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시'가 지켜준 양심
시장에서 30년째 기름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고추와 도토리도 빻고, 떡도 하고, 참기름과 들기름도 짜는 집인데, 사람들은 그냥 기름집이라고 부릅니다.
그 친구 가게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빛바랜 벽 한 가운데 시 한 편이 붙어 있습니다. 그 시는 바로 윤동주 <서시>입니다. 시장에서 기름집을 하는 친구가 시를 좋아한다니 어울리지 않지요?
어느 날, 손님이 뜸한 시간에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저 벽에 윤동주 '서시' 를 붙여둔 이유가 있는가?"
"으음, 말하기 부끄러운데...."
"말하기 어려운 비밀이 있나?"
"그런 건 아닐세. 손님 가운데 말이야. 꼭 국산 참깨로
참기름을 짜 달라는 사람이 있어."
"그렇지. 우리 아내도 국산 참기름을 좋아하지."
"국산 참기름을 짤 때, 값이 싼 중국산 참깨를 반쯤 넣어도 손님은 잘 몰라. 자네도 잘 모를걸."
"......"
"30년째 기름집을 하면서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욕심이 날 때가 있지. 국산 참기름을 짤 때, 중국산 참깨를 아무도 모르게 반쯤 넣고 싶어. 그런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내 손으로 벽에 붙여놓은 윤동주 <서시>를 마음속으로 자꾸 되새기게 되더라고."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구절을 천천히 몇 번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시커먼 욕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아. 그러니까 30년 동안 저 시가 나를 지켜주었어. 저 시가 없었으면 양심을 속이고 부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하하하."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그 친구가 좋아하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가톨릭 마산 주보 '영혼의 뜨락' 중에서>
***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응원합니다.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