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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만 의지하라
4: 1-8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야훼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야훼께서 들으시리로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의의 제사를 드리고 야훼를 의지할지어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야훼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야훼이시니이다” 시편 4편 1~8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변화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연도 변화되고 환경도 변화되고 사람도 변화하고 내 자신도 변화합니다. 늘 만년 청춘으로 살 줄 알았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서 거울을 보면 흰 머리가 언제 이렇게 늘었는지. 이 세상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변화하는 것을 믿고 의지하면 안 됩니다. 변하는 사람을 믿었다가 실패하고 상처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변하는 환경을, 변하는 사람을, 변하는 권력을 믿지 말고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놀라운 일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시편 4편 1절의 고백입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기도는 모든 믿는 사람들의 의무요, 특권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은지 이 스트레스 때문에 미움과 분노가 쌓이고, 이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약하고 병이 들게 되고, 이 스트레스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가 갈등이 생겨나게 되고 문제가 생겨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우리가 기도로 주님 앞에 나가면서 기도로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마음의 염려도 근심도 걱정도 스트레스도 다 내려놓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나를 도와주옵소서. 주님, 나를 이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옵소서.” 기도하고 나아갈 때 주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 16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우리가 구세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응답이 다가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 14절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하나님이 구만 리, 저 먼 곳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곁에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 것입니다. 시편 4편 3절입니다. “야훼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야훼께서 들으시리로다” 우리가 세상에서 넘어지고 실패하고 상처받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내가 영적으로 강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웬만한 시험에도 우리는 흔들리지 아니하고, 넘어지지 아니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더해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만들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의 사역을 다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가시면 우리 어떡하나?’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때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말씀 붙잡고 저들이 간절히 기도할 때 열흘이 지나서 성령이 임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4절 5절은 말씀합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또 사도행전 1장 14절에는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입니다. 기도는 한 두번 하다가 응답이 안 온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기도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해야 됩니다. 언제까지? 응답이 올 때까지.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에서 승리하고 비가 내리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3년 반 동안 하늘이 닫히고 비가 안 내렸는데, 일곱 번이나 땅에 머리를 박고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옆에 있는 사환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무엇 보이느냐?”, “선생님,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 간절히 기도합니다. “얘야, 뭐가 보이느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 간절히 기도합니다. 일곱 번 기도했을 때 옆의 사환이 말합니다. “선생님 저 멀리 손바닥만 한 구름이 떴습니다.” “됐다. 이제 응답이 다가왔다. 빨리 내려가자. 비가 온다.” 그래서 산을 내려갔을 때 3년 반 동안 닫혔던 하늘의 문이 열리고 비가 쏟아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응답이 다가옵니다. 요즘 SNS에서 없는 말을 막 지어내서 퍼트리는데, 그거 일일이 다 답변하고 사람 찾아다니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그 시간에 엎드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응답이 다가옵니다. 이사야 59장 1절, 2절입니다. “야훼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회개의 기도가 깊어지면 감사의 기도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여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나를 죄와 절망에서 건져주신 주님 은혜에 감사하고, 내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다 해결해주시고 평안함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있을 때 기도의 일생을 사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할 때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셨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소원을 아뢰셨고, 제자를 뽑을 때는 밤새 철야기도하면서 기도하시고 제자를 뽑으셨고, 큰일을 행하신 다음에 산에 혼자 올라가서 기도하셨고, 또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은혜가 임합니다. 특별히 기도의 습관을 여러분이 스스로 만들어서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갔어도,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가장 기도하기 좋은 시간은 새벽기도 시간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리면 얼마나 큰 은혜가 임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새벽기도는 해본 사람만 압니다. 여러분, 시간을 정해놓고 이제부터는 열심히 기도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0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들을 돌보면서 사역하신 홀리네이션스선교회 ‘마마킴’, 김상숙 권사님이『주님 오늘도 부탁해요』라는 책을 냈습니다. 30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를 섬기며 모든 일을 기도를 통하여 다 응답받고 그들을 돌볼 수 있었습니다. 1985년 남편을 따라 홍콩에 갔을 때 만났던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돌보며 복음을 전한 것이 그 사역의 출발점이 되어서, 1995년에는 남편을 따라 말레이시아 가서는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2000년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돕기 위해 홀리네이션스선교회를 만들어서 수많은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체류 및 취업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며, 수백 명이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게 했고, 30여 명의 은혜 받은 외국인 신학생들이 공부해서 본국에 돌아가 교회를 세우고 그 나라 복음화에 힘쓰게 했습니다. 