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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
호남정맥 | |
북위 35° 08′ 03″ 동경 126° 59′ 20″ / 북위 35.1341267° 동경 126.9887562° / 35.1341267; 126.9887562 / 35.1341267; 126.9887562 |
무등산(無等山)은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및 전라남도 화순군과 담양군에 걸쳐 있는 해발 1,187m의 산이다. 1972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2년 12월 27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21번째 국립공원이며 1988년 변산반도·월출산 이후 24년 만의 신규 지정이었다.[1] 정상은 천왕봉이나 1966년 공군부대가 주둔해서 정상 부근이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통제되는 바람에 일반 등산객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은 서석대(해발 1,100m)다.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2] 정상에서 바라보면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과 경상남도 남해에 있는 거제도가 보인다.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주에 있는 산이라 하여 무진악 또는 무악이라 불렀고, 대개 큰 산이 그렇듯 무속과 연관하여 무덤산, 무당산이라고도 했다. 무등산은 대체로 바위가 아니라 흙으로 이루어진 산이지만, 정상 부근 서석대, 입석대, 규봉의 바위가 웅장하며 아름답다. 그래서 고려 시대에는 서석산이라고 불렀다. 불교 전래 후 부처가 세상 모든 중생과 견줄 수 없이 우뚝하다는 존칭으로 옛 이름과도 유사한 무등산(無等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다만, 이는 같은 우리말 이름에 대한 한자표기를 바꾸어 해석을 달리했을 뿐으로, 원지명은 광주의 고유지명인 무들 또는 무돌에서 비롯한다. 무진(武珍)에서 珍은 오늘날에는 한자음으로 진으로 읽으나, 과거에는 새김으로 읽어 들,돌로 발음하였고, 무등(無等)또한 비슷한 음차표기이다. 이두표기로 水入伊란 지명도 있어서 방증된다.
1972.05.22 무등산 도립공원지정 1974.04.29 공원기본계획 고시(전남고시 제61호) 1987.09.01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 설치 1998.09.24 무등산 보존과 이용에 관한 종합계획 수립 2001.12.07 공원기본계획 변경고시 2010.12.24 무등산 국립공원 승격지정 건의(광주광역시 → 환경부) 2012.12.31 무등산 국립공원 지정 결정고시(환경부고시 제2012-252호) 2013.01.16 ‘공원관리청의 직무위임·위탁에 관한 규정’ 개정 고시 (환경부 고시2013-4호) 2013.03.04 무등산국립공원사무소·동부사무소 개소
산의 정상에서 서쪽으로 돌아가면 수십길이 되는 북모양의 석조 수십 개가 울을 둘러막은 듯 서 있는데 이것은 서석대(瑞石臺)이다. 산허리 남쪽에는 입석대가 있고 동쪽으로 가면 수백 척 되는 세 개의 거석이 서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삼존석(三尊石)이다.그 부근에는 송하, 광석, 풍혈, 장추, 청학, 송광, 능암, 법화, 설법, 은신 등 10개의 석대가 있는데, 그 중 광석, 풍혈은 강봉의 입석과 함께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산의 동서 두편 사이에는 바위돌을 깎아 세워놓은 듯 솟아 있는 석벽이 있고, 그 석벽 가운데는 지공(指空) 너널이라는 천작의 석실이 있는데 옛날 지공과 뇌공(懶空)이라는 두 선사의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원효, 증심, 규봉의 세 절이 있는데 모두 신라의 고찰이며, 규봉암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의 명장이었고 또 정충(精忠)으로 알려진 충장공 김덕령 장군이 여기서 무예를 닦았고, 산중도처에 유적이 많다. 특히 장군의 여러 가지 기적을 남긴 주검바위가 가장 유명하다.
