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교과서에 등장하는 국보급 문화재 즐비
글·사진 남상학
리움미술관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한남동 747-18)에 있는 국내 최대의 사설미술관이다.삼성문화재단은 1965년 설립 이래로 한국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이바지해 왔다. 삼성그룹 창립자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은 고미술품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한국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수집했다. 이를 기반으로 호암미술관과 호암갤러리, 로댕갤러리를 운영해 왔다.
이후 창립자의 뜻을 이어 이건희 회장이 한국 미술사를 기록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들을 수집·보강하고, 한국의 근·현대 작가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여 2004년 삼성미술관 리움(Leeum)을 개관하였다.2021년 10월 리움 미술관으로 명칭을 변경하는데, 리움(Leeum)은 설립자의 성(姓)인 'Lee'와 미술관을 의미하는 Museum의 어미 '-um'을 조합한 말이다.
리움미술관은 그 규모가 방대하다. 건물은 모두 세 동으로 구성되었다. 고미술관인 뮤지엄1은 스위스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 현대미술관인 '뮤지엄2'는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 기획전시실과 교육 공간인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는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설계했다. 이들은 모두 건축계의 세계적인 거장이다. 이외에 야외조각공원을 갖추고 있다.
긴 통로와 로비
길에서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긴 통로 바닥에는 1부터 9까지의 LED 숫자가 점멸한다. 미디어 설치 작가 미야지마 다츠오의 〈경계를 넘어서〉라는 작품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동그란 LED 패널 안에서 숫자가 계속 바뀐다. 예사로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무언가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나선형의 리움 심볼이 눈에 들어온다. 둥근 원 위에 리움의 영문인 ‘LEEUM’ 글자를 얹은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시간의 흐름과 세계 미술계를 아우른다는 의미라고 한다.
연면적 3,000평의 뮤지엄1은 세 개 동 가운데 가장 독특한 디자인을 갖는다. 중앙의 둥근 벽돌 건물은 고미술품을 모아놓은 공간답게 도자기 모양을 본떴다.
미술관의 로비는 상징적 역할을 하면서 세 건물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리오 보타가 디자인한 로톤다(원형 건축물)는 미술관의 심장과도 같다. 중앙홀에서 천장까지 뻥 뚫린 '로톤다'에서 자연광이 쏟아지도록 설계했다. 직육면체의 공간이 전시장이고, 역원추형의 공간(로툰다)는 각 층을 잇는 통로 역할뿐 아니라 창문 역할도 한다. 우리나라 건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로비에서 1층으로 이어진 계단은 올라퍼 엘리아슨의 설치작품 〈중력의 계단〉이다. 그는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계단 천장에 둥둥 뜬 고리는 마치 태양계의 행성 같다. 정면과 천장에 달린 거울과 LED 조명 덕에 신비로운 우주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
중앙 벽면은 ‘리움 하이라이트’ 영상이 자리를 잡았다. 리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미술관 안내다.
로비에는 인포메이션 카운터, ‘챔프커피’ 카페테리아, 리움스토아 등이 자리한다. 특히 ‘리움스토어’는 단정한 공간 꾸밈부터 상품 기획까지 미술관 아트숍의 새로운 전범이 될 듯하다. 리움의 로고와 심볼로 장식한 리움 굿즈들은 물론 전통 공예의 맥락에서 현대적 감성을 보탠 국내 공예가들의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이곳에선 세계적 파인 아트 수준의 가성비 좋은 공예품을 구매할 수 있다.
4층으로 된 상설전시관은 엘리베이터나 로툰다 계단을 이용한다. 통로에는 자연채광이 풍부하게 스며든다. 중앙의 홀을 빈 여백으로 남기고 용수철 형태로 주변을 따라 회전하며 내려간다. 기하학적 공간과 빛 그리고 그림자가 어우러지며 흥미를 끈다.
뮤지엄1
4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뮤지엄1은 고미술(古美術) 상설전시 공간이다. 고미술품은 희소가치가 있거나 유서 깊은 오래된 기물(器物) 또는 서화(書畫) 등의 미술품을 가리킨다.
