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태양을 피해 몸을 숨길 때 안간힘을 쓰며 얼굴을 들이대는 꽃이 있다. 자신이 동경하는 태양을 닮은 꽃, 해바라기. 뜨거운 햇살을 머금고 8~9월에 절정을 이루는 해바라기는 떠나는 여름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해바라기는 숭배와 기다림을 상징한다. 여름 내내 태양을 바라보며 자라고 8월부터 화려한 꽃을 피운다. 경남 함안, 강원 태백 등 지역마다 유명한 해바라기 군락지가 있지만 서울 근교에도 해바라기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 있다.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반. 광주 - 원주고속도로 동여주 나들목(IC)에서 금당천을 따라 북쪽으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경기 양평군 지평면 해바라기마을에 닿는다.
해바라기마을은 크고 작은 산과 언덕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산촌이다. 마루터기에 항상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고 해서 이름 붙은 ‘모라치고개’와 하늘이 한치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한치고개’ 사이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작은 냇물을 따라 해바라기 밭이 펼쳐진다. 태양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아름다움과 함께 당당함까지 느끼게 한다.
이 마을에 해바라기가 처음 핀 것은 5년 전부터다. 마을 끝자락에 쓰레기매립장까지 있어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던 마을에 김기남 해바라기마을 위원장(63)과 몇몇 주민들이 해바라기를 심기 시작했다. 마땅한 수입원이 없던 주민들이 선택한 소득작목이었다. 꽃이 피고 아름다운 마을 전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김 위원장은 해바라기가 조용하던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설명했다.
“쓰레기매립장이 생기고 환경이 황폐해지면서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났어요. 마을을 살리기 위해 콩이나 옥수수를 심던 밭에 수익성이 높은 해바라기를 심어 씨를 수확했죠. 시간이 지나고 꽃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면적을 6만6115㎡(2만평)까지 늘렸고 매년 8월 중순엔 축제도 열고 있어요.”
농로를 따라 걷다보면 군데군데 숨겨진 해바라기 밭이 눈에 띈다. 텃밭과 자투리 땅을 활용해 가꾼 해바라기 밭은 계단식 논이나 오래된 농가와 어울려 소박한 멋을 자랑한다. 마을회관 뒤 언덕에 있는 해바라기 밭은 볕이 잘 들고 터가 넓어 사진 찍기에 특히 좋다.
마을회관 앞에선 수십개의 웃는 얼굴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축사에서 사용하는 사일리지(담근먹이) 곤포에 주민들의 얼굴 사진을 붙여서 만든 작품이다. 반상회나 마을행사가 있을 때마다 찍은 사진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했다.
길가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마을을 찾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마을 뒤편 언덕을 오르면 해바라기마을의 또 다른 명소가 기다리고 있다. 이재효·이재삼·박성욱 등 여러 예술인들의 작업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20년 전 경남 합천 출신의 이재효 작가가 마을에 터를 잡으면서 몇몇 예술가들이 근처에 작업실을 열었다. 작가들은 전시가 없는 날에도 방문객들을 위해 작업실을 개방한다. 특히 자연주의 조각가로 유명한 이재효 작가의 작업실에서는 나무·못·돌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든 다양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작품을 구경하고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주민들이 일찍 꽃이 진 해바라기의 씨를 수확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올해는 6~7월에 가뭄이 심해 꽃이 핀 면적이 줄었고 지는 시기도 빨라졌다고 한다. 주민들은 세차례에 걸쳐 씨앗을 나눠 심고 가꾸는데 아직도 상당면적에서 해바라기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을의 문턱이다. 점점 멀어지는 여름과 인사하고 싶다면 아름다운 해바라기 마을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