등산로인 옛길 1구간은 산수동오거리-(0.8㎞)-무등산 옛길 입구, 무등파크맨션 버스정류장-(0.7㎞)-잣고개-(0.1㎞)-동문지터-(1.7㎞)-청풍쉼터, 김삿갓 시비-(2.8㎞)-충장사-(1.7㎞)-원효봉 너덜겅-(0.9㎞)-무등산장, 원효사 일주문 구간이고, 옛길 2구간은 원효사-공원관리사무소-서석대에 이르는 구간이다. 무등파크맨션 앞의 좁은 골목길이 무등산 옛길 1구간의 입구이다. 웅장한 무등산 옛길의 시작점 치고는 아주 소박하고 조촐하다. 잣고개까지는 가파른 산길이다. 잣은 성(城)의 고어로, 잣고개에는 무진고성이 있다. 잣고개를 내려서면 동문지커가 나온다. 동문지터로 가려면 찻길 하나를 건넌다. [3]2구간 코스는 길이가 4.12㎞로, 오르는 데만 2시간 정도 걸린다. 공원관리사무소 뒷길로 들어서 주검동(쇠로 무기를 만들던 곳)과 충장공 유적지 옆을 지나 원효계곡 상류를 따라 군사작전도로와 만난다. [4]
해발1,187m의 무등산 최고봉인 천왕봉 일대는 서석대·입석대·규봉 등 수직 절리상의 암석이 석책을 두른 듯 치솟아 장관을 이룬다. 또 마치 옥새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새인봉은 장불재에서 서쪽 능선상에 병풍같은 바위절벽으로 이뤄져 있으며 입석대, 서석대 등 주상절리대를 포함하여 산봉·기암·괴석 등 경관자원 61개소가 분포되어 있다. 또한 수달, 구렁이, 삵 등 멸종위기종 8종을 포함하여 총 2,296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보물 2점 등 지정문화재 17점이 보유되어 있다.
1972년 5월 22일에 도립공원(전남고시 제85호)으로 지정되었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화순군 및 담양군에 위치하고 총 면적은 30.23㎢이다. 2012년 12월 27일에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지정 면적은 75.425㎢이다. 단, 광주호 일대와 소쇄원을 비롯한 가사문화권 지역은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반대로 제외됐다.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465호 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2011년 5월 14일에 1966년 군부대 주둔 이후 45년 만에 무등산 정상 부근인 인왕봉과 지왕봉이 개방되었다. 정상인 천왕봉은 방공시설이 설치되어 있어서 개방되지 않았다. 장불재에서 군부대의 보안사항을 들은 뒤 신분 확인(신분증 지참)을 받고 부대를 출입할 수 있다.[6]
2011년에는 연 2회(5월, 10월), 2012년에는 연 4회(4월, 7월, 10월, 11월) 개방되었다.
무등산(無等山)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및 화순군과 담양군에 걸쳐 있는 해발 1,187m의 산이다.
1972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2년 12월 27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21번째 국립공원이며 1988년 변산반도·월출산 이후 24년 만의 신규 지정이었다.
정상은 천왕봉이나 1966년 공군부대가 주둔해서 정상 부근이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통제되어
일반 등산객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은 서석대(해발 1,100m)다.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로 지정 되어있다.
산행일 : 2013년 10월 26일 (토)
산행길 : 들머리 - 원효사 집단시설지구, 날머리 - 증심사 집단시설지구.
원효사집단시설지구-무등산장-꼬막재-규봉암-장불재-입석대-서석대-중봉-중머리재-증심사-증심사집단시설지구.
산행거리 : 약 15Km
산행시간 : 6.5시간 (점심, 휴식포함)
산행인원 : 38명 (서울산행클럽)
입석대(立石臺)
서석대(瑞石臺)
규봉(圭峰)
오늘 무등산 산행의 들머리 "원효사집단시설지구"의 무등산 입구모습.
무등산 산행에는 여러 들,날머리가 있으나 이곳 '원효사집단시설지구'와 '증심사집단시설지구'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이곳을 들머리로, 증심사집단시설지구를 날머리로 잡고 무등산 산행을 시작한다.
집단시설지구를 벗어나며 산길로 들어서는 초입의 다리와 이정표.
산길에 들어서니 울창한 나뭇사이로 무등산의 완만한 능선의 정상 지역과 뾰죽히 내민 통신탑이 솟아있다.
들머리 초입의 산 모습은 어느 국립공원과 별 다름 없이 잘 정돈된 주변환경과 울창한 숲이 반겨준다.
비할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山)이라 하여 무등산(無等山)이라 했던가?.
멀리 보이는 무등산 정상이 호남지역 특유의 각진곳 없이 완만한 능선을 보이며 부드러움을 자랑하고있다.
무등산 하층부는 이제 막 단풍을 준비하고있고,
무등산 특유의 지형이 말해주듯 오름길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주위 경관을 둘러 보며 오르기에 참 좋았다.
편백나무숲
피톤치드(Phytoncide)의 힐링(Healing)효능이 전파되면서 무등산 또 하나의 명물로 자라잡은 편백나무숲 산림욕장이다.
이곳은 현제 사유지 로서 약 20여년전에는 온천 관광단지로 개발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광주시민과 환경단체의 반발로
무산되고 이 자리에 편백나무를 조림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단다.