몽골, 러시아, 네팔, 중국, 파키스탄 등 여러 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들을 돕는데 모두 조건 없이 전액을 돕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매월 수 천 만원의 비용이 발생했는데, 지금까지 30년 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것 다 채워주셔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넘치는 감사로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감사기도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언어는 감사입니다. 우리는 우리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축복을 가져올 수 있는 전주곡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귀가 좋아하는 불평과 원망과 두려움의 언어로 기도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안다면, 또한 아버지는 감사의 언어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고 신뢰한다면, 우리는 감사의 언어로 아버지께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최고로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도하되, 넘치는 감사의 기도로 하나님께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은혜로 넘치게 채워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요, 단 한 번도 우리의 기도를 소홀히 여기신 적이 없이 그 기도를 들으셨다가 꼭 그 기도가 응답이 되어야 될 그때에 이루어주시고, 주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2. 영원히 믿고 의지할 하나님 둘째로, 우리 하나님을 영원히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을 따라갔다가 잘못 따라가서 큰 문제와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주님을 믿고 따라가야지, 변하는 사람을 믿고 따라가면 안 됩니다. 시편 4편 5절에 “의의 제사를 드리고 야훼를 의지할지어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온 천지는 변해도 일점일획도 변치 않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가면 주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인도하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갈 때 주님의 치료가 우리에게 강물처럼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2000년전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자를 돌보신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 곁에 서서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돌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예수가 되어서 그 일을 행해야 됩니다. 우리 주위에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 문제 있는 사람, 병든 사람들을 주의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에 우리가 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찬송가 88장에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날 버리고 다 떠나도 주님 날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로마서 5장 8절을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 치료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는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나는 연약하지만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오늘날 북한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위협해 오지만 절대로 우리 대한민국을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에 천 만 기도하는 주님의 백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를 치러 오는 그 날로 북한이 망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통일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강력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미국의 존 디커슨 목사님이 자신의 책『나는 강하다』에서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뇌졸중으로 늘 어려움을 겪었는데 내가 약한 그때 강함이라는 말씀을 붙잡고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당신에게는 사랑이 많고 힘센 아버지가 있다. 연약한 당신이 이 악물고 신음할 때, 그분은 당신을 치유하고 당신에게 힘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다. 큰 소망을 품고 하나님의 힘을 향한 인생길을 걸어가라! 우리가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우리의 유한함을 하나님의 무한하심으로, 우리의 무능함을 하나님의 유능하심으로, 우리의 고통을 하나님의 치유로, 우리의 연약함을 하늘의 능력으로 바꿀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한시도 떨어져 있지 말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나는 언제나 강하다!” 당연하지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는 언제나 강하고 백전백승입니다. 참 감사한 것은 우리나라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군인들 대부분 그 장교들이 크리스천들입니다. 제가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도 갔었는데 사관생도의 절반이 크리스천이고,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을 갔더니 삼분의 일이 크리스천이에요. 우리 육군 참모총장도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이십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며 나라를 지키니까 나라가 튼튼하고 절대로 요동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뜻을 다하여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시편 18편 1절에도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 되신 하나님, 나의 능력이 되신 하나님, 나의 전부가 되신 하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해 주듯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 간절히 기도하고 구하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함께해주시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어주시고 주님 안에서 놀라운 축복받은 자녀의 삶을 살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가 6장 8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야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정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잠깐 지나가는 인생길에 나 자신의 욕심, 부귀영화를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면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헐벗고 굶주리고 몸에 장애를 입은 우리 이웃들을 돌보면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115편 9절, 10절입니다. “이스라엘아 야훼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야훼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 되시고 우리의 방패가 되십니다. 모든 절망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모든 환란으로부터 우리를 막아주시는 방패가 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한 우리는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쉽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열 번 넘어져도 열한 번 일어나서 믿음으로 도전해나가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3.