이에 각 시대를 대표하는 고미술의 장르를 구분해 본다면, 삼국시대에는 주로 금속공예와 벽화, 통일신라 시대에는 불상과 탑, 고려 시대에는 청자와 불화, 조선 시대에는 도자기와 회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뮤지엄1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금속 공예품에서 도자기, 회화에 이르기까지 분야별 대표작을 아우르는 명품과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작품들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동그랗게 설계된 동선을 따라 사면에서 관람할 수 있는 유리 케이스를 띄엄띄엄 설치해서 관람객이 많아도 전시품을 하나하나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1층 : ‘권위와 신앙, 화려함의 세계’ - 불교미술, 금속공예, 나전칠기 등
2층 : ‘감상과 취향’ - 다양한 기법과 주제의 고서화
3층 : ‘흰빛의 여정’ - 조선 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4층 : ‘푸른빛 문양 한 점’ - 고려 시대 청자
1층 : 금속공예, 불교미술, 나전칠기 등 전시
1층은 <권위와 신앙, 화려함의 세계>라는 주제로 불교미술, 금속공예, 나전칠기 등에 구현된 선조들의 정신세계와 미감을 엿볼 수 있다.
불교는 삼국시대 중국을 거쳐 전래되었다. 공덕을 쌓기 위해 불교 경전을 손으로 베껴 쓴 사경은 사람들의 간절한 발원과 깊은 신앙심을 볼 수 있다.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사람들은 현세의 삶이 내세로 이어진다고 믿었기에 금관, 장식품, 금속제, 토기 등을 무덤 속에 함께 묻었다. 이 공간에서는 다채로운 장식기법과 세밀한 표현을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불상을 비롯하여 가야의 배모양토기(4~5세기, 보물), 신발모양토기(4~5세기, 보물), 삼국시대의 금제귀걸이(5~6세기, 보물),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빗장일괄(8~10세기, 보물), 고려 시대의 금동대탑(10~11세기, 국보), 금동용두보당(10~11세기, 국보) 등이 당시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2층 : 고서화와 갈라 포라스-김의 작품
2층은 <감상과 취향>이라는 주제로 당양한 기법과 주제의 고서화를 전시하고 있다. 정조의 어필을 비롯하여 겸재 정선의 <노백도>, 이하응의 <목란도대련>, 이정의 묵죽도, 신사임당의 <고대명화첩>, 이한철의 <이향복초상>이 전시되었다.
또, 갈라 포라스-김의 작품이 국보 10점과 함께 선을 보인다. 남북한 국보를 그린 '국보 530', 등재 순서대로 남북한 국보를 나열한 작품은 역사 흐름에 따라 서로 다른 주체들이 유물을 분류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드러낸다.
해외 반출 유물을 담은 '일제 강점기에 해외로 반출된 한국 유물 37점', 유물의 연출방식을 다룬 '청자 동채 표형 연화문 주자의 연출된 그림자' 등을 공개하고 있다. '청자 동채 표형 연화문 주자의 연출된 그림자'는 리움이 고미술품 중 도자기를 전시하는 방식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은 리움 소장품의 근간을 마련한 고(故) 이병철 창업 회장이 문화유산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알려진 고려 불화 '아미타여래삼존도'와 함께 전시되었다.
이밖에도 리움 소장품인 군선도, 금관 및 부속금구, 감지금은니 대방광불화엄경,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청동은입사 보상당초봉황문 합, 청동은입사 운룡문 향완 등을 볼 수 있다.
3층 : 조선 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3층은 <흰빛의 여정>이라는 주제로 조선 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를 보여준다.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서 회색 또는 회흑색의 바탕흙(바탕흙:胎土) 위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조선 초기의 도자기다. 이 분장기법은 무늬를 나타내기도 하고, 그릇 표면을 백토로 씌워 백자로 이행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려 말 청자로부터 변모, 발전하여 15, 16세기 약 200여 년간 제작되었고, 16세기에 들어오면서 무늬보다 백토 분장이 주가 되어, 차츰 바탕흙과 표면분장이 백자화 되어 갔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제도상의 문제로 분청사기는 더는 발전하지 못하고 소멸하였다.
●백자
백자는 순백색의 바탕흙 위에 투명한 유약을 발라 1,300℃∼1,350℃ 정도에서 환원염으로 구워 만든 자기이다. 백자를 만드는 기술은 청자보다 어렵다. 고려 시대에도 백자가 생산되었으나 그 수량이 미미하였고, 기술 면에서 청자보다 많이 뒤처져 있었다.
