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로큰롤 음악에서 발전한 록은 오늘날 대중음악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로큰롤의 탄생과 록의 발전 배경에는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이 있었다는 점이다. 록을 필두로 한 음악 산업 곳곳 나타나는 각종 현상도 알고보면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60년이 넘는 록의 역사 속 흥미로운 경제 관련 에피소드도 무궁무진하다. 이데일리는 록 음악을 경제 이야기로 풀어보는 ‘피용익의 록코노믹스’를 연재한다. 록코노믹스(rockonomics)는 록(rock)과 이코노믹스(economics·경제학)의 합성어로 ‘대중음악의 경제학’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는 2013년 6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에서 물러나기 직전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 있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섰다. 그는 뉴저지 동향 출신 뮤지션인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 제목 ‘Land of Hope and Dreams’를 강연 제목으로 정했다. 청중들에게 미국 중산층 재건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서였다.
퇴임을 앞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국정철학에 부합한 연설을 한 것은 사실 큰 뉴스가 아니었다. 미국 언론이 주목한 것은 그가 미국 사회의 골칫거리인 ‘부의 편중’ 현상을 설명하면서 록 음악 시장을 예로 들었다는 점이었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록 마니아인 크루거는 연설에서 “음악시장의 돈 상당 부분은 소수의 최고 인기 뮤지션들에게 돌아간다”며 “운 좋은 사람들과 재능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을 버는 반면, 대다수의 나머지는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부의 편중 원인으로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 등을 꼽는다. 그런데 크루거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운’을 주목했다. 돈을 많이 버는 슈퍼스타급 뮤지션들과 동등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단지 운이 없어서 그만한 돈을 못 버는 음악인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크루거는 운이 좋아 슈퍼스타가 된 뮤지션의 대표적인 예로 밥 딜런을 꼽았다. 사연은 이렇다.
밥 딜런이 1965년 ‘Like a Rolling Stone’을 작곡했을 때 그의 소속사인 컬럼비아 레코드는 음반 발매를 꺼렸다. 노래 길이가 6분 13초에 달해 당시 기준으로 지나치게 길었고, 상대적으로 헤비한 일렉트릭 사운드가 딜런의 기존 이미지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컬럼비아 레코드가 시간을 끄는 동안 ‘Like a Rolling Stone’ 음원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클럽에서 이 곡이 소개되면서 인기를 끌었고, 영향력 있는 라디오 디스크자키(DJ)들의 문의가 잇따랐다. 결국 컬럼비아 레코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음반 발매를 결정했다.
컬럼비아 레코드의 결정은 뒤늦었지만 옳았다. 이 곡은 발표 직후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올랐고, 곧바로 전 세계적인 인기로 이어졌다. 대중음악지 롤링스톤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Like a Rolling Stone’을 ‘가장 위대한 노래’ 1위로 꼽는다. 또한 이 곡은 밥 딜런을 일개 인기 포크송 가수에서 전 세계적인 록 스타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밥 딜런은 ‘Like a Rolling Stone’이 발표되기 전부터 충분히 유명한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음원이 유출되는 행운이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기억되는 명성을 얻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일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밥 딜런은 돈을 벌기 위해 노래를 부른 사람은 아니다. 그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돈이 뭐지요?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침대에 들고, 그 중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성공한 사람이지요”라고 말했을 정도로 돈에 무관심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원치 않았던 밥 딜런의 전 세계적인 인기는 막대한 부로 연결됐고, 부는 부를 낳고 또 낳았다. 지금 나이 70대 중반인 그의 전성기는 오래 전에 지났지만 이름값은 여전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그가 공연 활동으로만 연간 최대 12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했다. 대부분 음악인들은 평생 구경하지도 못할 돈이다.
실제로 미국 뮤지션들의 연간 수입을 보면 부의 쏠림 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음악전문지 빌보드가 2015년에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비틀즈 멤버들이나 AC/DC, 밥 딜런 같이 역사가 깊은 밴드나 뮤지션은 연간 1400만~500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음반 판매나 공연 규모로 볼 때 상위 5위 안에 드는 인기 뮤지션들은 이보다 많은 7000만 달러까지 번다.
반면 세션 뮤지션은 하루 100 달러에서 2500 달러를 벌고, 길거리 공연을 하는 버스커는 하루 100 달러도 못 버는 경우가 많다. 세션 뮤지션이나 버스커는 아예 일이 없는 날이 많기 때문에 연간 수입을 측정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밥 딜런보다 실력이 없을까? 대부분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일부는 아직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일 수도 있다. 크루거의 논리대로라면 ‘부의 편중’ 현상에 편입될 만한 ‘운’이 따르지 않은 셈이다.
포크록 가수 밥 딜런이 2012년 7월 22일 프랑스에서 열린 공연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AFP)
극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의 부를 차지하는 것은 대중음악 시장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부의 편중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2016년 6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발표한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2015년 현재 부동산을 제외한 현금과 금융자산의 합이 100만 달러 이상인 가구는 1850만 가구로 집계됐다. 이들 가구가 보유한 자산은 총 78조8000억 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 인구의 1%가 전체 부의 47%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 비율은 앞으로 점점 높아질 것이란 게 BCG의 전망이다.
물론 빌 게이츠나 카를로스 슬림, 워렌 버핏 같은 억만장자들이 단지 운에 의존해 돈을 번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들과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경력을 쌓고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많은 돈을 번 것은 아니다. 부의 형성에 어떤 형식으로든 운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6년에 출간한 자서전 ‘담대한 희망’에서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말을 소개한 적이 있다.
“나는 자본을 할당하는 재능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가 태어난 사회에 달려 있지요. 만약 내가 사냥꾼 부족에서 태어났다면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은 쓸모가 없었을 겁니다. 나는 빨리 뛰지도 못하고, 힘이 특별이 세지도 않아요. 나는 아마 어떤 야생동물의 저녁식사 감으로 생을 마쳤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재능에 가치를 부여해주고, 나에게 그런 재능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주고,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할 수 있는 법률과 금융시스템이 갖춰진 때와 장소에 내가 태어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행운입니다.”
버핏의 관점에서 보면 밥 딜런도 타고난 운부터 좋았다. ‘Like a Rolling Stone’ 음원이 유출되기 전부터 그는 버핏과 마찬가지로 ‘알맞은 때와 장소’에 태어나는 운이 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딜런이 1970년대 한국에서 활동했더라면, 저항의식을 고취하는 노랫말 때문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음악 인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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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Bob Dylan)
1941년 미국 미네소타주 덜루스에서 태어났다. 1962년 데뷔해 지금까지 38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85개의 싱글을 발표했다. “Blowin‘ In The Wind” “Like a Rolling Stone” “Knockin’ on Heaven‘s Door”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유명하다. 음반 판매량은 총 1억장이 넘는다. 음악산업 최고 권위의 상인 그래미 어워드를 11회 수상했으며, 2016년에는 가수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반전(反戰)과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그는 1970년대 한국의 포크 음악에도 상당한 영향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