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 우리에게 넘치는 기쁨을 주십니다. 시편 4편 7절에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그 마음에 넘치는 기쁨과 평안함을 허락해 주십니다. 마음에 기쁨이 사라지면, 마음에 밀려오는 스트레스, 불안, 염려, 근심을 이겨낼 방법이 없습니다. 뭘 먹어도 맛이 없고 밤에 잠도 제대로 오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늘 ‘주님, 내 마음에 평안함을 주셔서 평안히 잠을 잘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4편 8절의 고백입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야훼이시니이다”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마음이 불편하니까 마음에 미움과 원한과 분노가 쌓이고, 마음이 불편하니까 아무것도 아닌데 자꾸 섭섭하고 상처받고, 마음이 불편하니까 잠을 자려고 해도 잠자리에 들어도 잠이 오지 않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이러한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주여! 주님의 기쁨을 내게 넘치게 허락하여 주셔서 어떠한 문제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와도 주님 주신 기쁨으로, 평안함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찬송 408장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나의 마음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마음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맘이 늘 평안해 여러분, 맘이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나의 맘이 늘 평안해. 주님 우릴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함께하시니까 우리 맘이 평안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을 24시간 못 지켜줘요. 병간호하다가도 피곤하면 잠을 자거든요. 그런데 시편 121편 3절, 4절 보니까, “야훼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4시간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고, 우리를 돌보고 계시고, 우리 삶을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극한 환란 중에서도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주님만 의지했던 바울의 고백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9절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동서남북 모든 도움의 손길이 끊어졌을 때 우리의 도움이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할 시간에 걱정할 시간에 주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해야 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7절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을 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니까 기도가 안 될 때는 찬양을 부르세요. “목사님, 찬양을 부를 힘도 없어요.” 그럼 찬양을 들으세요. 찬양을 틀어놓고 들으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저는 토요일 설교 준비하다가 찬양을 듣습니다. 찬양을 들으면 마음이 평안해져요. 그럼 다시 또 기도하고 말씀 준비합니다. “주님, 내 마음에 평안함을 주셔서 이 평안함을 가지고 주일에 성도님을 잘 섬길 수 있게 하여주시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께 간구할 때 평안함을 주시고 기쁨이 넘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빌립보서 4장 4절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만일 “당신 앞으로 일주일 밖에 못 삽니다.” 하는 그러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면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직장암 말기로 두 주간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한 명이라도 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힘써 복음을 전하다 천국 간 유석경 전도사님.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유명 학원 강사로 10여 년 동안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2010년 전도 세미나에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고 ‘남은 여생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미국 트리니티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주의 종으로 사역을 시작했는데, 원인 모를 투통이 찾아와서 병원을 가서 조사해보니 대장에 12센치가 넘는 암 덩어리가 두 개나 있었어요. 그리고 이미 주변으로 다 퍼져있었습니다. 의사가 말하기를, “두 주 정도밖에 살 수가 없겠습니다. 수술해도 이미 온몸에 다 퍼져서 오래 살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본인은 천국 확신이 있었고, 연약한 몸으로 병석에 누워있기 보다는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하다 내가 천국가기 원합니다. 그래서 고백했습니다.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았고, 죽음이 두렵지 않았기에 수술을 안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를 생각해주시는 분들이 기도제목을 물어볼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설교할 기회가 생기기를 기도해주세요. 한 명에게라도 더 생명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이후 전국 각지에서 집회 요청이 와서, 전국을 다니며 주의 복음을 전합니다. 온몸에 통증이 있고, 화장실을 하루에 수십 번을 왔다 갔다 하는데도 강한 메시지를 전할 때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냐고 물을 때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원망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왜 암에 걸렸는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신뢰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제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신뢰합니다!” 이렇게 기쁨이 충만해서 복음을 전하니까 두 주밖에 못 산다는 그가 삼 년을 다니며, 삼 년을 더 살고 전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2016년 3월 4일 주님 앞에 갔습니다.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말기 암 환자 같지 않은 저 건강을 가지고 열심히 복음을 전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돌아왔는데, 많은 사람들을 울린 그녀의 고백입니다. “힘들어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기쁘고, 힘들어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하고, 힘들어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감사합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주님의 기쁨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인생을 멋있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단 하루를 살더라도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며 힘써 주님의 일 하다가 언젠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 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권능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넘치는 기쁨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짧은 인생길 예수 잘 믿고 선한 일 하다가 기쁨으로 주님 맞이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 |
(2) 확신의 비밀
(시 4:1-8)
: 확신은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체험과 말씀의 약속과 성령의 은혜에서 나온다.
