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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플로러는 포드의 간판 SUV다. 자동차업계의 지각을 뒤흔든 ‘나비효과’의 주인공이자, 포드에게 천당과 지옥을 번갈아 경험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작은 조촐하고 평범했다. 1990년 브롱코Ⅱ의 후속으로 데뷔했는데 그 인기가 범상치 않았다. 적당한 크기와 가격, 성능이 균형을 이룬 결과 익스플로러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이 ‘황금 알 낳는 거위’ 덕분에 포드는 떼돈을 벌었다. SUV의 개념은 짚이 싹틔웠지만 본격적인 대중화는 익스플로러가 이끌었다. 익스플로러의 인기는 미국의 SUV 붐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익스플로러의 성공에 힘입어 GM과 크라이슬러도 SUV를 내놓아 유행에 편승했을 정도이니……. 미국 메이커들로서는 유럽과 일본차에 빼앗긴 고급차 시장을 되찾을 기회였다. 고급 SUV 한 대의 이윤이 최대 1만5,000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차
익스플로러의 성공에 고무된 포드는 SUV에 회사의 역량을 ‘올인’한다. 승용차 부문의 정예 엔지니어를 SUV 개발에 투입, 익스플로러의 형뻘인 익스페디션과 익스커전, 동생뻘인 이스케이프의 삼각 편대를 앞세워 시장 점령에 나섰다. 동시에 인수합병에 손을 뻗쳤다. 숙명의 맞수 GM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회사의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1997~2000년 순이익이 203억달러(약 22조8,000억원)에 달했던 포드는 탄창에 두둑한 돈다발을 가득 채워 넣고 브랜드 사냥에 나섰다. ‘큰손’ 포드의 현금 총질엔 거침이 없었다. 1990년 재규어를 시작으로 1994년 애스턴마틴, 1996년 마쓰다를 사들인 데 이어 1999년 2월에는 볼보자동차의 지분을 100% 거머쥐었고 이듬해엔 랜드로버마저 인수했다.
포드는 창사 100주년을 3년여 앞둔 2000년, 10여 년에 걸친 ‘싹쓸이 쇼핑’을 마무리짓는다. ‘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PAG)의 뼈대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PAG는 애스턴마틴·재규어·랜드로버·링컨·볼보 등 국적과 정체성이 다른 다섯 형제를 한 지붕 안에 묶은 또 다른 연합군. 포드는 PAG만으로 그룹 전체 이익의 3분의 1을 낸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한편 SUV로 촉발된 미국 시장의 변화는 전세계 자동차업계에 영향을 미쳐 미니밴의 인기를 넋 놓고 바라보던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가 작심하고 미국에 뛰어든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말,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는 미국 현지에 각각 공장을 세우고 SUV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SUV를 빼고 자동차 비즈니스를 논할 수 없는 시대가 막을 올린 것.
하지만 나쁜 일은 동시에 닥친다더니, 포드의 상황이 딱 그랬다. 새 천년의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진원지는 익스플로러로 2000년 여름, 익스플로러에 단 파이어스톤 타이어의 결함이 알려졌다. 고속주행 때 파열 위험이 있고, 이로 인해 전복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사고로 수십 명이 사망했다. 이듬해 포드는 21억달러(약 2조3,590억원)의 적자를 냈다.
급기야 창업자의 손자 클레이 포드 주니어는 스스로 뽑았던 자크 내서를 내보내고 직접 CEO에 취임했다. 그러나 한번 기운 분위기는 쉽게 반전시키기 어려웠다. SUV는 고유가와 환경론자의 비난에 몰려 벼랑 끝에 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승용차 시장의 대들보였던 토러스의 인기마저 시들해졌다.
악재에 허덕이던 포드는 모든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려 반전을 준비했다. 우선 PAG부터 해체해 브랜드를 되팔았다. 엔진 배기량을 줄이되 효율은 높이는 ‘다운사이징’에도 발 빠르게 뛰어들었다. 2006년엔 보잉 출신의 전문경영인 앨런 멀러리를 CEO에 앉혀 개혁에 가속을 붙였다. 그 결과 2008년 부실주택 대출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비교적 무사히 넘겼다. GM, 크라이슬러와 달리 위기를 먼저 겪으며 체질을 개선한 덕분이었다.
기대 이상의 출력과 탄탄한 핸들링
‘나비효과’의 날갯짓을 일으켰던 익스플로러가 지난해 4세대로 거듭났다. 이번 모델은 단지 신형일 뿐 아니라 포커스와 더불어 ‘달라진 포드’를 함축할 상징적 아이콘이다. 신형 익스플로러는 유달리 커 보인다. 덩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눈과 거대한 그릴, 꽉꽉 채워 굵게 덩어리진 면 때문이다. 실제 수치도 높이와 휠베이스만 빼면 이전보다 커졌다.