원효사지구를 출발한지 약 30여분 만에 편백나무숲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즐기는 우리님들.
우리님들은 이 좋은 편백나무숲에서 힐링(Hilling)하며 몸과 마음을 힐링(Healing)하니 더 없이 행복 한것같다.
꼬막재(640m)
편백나무숲에서 약 10여분을 더 오르니 해발 640m 꼬막재 이정표가 우리 일행을 반긴다.
힘든 오르막은 여기까지이고 여기를 지나면 경치좋은 길을 오르내리며 시나브로 정상까지 이어진단다.
꼬막재를 지나니 어느덧 주변 수목들은 예쁜 주홍색 가을옷을 바꿔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꼬막재에서 1.2Km를 오르니 신선대 갈림길에 '신선대억새평전' 이정표가 '꼬막재' '신선대' '장불재'를 가르키고있다.
멀리 '신선대'가 보는 이에게 부드러움과 편안함을 선사하듯 완만한 '에스라인'을 뽐내고있고,
그앞 넓은 평원에는 억새가 특유의 고운 자태를 흐르듯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겨 춤추고있었다.
산꾼들은 억새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 억새밭을 떠날줄을 모른다.
그래도 갈곳이 많고 또 멀기에 억새의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규봉암'으로 향한다.
'규봉'으로 향하는길엔 나름대로의 단풍이 정렬적인 붉은색을 자랑하고 있다.
'시무지기폭포' 갈림길을 지나는 우리님들.
무등산 구석 구석을 섭렵하면 더 없이 좋겠지만 하루의 짧은 시간에는 불가능 하기에 '규봉암'으로 직진한다.
무등산 산길엔 지나는 곳 마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과 가을색에 감탄사만 나올뿐이다.
그 아름다운길을 지나는 우리님들.
현재 오후 1시간 훌쩍 넘은시간 이기에 규봉암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규봉암으로 향한다.
그녀앞 10m가 아니라 규봉암 100m앞이다.
아름다움을 쟁취히기 위해선 수고가 따르는법, 규봉암의 규봉을 보기위해 100m를 힘겹게 올라야했다.
규봉암이 보이는 곳 까지 오르니 언덕에 세운 규봉암을 밭혀주는 축대와 돌담이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웅장함을 뽐내고,
그 넘어 살짝 보이는 바위 군락이 이 역시 범상치 않음을 예견해 주고있다.
마치 옹골성을 연상시키는 암자 입구를 들어서는 우리님들.
규봉암(奎峰庵) 관음전(觀音殿)
규봉암에 올라서니 우측 정면으로 관음전이 그리 웅장하지 안으면서도 화려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고,
그 관음전 뒤로 범상치 안은 바위군락이 보는이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규봉(奎峰)
규봉(圭峰)이다.
그 바위들 자체의 아름다움과 서로 얼켜있는 바위군락의 조화로움이, 그리고 가을 옷을 입은 모습이 탄성을 자아낸다.
자연이 빚어 인간에게 선사한 아름다움. 그저 황홀 할 뿐이다.
규봉의 좌측편으로 도도히 홀로 버티고 있는 또 다른 암봉.
어느쪽을 어디서 바라보아도 그저 아름다움에 감탄만 할 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 했던가?
이곳 규봉암 마당옆의 너른 바위에 우리 식구들이 짐을 풀고 좀 늦은 점심을 했다.
더 없이 좋은 풍광 아래에서 점심을 하니 그 맛이란 그야말로 진수성찬의 꿀맛 이었다.
배가 부르고 나니, 아까 규봉암 오를때 미쳐 보지못한 누각위의 범종도 보이고,
규봉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에 담아 가려는듯 다시 한 번 멋진 풍광을 두루 둘러본다
규봉암을 떠나며 다시한번 멋드러지게 서있는 경관을 담아본다.
'규봉암'에서 '장불재'까지는 약 2Km.
그 길 역시 주위의 수목들이 가을에 흠뻑 취해 발그레한 모습으로 수즙은듯 예쁜 미소를 보여주고있다.
장불재가 가까워진듯 하늘이 벗어나기 시작하고,
좌측으로는 936m의 '암봉'이 여인의 젖가슴을 닮은듯 부드러운 곡선과 꼭지를 수줍게 보여 주고있고,
우측으로는 그 유명한 '주상절리대'가 참빗살나무 사이로 위용을 자랑하고있다.
