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마음 수련이 만난 사람 : 텔런트 이순재, 마음 수련 한 사람 같아 - 월간 마음 수련 기사
취업으로 황폐해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좋은 글이 월간 마음 수련에 있어서
월간 마음 수련 웹진 에서 데리고 왔어요
다음은 이순재님과 월간 마음 수련 기자의 인터뷰 기사에요
이순재 : "영광이죠,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아무래도 나이가 많다고 주셨나 봅니다."
월간 마음 수련 기자 : 지난 3월 이순재씨는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수여하는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연기자 최로로 올랐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사랑과 열정, 구준한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간 출연했던 작품의 수를 물어보았다.
이순재 : 글쎄...안 세봐서...많이 했겠지(웃음)
월간 마음 수련 기자 : 우문 이었다. 누군가에게 숨쉬고 밥먹은 횟수를 물은 격이다. 76세의 나이, 연기생활 54년째의 현역
그에게 연기는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순재 :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고, 세월이 지나도 의욕이나 의지가 식지 않았어요. 창조는 새로운걸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 게 없고 매번 반복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재미없겠어요. 예를 들어 91년도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아버지를 했자나요
이후에 저는 한 번도 대발이 아버지를 재현한 적이 없습니다. 보는 분들은 비슷하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고민을 하는거지요
미세한 차이일지라도 분장, 의상 같은 외모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말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의지를 갖고 접근하면 반드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젊었을땐 창조할 여지가 많았는데, 요즘은 재수 좋으면
아버지고 웬만하면 할아버지라 고민이요
월간 마음 수련 기자 : 나를 백지화해 가면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는 것이 진정한 연기이기에, 역할의 분석과 연구에 최선을
다한다는 배우 이순재씨, 때문에 시청자들은 <거침없는 하이킥>의 푼수 할아버지 '야동순재'가, 정반대의
배역인 사극<이산>에서 임금'영조'로 나와도, <베토벤바이러스>에서 치매 걸린 오보에 연주자로 나와도,
늘 새로운 인물에 몰입하게 된다.
이순재 : 우리 대학때는 취미라는게 겨우 영화였어요. 그땐 세계 각국에서 30년대 영화부터 신작까지 명작들이 쏟아져 들어올 때였단 말
이에요. 불란서 영화 같으면 파뇰, 뒤비비에, 카르네 같은 감독이 있었고, 영국으로 넘어가면 <햄릿> <오델로> 같은 세익스피어
영화 들이 나왔는데 로렌스 올리비에의 연기가 대단했어요.
월간 마음 수련 기자 : 50여년 전에 본 영화들을 그는 감독과 배우의 이름까지 생생하게 기억했다. 당시의 감동이 되살아난 듯
그들의 연기와 대사를 말할 땐 눈은 빛났고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세계 영화사를 꿰뚫는 그에게서 노장배우의
위엄과 열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순재 : 배우의 명연기들을 보면서 야! 참으로 절묘하구나, 감동을 받았어요. 참으로 저건 예술이다. 한번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월간 마음 수련 기자 : 대학 3학년, 연극반에 들어간 그는 오사량, 전근영, 이해랑 선생 등 한국 연극계의 초석을 다진 연출가들로부터
연기를 배우게 된다. 첫 출연작은 유진 오닐의 <지평선 너머>
이순재 : 그때 맡은 역이 육심살 먹은 선장이었는데, 이 선장이 크게 웃으면서 막이 올라요, 근데 이 웃는게 잘 안되는 거야.
혼자서 아침 11시부터 밤 11시까지 웃는 연습만 했지, 웃고, 소리지르고, 정말 미친듯이 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되더라고
월간 마음 수련 기자 : 바로 그해 1956년, 우리나라에 최초의 방송국 HLKZ-TV(1961년 KBS로 넘어감)가 설립된다.
배우 이순재는 최초 방송국의 최초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 출연, 한국 드라마의 산 역사로서의
첫발을 내딛는다.
이순재 : 그때의 방송 기술로는 녹화도 편집도 불가능했어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면 그게 전국에 생방송되는 거에요.
NG나 재촬영이라는 건 있을 수 없었지요
월간 마음 수련 기자 : 이순재씨는 당시의 동료들은 스스로 노력한 자수성가형이었다고 전한다.
연기를 전공하거나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못했어도 좋아서 시작했기에 철저히 원전부터 파고들며
작품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수정하고 서로 보완해 갔던 것. 그러면서 과거의 신파 같은 표현도
사실적인 표현으로 바꿔나깠다.
월간 마음 수련 기자 : 어느 분야든 일가를 이룬 이에게는 그를 키워준 토양이 있게 마련, 배우 이순재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1934년 그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2남 중 맏이로 태어났다.이후 역무원으로 근무하게된 아버지를 따라
가족들은 중국 연길에서 지냈지만 그는 네 살 부터 서울의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한학자였던 할아버지는 대단히 엄격하셨다 한다.
이순재 : 밥 먹을 때 입 벌리지 마라,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 한학도 가르쳐주셨어요. 기본적인 인성교육, 가정교육을 할아버지
한테 배운 거지요.
월간 마음수련 기자 : 할아버지는 생활력 또한 강한 분이었다. 해방 무렵 미군 폭격 때문에 시골로 피난 갔을땐 농사짓기를 마다
않으셨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을 댄 장사꾼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출저 : 월간 마음수련 7월호
저도 열심히 하면 되겠죠^^
첫댓글 궁금한 게 있는데...<월간 마음수련>이랑 이번에 살인미수로 물의를 일으킨 <하늘마음수련원>은 무슨 관계인가요?...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ㅋㅋ
여기 홍보하시는 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