 저희 국민들이 분열되지 않고 한마음 한뜻이 되도록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소서. 그래서 마침내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게 하소서. 아멘. (이정화 크리스티나)
2.사랑의주님!!
김용희님과 이재용해고노동자에게 삼성은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고, 부당해고를 철회하여 명예복직을 할수있도록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함께 연대하는 저희의 마음도 헤아려주시어 하루빨리 이 투쟁이 해결될 수있도록 은총을 보내주시옵고, 이땅의 불의를 정의로 완성시키려고 애쓰시는 김용희, 이재용 형제님들께 굳건한 믿음을 더해 주시어 이 어려움을 잘 감당할 수있는 용기와 영육간의 건강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멘 (김재인 파치스 수녀_성령선교수도회)
3.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정의의 하느님!
청산하지 못한 왜곡된 역사안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구태정치를 해온 정치인들은 물러나게 하시고, 격동적인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안에서 구조적으로 양산되어 온 사회적 약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수 있도록 당신의 사랑과 공동선의 의지로 위정자들이 일하게 하소서. 특별히 검찰개혁의 과제를 올바로 추진해 나갈수 있도록 지혜를 주소서. (이미희 마리아)
미사 내내 철탑 위에서 엎드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김용희 님을 향해 간간이 손을 흔들다가 철탑 아래에서 함께한 기도회나 미사가 처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동안 8번 출구 앞의 농성장 앞에서 진행해왔기에 김용희 님은 늘 멀리서 내려다볼 수 밖에 없었겠다.
강남역 철탑 농성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연대방문 오셨다가 지금은 매일 현장에서 함께하고 계신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만났을 때 거리강연회의 사회를 보고 계셨는데, 갈 때마다 계셔서 시민단체에서 연대오신 분으로 알았다. 시인 전비담 엘프레다 님. 지난 여름 태풍 ‘링링’과 ‘타파’가 지나가던 날 천막이 날아갈새라 온 몸으로 기둥을 붙잡고 계셨던 분. 그 분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내가 미처 몰랐던 세상에 몸으로, 삶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미사 후에 지나가는 길에 들리셨다는 여성 한 분이 죽이 가득 담긴 꾸러미를 주고 가셨다. 신자들 앞에서 인사 한 말씀 해달라고 청했지만 급히 뒤돌아 가셔서 어디에서 오셨는지 알 수 없었다. 제대를 정리하고 8번 출구 쪽의 천막에서 물품정리를 하고 있는데, 함양에서 올라오셨다는 남성분이 찾아오셨다. 직접 농사지으셨다는 고구마를 한 박스 농성장 천막 안에 내려놓고 철탑이 보이는 곳으로 가시더니 한 참을 바라보다가 가셨다.
함양에서 서울까지. 물론 서울에 올라오시는 길에 들리셨겠지만 결코 쉬운 걸음이 아님을 안다. 강남역 현장에 나오는 날이면 지나다가 들렸다는 시민들의 발걸음들을 보게 된다. 이러한 선한 영혼들의 빛이 세상을 비추고 있기에 누군가가 버티고,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전비담 시인은 강남역이 시의 자리였다가 다시 영의 자리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신배경 기자는 한 주일에 적어도 2번은 강남역엘 나간다. 가톨릭일꾼이 이 미사를 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강남의 현장은 노조가 연대하거나 큰 단체가 함께 하는 곳이 아니다. 몇몇의 시민 단체와 향린교회 중심의 개신교 연합대책위원회, 시민 개개인의 마음이 모여 손을 잡고 연대를 이루는 고난의 현장이다. 이해관계 없는 수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영화 <말모이>에서 한 사람의 열 걸음 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큰 걸음이라고, 민들레 홀씨처럼 그 걸음걸음이 퍼져나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무력감이 밀려올 때 마다 선한연대를 바라보며 희망을 품는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기에. *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