2005년 12월 16일에 무등산주상절리대 10만 7,800㎡는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화산활동의 산물인 무등산주상절리대는 수직으로 솟아오른 굵은 돌기둥과 동서로 길게 발달하한 돌병풍 등이 빼어난 지질 경관을 이루고 있어
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등산도립공원측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주상절리대'를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위해 8개월동안의 공사를 거쳐
2008년 12월 '서석대'(1,100m)를 개방하였다.
개방된 등산로에 나무판을 깐 산책로를 만들었고, 산책로는 '서석대'에서 조금 떨어진 '입석대'(1,017m)까지 이어져있다.
'장불재'에서 바라보는 '서석대'와 '입석대', 그리고 우측 '입석대'로 향하는 우리님들.
왼쪽 너른길은 중머리재(1.5Km)로 바로가는 길이다.
무등산은 중생대 화상암 산지로서 산지 전체가 부드럽게 풍화되어 있고 곳곳에 주상절리(柱狀節理)경관이 있다.
이 주상절리는 남한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서 산정상이나 능선을 따라서 이들 주상절리와 관련된 성곽형의
토르(tor: 차별적인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그 지역의 기반암과 연결되어 지표에 노출되어 형성된 독립성이 강한 암괴미지형)
가 발달해 있다.
'입석대'를 오르며 뒤를 돌아보니 아까 들른 '장불재'와 그 뒤로 통신시설 들이 억새밭과 어울려 나름대로의 경관을 자랑한다.
'입석대'에 오르니 나무들 사이로 웅장한 모습의 '주상절리대'가 보는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주상절리(柱狀節理)
암괴나 지층에 있어서 기둥 모양의 절리가 지표에 대해 수직으로 형성되어 있는 형태로 용암이 식을 때 수축되어
생기는 절리 중에 단면의 형태가 오각형이나 육각형의 기둥모양인 것을 말한다.
무등산 주상절리는 약 7천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서석대' '입석대' '규봉'이 대표적이다.
이 주상절리는 남한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서 산정상이나 능선을 따라서 이들 주상절리와 관련된 성곽형의 토르(tor)가 발달해 있다.
주상절리 주변에는 참빗살나무가 많아 주상절리와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루고있다.
토르(tor) : 차별적인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그 지역의 기반암과 연결되어 지표에 노출되어 형성된 독립성이 강한 암괴미지형
그 웅장함과 멋 스러움에 취해 보고 또 보고...
'입석대'에서 '서석대'로 향하는 우리님들.
'서석대' 상부에는 조망대를 신설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참 공사중인 조망대에 오르니 '장불재' 주변과 '암봉'을 넘어 '안양산' 방향이 조망된다.
반대편 으로는 군사시설로 인해 민간인은 출입이 허용 되지 않는 무등산 정상 '천왕봉'과 '지왕봉'이 눈앞에 펼쳐진다.
무등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는 1년에 3~4차례 정상을 개방하는데, 소식통에 의하면 2013년 11월 2일 올해 4번째를
마지막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천왕봉'을 제외한 '지왕봉'까지 한시적으로 개방 한단다. (쬠, 아쉽다.ㅎㅎ)
'서석대' 상부에서 '서석대'로 가는길의 또 다른 조망대에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는 우리님들.
서석대(瑞石臺 1,100m)
'서석대'는 무등산 주상절리대의 일부로 한 면이 1m미만인 돌기둥들이 약 50여m에 걸쳐있으며 이 '서석대'에 저녁노을이 비치면
수정처럼 반짝인다 하여 '수정병풍' 이라고도 불리운다.
'서석대'앞에 서니 그 규모와 웅장함에 또 한번 입이 딱 벌어진다. 마치 병풍처럼 늘어선 바위군락이 군대를 열병하듯 가지런히 서 있다.
예전에는 '선돌'이라고 불렀단다. '선돌'이란 한자로 '입석'이 되는데 예전에는 이곳 '입석대', '서석대'를 통털어 '선돌'이라 불렸던것같다.
비룡대(飛龍臺)
'서석대'를 내려오니 '서석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나름 웅장한 '비룡대'가 비상 할 준비를 하고있다.
'입서대'와 '서석대'를 내려와 아담하게 꾸며진 관리소 앞에서 지나온길을 올려다본다.
'서석대'를 내려오니 길은 평지를 이루고 길섶의 억새는 한가로이 가을 바람을 즐기고있다.
중봉(中峰) 가는길.
'서석대'를 내려와 '중봉'으로 향하는 억새밭길의 우리님들.