찬송 546장/ 시편 4편은 앞의 3편과 같이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비탄시입니다. 그러나 3편과 다른 것은 더욱 확신에 넘쳐서 반역자들을 강하게 책망하며 범죄하지 말라면서, 한 편으로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이 염려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밝은 희망을 달라는 기도와 함께, 그러한 난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평안함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유 만만한 모습입니다.
다윗을 이렇듯 담대하게 했던 것은 1절에 나오듯 체험적인 믿음입니다. 즉 과거에 나를 도우셨던 좋으신 그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변함없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다음은 말씀의 확신 때문입니다. 3절에 “경건한 자를 택하”셨다 했는데 그 사람은 바로 다윗 자신을 가리킵니다. 즉 왕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아무도 빼앗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7절에 성령의 체험입니다.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증거입니다. 기도하다가 평안이 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증거입니다. 다윗은 이런 3대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확신만 가지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확신이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체험과 말씀의 약속,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고 이 믿음으로 우리 삶에서 온전히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한국강해설교연구원
(3) 저녁의 노래
시편 4 : 1 - 8
오늘 읽은 시편은 지난 시간 생각한 시편 3편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시편입니다 시편 3편이 아침의 노래라고 하면 오늘 본문은 저녁의 노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편 3편이 위험할 때 더욱 감사할 수 있는 것을 노래했고 오늘 본문은 과거의 경험에 기초해서 어떤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뢰의 뜻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개의 시편이 같은 날 아침 저녁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같은 환경 아래서 아침과 저녁에 읊은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하는 찬송의 참된 뜻을 깨닫게 됩니다. 과연 주님을 가까이 하는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였는데 내가 과연 십자가를 졌나 생각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첫 부분은 저녁의 명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기도와 명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주한 현실 생활에 시달려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할 때가 많은 것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약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활을 보면 예수님은 그렇게 분주하신 가운데도 산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많은 성도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하늘의 말씀을 세상에 나눠주었습니다. 은밀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 속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라야 힘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내 의의 하나님이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자기의 가는 길이 정당한 길인 것을 믿고 하나님은 반드시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일단 자기의 생이 하나님께 맡겨지고 그의 인도대로 살아 나가게 될 때 그 길이 정당하다고 확인하고 다시 요동치 않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무슨 일이 내 생각대로 잘 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축복이라고 감격해 하다가도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우리의 믿음이 흔들려 하나님의 인도를 의심하지는 않습니까?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시편 23편의 말씀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얼마나 확고부동한 자세입니까?
스펄전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윗이 우선 하나님께 말한 후에 사람에게 말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만일 오늘보다도 더 끊임없이 하나님과 담화하고 있다면 나는 반드시 오늘보다 더 담대하게 사람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조물주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람 앞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또 무슨 일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고 세상의 권세에 더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세를 따라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여기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느뇨?” 물론 여기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압살롬의 편이 되어 다윗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저주하는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거짓을 꾸미는 모든 것을 버리도록 간절히 권하였습니다.
3절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경건한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4절에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조심하여 죄를 짓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강퍅한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죄인들은 두려워하여 죄를 짓지 않습니다. 은혜의 역사는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가져 보지 않고 구원받은 사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고 했습니다. 만일 이러한 마음가짐이 없을진대 그는 결코 아들이라 불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너무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크게 떨며 두려워했습니다.