유색 도자기는 유약이나 흙의 빛깔 때문에 생겨나는 이차적인 기술이며, 자연적인 재료만 가지고 하얀색을 만드는 쪽이 훨씬 높은 기술이 필요하였다. 게다가 흙 자체도 청자토보다 견고한 편이 아니라서 빚어내는 것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편이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국초부터 백자의 생산과 관리에 힘을 기울였으며, 전 국민의 백자에 대한 선호가 대단하여 독특한 발전을 보였다. 조선조 백자는 첫 경기도 광주와 관악산·북한산 등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었으며 광주는 중앙 관요로서 조선백자 가마의 핵심이었다.
백자는 문양장식 방법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상감백자는 기면에 음각으로 무늬를 낸 다음 그 패인 홈을 자토나 점토로 메꾸어 넣어 구웠을 때 문양이 검은색 또는 회색으로 발색된 것이다. 청화백자는 산화코발트(CoO) 성분의 안료를 붓을 이용해 기면에 무늬를 그리고 유약을 입혀 구움으로써 번조 후 무늬가 청색으로 나타난다.
철화백자는 산화철산화철(FeO)을 주성분으로 하는 안료로 문양을 그려서 문양이 검은색이나 짙은 갈색 등으로 발색된 것을 말하며 조선 전기에는 청화의 대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진사백자는 산화동(CuO)을 사용해 문양을 그리거나 채색을 해 붉은색 또는 자주색을 띠는 것이다. 진사는 고려청자에 소량으로 사용되었으며 18세기 이후 조선백자에서 자주 쓰였다.
그 밖에 조각칼로 깎거나 혹은 틀에 눌러 찍어서 문양이 철(凸)자처럼 돌출되게 하는 양각백자도 19세기 이후 일시적으로 증가했다. 또 상형백자라고 해 인물·동물·식물·건물 등의 갖가지 형상을 본떠 만든 것도 있다.
조선 후기인 18세기에 만든 순백자로 '달항아리'라고도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자에 비해, 장독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크다. 현재 전 세계에 20여 점만 남아있다. 무늬 한 점 없는 담백한 모습이 '한국의 미'를 잘 나타낸다.
4층 : 고려청자
4층은 <푸른빛 문양 한 점>이란 주제로 고려 시대 청자의 세계를 보여준다. 청자는 글자 그대로 푸른빛의 자기이다. 만드는 과정에서 흙과 잿물의 특정 성분이 작용하여 푸른빛을 띤다.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자기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기술이나 예술성 면에서 송나라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송나라의 한 사신이 “고려의 비색(푸른빛)은 천하제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고려청자는 세계적으로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인정받았다.
청자는 800~1300도에 달하는 높은 온도의 가마에서 두 번 구워 만든다. 첫 번째 굽기와 두 번째 굽기 사이에는 잿물을 바르는데, 잿물 속의 철 성분과 흙이 반응하여 푸른빛을 띠게 된다. 초기에는 ‘비색’이라고 부르는 순수한 푸른빛의 순청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상감 청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고려청자는 전성기를 맞았다. 상감 청자는 자기 표면의 흙을 파낸 뒤 다른 색의 흙을 채워 무늬를 만든다. 이 때문에 일반 청자에 비해 화려하고 다채로운 멋을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청자 동체 연화문표형주자(고려, 13세기, 국보), 청자상감운학모란국화문매병(고려, 13세기, 보물) 등 많은 작품이 넓은 전시관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긴 세월을 의연하게 품은 고미술품의 가치와 의미를 이해하고, 각고의 노력과 집념으로 수집하여, 고미술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일은 문화적으로 볼 때 참으로 고귀한 일이다. 고미술은 한 시대의 생생한 역사이자 문화로 이러한 고미술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준다. 이런 점에서 리움미술관에 대한 감사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상세정보
주소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한남동 742-1)
전화 : 02-2014-6901
영업 : 10시~18시 (매주 월요일 휴무)
교통 : 주차시설 있음 /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 도보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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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교과서에 등장하는 국보급 문화재 즐비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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