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피라밋의 경고
1976년의 어느 여름, 나는 배를 타고 수에즈 운하를 향해 항해 중이었다.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길목, 수에즈항에 닿은 시각은 아침 아홉 시.
운하 통과는 다음날로 미뤄졌고, 덕분에 하루를 얻은 나는 대리점 직원의 권유로 기자(Giza)의 피라밋을 찾아 나섰다.
사막의 바람이 눈을 파고들었고, 태양은 머리 위에서 불덩이처럼 내리쬐었다.
모래 언덕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돌의 산, 피라밋.
그 앞에 섰을 때 나는 숨을 삼켰다.
왕의 무덤이라 불리지만, 그곳에는 죽음보다 더 강한 생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수천 년의 세월을 버텨낸 그 돌들은 말없이 인간의 신념을 증언하고 있었다.
피라밋의 구조는 단순하다.
네 면이 땅에 단단히 닿아, 무게중심을 아래로 모은 형태.
그래서 무너지지 않는다.
사막의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세월의 비바람이 아무리 거세도, 그 형태는 흔들리지 않는다.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 위를 떠도는 배도 다르지 않다.
배가 바람과 파도 속에서도 항로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중심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중심이 위로 치우친다면, 작은 파도에도 뒤집히고 만다.
수백명의 꽃봉오리같은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사고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균형은 언제나 ‘중심의 자리’에 달려 있는 법이다.
얼마 전 들은 인구조사 소식이 떠오른다.
이 땅의 65세 이상 노인이 천만 명을 넘어섰고,
70세 이상 인구가 20대 인구를 앞질렀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인구 구조가 완전히 ‘역피라밋’이 되었다는 뜻이다.
한때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구호는 시대의 미덕이었지만,
그 미덕은 어느새 우리 사회의 중심을 위로 밀어 올렸다.
젊은 세대가 줄어든 사회, 기초가 약해진 문명은
결국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막 한가운데 우뚝 선 피라밋은, 수천 년의 침묵 속에서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 돌들이 쌓인 자리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단단한 기초 위에 올려진 신념의 형상,
그 아래쪽으로 향하는 힘이야말로 세월을 견디는 비밀이었다.
이제 문득 생각한다.
우리의 사회도, 한 사람의 인생도 결국 피라밋이어야 한다고.
밑바닥이 단단해야, 꼭대기가 빛날 수 있다.
무게중심이 낮을수록 삶은 오래 버틴다.
바람이 불고 세월이 흘러도, 그 형태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날 사막 위에서 바라본 피라밋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우뚝 서 있다.
그리고 그 돌덩이들의 침묵은 여전히 내게 이렇게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