오늘의 세대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두려워할 것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워하는 세상입니다. 이것이 현대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속담에 “손톱 곪는 것은 알아도 염통 곪는 것은 모른다”는 말은 의미 있는 말입니다. 손끝은 보이니까 알고 아파하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심장은 보이지 아니하니까 그리고 손톱 곪는 것과 같은 고통이 없으니까 심상해 합니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비교가 안되게 심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 저녁 자기의 영혼에 대해서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 경고합니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우리는 흔히 감기만 들어도 약국에 가서 약을 사다 먹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습니다. 조금 중한 병에 걸리면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식구가 걱정이 되어서 병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죄의 심각한 병, 심령의 병에 걸린 데 대해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한다 하더라도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존재하고 계시며 우리의 생명 호흡이 그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아시며 행동을 보십니다. 밤이 아무리 캄캄해도 하나님이 보시지 못할 만큼 어둡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혼자 있는 골방일지라도 그가 들어가지 못하는 방은 없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 앞에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살아온 일들과 성인으로서 활동한 것이 하나의 책으로 엮어져 하나님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안다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신다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감히 범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왜 죄를 범합니까?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순결하시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악을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죄는 값이 있습니다. 그 값은 사망입니다. 이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오늘 이 세상은 선과 악이, 죄와 의가 뒤엉켜져 있지만 언젠가는 주님께서 갈라놓고 정리하실 때가 올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번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풀을 벤 것처럼 찾아도 있던 자리조차 발견할 수 없이 만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그 앞의 인간은 한 마리의 작은 벌레보다도 못한 존재입니다. 주님께로부터 피해 달아날 길이 없습니다. 누구도 그에게 대적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을 거슬러 감히 범죄할 수 있습니까?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욥도 하나님 앞에 다가갔을 때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그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죄를 범하지 아니합니다. 요셉과 같이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외치고 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두려워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리니...” 하였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무서운 최후의 심판의 날을 상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최후의 심판의 날, 진노의 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앞에 심판이 다가옵니다. 조금도 가볍게 생각하지 마세요. 롯의 사위들처럼 시판의 경고를 농담으로 생각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양과 염소를 갈라놓을 날이 옵니다. 왕께서 의로운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실 날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생각해 보시고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물 마시듯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정결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하였습니다 자기 반성을 깊이 하라는 권고입니다. “심중에 말하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죄를 지으면 그들은 눈을 감고 그 길을 걸어갑니다.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 생각하기를 꺼려합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다. 내가 지금 어느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살펴보십시다. 그 길의 마지막이 무엇이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여 있습니까? 하나님을 정말 아버지로 섬기십니까? 이전에 범한 죄를 모두 회개하셨습니까? 우리의 심령이 거듭났습니까?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생활을 하십니까? 이와 같은 중대한 문제들을 심중에 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얼굴에 묻은 것을 지우려면 거울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의 더러움을 씻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을 응시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 심령의 숨겨진 결점까지라도 찾아내려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생활을 하십니까? 예배당에는 나오시지마는 아직 사망의 길에 서 있지는 아니합니까? 진실하진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계십니까? 아직도 거짓 가운데서 살지는 아니합니까?
이 물음에 대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솔직히 대답하시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심령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인에 주워 심중에 말하십시오.“ 우리의 주위가 고요하고 어두움의 엄숙함이 찾아드는 밤중에 시간을 택해서 우리의 영혼을 구하는 시간으로 삼는다면 크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가까운 친구들에 의해서 영혼이 혼미해왔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그들이 행하는 대로 깊은 생각 없이 그저 따라왔었습니다. 시대의 사조가 우리를 무관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것들을 멀리 떠나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심판은 각자가 받는 것이지 남 때문에 이렇게 살았다고 핑계 댈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밤 댁에 가서 생각해 보십니다. 잠자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요, 필요한 일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생에 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가는 깊이 잘못된 길이면 생각해 보시고 잠을 좀 덜 자는 한이 있어도 이 문제를 분명하게 하세요. 내가 누워 있는 집에 불이 붙고 있다면 그대로 누워 잠자고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것을 몰라서 그만 불길에 싸여 타 버려 죽은 비극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우리의 침상이 잠을 자는 장소라기 보다 구원을 요청하는 장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기까지 잠을 자기 않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오늘 저녁 여러분의 잠자리가 축복이 될 것을 믿습니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인간들에게는 고요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들의 낡은 습관에게 오늘 쾌락과 욕망이 잠잠해집니다. 세상의 소리도 들려 오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이런 심령의 깊은 곳에서는 “양심의 고요한 음성” 만이 들려 옵니다. 시끄러운 거리에서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습니까? 조용한 가운데에서만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의 심령이 조용해져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지시기 바랍니다. 어린 사무엘이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장막에 서 있을 때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신 것이 한밤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심령이 고요한 중에 있을 때입니다.
여러분, 오늘밤 우리에게 이런 시간이 있어서 사무엘처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좀이 듣겠나이다”라고 응답하시는 축복을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하나님께 올바로 나아가는 길은 “의의 제사를 드리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사람이 제물을 가지고 와서 처음에 하는 일은 제물 위에다 그들의 손을 얹고 죄를 고백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올바른 길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결점과 죄악을 털어놓습니다. 우리의 죄를 감추거나 변명하지 마십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우리의 행한 일을 모두 털어놓습니다. 우리의 교만과 불신앙, 부정직과 어리석음, 불순종과 거역을 다 고백하십니다. 우리의 행한 잘못을 빠짐없이 주님께 고백하고 주께서 우리를 영접하시는 그 유일한 길로 주님께 나아가십니다.