잔잔히 흐르는 억새들의 물결과 흘린'땀을 보상 해 주듯 불어주는 바람이 자유와 평화를 느끼게한다.
약 500m에 이르는 억새의 물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금물결의 억새밭을 가로질러 '중봉'으로 향하는 우리님들.
우측상단이 '서석대'와 '입석대'이고 좌측으로 송곳 같은 뾰죽탑을 머리에 이고 있는 '천왕봉'이 보인다.
중봉(中峰 915m).
이곳도 한 때는 군사작전 지역으로 묶여 통제 되었던 적이 있다.
이곳 에서 바라보는 중봉 아래의 억새밭 풍경은 그야말로 천하일경 이라 할 수 있을것같다.
'중봉'에서 '중머리재'로 내려가는 내림길의 풍광, 어느 한 곳 아름답지 않은 지역이 없다.
하산길 갈림길에서 만남 이정표와 무등산 정상의 모습.
그리고 거기서 만나는 기암들. 그 형태와 모양, 서있는 위치까지 조화롭지 않은 곳이 없다.
기둥바위를 밑에서 보니 또 다른 모습으로 서있다.
'무등산'을 걷는 하루 종일 내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찌 모를 정도로 고개를 돌리는 곳 마다 절경이다.
그 길섶에는 한 그루의 청솔이 푸루름의 절개와 도도함을 뽐내며 서있고,
바라보는 모든 곳이 한폭의 동양화인듯 아름답다.
은물결이 출렁이는 억새의 향연.
기암의 도도함.
단풍의 화려한 가을의상.
단풍의 색은 푸른 빛이 붉게 변하는 것이 아나라 엽록소에 가려 있던 본래 붉은 색소가 가을이 되면서 파괴된 엽록소를 뚫고 드러나는
자연현상 이라지만 어쨌거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단풍이 감사할 뿐이다.
이 모든 아름다움에 취해 보고 또 본다.
어느 한 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는 절경에 취해 걷다보니 '중머리재'다.
'중머리재'(500m)에서의 야거대장과 고바우대장. 그리고 뒤로 '장불재'의 통신시설탑.
'중머리재' 이름은 중의 머리처럼 까까산 이어서 일까? 이곳 '중머리재'는 풀도 자라지 않는 황토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머리재'의 이정표와 안내도.
처음 계획은 '새인봉'을 거쳐 '증심사집단시설' 지역으로 하산 하려 했으나 무등의 멋진 풍광에 너무 과하게 취하다 보니
하산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증심사길로 하산하기로 했다.
이곳 하산길 역시 울창한 숲으로 가려 있고 가끔식 열린 하늘로 보이는 산 능선의 단풍이 아름답다.
당산나무 (堂山树)
마을을 지켜 주는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제사를 지내는 나무.
수종은 '느티나무'로서 수령 450년, 나무둘레 4.8m로서 보호수로 지정 되어있고 '증심사'에서 관리한다.
느티나무 보호수를 지나 만나는곳이 '증심사(證心寺)'다.
'증심사'는 광주 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 이다.
증심사(證心寺)
전라남도 광주광역시소재의 사찰로서, 동구 운림동 무등산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에 속한 절이다.
증심사는 신라 헌안왕 4년(860년)에 철감선사 '도윤'이 처음 세운 절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선종 11년(1094년)에 '혜조국사'가 중수했으며, 1443년(세종 25) 전라도관찰사 '김오(金傲)'가 자신의 녹봉으로 낡은 건물을 다시 고쳐지었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없어지자 1609년(광해군 1) 석경(釋經)·수장(修裝)·도광(道光) 등의 선사들이 다시 지었고, 그 뒤에도 개·보수를 거듭했다.
'증심사' 주위의 울창한 수목과 단풍.
오늘날의 '증심사' 건물은 1970년에 크게 증축한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웅전·오백전(五百殿)·명부전(冥府殿)·회심당(繪心堂)·학산장서각(鶴山藏書閣)·요사채 등이 있다.
증심사(證心寺) 부도(浮屠)와 일주문(一柱門)
무등산 증심사 일주문(證心寺 一柱門).
그렇게 그렇게 해서 '증심사' 입구 다리를 건너고,
또 그렇게 해서 증심사 주변의 '신림마을' 입구 다라를 건너니,
제법 잘 만들어진 '증심교'가 수고한 이 들을 맞이해준다,
'순흥안씨'네 유적지를 지나니 오늘 산행도 여기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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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반갑습니다.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