신형 익스플로러엔 다국적군 시절의 잔재가 남아 있다. 링컨 MKT, 포드 플렉스와 함께 쓰는 D4 플랫폼이 대표적으로 볼보의 P2에 뿌리를 뒀다. V6 3.5L 엔진을 얹은 리미티드의 ‘지형관리 시스템’은 아이콘이 한때 식구였던 랜드로버의 ‘지형반응 시스템’과 판박이다.
하지만 이 정도를 빼면 모든 게 새롭다. 치밀한 패널 단차를 뽐내는 겉모습과 마무리가 산뜻한 실내 모두 이전의 포드와 뚜렷한 경계를 그었다. 덩치만큼 실내도 넉넉해서 3열 시트를 빡빡한 느낌 없이 품었다. 유저 인터페이스는 미국내 라이벌을 성큼 뛰어넘는 포드만의 자랑거리. 터치와 음성인식을 앞세운 ‘마이포드터치’와 ‘싱크’가 대표적이다.
이들 시스템은 늘 현실을 한발 앞서 나가는 할리우드 SF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편집증과 결벽증에 시달리는 누군가의 바탕화면처럼, 선명하고 화려한 디스플레이로 복잡한 기능을 세분화해 포갰다. 첨단기기를 다룬다는 자긍심을 안겨주며, 일부 기능엔 놀랍도록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은 영어와 조작에 익숙하다는 전제하에 빛난다.
뜨내기처럼 허구한 날 차를 바꿔 타는 기자에게, 익스플로러의 유저 인터페이스는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자연스럽게 쓰긴 어려웠다. 전화번호부의 한글을 읽지 못하는 등 현지화에 한계가 있는 까닭이기도 했다. 터치 기능 또한 개선이 필요했다. 내비게이션과 비상등 스위치는 히터 바람으로 충분히 데우기 전까진 엄동설한에 땡땡 언 손가락을 끝내 인식하지 못했다.
익스플로어에서 첨단 기능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긴 건 ‘다운사이징’한 엔진이었다. 4기통 2.0L 엔진을 얹었다는 자료에 걱정부터 앞섰다. 곁불 쬐는 수준의 힘 때문에 답답하진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건 괜한 노파심이었다. 가솔린 터보 직분사(에코부스트) 엔진은 243마력과 37.3kg·m의 넉넉한 힘으로 사뿐사뿐 발걸음을 이끌었다. 차를 몰면서 2.0L의 배기량을 까맣게 잊었다. 터보 덕분에 중회전대부터 터져 나오는 막강한 토크는 트랙션을 흐트러뜨리기 충분했고 엔진 사운드도 6기통 못지않은 묵직함을 토해냈다.
꽉 조인 느낌의 핸들링 또한 기대하지 못한 ‘깜짝 선물’. 5m 넘는 길이와 2m 가까운 너비를 의식 못할 만큼 익스플로러는 민첩하게 앞머리를 비틀었다. 하지만 타이트한 조작감에 비해 차체가 무겁고 하체는 부드럽다. 때문에 종종 날렵하게 방향을 바꾼 앞머리를 꽁무니가 뒷바퀴를 끌며 허둥지둥 뒤쫓았다. 앞바퀴굴림 SUV의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다.
이틀 동안 가늠해본 실제 연비는 공인연비 9.7km/L를 살짝 밑돌았다. 철 지난 엔진과 헐거운 자동변속기를 단 디젤 SUV의 실연비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익스플로러 2.0 에코부스트의 가격은 4,610만원.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 뒷좌석 시트벨트 에어백 등 화려한 장비와 3열 시트, 위풍당당한 덩치를 감안하면 퍽 합리적이다. ‘달라진 포드’는 막연한 다짐이 아닌, 피부에 와 닿는 현실로 거듭났다. 신형 익스플로러 2.0 에코부스트가 그 생생한 증거다.
FORD EXPLORER 2.0 EcoBoost
보디형식, 승차정원 5도어 SUV, 7명
길이×너비×높이 5005×1995×1805mm
휠베이스 2860mm • 트레드 앞/뒤 1719/1714mm
서스펜션 앞/뒤 맥퍼슨 스트럿/멀티링크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무게 2130kg • 브레이크 디스크
타이어 255/50 R20 한국타이어 옵티모 H426
엔진형식 직렬 4기통 가솔린 직분사 터보
밸브구성 DOHC 16밸브 • 배기량 1999㏄
최고출력 243마력/5500rpm
최대토크 37.3kg·m/3000rpm
구동계 배치 앞 엔진 앞바퀴굴림
변속기 형식 6단 자동변속기 • 0→시속 100km 가속 -
최고시속 - • 연비, 에너지소비효율 9.7km/L, 4등급
CO₂ 배출량 241g/km • 값 4,610만원