죄사함을 받고자 하는 간절함 마음으로 주님 아들 나아가십시다. “하나님, 나는 이것의 내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나는 반역의 무기를 내버리고 교만의 깃털을 뽑아 버립니다. 주님, 나는 주 앞이 악한 자로 섰사오니 내 죄를 사해 주옵시고, 나를 지배해 오는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나는 정말 더 이상 범죄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내 입에서 남을 욕하거나 흉보는 말을 하지 말게 하시고 내 입술을 정하게 하사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말 외에는 아무 말로 하신 않게 하옵소서. 내 마음과 생활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이렇게 회개하며 나아오는 사람을 결코 물리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의의 제사’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준비하신 제물을 주께 가져오는 것입니다. 의의 제물이 아니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 의의 제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오며 결코 내쫓기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호소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가 어떤 좌를 범했든 받아 줄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이름을 들어 호소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아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변호하고자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에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지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일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하나 하나를 품에 안고서 “아버지,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 피흘렸습니다”라고 말씀하실 때 마귀가 아무리 우리를 고소한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세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탕자와 같이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가리라” 하시기 바랍니다. 탕자가 만일에 “내가 일어나 내 형에게로 가리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형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을 용서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그의 아버지만이 그를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옛 시인처럼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사 26 : 13) 하면서 하나님께 나아옵시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내 아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원하여 피 흘리셨으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끝으로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했습니다. 믿음을 행하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명령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누구를 의뢰한단 말입니까? 인간이 인간을 의뢰하기가 편할지는 모르나 그 결국은 파멸입니다. 그래서 “갈대 같은 애굽” 다시 말해서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왜요?
우리의 기꺼이 영접하시며, 용서하시며,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마음을 고상하게 만듭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의 것을 소유코자 할 때에 우리는 자연히 그리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지 않는 사람의 결코 영적인 사람이 아니며 그들의 대화도 하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경멸하는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발을 하나님께 연결하는 사다리에 올려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죄악의 쾌락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세상 쾌락을 따르는 악을 알고 있으며 이 죄악 때문에 우리의 죄를 자기 목에 담당하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우리 주님의 고통을 알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신에게 말하기를 “예수쟁이들이 말하는 죄라는 네 이렇게 달콤한거야. 무엇 때문에 이 즐거움을 누리지 않지? 이처럼 매력적이고 이처럼 탐스러운 과일을 꼭 따먹고 말아야지.” 합니다.
어떤 이가 말한 대로 육체는 술 속에서 꿀을 보지만 믿음은 술잔에서 독을 인식합니다. 믿음은 술 속에서 뱀을 찾아내어 이를 경고합니다. 믿음은 죽음과 심판과 커다란 보상과 정의로운 심판과 두려운 말씀, 다시 말하면 내세를 기억합니다.
믿음은 시작한 보는 것이 아니라 끝을 주시합니다.
믿음은 이 세상에 도취되어 흥청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가올 심판을 예고하여 줍니다. “사람이 마일 오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라고 예수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할 때 우리에게 닥쳐오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믿음은 항상 새롭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중생한다는 것은 반쯤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온전한 변화입니다.
골로새 3장 1절 이하에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당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전적으로 새롭게 하십니다.
더구나 7절에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의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같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도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적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하였습니다.
참 즐거움, 기쁨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상의 곡식이나 포도주의 풍성한 데 있은 것이 아닙니다.
8절에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했습니다. 주님 안에 참 기쁨, 참 평화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스펄전이 막한 대로 “평화로운 양심은 좋은 침상의 벗입니다.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할 대가 많으나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순종에 기인된 것이라고 봅니다 믿음을 단잠의 바위로 삼는 사람은 깊이 잠들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하늘이 아무리 구름으로 뒤덮이고, 폭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고, 뇌성벽력이 요란스러워도, 성난 파도가 바위라도 부술 것처럼 덤벼들어도, 바위 뒤에 숨어 있는 갈매기는 고요히 잠들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요란해도, 마귀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만세반석되시는 그리스도에게도 피하는 자는 절대 안전합니다. 그에게는 참 평안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